왕년에 리셀 좀 해 본 두 사람이 리셀을 둘러싼 현상에 대해 각각 상반된 의견을 내놓았다.
리셀러는 죄가 없다 커피를 마시는 중이었다. 일행 중 한명이 새 시즌을 시작한 <쇼 미 더 머니 6> 얘기를 꺼냈다. “지코가 루이 비통 슈프림 컬렉션 입고 나왔더라고요. 그거 예쁘긴 하던데, 어떻게 샀을까요? 줄 서진 않았겠죠? 루이 비통이 미리 줬을라나? 녹화 시점을 생각하면 그랬을 거 같기도 한데.” 지코랑 친분이 없어 내막은 모르겠다만, 그런 생각을 했다. 지코가 루이 비통 X 슈프림 컬렉션 중에 뭔가를 사고 싶다면, 과연 어떤 방법으로 살까? 가능성 하나. 루이 비통에서 비밀리에 지코만을 위한 재고를 따로 마련해준다. 가능성 둘. 매니저든 아르바이트든 누군가를 시켜, 줄서 사오게 한다. 하지만 이럴 경우 원하는 제품을 못 살 확률이 높다. 가능성 셋. 리셀러를 통해 산다. 물론 평소 친분이 두터운 리셀러가 있다면 웃돗을 덜 얹은 채 살 수도 있을 것이다. 과연 어느 쪽이 가장 그럴싸한 그림일까?
자기가 산 물건을 되파는 행위는 불법이 아니다. 결국 ‘리셀’이 옳은가 그른가에 대한 기준은 다분히 개인적이다. 줄서기니 당첨이니 오만가지 수를 써도 ‘리테일가’에 새 제품을 사지 못한 자들은 욕을 퍼 붇는다. “리셀러 새끼들, 다 잡아 족쳐야해. 버러지 같은 놈들.” 재발매한 아디다스 이지 부스트 350 V2 지브라를 싹쓸이한 중국인 몇몇은 실제로 잡혀 얻어 맞기도 했다. 하지만 분노의 본질은 그들이 쓴 해킹이라는 수단에 있다. 그러니까 리셀에 대해서는 화가 치밀어도 적당한 욕을 찾을 수 없다.
사실 다들 갖고 싶은 신발 혹은 무언가를 구하기 위해 웃돈을 얹어준 경험 한 두 번씩은 있을 것이다. 인터넷이 막 생긴 2000년대 초반, 압구정 맥도날드, 잠실 롯데월들 시계탑 앞, 나우누리 패션 게시판에선 하루에도 수십 번씩 벌어지던 일이었다. 좀 더 구하기 힘들고, 상태가 좋은 매물을 ‘더 비싸게’ 사는 것에 누구도 반기를 들지 않았다. 줄 서는 게 힘들고 고된가? 가족 명의를 총 동원해서 당첨 확률을 높이는 게 번거롭나? 선택은 둘 중 하나다. 갖기를 포기하거나, 리셀러의 문을 두드리거나.
내가 지코라면 어땠을까, 생각했다. 루이 비통이 선의를 배풀지 않는 한, 리셀러를 통해 원하는 걸 살 거다. 충분한 돈을 가졌을 테니, 원한다면 여러 개라도. 그런데 왜 지코는 그걸 사야할까? 우리는 왜 그걸 원하고 원망해야 하나? 리셀러는 죄가 없다. 쥐꼬리만한 재고 수량에겐 더더욱 죄가 없다. 브랜드에게, 그들이 만든 어떤 물건에게 ‘로열티’를 스스로 부여한 나에게 죄가 있을 뿐이다. 박태일(<벨보이 매거진> 편집장)
리셀, 누구를 위한 문화일까 루이 비통 X 슈프림 컬렉션 팝업 스토어 오픈 이틀 전, 서울 플래그십 매장 앞에는 철야를 준비하는 긴 줄이 늘어서기 시작했다. 좋아하는 브랜드의 제품을 구입하기 위해 긴 줄을 선다는 건 이제 유난한 일도 아니다. 나이키와 아디다스 등의 한정판 컬렉션이 출시되는 날에는 어김없이 매장 앞에 긴 줄이 생긴다. H&M과 디자이너의 협업 컬렉션의 장사진은 뉴스에도 보도된 바 있다. 브랜드들 역시 이런 북쇄통을 마다하지 않는 분위기. 각자 콘셉트에 따라 나름의 준비를 한다. 음료수를 나눠주며 줄 서는 자리를 축제 비슷한 곳으로 만드는 곳도 있고 선착순이 아니라 추첨을 통해 판매하는 곳도 있다.
이런 걸 스트리트 패션 특유의 문화라고 말할 수도 있다. 옛날부터 희소성의 가치는 이 바닥에서 특히 중요했고 그에 따라 공급은 통제돼왔다. 그렇기 때문에 한창 때 하라주쿠의 베이프나 슈프림 뉴욕, 나이키 플래그십 스토어 등지에서는 새 제품이 들어온다는 소식이 퍼지자마자 늘 줄이 늘어섰다.
물론 당시에도 되파는 문화는 있었다. 나이키의 에어포스 원, 아디다스의 트랙탑 같은 것들은 꾸준히 유행해왔고, 때문에 늘 웃돈이 붙어 거래되었다. 심지어 90년대 초 일본의 레플리카 청바지가 유행할 때 즈음에는 미국 중소도시를 누비며 빈티지 셀비지 501 XX 같은 걸 구하러 다니는 데님 헌터라는 직업이 존재했었다. 오사카에는 간단한 외국어와 함께 어디서 어떻게 무엇을 구입해야 하는지 가르치는 일종의 구제 사입 인력 양성 학원마저 있었다.
유행의 꼭대기에 있는 아이템을 누구보다 먼저 소유하고자 궂은 날씨를 마다하지 않고 캠핑을 하는 사람들에게 무슨 죄가 있을까. 문제는 한정판 제품을 구매하려는 인파의 대부분이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리셀러들이라는 데 있다. 인터넷 쇼핑의 발달은 전 세계 모두가 모두를 대상으로 장사를 할 수 있게 만들었고 그런 편의성은 리셀러라는 직종에 날개를 달아줬다. 루이 비통 X 슈프림 컬렉션은 출시와 동시에 중고 시장에서 천 달러, 크게는 오천 달러 이상까지 웃돈이 붙었다.
리셀러의 과거와 현재를 비교자하면, 과거의 리셀러들은 제한된 정보 속에서 현지를 헤매고 다니며 물건을 고르고 그걸 다시 소비자에게 전시하는, 일종의 편집자 역할을 담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도 마찬가지일까? 물론 오프라인 판매를 온라인 판매로 전환하는 기능을 일부 하고는 있다지만 지금 리셀 시장의 거품은 납득 가능한 수치를 이미 넘어섰고 실제로 물건을 구입하고자 하는 이들을 방해하는 비용까지 생각한다면 이제는 손실이 더 큰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결국 리셀 문화는 그 누구에게도 이익이 되는 게 없는 채로 공급의 통제와 수요의 불일치 사이에 거품으로 그저 존재한다. 게다가 수익을 창출하는 이 거품은 브랜드와 소비자 사이에 기생하며 세금도 거의 내지 않고 있다.
브랜드는 제 값 받고 정당하게 판매하는 상황. 사후에 벌어지는 일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 거꾸로 길게 늘어선 줄의 진풍경은 종종 뉴스에까지 등장하니 홍보에도 도움이 될 수 있고, 공급 조절로 줄을 서도록 만드는 식당처럼 일종의 흥행 과시가 될 수도 있다. 리셀과 관련된 진통은 전 세계에서 흐르는 트렌드를 극도로 제한된 소수가 통제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 하지만 하루 밤 새에 별다른 이유도 없이 수십, 수 백 만원의 웃돈이 붙는 현상이 그저 스트리트 패션 문화의 일부일까. 이제 어떤 대책이 필요한 때가 아닐까. 박세진(<패션 vs 패션> 저자)
- 에디터
- GQ DIGITAL
- 글
- 박태일('벨보이 매거진' 편집장), 박세진('패션 vs 패션'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