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은 세상에서 가장 크고 강력한 매체로서 지금 무분별한 가짜들을 쏟아내고 있다. 페이스북은 사회가 요구하는 모습을 수용하고 비판하는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을까?
소셜 미디어는 초기 단계를 넘어 보편성을 가지며 성장하고 있다. 가짜 뉴스, 증오 발언, 확증 편향의 확산 등 부정적 효과가 커지면서 성장통도 함께 나타나고, 디지털 공론장의 빠른 성장으로 아날로그 공론장에서는 찾을 수 없었던 모습도 보여준다. 하머마스의 공론장 이론이 과연 디지털 시대에도 유효할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다. 그 중심에 페이스북이 있다. 디지털 공론장은 사회에 해로울까, 해롭지 않을까?
스마트폰이 대중화되면서 인류가 초연결 사회를 살고 있다는 점을 상징하는 두 장의 사진이 있다. 하나는 2005년 베네딕토 교황, 다른 하나는 2013년 프란치스코 교황의 즉위식 사진이다. 2005년에는 사람들이 그저 즉위식을 지켜볼 뿐이었지만, 2013년에는 초연결 사회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듯 저마다 스마트폰을 들고 즉위식 장면을 찍고 있다. 그러나 이 비교는 가짜다.
2005년 사진은 베네딕토 교황의 즉위식 사진이 아니라 전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장례식 사진이다. 장례식을 기념하며 사진을 찍는 사람을 찾기란 어렵다. 2005년 베네딕토 교황 즉위식 때도 스마트폰이 없었지만 사람들은 디지털 카메라로 그 기쁜 광경을 사진에 담았다. 이 두 장면의 비교는 가짜지만 스마트폰 대중화가 가져온 효과를 설명하는 극적인 예로 적절해서 페이스북을 통해 빠르게 확산되었다. 하지만 이 정도는 사회에 그렇게 해로운 일이 아니다.
2016년 4월 발행된 한 기사의 제목은 “한 여성이 로또에 당첨된 이후 회사를 그만두면서 자신 상관의 책상 위에 똥을 쌌고, 이 때문에 경찰에 체포되었다”다. 많은 사람이 ‘나도 로또 1등되면 그러고 싶다’라고 생각했기 때문인지 이 기사는 페이스북에서 180만 회 이상 공유되었다. 이 기사 역시 가짜다. 이쯤 되면 가짜 뉴스의 확산이 사회에 해가 될지 아닐지 판단하기 쉽지 않다.
2016년 페이스북에서 가장 많이 공유된 정치 기사 또한 가짜다. 이 기사의 제목은 “오바마 행정부가 미국 전역의 초등학교 및 중고등학교에서 국기에 대한 맹세를 금지하는 법안에 서명하고 있다”다. 이 기사는 ABC 뉴스인 것처럼 표시되어 있지만, 그 URL을 자세히 살펴보면 ‘abcnews.com.co’로 교묘하게 위장하고 있다. 이 기사는 사실이 아니라 공유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는 오바마 행정부에 대한 거부와 증오를 담고 있다.
소셜 미디어, 특히 페이스북을 통해 증오 발언이 범람하고, 페이스북 이용자들이 서로를 미워하는 모습이 늘고 있다. 2015년 유럽 사회에 시리아 난민 행렬이 이어질 때도 가짜 뉴스와 증오 발언이 페이스북을 통해 크게 확산되었다. 난민들이 배가 고파 세 살짜리 아이들을 잡아먹었다는 목격자의 가짜 인터뷰 동영상이 퍼져 나갔다.
2016년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여부를 묻는 선거에서 두각을 나타낸 극우 정치인 나이절 패라지는 “당신이 한번 사람들이 말할 수 없었던 것을 말하면, 사람들은 생각지도 못한 것을 생각하게 된다! (Once you are able to speak the unspeakable, people will begin to think the unthinkable!)”라며 가짜 뉴스의 의미를 표현했다. 위기의 시대에 거짓 선동으로 희생양을 찾아 공격하면 사람들은 감히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생각하고 이를 행동에 옮긴다는 뜻이다. 이때 페이스북만큼 좋은 도구도 없다. 정치인들이 사람들에게 감히 입에 담지 못할 말을 자신의 미디어를 통해 전파하고 이에 쉽게 동의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소셜 미디어를 통해 공유한다.
전통 언론은 팩트체크에 몰두하며 그들의 주장을 반복해서 공론장에 등장시킨다.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 적지 않은 사람들이 생각지도 못한 것을 생각한다는 것이 극우 정치인 패라지의 주장이다. 새로운 선동 방식의 등장이다. 가짜 뉴스 생산자들이 원하는 것은 혼돈과 고립이다. 그들은 가짜 뉴스와 증오 발언에 반감을 표하는 사람과의 대화나 토론을 원치 않는다. 자신의 지지층에 전기 충격을 줘서 그들을 일깨우고 싶어 한다. 이러한 흐름이 페이스북 등을 통해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으며, 한국 또한 예외는 아니다.
몸무게, 키, 아이큐 등의 수치는 정규 분포를 띄고 있다. 그 모습은 평균값을 중앙으로 하여 좌우 대칭으로 종 모양이다. 공론장도 마찬가지다. 어떤 특정 주장이나 보도가 나왔을 때 다수는 ‘그런가’, ‘그럴 수도 있다’라고 마음으로 생각할 뿐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다. 이들 다수의 의견이 중앙에 모여 있다. 하지만 한쪽에 있는 사람은 이것은 진실이라고 말하고, 반대 쪽에서는 이를 거짓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아날로그 공론장에서는 서로 크게 다른 주장이 만날 일이 많지 않다. 그 기회를 높이기 위한 수단으로 시위 및 집회가 있을 뿐이다.
소셜 미디어가 대중화되면서, 의지만 있다면 모두가 자신의 목소리를 공론장에 등장시킬 수 있는 수단을 가지게 되었다. 서로 다른 다양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점은 폭넓은 시각을 가질 수 있다는 점에서 장점이지만, 안 들어도 될 이야기를 굳이 들어야 하는 일은 때론 고통이다. 결국 양 극단에 있는 사람들만 서로 싸우고 있는 게 아니다. 중간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왜 싸우지 않느냐는 질책의 목소리가 쏟아지기 때문이다. 만인과 만인이 싸우고 투쟁하는 시대, 이것이 디지털 공론장 또는 소셜 미디어 공론장의 특징이다.
통계 자료에서도 이런 상황을 확인할 수 있다. 1940년부터 2010년까지 미국 공화당과 민주당 하원의원들의 오프라인 만남이 지속적으로 줄어들었다. 이제는 두 세력 사이에서 상호 교류를 찾을 수 없다. 미국인들의 당파성과 정치적 적대감의 변화를 분석한 연구 논문도 있다. 공화당 지지층은 민주당 지지자를 좋아하지 않을 뿐 아니라, 공화당 지지층 사이에서 민주당 지지자를 미워하는 비율이 2010년 이후 크게 증가하고 있다. 민주당 지지층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한국도 비슷한 상황이다. 서로 다른 생각을 가졌다고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미워하는 세상이 되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 된 데는 서로를 미워할 수밖에 없는 많은 뉴스와 콘텐츠들이 쉼 없이 생산되고 그 유통이 쉬워졌기 때문이다. 자기가 좋아하고 자기가 믿는 것만 소비해도 24시간이 부족한 세상이다. 누구나 자신이 듣고 싶어하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에게 페이스북 친구 신청을 하기 마련이다. 자신이 믿는 것만 진실로 보는 이기적 진실이 충만한 사회가 탄생했고 성장하고 있다.
엘리 프레이저는 2011년에 발표한 책 <생각 조종자들>에서 이런 현상을 ‘필터 버블’이라고 정의한다. 사람들은 비눗방울을 불면 생기는 버블에 갇혀 있지만, 버블이 투명하다 보니 좀처럼 갇혀 있다는 생각을 못 한다는 것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만 골라서 선택적으로 정보 및 뉴스를 소비하고 있지만 이 행동이 지속되면 특정 틀에 자신을 가두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페이스북은 사람들을 끼리끼리 모이게 하고 유유상종을 극대화한다. 이 상황을 틈타 2016년 러시아 정보기관은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선거와 미국 대통령 선거에 개입한 혐의를 받고 있다. 지구 온난화를 부정하는 가짜 뉴스를 대량 생산했고, 이민자와 난민의 부정적인 측면을 부각하는 가짜 뉴스를 페이스북 광고를 통해 확산시켰다. 가짜 뉴스를 생산하고 확산시키고자 하는 세력에게 페이스북 광고는 날개를 선사하고 있다. 페이스북 광고는 특정 취향, 성별, 나이, 심지어 학력 등에 따라 사람과 집단을 구별해서 메시지를 전달하기 때문이다.
만인과 만인의 투쟁 한가운데 페이스북이 자리한다. 페이스북은 전례 없는 사회의 파편화, 갈등 그리고 혼란에 어떤 책임을 져야 할까. 정치는 다수 이익 추구와 약자 보호라는 사회적 책임을 갖는다. 경제 또한 사회적 가치를 추구해야 한다. 시민 행동은 사회 진보의 필수 요소다. 정치와 시민사회 그리고 경제를 연결하는 열쇠가 있다면 이는 감정 이입, 다시 말해 공감이다. 이것을 책임지고 있는 것이 페이스북이다. 의사 윤리를 벗어던지는 의사와 의료 기관을 규탄하듯이, 페이스북에도 사회적 책임과 윤리 의식을 요구해야 하는 시점이다.
- 에디터
- 정우영
- 포토그래퍼
- 이윤호
- 글
- 강정수(메디아티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