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텔라 맥카트니는 오랫동안 이 순간을 기다려왔다.
폴 맥카트니의 딸이라는 수식이 붙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언젠가부턴 그게 무의미해졌다. 스텔라 맥카트니는 이제 그 이름만으로 충분하다. 여성복, 액세서리, 수영복, 아이웨어, 아디다스 협업 라인 그리고 이제 남성복까지. 그녀는 차근차근 자신의 왕국을 건설해왔다. 이를 증명하듯 지난 7월 11일 도쿄에선 ‘월드 오브 스텔라 맥카트니’ 프레젠테이션이 열렸다. 말 그대로 모든 컬렉션을 총망라하는 자리였다. 행사장의 다트와 핀볼 머신, 맥주 자판기가 눈길을 끌었지만, 시선은 결국 남성복으로 향했다. 복슬복슬한 카디건과 호랑이 줄무늬 니트, 영국적인 체크 코트와 현대적으로 재단한 더블 브레스티드 수 트…. 각각의 옷은 고유한 언어로 스텔라 맥카트니식 남성복을 정의하고 있었다. 이웃집 소년과 테일러링, 스트리트 패션, 말쑥한 신사처럼 한데 묶이기 힘들 것 같은 단어들이 컬렉션 안에서 절묘하게 균형을 이뤘다. 물론 오가닉 코튼과 데님, 재활용 캐시미어, 에코 나파 가죽 같은 친환경 소재도 빼놓지 않았다. 그건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스텔라 맥카트니의 신념이므로. 가만히 옷을 보고 있으니 지금까지 남성복을 미뤄온 이유를 어렴풋이 알 것도 같았다. 스스로 이런 옷을 만들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온 것일 테다. 퍼즐의 마지막 조각이 맞아 떨어지는 순간, 스텔라 맥카트니의 남성복은 갑자기 크리스마스트리 꼭대기에서 반짝이는 별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녀에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두 번째 남성 컬렉션이다. 남자 옷을 만들어보니 어떤가? 여성복과는 또 어떻게 다른가? 스텔라 맥카트니 안에서 어떤 남자가 탄생하는지 지켜보는 건 굉장히 즐겁고 의미 있는 일이었다. 스스로에 대한 도전이기도 했다. 여성복은 자면서도 디자인할 수 있을 정도로 익숙하지만, 남성복을 이렇게 완전한 컬렉션으로 만든 건 처음이니까. 남성복은 여성복에 비해 확실히 제한적이다. 남자는 여자보다 시도하는 스타일의 폭이 좁고, 편하게 느끼는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경향이 있다. 경계도 좀 더 확고하고 단단하다. 이번 컬렉션을 만들며 그 세계를 좀 더 정확하게 이해하게 됐다.
남성 컬렉션 안엔 지속 가능한 패션을 얼마나 담았나? 컬렉션의 45퍼센트 이상을 친환경 소재로 만들었다. 예를 들어 티셔츠나 데님 팬츠는 오가닉 코튼으로, 셔츠는 친환경 숲에서 얻은 비스코스로 만들었다. 터틀넥엔 재생 캐시미어를, 가죽 느낌을 낸 블루종엔 폴리에스테르를 사용했고, 가방이나 구두 같은 액세서리에는 식물성 오일로 코팅한 비건 레더와 재생 나일론을 썼다. 거의 모든 소재가 지속 가능한 패션을 만족시킨다. 우리는 동물과 환경을 보호하면서도 충분히 근사한 옷을 만들 수 있다는 걸 남성복에서도 증명하고 싶었다.
얼마 전 션 엘리스, 킬리안 머피와 함께한 ‘Black Park’을 봤다. 이 필름은 어떻게 만들게 된 건가? 션과 나는 친한 친구다. 작년 11월 애비로드 스튜디오에 그 둘이 불쑥 나타났길래 “우리 뭐라도 같이 해야 하지 않겠어?” 말을 던졌는데, 정확히 2주 뒤 정말 함께 작업을 하게 됐다. 필름은 런던 외곽에 있는 숲에서 찍었다. 션이 찍은 영상엔 정밀하고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아름다움이 담겨 있었다. 사실 나는 평소에 그런 종류의 명확함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영상을 보고 나선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그건 아예 다른 차원의 것이었다. 이런 완성도라면 당연히 존중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 에디터
- 윤웅희
- 사진
- SPONSORED BY STELLA MCCARTN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