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징적인 모델에서 그치지 않는다. 치밀하게 준비한 ‘한국형 GT카’라는 표현이 들어맞는다.
기아는 대중적인 차를 만드는 회사다. 잘 팔릴만한 크기와 성능의 차를 생산하는 데 집중한다. 하지만 그동안 개발하고 만들었던 모델을 훑어보면 가끔 고개를 갸웃할만한 차가 나오기도 했다. 로터스의 엘란을 들여와 생산했고, 스포티지로 도심형 SUV라는 개념을 제시하기도 했다. 아직 기술력이 부족할지언정, 과감하면서 새로운 시도를 해보겠다는 의지는 분명했다.
2011년, 기아가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GT라는 이름의 콘셉트카를 내보였을 때 유독 눈길이 갔던 건 단지 디자인이 멋있다는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다. 2천년대 들어 다소 묽어진 듯했던 기아의 ‘뚱딴지 정신’이 환생한 것 같았다. 중간에 계획이 틀어지지만 않으면 흉내만 내는 수준이 아니라 진짜 GT(그랜드 투어러)카가 될 모양이었다. 과감할수록 좋겠다는 기대가 생겼다. 가끔은 무모한 시도가 진보를 자극하기도 하기도 하니까.
2017년에 기아는 드디어 패스트백 스타일의 세단을 출시했다. 수어사이드 도어가 일반적인 방식으로 바뀌고 몇몇 세부 디자인이 변경되었을 뿐, 6년 전 모터쇼에 나왔던 콘셉트카 디자인을 꽤 반영한 스팅어였다. TV 광고에선 “당신은 원래 가슴 뛰던 사람이었습니다”라는 문구로 도발하더니 아스팔트에 붓글씨라도 쓰려는 듯 스키드마크를 그리며 드리프트 했다. 미주알고주알 설명하진 않아도 말하고자 하는 바가 명확했다. 구동 방식은 300마력 이상의 고성능 후륜구동, 주요 공략층은 30~40대.
스팅어에는 2.0 가솔린과 2.2 디젤, 3.3 가솔린까지 총 세 가지 엔진이 실린다. 가장 관심을 끄는 것은 역시 3.3 가솔린 모델이다. 최고출력은 370마력, 최대토크는 52.0kg·m로 당당한 힘이다. 사륜구동과 후륜구동 중 택할 수 있는데, 드리프트만 포기한다면 사륜구동이 더 현명한 선택이다. 구불구불한 길이 연속으로 이어져도 국산차라는 사실을 깜빡 잊을 정도로 코너를 탈출하는 실력이 후륜구동 모델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나다.
자랑할 만한 장기는 또 있다. 국산차 최초로 ‘런치컨트롤’을 탑재했다. 브레이크와 가속페달을 동시에 밟으면 일정한 엔진회전수를 유지하며 멈춰있다가 브레이크 페달을 떼는 순간 튀어나가는 기능이다. 드래그 레이싱이 등장하는 영화 장면처럼 멈춰선 채로 서서히 열을 올리다가 매섭게 치고 나간다. 런치컨트롤을 사용하면 0→100킬로미터 가속 시간은 4.9초. 국산차가 5초 이하로 진입한 것은 스팅어가 최초다.
현대∙기아에서 신차만 나오면 항상 파워스티어링 시스템이 논쟁의 대상이 된다. 스팅어는 다행히 랙 타입 (R-MDPS)이다. 생산 단가가 조금 높아도 최근 소비자가 선호하는 방식을 아낌없이 넣었다는 흔적이다. 논파워 스티어링만큼 자연스러운 조향은 아니지만, 현대∙기아의 다른 차에 들어가는 칼럼 타입(C-MDPS)과 비교하면 크게 흠잡을 점은 없다.
빠르고, 안정적으로 달리면서 고성능 차에 어울리는 기능이 푸짐하다. 그러나 정작 아쉬운 것은 성능이 아니라 소심한 배기음이다. 사운드 제너레이터를 달아 보완하려고 노력했지만 인위적인 소리는 어쩔 수 없이 한계가 있다. 가속 페달을 밟는 순간과 소리가 울리기 시작하는 순간이 조금 엇박자가 난다. 배기가스를 다시 사용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배기음에 손실이 있는 터보 엔진이라지만, 지금보다 박력 있는 소리를 울리도록 설계 하는 것이 아주 어렵지는 않았을 텐데.
그래도 스팅어는 근사하면서, 굵직한 차다. 10년 후, 20년 후 뒤돌아봤을 때 기아의 2막을 열어젖힌 차로 기억될 자격이 충분하다. 스팅어 수준의 수입차를 사려면 지갑을 더욱 활짝 열어야 한다. 스팅어는 현실적인 타협점이 될 수도, 현재 접할 수 있는 국산차의 끝점이 될 수도 있다. 다른 국산차에선 찾기 어려운 매력적인 이중성이다.
크기 L4830 × W1870 × H1400mm
휠베이스 2905mm
무게 1855kg
엔진형식 V6 가솔린 터보
배기량 3342cc
변속기 8단 자동
서스펜션(앞/뒤) (앞)맥퍼슨 스트럿, (뒤)멀티링크
타이어 (앞)225/40 R 19, (뒤)255/35 R 19
구동방식 AWD
0→100km/h 4.9초
최고출력 370마력
최대토크 52.0kg·m
복합연비 8.4km/l
CO₂ 배출량 202.g/km
가격 4천8백80만원
- 에디터
- 이재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