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랭커스터의 낡은 모텔에서 <문라이트>의 그 배우 애슈턴 샌더스를 만났다. 달빛 아래서 푸르게 보이던 그가 태양 아래선 검게 반짝였다.
<캡티브 스테이트> 촬영은 다 끝났어요? 두 달 전쯤 마지막 신을 찍고 LA로 돌아왔어요. 시카고에서 세달 동안 거의 쉬는 날 없이 촬영했죠. 2주 만에 찍은 <문라이트>와는 제작 규모도, 장르도, 연기하는 방식도 다 달랐어요. 덕분에 많이 배웠고요.
<문라이트>를 2주 만에 찍었다는 사실이 더 놀라운데요? 이 얘길 하면 다들 그런 반응을 보여요. 영화의 전체 촬영 기간은 훨씬 길었지만, 제 분량은 거의 2주 만에 찍었어요. 짧고 굵게요. 인생에서 가장 강렬한 2주였어요.
LA에서 나고 자랐죠? 네, 롱 비치 근처에 있는 카슨에서요. 어렸을 적엔 유별나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어요. 주변 남자애들이 농구나 축구를 할 때, 전 집에서 TV를 보며 사람들 흉내를 내거나 그림을 그렸거든요. 그래서 놀림도 받고 따돌림도 당했어요. 또래 문화와 집단에 속하지 않았으니까요. 하지만 그때부터 제가 뭘 좋아하는지, 어떤 사람인지 꽤 분명하게 알고 있었던 것 같아요.
<문라이트>가 남 얘기 같지 않았겠어요. 샤이론과 전 분명 비슷한 부분이 있어요. 영화를 찍으면서 스스로를 많이 돌아보게 됐죠. 새롭게 깨달은 점도 많고요. 그래서 저는 <문라이트>를 성장과 치유에 대한 영화라고 말해요. 영화 자체도 그렇지만, 개인적으로도요. 영화를 찍고선 저와 주변 사람을 이해하는 방식과 깊이가 완전히 달라졌어요. 제겐 여러모로 의미 있는 영화예요.
하지만 당신은 샤이론보다 훨씬 더 에너지가 많고 외향적이죠. 샤이론이 제 일부이긴 하지만, 샤이론이 저인 건 아니니까요. 전 스스로를 표현하고 싶은 욕구가 강해요. 또 뭔가를 하고 싶으면 어떻게든 해야 직성이 풀리죠. 흥도 많고요.
딱 봐도 그게 느껴져요. 아까 촬영할 의상들을 쭉 훑어보고선 굉장히 흡족해하던데, 옷 좋아하죠? 아버지가 패션 디자이너예요.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옷을 보며 자랐죠. 전 패션도 예술이라고 생각해요. 어떤 방식으로든 자신을 표현한다는 건 창조적인 일이니까요. 그래서 유행하는 옷보다 입고 싶은 옷을 입어요. 그게 훨씬 더 흥미로워요. 제가 어떤 사람인지 옷으로 설명하는 거죠.
옷을 만들어 입기도 해요? 거창한 건 아녜요. 티셔츠를 사서 맘에 드는 문구를 새기거나, 바지를 원하는 스타일로 대충 잘라 입는 정도예요. 하지만 그게 또 큰 차이를 만들죠. 이건 사실 비밀인데, 요즘 아버지와 함께 패션 라인을 준비하고 있어요. 생각해 둔 이름도 몇 개 있고요.
최근엔 라프 시몬스의 러브콜을 받고 윌리 반더페레, 알라스데어 맥렐란 같은 유명 사진가들과 작업도 했잖아요. 기분이 어때요? 꿈만 같죠. 영광스러워요. 다들 굉장한 사람들이니까요. 단순히 패션계에서의 명성과 입지 때문은 아녜요. 그들과 함께 일을 하다 보면 사물을 보는 관점이나 방식이 완전히 다르다는 걸 알게 돼요. 일상적인 대화에서도 새로운 영감을 받고요. 스펀지처럼 많은 걸 빨아들이게 돼죠.
라프와의 첫 만남은 어땠어요? 캘빈클라인 쇼 전날이었어요. 오스카 시상식 때 입을 옷을 맞춰 보러 쇼룸에 갔는데, 그가 바로 위층에서 스태프들과 쇼를 준비하고 있었어요. 사방에 조명이 있길래 너무 긴장해서 인사만 하고 얼른 자리를 빠져 나왔죠. 그런데 그의 어시스턴트 중 한 명이 헐레벌떡 달려와 제 이름을 막 부르는 거예요. 라프가 저를 다시 보고 싶어 한다고요. 방에 들어갔더니 모든 사람이 저를 빤히 쳐다보기만 하더라고요. 그게 시작이었어요. 그리고 우린 금세 친구가 됐어요.
그리고 얼마 뒤 캘빈클라인 언더웨어 광고 캠페인을 찍었죠? 광고 캠페인을 찍은 건 뉴욕으로 가기도 전이었어요. 패션쇼 땐 이미 작업 중이었고, 오스카 시상식 후에 공개됐죠.
그런데 캘빈클라인 광고 때보다 타투가 더 많아진 것 같네요? <캡티브 스테이트> 촬영 중에 문신을 두 개 더 새겼어요. 가장 최근에 한 건 오른팔의 장미 타투예요. 가운데엔 사물을 꿰뚫어보는 눈을 그려 넣었고요. 겉보기에 아름답다고 섣불리 다가서다간 다칠 수도 있다는 뜻이에요. 그러니까 뭐든지 한 번 더 생각하고 신중하게 행동하자는, 일종의 다짐 같은 거죠. 제가 좀 충동적인 면이 있거든요.
다른 하나는 뭐예요? 가슴에 있는 Troupe 1237요. 1237은 제 행운의 숫자예요. 전 신기하게 이 숫자를 굉장히 자주 마주쳐요. 어떨 땐 그게 하늘의 뜻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너는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 하는 계시처럼요. 근데 더 놀라운 게 뭔지 아세요? 최근에 아이사이아 러스크와 작은 프로덕션을 하나 차렸는데, 그도 마침 이 번호를 많이 본다는 거예요. 그래서 회사 이름을 Troupe 1237이라고 정했어요.
배우가 되지 않았다면 지금쯤 뭘 하고 있었을까요? 아마 수의사가 됐을 것 같아요. 동물을 굉장히 좋아하거든요. 하지만 다른 직업을 진지하게 고민해 본 적은 없어요. 어렸을 때부터 확실했죠. 제 꿈은 오직 하나, 배우였어요.
그게 몇 살 때예요? 잘 기억나지 않을 만큼 어릴 때부터요. 연기를 제대로 배우기 시작한 건 열두 살 때였어요. 아버지를 졸라 어메이징 그레이스의 프로그램에 등록했죠. 처음엔 뮤지컬로 시작했는데 금세 연기에 푹 빠졌어요. 연기를 할 때면 굉장히 자유롭다고 느꼈거든요. 그 어린 나이에도요. 힘든 걸 잊고 다른 사람의 삶을 살 수 있었으니까요. 그게 엄청 매력적이었요. 다른 애들과는 다르지만, 대신 신이 제게 창조적인 마음을 주셨다고 생각했어요.
해보고 싶은 배역이 있어요? 최대한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하고 싶어요. 그러면서 미처 몰랐던 자신을 마주하기도 하니까요. 뼛속까지 비열하고 잔인한 인물도 좋죠. 배우라면 누구나 한 번쯤 그런 연기를 하고 싶어 하잖아요. 꼭 도전해보고 싶은 배역은 조커예요. 조커는 모든 사회적 규범에서 벗어나 있는, 아주 다르고 특별한 존재예요. 제가 만약 최초의 흑인 조커가 된다면 아주 멋질 거예요. 어때요? 저랑 잘 어울려요?
신선할 거 같아요. 꼭 스크린에서 보고 싶네요. 촬영 때 보니까 노래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던데, 요즘은 어떤 노래를 들어요? 혹시 차일디시 감비노의 ‘Awaken, My Love!’라는 노래 알아요? 모른다면 꼭 들어보세요. 장난 아니거든요. 요즘 거의 매일 같이 듣는 노래예요. 앨라배마 셰이크스나 프랭크도 좋고, 아이사이아 라샤드, 로린 힐, 푸지스, 파사이드, 레몬 트위그스…. 얘기하자면 끝도 없죠. 아, 최근엔 바이닐에도 빠졌어요. 스티비 원더, 앨 그린, 핑크 플로이드, 비틀스, 비치보이스 같은 옛날 가수들의 노래를 좋아하는데, 들을 때마다 감탄하게 돼요. 진짜 예술은 시간이 흘러도 영원한 것 같아서요.
쉬는 날엔 뭘 해요? 다른 사람들과 비슷해요. 영화를 보고, 몇 시간씩 산책도 하고, 카페에 앉아 사람 구경도 해요. 해변에서 자전거도 타고요.
술은요? 와인 좋아해요. 요즘은 샤도네이와 피노 그리지오를 많이 마셔요. 겨울이라면 얘기가 좀 다르지만, 어쨌든 와인은 언제나 좋죠. 신나고 싶을 땐 콜라에 위스키를 넣어 마시고요.
LA에서 제일 좋아하는 곳은 어디예요? 다운타운요. LA지만 LA 같지 않아서 좋아요. 그 어느 도시와도 비슷하지 않죠. 요즘 다운타운은 새로운 에너지로 가득해요. 몇 년 전의 베를린처럼요. 많은 예술가가 아트 디스트릭트로 몰려들고 있어요. 그래서 저도 얼마 전에 다운타운으로 이사했고요.
안 그래도 내일 다운타운에 갈 일이 있는데, 들러볼 만한 가게나 지역을 추천해줄 수 있나요? 저도 이사한 지 얼마 안 돼서 아직 속속들인 몰라요. 그냥 길을 걷다 눈에 띄는 가게나 마음에 드는 갤러리가 있으면 들어가 보세요. 오히려 그런 게 더 재미있을 수도 있거든요. 그래도 몇 군데를 꼽자면 더 라스트 북스토어라는 서점과 브로드 뮤지엄을 추천할래요. 브로드 뮤지엄에선 요즘 바스키아 전시도 하고 있어요. 저도 얼마 전에 다녀왔는데 좋더라고요. 아니면 사우스 스프링 스트리트와 6번가 근처도 좋겠네요. 거기 있는 LA 카페가 음식을 잘해요. 아, 교차로에 있는 타코 트럭은 꼭 가봐야 해요. 1달러짜리 타코지만 웬만한 고급 레스토랑에서 파는 것보다 훨씬 맛있어요. LA는 아마 지구상에서 가장 훌륭한 타코가 있는 도시일 거예요.
요즘 행복하죠? 내일을 기대하는 사람처럼 보여요. 그런데 당신도 우울할 때가 있겠죠? 당연하죠. 하지만 그럴 땐 계속 혼자 되뇌어요. 괜찮다고, 이미 충분하다고, 그러니까 변치 말라고요. 스스로에게 거는 최면 같은 거죠. 그럼 신기하게도 금방 다 괜찮아져요. 행복하냐고요? 지금 제가 행복하지 않을 이유가 있나요?
- 에디터
- 박나나, 윤웅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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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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