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소 같은 남자 킬라그램과 이태원 한복판에서 만나 봅슬레이, 싸가지, 미국식 실내화에 대해 얘기했다.
그래서 우원재에게 선물은 받았나? 아직 원재를 못 봤다. 선물을 사왔는지의 여부도 아직 모른다. 그냥 “바쁘지?”라고 메시지 보냈다(웃음).
영화 <범죄도시> 수록곡 ‘Dirty Dog’ 가사에서 ‘보내지 좀 마 DM 읽을 시간 없어’라고 말했는데 실제로 요즘 그렇게 바쁜가? 이번 주에도 하루도 안 빼고 공연, 방송, 인터뷰 등 스케줄이 매일 있었다. 하지만 가끔 DM 확인하고 답장 보낼 때도 있다. “남자 산타 둘이 전쟁 나면?”이라는 DM이 있었다. 너무 궁금해서 “뭔데요?”라고 보냈더니 “남산타워”라고 하더라. 그런 건 좀 좋아해서 답장한다.
언제부터 이렇게 존재감이 확실했나? 이 이야기를 하려면 좀 깊게 들어가야 한다. 2013년부터 2015년까지 한국에서 음악 할 때 정말 힘들었다. 영어 강사를 했지만 돈이 거의 없었다. 이러면 안될 것 같고 저래도 안될 것 같고 부정적인 생각에 갇혀 있었다. 완전히 밑바닥을 치고 미국으로 공부를 하러 다시 돌아갔다. 거기서 나 자신을 돌아봤다. 내가 왜 그랬을까. 생각해보니 실패할까 봐 뭔가에 부딪혀보는 게 너무 무서웠던 거였다. 사실 그거 별 거 아닌데 말이다. 하다가 안되면 다른 걸 해보고 또 안되면 다른 걸 해보면 언젠간 맞는 걸 찾을 수 있을 텐데 앞으로 나아가질 못한 거다. 내가 뭔가를 계속 해나가고 움직이는 게 결과보다 더 중요하다는 걸, 그때 깨달았다. 이후 다른 사람을 신경쓰기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하고 싶은 것에 중점을 두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내 캐릭터도 확실해지고 자신감도 생겼다.
다큐멘터리 <Comton to Seoul>을 찍을 때만 해도 보조의사인 PA가 꿈이라고 확신에 차서 말했는데 인생이 완전히 바뀌었다. 자신의 재능에 대한 의심을 어떻게 거둬냈나? 완전히 바뀌었다. 너무 행복한 삶이다. 어떻게 해야 더 잘 살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한다. 어떻게 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아니라 어떻게 내면적으로 잘 살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다.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나는 70% 밖에 안 되는 것 같아’라고 생각하면 정말 70% 밖에 못한다. ‘나는 한계가 없어, 뭐든지 할 수 있어’라고 생각하면 100% 이상도 할 수 있다. 나도 내 자신에 대한 의심이 많았다. 하지만 스스로 한계를 두면 그게 진짜 한계가 돼버린다는 걸 깨달았다. 그때 킬라그램이란 이름도 생겼다.
그 이름은 어떻게 떠올린 건가? 원래 내 활동명은 KG였다.
킬로그램의 KG 말인가? 맞다. 고등학교 때부터 KG란 이름을 썼었는데 그 이름을 조금 바꿔 킬라그램으로 쓰기 시작했다.그러니까 사실 이름을 바꿨다기 보단 내 자신을 찾은 거다. 나 자신을 좀 더 알게 되면서 만든 이름이라 의미가 크다. 다음 단계로 나갔고 좀 더 진화했다.
해쉬스완도 활동했던 음악 아마추어 게시판에 음원을 올릴 당시에도 이름이 KG였나? 그렇다. 그때 해쉬스완은 팬시아였다(웃음). <Show Me The Money> 대기실에서 해쉬스완이 바로 앞에 있길래 내가 조용히 “팬시아…” 그랬다. 근데 못 들은 척 무시하는 거다. 그래서 다시 “팬시아!” 그랬더니 “네? 잘못 들은 줄 알았어요.” 그러더라. 사실은, 처음에 조용히 말했을 때도 제대로 들었는데 못 들은 척 했다고 하더라(웃음).
래퍼는 이래야 한다는 규칙이 있나? 없다. 난 싫은 게 별로 없다. 원칙이 ‘뭐든 다 해보자’다.
술 담배는 잘 안 한다던데? 술은 요즘 조금은 마시는데 담배는 전혀 안 한다. 처음 담배를 핀 건 화보 촬영 때였는데 어후, 지금 생각만 해도 토할 것 같다. 지금 정말 토할 뻔했다. 갑자기 숨이 안 쉬어진다.
할리우드 영화 카메오 출연, 디즈니 스토리 작가, 소설가, 봅슬레이 선수도 해보고 싶다고 들었다. 아니, 래퍼가 갑자기 봅슬레이 선수는 왜? <무한도전>이라도 봤나? 맞다(웃음). <무한도전> 보니 너무 해보고 싶더라. 스카이다이빙도 해보고 싶고 배 타고 바다도 횡단해보고 싶고 하고 싶은 게 많다. 살아 있는 동안에 내가 살아있다는 걸 최대로 느끼는 게 중요하다. 안 해보는 건 너무 아깝지 않나. 살도 한번 빼보고 싶다(웃음).
그럼, 나중에 당신에 관한 다큐멘터리가 만들어진다고 했을 때 첫 장면으로는 뭐가 좋겠나? 아직 일어나지 않은 장면이다. 버킷 리스트 중 하나로, 미국 토크쇼 <엘렌 드제네러스 쇼>에서 랩을 하고 있는 장면이다. 미국에서 스탠드업 코미디도 해보고 싶다. 난 영어로 말할 때 더 재밌는 사람이다(웃음). <Show Me The Money> 스케줄과 겹쳐서 못했지만, 미국에 있을 때 <사이드트랙 Sidetrack>이란 드라마에 아시아 갱스터 역할로 캐스팅됐었다. 비중도 꽤 컸다. 욕 많이 하고 싸가지 없는 역이었다. 어찌나 화가 많이 나 있는 캐릭터인지 1화에서 총을 3방이나 맞더라.
스탠드업 코미디, 소설, 영화 등 이야기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어떻게 보면 랩도 이야기를 쓰는 것 아닌가? 머릿속에서 이야기가 계속 떠올라서 안 멈춘다. 이미지가 끊임없이 생각나서 잠도 잘 못 잔다. 어렸을 때 막 잠들려고 하면 나는 조그만데 모든 사람이 거인인 이미지 같은 게 떠올라서 일어나서 컴퓨터에 내용을 적다가 다시 자려고 누우면 또 다른 이미지들이 생각나서 또 일어나서 끄적거리고 그랬다.
최근에 떠올랐던 생각은 뭔가? 어제는 물컵을 보는데 물컵을 내려놓는 순간 물이 확 튀어 올라와 그게 슬로우 모션으로 멈추면서 해파리로 변하는 이상한 상상을 했다. 전기 콘센트에 손가락을 꽂아 난리 나는 이미지도 떠올랐다. 지금도 옆에서 파도가 치고 벽이 녹아 내릴 것 같은 이미지가 떠오른다. 누가 나에게 한국어로 생각하는지 영어로 생각하는지 물어본 적이 있다. 근데 나는 언어로 생각해본 적이 없다. 이미지로 생각한다. 언어로 생각하려고 하면 그 언어가 어딘가에 써 있는 이미지가 먼저 보인다. 어렸을 때 책을 많이 읽고 상상을 많이 해서 그런가 보다.
랩 가사를 쓸 때도 그런가? 가사를 쓸 때도 이미지로 생각하면서 쓴다. 최근에 쓴 사랑 노래도 ‘네 아름다운 미소 그 아름다운 미소에 쿵쾅 심장이 시소 여긴 네 놀이터 그래 신나게 그렇게 뛰어 네 생각에 푹 잠겨 심해 수심 5천미터’ 이렇다. 심장이 시소로 변했다가 다이빙하면서 심해로 이어지는 거다. 곡 ‘Dirty Dog’에서도 돈에 대한 스웩을 ‘뿌리 뽑아 ATM 우리 팀이 모이면’이라고 이미지로 설명했다. 내 스웩은 ‘나 어제 비싼 거 뭐 샀어’가 아니라 ATM을 뿌리뽑는 거다(웃음).
궁극적으로 랩을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는 뭔가? 내 랩 가사에는 아까 말한 깨달음들에 대해 한두 마디씩은 꼭 넣고 싶다. 근데 그 얘길 바보같이 하는 걸 좋아한다. ‘생각하지 마, 그냥 해’라는 말은 간단해 보이지만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이다. 안 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이건 삶의 중요한 핵심 같다. 실제로 그렇게 생각을 바꾸고 모든 일이 다 잘됐다. 사람 관계도 좋아졌고 일도 잘됐고 음악적으로도 진화했다.
박자를 독특하게 타는 느슨하고 여유로운 랩을 하게 된 계기도 그것과 관련 있나? 계속 새로운 걸 찾다 보니 그렇게 된 것 같다. 정박이 재미 없어서 미세먼지만큼 박자를 일부러 빠르게 가거나 느리게 가봤다. 사람들이 안 했던 것, 독특한 걸 좋아한다. 랩 하는 방식이나 박자 타는 것에는 나만의 방식이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입는 옷에도 나만의 스타일이 있다. 그래서 좋다.
안경 2개 겹쳐 쓰기, 조그만 백팩 메기, 그리고 실내화 같은 신발 신기 같은 스타일은 어떻게 만들어진 건가? 사이즈 때문에 옷을 살 때 남들보다 많은 가게를 돌아다니다 보니 특이한 아이템을 만날 확률이 더 많다. 안경 2개를 낀 건 둘 중 어떤 안경을 낄지 고민하다가 그냥 귀찮아서 둘 다 낀 거다. 분홍색 백팩 멘 날은, 빨래를 안 해서 입을 옷이 검은색 바지에 검은색 티셔츠밖에 없는 거다. 너무 밋밋한 차림인 것 같아 분홍색 가방을 멨다. 그리고 그 신발, 실내화 맞다. 미국 실내화인데 미국에서조차 잘 안 신는 아이템이다. 아주 옛날에는 갱들이 밖에서 신는 신발로 유행이었다. 미국 중고품 시장에서 꽂혀서 샀는데 그 신발 브랜드 사장님 부인이 마침 한국인이라 <Show Me The Money>를 보고 60켤레를 보내주셨다. 오늘도 갖고 왔다.
요즘 스타일링 해보고 싶은 아이템이 있나? 요즘에는 아줌마스러운 이상한 프린트 스카프에 꽂혀 있다. 왜 래퍼들이 절대 안 할 것 같은 스카프 있지 않나.
킬라그램이 요즘 좋아 죽는 리스트는 또 뭐가 있나? 얼마 전 인스타그램 라이브에서 도도한 나쵸 과자를 정말 맛있게 먹더라. 나 진짜 맛있게 먹는다(웃음). 내가 좋아 죽는 건, 육사시미, 스시, 샤브샤브, 부대찌개, 스티브 아오키가 리치 더 키드와 아이러브맥코넨과 함께 한 곡 ‘How Else’처럼 EDM과 힙합이 섞인 음악, 드램이 릴 야티랑 함께 한 ‘Broccoli’ 같은 신나는 음악, 릴 펌프, 친구들과 노는 것, 음악 작업이다. 난 혼자 있을 때보다 다른 사람과 있을 때 영감이 더 폭발한다. 음악 작업 덕분에 심심해 죽을 일도 없고 외로울 일도 없고 힘들 일도 없다. 음악은 종교처럼 내가 의지하는 대상이다. 즐거워서 하는데 보상까지 주니 너무 좋다.
요즘 만들고 있는 곡에 대해 힌트 좀 줄 수 있나? 지금 내 상황에 대한 이야기다. ‘savage’라는 영어 단어가 있다. 요즘 인터넷에서 ‘싸가지 없는’이란 뜻으로 많이 쓰인다. 우리 회사 소속 라코 형이 사실 ‘savage’라는 노래를 먼저 썼다. 내가 요즘 전보다 잘 나가고 바쁘지 않나. 나 바빠 나중에 연락해 매니저 형에게 연락해 연말까지 스케줄 꽉 차 있어, 라는 싸가지 없는 가사다.
연예인 싸가지인가? 맞다(웃음). 그게 전반의 내용이고 후반은 내가 지금 열심히 일 해야 할 시기라 너를 만날 시간이 없다는 내용이다.
진심은 아니겠지? 노 코멘트 하겠다(웃음).
어떤 여자를 좋아하나? 존댓말이 나올 만큼 일 잘하고 독립적이고 멋있는 여자를 좋아한다. 애교 있는 여자보다 무뚝뚝한 여자가 내 스타일이다. 그리고 춤을 잘 추는 여자를 좋아한다. 춤을 못 추면 마음이 끌리지가 않는다.
킬라그램도 발라드를 듣나? 며칠 전 비 오는 날, 성시경의 ‘거리에서’를 들었다. 그 노래 좋아한다. 성시경 콘서트도 간 적 있다.
이 인터뷰의 제목을 ‘좋아 죽어 킬라그램’과 ‘산소 같은 남자 킬라그램’ 중 뭐라고 하는 게 좋을까? 산소 같은 남자가 좋겠다. 산소가 요즘 더 핫해서. 아니면 ‘숨 막히는 남자’는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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