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 데이-루이스와 이자벨 아자니의 아들, 줄리안 무어의 에스코트, 로열 패밀리, 패션계의 금수저…. 지금까지 가브리엘 케인 데이-루이스에 대한 수식은 그의 주변에서만 따왔다. 하지만 이 스물세 살의 청년은 어느새 돌체 & 가바나와 H&M 광고를 찍는 모델이자 네 장의 앨범을 낸 뮤지션이 됐다. 그리고 곧 배우가 될 준비도 마쳤다. 이제 가브리엘 케인은 온전히 자신만의 이름으로 불려야 한다.
오늘 촬영 어땠어요? 더워서 좀 힘들었죠? 패딩을 껴입었을 땐 잠깐 아찔했지만 괜찮아요. 한겨울에 얇은 셔츠 한 장만 입고 오들오들 떠는 것보단 낫죠. 할렘에서 화보를 찍은 건 처음인데 재미있었어요. 사람 구경도 실컷 하고요. 아까 봤어요? 어떤 아저씨가 와서 이거 발렌시아가냐고 물어봤는데.
그럼요. 로고도 없는 코트를 딱 알아봤잖아요. 근데 촬영 때 보니 처음 만난 사람들과도 쉽게 친해지는 것 같더라고요. 원래 성격이 그래요? 그런 편이에요. 사람들에게 쉽고 자연스럽게 다가가는 법을 알아요. 어렸을 적부터 좀 그랬어요. 모두의 친구가 되고 싶어 했거든요. 그래서 상대방의 기대에 따라 그때그때 성격을 바꾸곤 했어요. 카멜레온 같았죠. 친구들과 어울리려고 일부러 사고를 친 적도 몇 번 있어요. 나쁜 짓인 줄 알면서도요. 그 나이 땐 소속감을 확인하려고 멍청한 짓도 하잖아요. 돌이켜보면 전 사랑받고 싶어서 불안해하는 애였어요. 물론 지금은 아니에요. 좀 더 편해졌죠.
부모님이 유명인이라서 더 그랬던 건가요? 아녜요. 그냥 제 성격이 그랬어요. 친구들은 제 엄마 아빠가 누군지, 뭘 하는 사람인지도 몰랐어요. 저도 딱히 얘기하지 않았고요.
근데 눈이 진짜 엄마를 닮았네요. 그런 말 자주 들어요. 제 얼굴 중 제일 자신 있는 곳이기도 해요. 눈썹은 아빠를 빼다 박았죠. 어렸을 땐 제 눈썹을 싫어했어요. 너무 진하고 숱이 많아서 얼굴 비율에 안 맞는다고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지금은 맘에 들어요. 일단 눈에 띄잖아요. 또 모델로서의 캐릭터를 강하게 만들어주기도 하고요.
맞아요. 그리고 밝은 금발로 탈색한 게 잘 어울리는 거 같아요. 근데 다른 색으로 바꿔보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안 그래도 고민 중이에요. 밝은 빨간색이나 파란색 머리도 해보고 싶거든요. 그렇지만 쉽진 않을 거예요. 금발이 잘 어울리기도 하고, 원래 색깔로 돌아가기도 쉬우니까요. 특이하게 염색을 하면 영화나 쇼에서 역할을 따기 힘들 수도 있잖아요.
연기도 할 생각이에요? 사실 회사에선 연기에 대한 질문을 자제해달라고 부탁했거든요. 아마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를 줄이고 싶어서였을 거예요. 회사 입장에선 저에게 좀 더 초점을 맞췄으면 했겠죠. 솔직히 말하면 얼마 전부터 배우 쪽도 고려하고 있어요. 물론 음악 작업도 계속할 거고요.
샤넬 패션쇼에 모델로 서면서 단숨에 유명해졌죠? 그러면서 잡지 커버도 좀 찍었고요. 그때 기분이 어땠어요? 샤넬 쇼에 서기 전까지 사람들은 제가 누군지 몰랐어요. 그런데 정신을 차려보니 모든 패션 기사에 제 이름이 등장하고, 지나가다 제 얼굴을 알아보는 사람도 생겼어요. 뭔가 비현실적이었어요. 하룻밤 사이에 삶이 바뀌었으니까요.
언제나 목걸이를 주렁주렁 차고 반지도 양손 가득 끼잖아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원래 액세서리를 좋아해요.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도 있고, 지나가다 맘에 들어서 산 것도 있어요. 이 악마의 눈 펜던트는 엄마가 모로코에서 사다 주신 거예요. 부적 같은 거라서 거의 빼지 않죠. 해골 목걸이는 친구가 직접 만들어준 거고, 곰발 모양 펜던트는 전 여자친구에게 선물 받은 거예요. 뒤에 이니셜도 새겨져 있는데, 좋아하는 거라 아직까지 하고 다녀요.
제일 아끼는 옷은 뭐예요? 진짜 좋아한 구찌 고스트 재킷이 있었어요. 몇 벌 안 만든 거라 엄청 비싸고 소장 가치도 있었죠. 매장에서 별 생각 없이 입어 봤는데 저한테 너무 잘 어울리더라고요. 옆에 있던 여자친구도 이건 꼭 사야 한다고 절 부추겼어요. 큰맘 먹고 사서 몇 달 동안 정말 많이 입었어요. 그런데 얼마 전 뮤직비디오 제작비가 모자라 눈물을 머금고 팔았어요.
‘Ink in My Vein’ 뮤직비디오 얘긴가요? 아녜요. ‘Ink in My Vein’은 지난주에 공개됐지만, 사실 작년에 촬영한 거예요. 이번에 찍은 건 9월에 발표할 새 싱글 ‘Lie to Me’의 뮤직비디오고요.
처음엔 ‘Ink in My Vein’이 타투에 대한 노래인 줄 알았어요. 당신은 몸에 타투도 많으니까요. 다들 그렇게 생각해요. 하지만 이 노래는 사실 타투와 관련이 없어요. 오히려 곡을 쓰면서 느끼는 해방감과 안도감에 대한 얘기예요. 곡을 쓰는 건 저에게 치유의 과정이에요. 가슴속에 쌓아둔 걸 쏟아내는 거죠. 그 순간의 감정을 노래에 담고 싶었어요.
제일 처음 새긴 타투는 뭐였어요? 치골 위에 있는 알파벳 E와 무한대 기호요. 열여섯 살 때 할머니와 삼촌이 돌아가셨는데, 그분들을 기억하기 위해 뭔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돌아가신 할머니와 삼촌의 이니셜을 따서 문신을 새겼죠.
제일 좋아하는 건요? 왼팔에 있는 ‘Every Scar is a Healing Place’라는 문구요. 예전에 형이 한 말인데, 인상 깊어서 오래 기억하려고 새겨놨어요.
음악을 시작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음악은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어요. 그러다 열넷인가 열다섯 살 때 학교 축제에서 공연을 하게 됐어요. 관객이 몇 백 명은 있었던 것 같아요. 학예회 수준이 아니었죠. 무대도 꽤 컸고요. 뜨거운 조명, 관객들의 환호, 무대 위에서 느꼈던 짜릿함과 전율 같은 것들이 아직까지 또렷하게 기억나요. 거기서 우승해 커다란 트로피도 받았어요. 굉장히 뿌듯했죠. 그때 처음으로 진지하게
뮤지션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처음 곡을 쓴 건 언제예요? 열두 살 때요. 음악을 좋아하던 친구와 어쿠스틱 기타 하나로 만들었는데,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누구에게 들려주기도 민망한 노래였어요. 작곡에 대해 아무것도 모를 때니까요. 그래도 그땐 그게 굉장히 근사해 보였어요.
뭐에 대한 노래였는데요? 창문으로 비치는 햇빛, 따뜻함, 좋은 기분…. 그런 평화로운 순간에 대한 노래였다는 것만 어렴풋이 기억나요. 정말 귀엽죠?
요즘은 어떤 노래를 듣나요? 예를 들어 아침에 일어났을 때라든지, 드라이브를 할 때 말이에요. 아침엔 기운을 차리게 하는 음악이 좋겠죠. 샤워를 하고 나갈 채비를 할 땐 종종 파슨 제임스의 ‘If You’re Hearing This’를 들어요. 하루가 잘 풀릴 것 같은 기분이 들거든요. 아니면 찰리 푸스의 이번 신보도 좋을 것 같아요. 드라이브할 땐 카이고나 에드 시런, 존 멘데스로 할래요.
클럽에서는요? 테크노나 EDM 빼곤 다 괜찮아요. DJ 칼레드와 리한나가 만든 ‘Wild Thoughts’나 요즘 유명한 ‘Despacito’ 같은 노래가 춤추며 놀기엔 좋죠. 그렇지만 요즘은 클럽에 잘 안 가요. 집에서 영화를 보거나 쉬는 게 훨씬 더 좋더라고요.
정말요? 지금 한창 놀 나이잖아요? 미국에선 그렇죠. 여기 이십 대 애들은 매주 주말마다 클럽에 가서 미친 듯이 놀아요. 스물한 살이 돼야 클럽에 갈 수 있으니까요. 유럽은 훨씬 더 빨라요. 전 열네 살 때부터 클럽을 드나든걸요. 저도 십 대 땐 열심히 놀았어요. 내일이 없는 것처럼 술도 진탕 마시고요. 하지만 언젠가부터 그게 신나지 않더라고요. 뉴욕에 올 때쯤엔 이미 클럽 신이 지겨워진 뒤였어요.
뉴욕에서 제일 좋아하는 곳은 어디예요? 웨스트 빌리지요. 자유로우면서도 평화롭거든요. 특히 봄엔 꽃이 많이 펴서 정말 예뻐요.
소호나 트라이베카는요? 어디가 유명한지 정도는 알고 있어요. 사람들은 치프리아니에서 점심을 먹고, 소호에서 쇼핑을 하고, 더 블론드에서 술을 마시죠. 하지만 그런 건 별로 제 스타일이 아니에요. 전 오히려 볕이 좋은 날 조용한 공원 벤치에 앉아 한가롭게 점심을 먹는 게 좋아요. 사람들이 오가는 걸 구경하면서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는 거죠.
좀 더 화려하고 방탕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애늙은이 같은 구석이 있네요. 그런가요? 하긴, 사람들은 제가 유명한 배우의 아들이니까 굉장히 버릇 없고 흥청망청할 거라고 지레짐작하죠. 전 잘 모르겠어요. 그래야 하나요?
안 그래서 더 좋은걸요. 근데 요즘에도 커피와 담배를 달고 살아요? 네, 아직도요. 줄이려고 노력은 해요. 예전엔 하루에 커피를 여덟 잔씩도 마셨어요. 안 그래도 불면증이 심한데, 그땐 잠자는 게 굉장히 힘들었죠. 낮엔 피곤하니까 또 커피를 들이붓고요. 그걸 반복하다 보니 더 이상 안 되겠다 싶더라고요.
당신의 약점은 뭐예요? 사람을 쉽게 믿는 거요. 전 주변에 관심이 많고 친절해요. 그러다 보니 사람들이 때론 굉장히 이기적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자주 잊어요. 어렸을 땐 상처도 많이 받았어요. 지금은 좀 더 유연하게 극복하는 법을 배웠죠. 하지만 여전히 쉽진 않아요. 아무렇지 않은 척해도 신경이 쓰이죠. 근데 그게 쉬워지면 좋은 건가요? 오히려 그렇게 무뎌지는 게 더 무서운 일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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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나나, 윤웅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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