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 비통부터 헤인즈까지. 지금까지 슈프림과 손을 잡은 브랜드는 과연 얼마나 될까? 그리고 그중 가장 끝내줬던 협업은, 제일 형편 없었던 협업은 무엇이었을까? 슈프림 좀 입어 본 사람들이 답했다.
[BEST] 슈프림 X 뉴욕 교통국 ‘MTA 메트로 카드’ 2017년 정치적 견해와 역사적인 메시지가 곳곳에 담긴 슈프림의 협업들은 다 좋아하지만 그중에서도 최고는 뉴욕 교통국과 협업한 지하철 카드다. 슈프림 박스 로고가 새겨진 편도 2회분 전자 티켓은 지난 2월, 뉴욕을 발칵 뒤집었다. 이틀 만에 3천 장이 팔렸고, 장사진 통에 급기야 뉴욕 경찰까지 총출동했다. 지난 루이 비통과의 협업에서도 경찰이 출동하는 사건이 있었지만 이건 마니아나 리셀러가 아닌, 평범한 시민들이 줄을 섰다는 점에서 기념할 만하다. 겨우 5.5 달러 짜리 지하철 카드였지만 한편으로는 끝내주는 시도였다. 우스갯소리처럼 슈프림이 내놓으면 신용카드, 자동차, 아파트도 모조리 팔릴 것만 같다. 혹시 얼마 전 슈프림의 대주주가 된 칼라일은 지금 ‘슈프림의 지구 정복’ 같은 계획서를 쓰고 있는 건 아닐까?
[WORST] 슈프림 X 톰 브라운 ‘옥스포드 셔츠’ 2010년 이걸 협업의 범주에 넣어야 할까? 2010년 톰 브라운은 10주년을 맞아 슈프림과 협업한 옥스퍼드 셔츠 세 벌을 공개했다. 당시는 멋쟁이들 모두가 톰 브라운으로 빼 입고 다니던 시절이니 뉴욕을 대표하는 최고의 하이 패션과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가 만난 셈이다. 시도는 좋았지만, 문제는 이 협업의 결과물에 있다. 톰 브라운의 옥스포드 셔츠 디자인은 그대로, 왼쪽 하단 네임 택에 ‘THOM BROWNE. / Supreme’ 이라고 적은 게 이 협업의 전부였다. 슈프림은 늘 옷 속에 메시지를 숨겨두니까 혹시 몰라 단추 수와 실 색, 심지어 원단의 원산지까지 뒤져 봤다. 하지만 아무 것도 없었다. 메인 라벨에도 그저 ‘THOM BROWNE. NEW YORK’ 이라고만 적혀 있었다. 그건 그냥 톰 브라운이다. 네임 택에 겨우 몇 글자 적은 협업이라니(심지어 세탁소 몇번 다녀오면 지워질 것 같은). 홍국화(<보그 코리아> 디지털 에디터)
[BEST] 슈프림 X 루이 비통 ‘키폴 백’ 2017년 면면을 따지면 아쉬움이 남는 협업 컬렉션이지만 협업 그 자체의 의미 때문에 최고로 꼽았다. 스트리트 브랜드와 소위 ‘명품’ 브랜드가 이렇게 구체적으로 손을 잡은 사례는 전에 없었으니까. 소문에 의하면 먼저 협업 제의를 한 쪽은 루이 비통이라고 한다. 브랜드에 어떤 위 아래가 있는 건 아니지만, 럭셔리 브랜드가 스트리트 브랜드에게 손을 내밀었다는 사실이 주는 어떤 통쾌함이 있다. 한때, 루이 비통은 자신들의 로고를 허락도 안 받고 스케이트 보드에 새겼다며 슈프림을 고발한 적도 있으니까. 슈프림 X 루이 비통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키폴 백이다. 협업 컬렉션 중 제일 대표적이기도 하고, 제일 예쁘기도 한 아이템이다.
[WORST] 슈프림 X 나이키 ‘휴마라’ 2017년 요즘 슈프림 디자이너들은 색에 유독 집착하는 모습을 보인다. 전작인 형형색색의 나이키 SB 에어 포스 2와 마찬가지로 최근의 휴마라 역시 색상이 논란이 됐다. 협업 컬렉션 전반에 쓰인 낮은 형광 톤의 블루, 그린, 핑크가 휴마라 특유의 기능적인 디자인을 만나 영락없는 ‘등산화’가 되어버렸다. 결국 한국에서는 어머니, 아버지를 위한 슈프림, ‘효도 컬렉션’이라는 별명까지 붙었다. 효심 가득한 슈프림 팬들 덕분에 매진은 되었지만, 과연 슈프림이 아니었으면 이 스니커가 얼마나 팔렸을까? 슈프림의 생각이 진심으로 궁금했던 협업 컬렉션이었다. 고병재(브랜드 매니저)
[BEST] 슈프림 X 나이키 ‘블레이저’ 2006년 2006년 발매 당시, 운동화가 이렇게 ‘럭셔리’ 할 수 있구나 감탄했다. 샤넬의 퀼팅, 구찌의 패턴 스트랩, 디올의 ‘디링’을 모두 차용해 넣었다. 지금까지 본 블레이저 중 어떤 모델보다 우뚝한 존재감. 한 번 하면 끝장을 보는, 슈프림다운 모델이었다. 앞으로도 이렇게 멋진 슈프림 협업 스니커는 또 나올 것 같지 않다.
[WORST] 슈프림 X 노스페이스 ‘퍼 눕시 재킷’ 2013년 슈프림 온라인이 처음 생길 무렵 등장한 협업 컬렉션. 동물의 가죽, 무늬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발매 전부터 많은 기대를 했었다. 결과는 실망이었다. 카피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소프넷에서 같은 해 출시한 재킷과 똑같았다. 슈프림의 디자이너들에게 너무 많은 기대를 했던 걸까? 카피의 혐의만 아니었으면 베스트 협업으로 뽑았을지도 모르는 컬렉션이다. 유회돈(가방 브랜드 모우 대표)
[BEST] 슈프림 X 꼼 데 가르송 ‘폴카 도트 후디’ 2012년 두 브랜드의 협업이 꾸준히 성공할 수 있었던 건 각자의 정체성과 특성을 하나의 컬렉션에 잘 섞어 담았기 때문이 아닐까. 특히 2012년 협업 컬렉션은 두 브랜드의 균형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 아이템들로 가득했다. 슈프림 고유의 실루엣 위에 얹은 꼼 데 가르송의 도트는 그 중에서도 단연 최고의 모델. 일본 브랜드라는 정체성을 살려, ‘SUPREME’ 로고를 우에서 좌로 새겨 넣은 걸 보고는 무릎을 탁 쳤다. 이것이야말로 어떤 협업의 모범이라고 생각한다.
[WORST] 슈프림 X 에이리언 ‘프린트 티셔츠’ 2014년 <에이리언>의 디자이너, H.R 가이거를 기념해 만든 협업 컬렉션. 취지는 좋았으나 기괴하고 강렬한 에이리언의 이미지는 슈프림마저 녹여 삼킬 것 같았다. 스케이트 보더들보다는 펑크 록커에게 더 잘 어울릴 것 같은 인상. 에이리언은 슈프림 옷에 새겨진 그 어떤 캐릭터보다 어울리지 않았다. 이재돈(포토그래퍼)
[BEST] 슈프림 X 나이키 ‘에어 폼포짓 원’ 2014년 2012년 즈음, 전세계에 불어 닥친 레트로 스니커의 인기. 그 중심에는 폼포짓 표면에 우주 문양을 입힌 에어 폼포짓 원 ‘갤럭시’라는 모델이 있었다. 하지만 그 이후 발매된 대부분의 레트로 모델들은 모두 아울렛 신세를 면치 못했다. 하지만 2년 뒤 등장한, 슈프림의 손길이 닿은 에어 폼포짓 원 만큼은 달랐다. 바로크 리프의 고풍스러운 문양, 스니커에는 드문 화이트 카본 파이버, 그리고 함께 출시된 저지와 팬츠까지 모두 끝내줬다. 발매 당시, 이 스니커를 구하려고 슈프림 뉴욕에 몰려든 인파 때문에 발매일이 미뤄지는 사건도 있었다. 이후에도 나이키와 슈프림은 꾸준하게 협업 모델을 출시했지만, 아직 이만한 건 본 적이 없다. 무엇보다, 스케이트 보드가 아닌 농구에 초점을 맞춘 협업이라 더 의미가 크다.
[WORST] 슈프림 X 루이 비통 ‘보이트 스케이트보드 트렁크’ 2017년 아마 ‘협업’이라는 주제가 없었다면, 슈프림 벽돌이나 슈프림 망치, 슈프림 후추통을 뽑았을 거다. (아, 슈프림 X 브라운 계산기를 뽑을걸 그랬나?) 협업은 전혀 다른 두 브랜드가 만날 때 뿜어내는 어떤 시너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슈프림과 루이 비통의 조합에 그런 게 있었나? 물론 디자인 그 자체로는 나쁘지 않았다. 사람들이 열광하는 현상도, 슈프림에 대해 모르던 사람들이 그걸 사려고 줄을 서는 모습도 신선했다. 하지만 최고의 두 브랜드가 만났으면 어떤 ‘시너지’를 보여줬어야 했다. 제일 이해할 수 없었던 아이템은 모노그램 무늬의 스케이트 보드 데크와 트렁크. 슈프림답지도 않았고, 루이 비통스럽지도 않았다. 아, 그러고 보니 루이 비통은 무단으로 모노그램 무늬의 스케이트 보드를 발매한 슈프림을 고소한 이력이 있지 않나? 오렌지킹(연구원 / 스니커 커뮤니티 ‘풋셀’ 운영진)
[BEST] 슈프림 X 노스 페이스 ‘마운틴 파카’ 2014년 2007년 F/W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슈프림은 노스 페이스와 함께 수많은 이들의 지갑을 털어왔다. 총 19번의 협업 시리즈가 탄생했지만 ‘”슈노는 진리”라는 말이 유행할 만큼 대부분이 성공적이었다. 그 중에서도 최고로 꼽는 건 반다나 페이즐리 패턴으로 무장한 2014년 협업 컬렉션이다. 힙합과 뗄레야 뗼 수 없는 스트리트 브랜드 마니아들은 로스 엔젤리스 힙합의 상징인 반다나 페이즐리 패턴에 열광했다. 2014년 노스 페이스와의 협업 컬렉션은 슈프림 최고의 협업으로 꼽히기도 한다. 얼마나 인기가 대단했는지는 이베이의 리셀 가격이 증명한다. 2017년 현재, 마운틴 파카의 이베이 최고 가격은 약 6백 80만원이다.
[WORST] 슈프림 X 꼼 데 가르송 ‘에어 포스 원’ 2017년 애정이 없으면 신경도 안 쓰이는 법. 꼼 데 가르송과 슈프림의 협업은 늘 끝내줬지만, 아이볼 패턴으로 무장한 2017 S/S 협업 컬렉션 만큼은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박스 로고 후디나 티셔츠를 제외하면 눈을 씻고 찾아야 보이는 슈프림의 흔적. 이게 협업 컬렉션인지, 꼼 데 가르송의 컬렉션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였다. 실망의 화룡정점은 나이키까지 합세해 만든 에어 포스 원이 찍었다. 아이볼 스탬프를 균일하게 찍어 내놓은 듯한 화이트 에어 포스 원에서 찾을 수 있는 슈프림의 흔적은 가로 세로 약 3밀리미터 크기의 ‘SUPREME’ 텍스트가 전부였다. 슈프림과 꼼 데 가르송 협업 컬렉션의 팬으로서, 격려의 의미를 담아 최악으로 꼽았다. 이지원(솔리드 옴므 디자이너)
[BEST] 슈프림 X 스톤 아일랜드 ‘네로 재킷’ 2014년 슈프림 마니아이자 스톤 아일랜드의 마니아로서, 두 브랜드의 협업 제품 대부분을 구입해왔다. 직접 경험해 본 바, 최고는 단연 2014년 협업 컬렉션이었다. 슈프림 특유의 분방한 디자인과 스톰 아일랜드의 최대 장점인 ‘기능성’이 완벽하게 이룬 조화를 모든 제품에서 느낄 수 있었다. 해가 갈수록 산으로 가는 두 브랜드의 협업을 생각해보면, 당시의 협업은 ‘역대급’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만큼 훌륭했다. 컬렉션의 모든 제품이 훌륭하지만, 굳이 하나를 꼽자면 역시 대표적인 카무플라주 패턴의 네로 재킷이다.
[WORST] 슈프림 X 토시오 마에다 ‘집 업 스웨트 셔츠’ 2015년 B급을 추종하는 슈프림의 감성이 C급에 다다른 협업 컬렉션. 일본 ‘오타쿠’의 이미지를 차용하려는 시도는 그야말로 ‘힙’했지만, 토시오 마에다의 선정적인 그래픽은 그 의도마저 덮어버릴 만큼 강렬했다. 수많은 애니메이션 작가 중 하필 토시오 마에다여야 했을까? 보자마자 ‘이건 좀 아닌데’를 외쳤다. ‘감성’과 ‘성감’은 구분해야 한다. 김완식(조명감독)
[BEST] 슈프림 X 헤인즈 ‘3팩 태그리스 티’ ~ 2017년 슈프림 창립 이래로 가장 많이 팔린 모델을 꼽는다면 아마 이 헤인즈와 함께 만든 3팩 태그리스 티셔츠가 아닐까.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구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슈프림 제품이라는 점에서 최고의 협업으로 꼽았다. 헤인즈만의 표정 없는 순면 원단과 작게 새겨진 슈프림 로고. ‘두 브랜드의 시너지’라는 협업의 의미로만 놓고 봐도 최고의 협업으로 손색이 없다. 슈프림은 그 로고만으로도 이미 제 역할을 충분히 하니까.
[WORST] 슈프림 X 나이키 SB ‘에어 포스 2’ 2017년 스케이트 보드 브랜드의 정체성을 잃지 않겠다는 슈프림의 의도를 이해한다. 지금의 슈프림의 인기를 만든 게 나이키 SB와의 협업 덩크라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만약 2006년 쯤 이 스니커가 등장했다면 분명 수많은 사람들이 열광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2017년이고, 스케이트 보드와 관련된 최근의 경향을 뒤져봐도 이렇게 알록달록하고 반듯한 디자인의 보드 스니커는 찾을 수 없다. 무엇보다 검정, 노랑, 주홍, 에메랄드의 색상 구성은 십 분 양보해도 이해 불가한 대목이다. 슈프림의 삐딱함은 이따금 정도를 넘어선다. 장승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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