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극장가를 찾아온 새파란 아이들.
아이들은 좀처럼 알 수 없다. 매체 속에서 표현되는 아이들이 동화처럼 순진하거나 어른보다 야무지다면, 현실의 아이들은 입술을 불퉁히 내민 채 책상 밑으로 빠르게 손가락을 놀려 메시지를 보내는 쪽에 가깝다. 세계의 질서에 아직 진입하지 않은 이들은 뒷마당에 자기만의 영역을 무럭무럭 가꿔놓는다. 그리고 누군가 알아챌 무렵이면, 대개 그것은 깜짝 놀랄 만큼 무성히 자라 있기 마련이다. <서치>의 데이비드는 딸이 실종되고 나서야 이렇게 말한다. “내가 내 딸을 이렇게 몰랐다니.” 딸의 비공개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유캐스트를 뒤지며 딸의 생각과 감정, 일탈까지 알게 된 아버지는 딸을 잃은 슬픔만큼이나 딸을 몰랐다는 사실에 절망한다. <살아남은 아이>의 기현은 한 소년의 희생으로 살아남는다. <죄 많은 소녀>의 영희는 친구를 죽게 만들었다고 의심받는다. 반대 상황이지만 누구도 그들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는 점에선 같다. 살아남은 아이들은 이해받지 못했고, 어른들은 아이라는 미스터리 앞에 무력하다. 뒷마당의 풀은 제각각 자라는 것처럼 보이지만 나름의 치열한 법칙과 규칙이 있다. 불쑥 자라기도, 훌쩍 사라져버리기도 쉬운 나이. 야만과 유약한 마음, 타협하지 않는 꼿꼿함까지 뒤섞여 성인의 세계에선 무용한 감정도 목숨을 걸 만한 것이 된다. 모두가 꾸며진 세계 속에서 입을 다물고 있을 때, 기현은 진실을 말한다. 아주 잠시 행복했던 그 시절처럼 소풍 가는 차에 오른다. 그러니 주머니 속에 돌을 넣는 결연함도, 앞으로 걸어갈 용기도 그들의 몫이다.
- 에디터
- 이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