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샤이니 키 “저는 정말 저를 숨기지 못해요”

2017.08.03장우철

“숨길 수 없네 이 마음을 수줍음을 / 숨길 수 없네 내 기쁨을 설레임을 / 바람 불어 오네 그댄 꽃 향기 / 높이 날고파라 난 나비가 되네.” 샤이니의 키를 인터뷰하고 돌아오는 길에 산울림의 이 노래가 자꾸 생각났다.

노란색 스웨터는 펜디, 바지와 구두는 김서룡, 과일 무늬 실크 스카프는 에디터의 것.

“걱정이 많은 스타일이에요. 어떡하지? 큰일이다, 잘못되면 어떡하지? 항상 그러고 있어요.”

웃고 있네요. 어제 <파수꾼> 막방이었어요. 정말 안 끝날 거 같았거든요. 항상 이렇게 (어깨에 힘을 주며) 텐션을 받고 살았어요. 그게 없으니까 홀가분하네요.

드라마도 끝났겠다, 힘이 쭉 빠진 키를 만날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어느새 가벼운 표정이네요. 제가 텐션을 갖고 사는 걸 별로 안 좋아해요. 사실 좋아할 수가 없죠. 그냥 모든 게 끝났을 때의 기분을 즐기려고 이 일을 하는 거예요. 뿌듯함. 보람참. 제가 하는 일 자체가 그렇잖아요. 사람들한테 위로도 해주고 기쁨도 주고 때론 일부러 슬프게도 만들고 그러는 건데, 정작 제 자신은 일을 다 끝내고 뒤를 돌아보는 기분 때문에 하는 거예요. 제가 제일 싫어하는 건 연습하는 거고, 제일 좋아하는 건 무대에 서는 거예요. 근데 무대에 서려면 연습을 해야 하잖아요. 그래서 항상 걱정이 많아요. 어떡하지? 큰일이다, 잘못되면 어떡하지? 뭔가 계약을 하고 나서 갑자기 확 하기 싫어지기도 해요. 너무 많은 과정이 기다리는 걸 아니까요.

결국 준비를 하는 수밖에 없겠네요. 완벽주의자는 아닌데, 뭐든 준비를 해놓아야 해요. 동선이든 대사든 맞든 틀리든 잘하든 못하든.

무대에 오른다거나, 드라마를 한다거나, 해소하고 지우는 순간이겠군요. 절정을 꽃피운다기보다는요. 맞아요. 제가 어느새 10년 차쯤 되다 보니, 타협을 잘한달까, 뭔가 내려놓을 줄을 안달까, 그런 게 있어요. 오늘처럼 화보 촬영을 할 땐 제 얼굴이 잘 나오는 것보다 원래 의도대로 나오고 있느냐 그걸 중시해요. 어차피 사람들이 저 어떻게 생겼는지 다 알잖아요. 사실 <혼술남녀>에서도 <파수꾼>에서도 거기서 하고 나온 헤어스타일이 제 취향은 아니에요. 사실은 싫었어요. 하지만 캐릭터와 맞잖아요. 설득력이 있잖아요.

셔츠와 바지는 모두 루이 비통, 슈즈는 생 로랑 by 안토니 바카렐로.

그런 이유에선지 이상하게도 각인되는 느낌이 없어요. 샤이니 멤버 중 얼핏 가장 화려하고 자극적일 것 같은데, 막상 그렇지 않다는 느낌이 들어요. 숨어 있는 것도 같고, 그만큼 항상 새롭다는 뜻도 되겠죠. 그렇게 보자면 사람들이 저한테 드라마 연기를 잘할 거라는 기대를 안 갖는 것도 오히려 좋아요. 항상 같은 이미지를 고수하려 한다거나, 예뻐 보이려 한다거나, 이런 욕심이 없어요. 똑같다는 느낌이 없으니까 한번 써보고 싶으신 게 아닐까 해요.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부터 어떤 균형을 찾는 건데, 그래도 자신만의 만족이라는 측면이 있잖아요. 사실 지금보다 더 어릴 때는 가장 유명하고 가장 잘 나가는 사람이 되는 게 목표였어요. 당연히 그랬죠. 근데 지금은 그걸 딱 목표로 두진 않아요. 말씀하신 것처럼 하나씩 지워낼 때마다 원하는 목표가 있어요. 그렇게 하다 보니 오히려 제가 상상하지 못하는 일이 여러 방면에서 들어오더라고요.

지우면서 한편으로 쌓은 셈이네요. 그렇게 쌓인 것들이 에너지가 되어서 기회로 오는 것 같아요. 앞으로도 뭘 의식하기보다는 하나씩 지워나가듯 쌓다 보면 뜻밖의 좋은 일이, 상상하지도 못한 일이 내게 올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도 중심에는 어디까지나 샤이니가 있겠죠. 그렇죠. 샤이니는 변화가 가장 빠른 시대에 데뷔한 팀이에요. 데뷔할 땐 와이파이라는 말도 없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생전 처음 들어보는 나라에서 실시간으로 메시지를 받죠. 자연스럽기도 하고 새삼스럽기도 해요. 정말 이렇게 많은 사람의 기대가 있구나, 앞으로 어떤 선택의 순간이 오더라도 굳이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해야지, 그런 생각은 없어요. 사람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요.

니트 터틀넥 스웨터는 디올 옴므.

“무난한 연예인이라는 건 그냥 관심으로부터 멀다는 얘기 같아요. 차라리 욕먹는 게 훨씬 낫죠.”

그만큼 영향력을 갖는 게 중요하겠죠? 영향력이 큰 사람이 되고 싶어요. 뭔가를 넘어서는 존재였으면 좋겠어요. 제가 여성 액세서리를 광고하면서도 꼈던 게, 남성성이나 여성성 그런 틀을 떠나는 거야말로 제가 추구하는 멋인 것 같아요. 새롭게 제시하면서 영향력을 갖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하필 멋을 거기서 느끼는 거네요. 데이비드 보위 같은 이름에 남성성이니 여성성이니 그런 틀은 아예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요. 데이비드 보위 정말 좋아해요. 그 사람도 당시에는 욕을 먹었잖아요?

욕을 먹는다는 말이 재밌게 들리네요. 욕을 먹는다는 건, 뭐라 그래야 하지? 욕먹는 걸 걱정하면 경쟁력을 잃는 거 같아요. 무난한 연예인이라는 건 그냥 관심으로부터 멀다는 얘기 같아요. 욕먹는 게 훨씬 낫죠. 사람들이 저로 인해 뭔가 영향을 받는다는 자체가 좋아요.

그야말로 영향력이네요. 그런데 뭔가 강조하거나 강요하는 느낌은 없어요. 제가 고집을 안 부려서 그런 거 같아요. 쓸데없는 고집이 없어요.

수트와 셔츠와 스웨터와 보타이는 모두 구찌.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겠죠? 그럼요, 고집 엄청 셌죠. 일하면서 바뀌었어요. 예전엔 노래도 멋있는 것만, 센 것만 하고 싶고, 잘하는 것만 하고 싶었어요. 어릴 때 데뷔해서, 너무 당연스럽게 앨범을 내고, 너무 당연스럽게 돈을 벌고, 너무 당연스럽게 다음으로 이어지고, 그런데 내가 잘하는 것만 하고 싶다는 게 옳은가. 나는 어쨌거나 사람들한테 보여주고 들려주는 사람이어야 하지 않나? 균형을 찾은 거죠. 지금 차트에서 1등인 노래가 너무 이상해 보인다고 해도, 결국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한다는 얘기거든요. 그걸 재빨리 캐치하는 게 중요하죠. 사실 저도 얼마 전에야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어떤 계기가 있었나요? 음반에 국한된 얘기는 아니고, 제가 뭔가를 했는데 사람들이 별로 관심이 없다거나 예상과 완전히 빗나가는 경우가 있었어요. 방송을 아주 잘했다고 생각했는데 다 편집되었거나, 진짜 대박이라고 생각한 노래를 아무도 안 듣는 것 같을 때. 걱정을 거듭하다가 깨달은 거죠. 이건 되게 간단한 얘기구나, 해야 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 사이에서 조절하고 타협할 수 있어야겠구나, 그래도 저는 시대를 잘 만난 거 같아요.

그래요? 예전에는 스타들이 좀 감추면서 굵직한 것만 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잖아요. 하지만 요즘은 노출의 빈도가 곧 인기와 정비례하잖아요. 옛날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페이스북 광고 같은 게 먹히는 시대잖아요. 그렇게 스스럼없이 자꾸 나를 보여줘야 하는 시대기 때문에 저처럼 생각하고 일하는 사람들한테 잘 맞는 것 같아요. 물론 뒤에 회사도 있지만, 회사가 다 해주는 건 아니거든요. 마케팅을 제 스스로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쉽거나 아까운 점이라면요? 예전에는 솔직히 20대를 이렇게 보내는 게 아까웠어요. 뭔가 항상 전투적으로 일하고, 내 시간은 하나도 없는 것 같고. 또래 친구들은 맨날 몰려다니며 놀고 있는 것 같은데.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다 공평한 거 같아요. 정말 ‘페어’해요. 다 상대적인 거니까요.

노란색 스웨터는 펜디, 바지와 구두는 김서룡, 과일 무늬 실크 스카프는 에디터의 것.

“걱정은 많은데 불안하진 않아요.”

어느새 자아가 이렇게 커진 사람을 보는 것 같네요. 불안하지 않죠? 걱정은 많은데 불안하진 않아요.

하루 중 제일 좋아하는 시간이 있다면요? 매일 다르긴 한데 그래도 일하러 갈 때, 아침이 좋아요. 씻고 얼굴에 기초 제품 바를 때 제일 기분이 좋아요. 몇 시간 못 잤다고 해도, 딱 준비해서 기다리는 차에 탈 때가 제일 좋아요.

오늘 사진을 찍으면서 “방에 혼자 있을 때처럼”, “그냥 가만히” 이런 말을 많이 했는데 어땠어요? 좋았어요. 제 생각에 저는 고독의 즐거움을 누구보다 아는 사람이에요. 서로 그런 점을 방해하지 않을 사람이 제 배우자가 되어야 할 거예요. 혼자 있는 걸 좋아하지만, 밖에 나가면 외향적인 사람처럼 보여요. 어쨌든 집에 있을 때는 철저하게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요. 걱정을 하든 연습을 하든 혼자 하는 게 좋아요. 그래야 뭔가 나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일단 부딪쳐야 하는 일도 있잖아요. 맞아요. 저는 뮤지컬에 아예 관심이 없었어요. 근데 어쩌다 일이 들어왔고, 일단 했어요. 그랬더니 너무 재밌는 거예요. 다른 뮤지컬도 다 찾아보고, 뮤지컬 배우 누가 이번에 무슨 작품 들어간다더라, 그런 것까지 관심이 생기는 거예요. 내가 혼자 생각하는 것만으로는 안 되는 것도 있구나, 어떤 일에든 겁내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걸 깨달았죠.

셔츠는 생 로랑 by 안소니 바카렐로.

쉽게 친해지는 스타일은 아니죠? 사람들이 저랑 일할 때, 키가 싫다 좋다 그런 생각 자체가 들지 않게끔 해요. 조금 무심하게도 굴고요. 나를 조금은 숨기는 거겠죠. 그냥 가만히 있는데, 뭐 기분 나쁜 일 있냐는 소리 자주 들어요. 그냥 멍했을 뿐인데.

자주 우나요? 잘 울어요. 다른 사람 아무도 안 우는데 갑자기 혼자 이상한 포인트에서 울고 그래요.

웃는 타이밍도 좀 그렇죠? 혼자 박수치다가 막 사레들리고 그러는 장면 여럿 봤어요. 맞아요. 저는 정말 저를 숨기지 못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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