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강릉까지 영화를 보러 오는 이유

2018.03.20이예지

강릉에 가면 볼 수 없던 영화가 있다. 극장도, 영화제도, 영화인도 거기 있다.

평창 동계올림픽의 들뜬 분위기와는 별개로 강릉은 여전하다. 대문짝만 한 오륜기와 국내외 관광객들의 열기로 붐비는 강릉역만 벗어나면, 초연하고 말끔한 강릉 시내가 그대로 거기에 있다. 상가, 아파트, 가로수와 신호등의 적당한 간격과 반복, 서울보다는 적지만 부지런히 오가는 사람들과 센 억양 없이 담백한 말들. 여느 수도권 소도시와 별 다를 바 없어 보이지만 약간은 다른 점이 있다. 우선, 택시에 올라 “신영극장이요”라고 말하면 그곳이 어딘지 누구나 안다. 신영극장은 멀티플렉스가 아닌 단관 독립예술영화 전용관으로 간판도 크지 않아 잘 살펴보지 않으면 지나치기 쉽다. 하지만 어떻게 아시냐고 물으면 별 엉뚱한 걸 다 묻는다는 듯, “알다마다, 여기 아주 오래 전부터 있었는걸. 근처 갈 일 있어도 다 신영극장이라 그래요. 그러면 어딘지 알아들으니”란 명쾌한 답이 떨어진다. 강릉 출신 한 영화인이 “랜드마크”라고 표현한 게 적절했다.

강릉 시내 한복판에 위치한 신영극장 입구엔 군데군데 칠이 벗겨진 오래된 간판과 새로 단 멀끔한 간판 두 개가 있다. 과거의 것은 굳이 철거하지 않고 그대로 뒀다. 한쪽 게시판엔 상영 중인 영화 포스터들과 함께 감독, 배우가 관객과 대화를 갖는 각종 GV의 일정표가 빼곡하다. 신영극장의 한 블록 옆에는 대형 홈플러스 건물이 들어서 있고, 거의 모든 멀티플렉스가 그렇듯 최상층 두 층을 CGV가 차지하고 있다. <염력>과 <메이즈러너: 데스큐어>가 점령한 극장에 먼저 들어가, 익숙한 무인 기계로 픽사 애니메이션 <코코>를 티케팅했다. 핫도그와 스낵 냄새를 잔뜩 풍기는 어린이 틈바구니에 앉아 한바탕 소란스러운 관람을 마치고, 좋은 영화가 주는 감흥은 어떤 극악한 환경도 이겨낸다는 생각과 함께 눈물을 훔치며, 신영극장으로 향했다. 문을 열자 신영극장의 터줏대감 박광수 프로그래머가 들어오는 관객 한 명 한 명에게 인사를 건넨다. 연달아 두 편의 영화를 관람한 나이 지긋한 관객과는 날씨며 동네 얘기도 곁들인다. 왜 매번 인사를 건네는지 물으니, “대부분 단골이고, 처음 보는 분이라도 인사하면 좋지 않냐”며 웃는다. 휴관했을 때는 길을 지나가던 주민들이 “언제 다시 극장을 열 거냐”고 물어볼 정도라니, 인구 20만 도시에서 신영이 얼마나 단단히 터를 잡았는지 알 만하다. 다음 상영작은 6만 5천 개의 유화를 그려 만든 독립 애니메이션 <러빙 빈센트>였다. 이번엔 온전히 영화에 집중할 수 있었다. 함께 본 군인 두 명은 “영화를 보려고 외출을 나왔는데, <러빙 빈센트>는 여기서만 하더라”고 말한다. 강릉 시민이자 시네마테크 회원이라는 젊은 부부는 신영극장을 찾는 이유로 “영화관다운 영화관이어서”라는 명료한 답을 내놓는다. “CGV에서 걸지 않는 영화를 상영하고, 영화에만 집중할 수 있다. 최적의 환경이다.”

영화관다운 영화관이 내 지역에 있다는 것. 보고 싶은 영화를 볼 수 있다는 것. 지역민들에겐 쉽지 않은 이 조건이 강릉에선 충족된다. 보고 싶은 영화를 볼 수 있게 되기까지, 강릉의 극장 역사는 길다. 강릉은 일제강점기부터 지역 유지에 의해 극장이 설립되고 영화 상영 문화가 자리 잡은 도시다. 1938년 설립된 강릉극장은 정책 선전 영화 상영을 주도했고 1960대에 신영극장이 개관, 강릉의 상업영화 시대를 열었다. 그리고 한참의 세월이 흐른 2009년, 신영극장은 근처 멀티플렉스의 개관으로 폐관됐다. 박광수 프로그래머를 비롯해 영화를 사랑하는 이들이 모인 강릉시네마테크는 신영을 독립예술영화 전용관으로 탈바꿈하는 도전을 한다. 극장 좌석마다 후원금을 받아 이름을 새겨주는 ‘나는 주인이다’ 프로젝트로 보증금을 마련해 지역 최초 민간 비영리 극장으로 2012년 개관했다. 200석 규모의 단관으로 연간 70여 편의 독립예술영화를 상영, 1만 5천여 명의 관객이 찾던 신영극장에 결정적 위기가 찾아온 건 박근혜 정부 시절이었다.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의 예술영화전용관 지원사업이 블랙리스트로 파행을 겪을 때 영진위는 ‘문제 영화’를 상영한 지역 전용관을 지원에서 배제했고 사업은 폐지됐다. 지원금이 끊긴 신영극장은 2016년 휴관에 들어갔다. 그런데 강릉시가 전향적 결정을 내린다. 기초자치단체 최초로 독립예술영화 전용관 지원을 결정하며 연간 5천만원을 지원키로 한 것이다. 신영극장은 2017년 3월 다시 재개관했고, 시설을 리모델링해 성업 중이다. 강릉 신영극장의 역사는 한국 극장의 역사와 비슷하지만, 시의 지원을 받은 2017년 재개관은 아직 서울을 비롯한 어느 지역의 극장도 갖지 못한 미래적인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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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국면은 여기서 더 성큼 나아갈지도 모르겠다. 강릉시는 평창올림픽 이후의 비전을 ‘독립영화 도시’로 삼아 연구 용역을 진행했다. 강릉시가 독립영화의 가치를 이해한 데엔 신영극장 뿐 아니라 올해로 20년 차를 맞은 정동진독립영화제 등 지역 기반 영화인들의 활발한 활동이 있었다. 박광수 프로그래머가 사무국장을 겸한 정동진독립영화제는 매해 여름 정동초등학교 운동장에 가설 스크린을 설치해 휴가지의 여흥을 느낄 수 있는 야외 영화제로, 지역민과 휴양객, 영화인이 즐겨 찾는 축제다. 정지혜 영화저널리스트는 “강릉은 지역을 기반으로 영화 네트워킹이 잘되어 있다. 강릉하면 영화제, 극장, 영화인들이 함께 떠오를 정도”라 평한다. 지난해 강릉의 영화인들은 사회적 협동조합 인디하우스를 창립해 또 한 걸음을 내딛었다. 강릉시네마테크 회원과 창작자, 독립영화 정책 관련자 등 주축이 된 인디하우스는 강릉시 영상미디어센터를 위탁 받아 사회적 경제공동체 상영회, 다큐멘터리 제작 워크숍 및 영상 교육 등을 진행, 지역민과의 교류를 넓히는 중이다.

지역에 단단한 뿌리를 두고 있지만, 신영극장을 찾는 건 지역민만 아니다. 전국의 씨네필, <밤의 해변에서 혼자>에서 김민희가 신영의 붉은 좌석에 앉아 스크린을 응시하던 무연한 얼굴을 기억한 관객, 강릉에 놀러 온 관광객까지 다양하게 신영을 찾는다. 영화를 사랑하는 프랑스인 티에리는 “신영극장에 꼭 와보고 싶었다”며 친구와 함께 <탠저린>을 보러 왔고, 서울에 사는 미대생 두 명은 대학 이름이 적힌 과 점퍼를 입은 채 당일치기로 강릉까지 <파란 입이 달린 얼굴>을 보러 왔다. “서울에서 볼 수도 있지만, 여기까지 온 건 영화에 대한 성의 표시다. 훌쩍 강릉까지 오고 싶기도 했다.” 박광수 프로그래머는 “대구 오오극장 등 타지역 전용관 후원 회원이 찾아와 불쑥 말을 걸기도 하고, <밤의 해변에서 혼자>에 나온 봉봉방앗간과 엮어 관광 코스로 순례하는 관광객들도 있다”고 말한다. 최근 인상적이었던 관객은 2017년 마지막 상영작인 에드워드 양 감독의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을 보러 전국 각지에서 온 씨네필들이다. “긴 영화라 저녁에 상영해 1월 1일 자정에 영화가 끝났다. 새해를 영화와 함께 맞으려는, 서울에서 영화 좀 봤다 하는 분들이 내려왔다. 즐거운 상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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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차 찾은 주말은 양일 모두 GV가 마련되어 북적거렸다. 박광수 프로그래머의 발 넓은 인맥 덕이다. <파란 입이 달린 얼굴>의 장리우 배우는 “광수 씨가 오라면 와야지”라며 웃는다. “여기서 GV만 세 번 했다. 오면 늘 가족처럼 반겨주고, 강릉 관객들도 열성적이다. 정동진독립영화제도 좋다. 바다에서 수영하고 짜장면 시켜 먹고 영화 보고, 이제 강릉은 영화인의 휴양지 같다.” 독립영화계의 뜨거운 화제작 <공동정범>의 GV 모더레이터로 온 변영주 감독은 “개관할 때 후원해서 재개관 리모델링 하기 전엔 내 이름이 있는 의자가 있었다. 여기서 박광수 프로가 내 영화 전작 특별전을 했고, 여러모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고 밝히며 “독립영화를 만드는 건 예전에 비하면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그 영화를 대중과 만나게 하는 건 여전히 어렵다. 그런 맥락에서 지역의 전용관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일란 감독은 “지역의 촛불 집회들을 보면, 잘되는 지역은 문화공간들이 잘되어있는 곳이더라. 서로 교류하고 네트워크를 만들 수 있는 공간이 있기 때문이다. 강릉은 청년 활동가들의 활동이 두드러지는 에너지가 많은 곳”이라고 말한다. 이 밖에도 영화인들의 신영극장 사랑은 유별나다. 박광수 프로그래머는 “홍상수 감독은 몰래 영화 보러 왔다가 들킨 적이 있다. 시간을 잘못 알고 오시는 바람에 다음 날 오시라고 했더니 정말 다시 왔더라. 그리고 <밤의 해변에서 혼자>를 촬영했는데, 난 발자국 소리를 담당했다”며 뒷얘기를 풀어놨다.

얼마 전 CGV는 올해 CGV 아트하우스를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다. 박광수 프로그래머는 “대기업들은 자체 독립예술영화 브랜드를 만들어 저인망으로 싹 긁어가려 한다. 영화를 볼 통로를 멀티플렉스 외엔 다 샛길로 만들겠다는 것”이라 비판한다. 그에게 극장이란 수익사업을 하는 곳이기에 앞서 어떤 독립예술영화도 소외되지 않고 관객과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정권이 바뀌면서 영진위 위원장이 새로 취임한 지금, 그는 “큰 기대는 없지만 지원 사업 공고에 영진위가 위탁한 단체가 선정한 영화들만 상영해야 한다는 독소조항은 빠졌더라. 계속 지켜봐야 할 문제”라고 밝혔다. 그렇다면 영화를 상영하는 신영의 기준은 뭘까. “세계 최초 시네마테크인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의 초대 관장 앙리 랑글루아는 ‘영화는 좋은 영화, 나쁜 영화가 아니라 봐야 하는 영화만 있다’고 말했다. 목표는 모든 독립예술영화를 다 트는 거다. 한국 독립영화를 우선적으로 틀되, 해외 영화는 개봉한 적이 없거나 소개된 적 없는 감독, 국가의 영화를 우선적으로 프로그래밍하려 한다. 한국엔 없던 영화, 희한하고 새로운 영화, 영화를 보는 관객의 표정이 궁금해지는 영화들 말이다.” 앞으로도 강릉 신영극장과 정동진독립영화제는 “처음과 같이” 가려 한다. 박광수 프로그래머의 이 선언은 시네마테크가 존재하는 이유 자체다. “더 나아지겠다 같은 말은 하지 않겠다. 우리의 가치는 지키려는 데 있으니까.”

취재를 마치고 정동진독립영화제 프로그래머가 운영하는 순긋해변의 안프로 게스트하우스를 찾았다. 이곳을 다녀간 수많은 독립영화 감독과 배우들의 사인 포스터가 한가득 붙어 북적이는 기분이었다. 밤새 싱싱하고 발간 홍게와 골뱅이 살을 양껏 파먹고, 아침 파도 소리에 살풋 잠에서 깼다. 서울로 올라오기 전 마지막으로 한 일은 해변에서 산미가 도는 커피를 딱 한 잔 마신 것이다. 바다, 영화, 극장, 지키려는 마음, 애틋이 여길 만한 모든 것이 강릉에 있다.

    에디터
    이예지
    포토그래퍼
    허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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