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매디슨 애비뉴 650번지의 랄프 로렌 오피스에서 브랜드 창립 50주년을 맞은 랄프 로렌을 만났다. 그는 데님 셔츠와 데님 팬츠를 입고 왔다.
“삶에서 영감을 많이 얻어요. 취향 따라 옷을 만든 것이 시작이었고, 다음엔 아내와 아이들에게 어울릴 옷, 우리 집에 놓고 싶은 것으로 영역을 넓혔죠.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지금을 만든 거예요.”
50주년 기념 인터뷰를 하는 소감이 어떤가요? 힘들어요. 하하. 농담이고요. 축하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또 하나의 신나는 모험이 시작된 셈이죠. 기분이 아주 좋아요. 지난 세월을 떠올리면 충분히 기념할 만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학창 시절 친구들에게 액세서리를 만들어서 판 게 사업의 시작이었죠? 아니요. 어디서 그런 얘길 들었죠? 흥미로운 소문이지만 사실이 아니에요.
루머였군요. 인터넷은 믿을 수가 없네요. 그렇다면 랄프 로렌의 시작이 타이였던 건 사실이겠죠? 네. 타이를 만드는 회사에서 일했어요. 스물두세 살 정도였는데, 회사에 새로운 걸 제안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죠. 그런데 그 아이디어들이 그 후 신문이나 잡지에 심심찮게 등장하는 거예요. 그걸 보면서 자신감이 생겼어요. 아, 내 안에 뭔가 있구나. 그래서 과감히 혼자 해보기로 했죠. 지인에게 5만 달러를 빌려 ‘폴로’라는 타이 회사를 만들었어요. 패션에 대한 공부를 정식으로 하진 않았지만 옷을 좋아해서 남성복에 대한 이해가 높았어요. 직감에 따라 폭이 넓은 타이를 만들었고, 인기가 좋았어요.
당시 물건 배송까지 직접 했다고 들었어요. 맞아요. 디자인과 제작은 물론 배달도 다녔죠. 청바지에 보머 재킷을 입고 직접 가게를 돌며 영업을 했어요. 어엿한 사무실은커녕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어느 방의 작은 서랍 하나가 다였어요. 거기서 시작했죠. 아내가 옆에 앉아 타이에 라벨을 달아주기도 했고요. 열악했지만 정말 즐겁게 일했어요.
상상하기 어렵네요. 당신에게도 힘든 시절이 있었다니. 그때 이야기를 좀 더 듣고 싶어요. 블루밍데일즈와의 사건이 기억나요. 제 타이를 보여줬더니 폭이 너무 넓다며 좁게 만들어달라고 하더라고요. 전 막 사업을 시작한 풋내기였고, 블루밍데일즈는 미국 시장에서 굉장히 중요한 거래처였죠. 정말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지만 거절했어요. 디자인을 바꿀 수 없다고요. 그런데 반년 후에 그들이 먼저 연락해오더군요. 제 타이를 바잉하겠다고요. 어디서도 비슷한 걸 찾을 수가 없다면서. 세상을 다 얻은 기분이었어요. 그때 제 자신을 좀 더 믿게 됐죠.
처음으로 디자인한 옷은 뭐였죠? 폭이 넓은 타이에 어울릴 만한 셔츠, 라펠이 넓은 수트를 만들었어요. 당시 대부분의 수트 라펠이 좁았거든요. 저는 1930년대 느낌을 살리고 싶었어요. 독특하고 우아했죠. 이렇게 완전히 새로운 수트 룩을 완성했고, 당시 리테일 스토어와 <GQ> 같은 남성 매거진에서 크게 호응해줬어요.
1972년에 처음으로 폴로 랄프 로렌 남성 패션쇼를 열었죠? 요즘 런웨이와 많이 달랐을 것 같아요. 훨씬 규모가 작았어요. 아주 프라이빗한 공간인 ‘21클럽’에서 진행했죠. 그땐 남성복만 보여주는 쇼는 거의 없었어요. 당시 미국 <GQ> 편집장이었던 잭 해버(Jack Haber)가 최고라며 찬사를 보내주었던 게 기억나요. 정기적으로 쇼를 하진 않고, 하고 싶은 게 있을 때만 열었어요.
그로부터 2년 후엔 영화 <위대한 개츠비>의 남성복을 맡았어요. 돌아보면 그때가 당신 커리어의 중요한 기점이었나요? 음. 제 커리어에 터닝 포인트는 딱히 없어요. 꾸준히 발전했고, 대체로 좋았던 편이죠. 전 늘 변화를 원하고, 새로운 것을 시도해요. 그래서 여러 가지 일을 벌였고, 새로운 라인을 만들었죠. 계속해서 실험을 했던 거예요.
영화를 통해 대중적인 인기가 더 올라가지 않았을까 짐작했어요. 그럼 그 작업은 당신에게 어떤 경험이었죠? 모든 것이 좋았어요. 로버트 레드포드, 브루스 던, 미아 패로를 만났고, 의상 부분에서 오스카상을 받았죠. 돌이켜보면 영화에서 남성 패션이 주목받은 거의 유일한 사례였어요.
어떻게 참여하게 된 거예요? 당시 영화 의상을 담당했던 티오니 알드레지(Theoni Aldredge)가 저를 지목했어요. 그렇게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남성복을 만들었죠. 로버트 레드포드가 입었던 핑크색 스리피스 수트는 물론이고요. 사람들은 의상 담당보다 옷에 더 관심이 많았어요. 그럴 때마다 티오니는 늘 긴장했어요. 하하.
이후 다른 영화 작업을 한 적이 있나요? <애니홀>을 했어요. 우디 앨런 감독이 제 옷을 자주 입었어요. 다이앤 키턴 역시 제 옷을 좋아했죠. 그녀의 스타일을 보면 늘 감탄해요. 개인적으로도 알고 지내죠.
한때 영화배우를 꿈꿨다고 들었어요. 당신의 ‘인생 영화’는 뭔가요? 너무 많아요. 당장 떠오르는 건 <대부>. 걸작이죠. 오드리 헵번의 영화를 좋아하고, 폴 뉴먼의 팬이에요. 생각해보면 요즘 영화가 예전만큼 훌륭하지 못한 것 같아요. 임팩트가 떨어진달까. 배우도 너무 많고, TV 시리즈도 범람해서 그런 게 아닐까 싶어요.
좀 다른 얘길 해볼까요. 인테리어에도 조예가 깊은 걸로 알아요. <50 Years of Ralph Lauren> 책에서 당신의 홈 컬렉션 사진을 가장 유심히 봤어요. 어떤 것에서 주로 아이디어를 얻죠? 미국, 그리고 제 삶이죠. 운 좋게도 저는 제 취향을 정확히 알고, 만들 수도 있어요. 처음 만들었던 건 침대 시트예요. 막 결혼했을 때 아내와 침구를 사러 나갔어요. 그런데 마음에 드는 게 하나도 없었죠. 그때 아내 리키에게 말했어요. 이런 꽃무늬 시트에선 절대 잘 수 없다고요. 바로 옥스퍼드 버튼다운 셔츠 옷감으로 침대 시트를 제작했어요. 단추도 달았죠. 사람들 역시 좋아하더군요. 이후 페이즐리, 데님, 플란넬 등으로 범위를 넓혔어요. 제 옷의 소재와 패턴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거죠.
밀라노 쇼룸인 랄프 로렌 팔라초를 보면서 당신의 인테리어 감각에 다시 한번 놀랐어요. 커다란 창문, 동양적인 도자기와 새하얀 벽, 아르누보풍 조명. 실은 그곳의 사진이 제 휴대 전화의 바탕화면이에요. 고마워요. 밀라노의 팔라초는 아름다운 궁전처럼 꾸미고 싶었어요. 직접 디자인하거나 설계하진 않았지만 결과물이 아주 마음에 들어요. 클래식하고 아름답죠. 랄프 로렌의 옷을 전시했을 때 돋보이기도 하고요.
맨해튼의 라인랜더 맨션 매장도 빼놓을 수 없죠. 맞아요. 그곳은 제게 특별한 의미가 있어요. 랄프 로렌의 세계를 보여주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어요. 전엔 리테일을 상대로 도매업을 주로 했거든요. 그때 라인랜더 맨션이 눈에 들어왔어요. 당시 그 건물은 본래 모습의 5퍼센트 정도밖에 남지 않았을 정도로 낡은 상태였는데, 제가 신임하던 나오미 레프라는 디자인 컨설턴트와 손잡고 예전의 고풍스러운 모습을 되살리려 노력했죠. 1986년에 완성했어요.
2010년엔 그곳을 남성 전용 공간으로 리노베이션했죠? 그 매장을 제일 좋아해요. 랄프 로렌을 가장 분명히 보여준다고 생각하거든요. 정말 공을 많이 들였어요. 랄프 로렌을 입는 남자가 좋아할 만한 공간, 시간에 구애받지 않으면서 우아하고 독창적인 스타일을 담고자 했죠. 매장에 걸린 유화나 사진 작품 중엔 제 것도 많아요.
랄프 로렌의 이름이 달린 공간은 전부 멋져요. 혹시 호텔을 열 생각은 없나요? 오랜 시간 그 계획을 실현하고자 했어요. 여러 번 시도했는데 잘 안 됐어요. 아직 이루지 못한 목표 중 하나예요. 진작에 오픈했어야 하는 느낌이지만 꼭 할 거예요.
어느 도시에 첫 호텔을 세울 건가요? 당연히 뉴욕. 가까이에서 직접 지켜볼 수 있으니까요. 레스토랑도 그렇게 시작했거든요. 레스토랑에 가봤나요? 음식이 마음에 들 텐데.
오늘 밤에 꼭 가볼게요. 그런데 메뉴에도 관여하나요? 그럼요. 제가 직접 요리하는 건 아니지만 아이디어를 내죠. 몇 개월에 한 번씩 신메뉴를 테스트하거나 제가 제안한 음식을 시식해요.
파리에 있는 레스토랑과 메뉴가 다른가요? 셰프는 다르지만 콘셉트는 같아요. 햄버거, 스테이크 등 지극히 미국적인 메뉴로 꾸미죠. 일부 재료는 제 목장에서 공수해요. 품질이 보장되었단 뜻이에요.
컬렉션 얘기로 돌아가죠. 2016년에 진행한 ‘런웨이 투 리테일’ 콘셉트 쇼가 굉장히 인상적이에요. 쇼와 동시에 온라인에서 판매를 시작한 경우는 많지만 오프라인에서, 쇼가 끝난 직후 매장 문을 활짝 열었던 건 랄프 로렌이 유일할 거예요. 현장의 반응은 어땠나요? 그게 좀 복잡해요. 어떤 이들은 굉장히 좋아했지만 한편에선 싫어했거든요. 옷장을 어떻게 꾸밀지 미리 계획하고, 매장에 와서 매니저와 상의하는 등 옷을 사기까지 시간을 들이는 고객들이 있으니까요. 누구보다 빠르게 새것을 갖고 싶은 사람들은 좋아했죠. 하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아주 성공적이었던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긍정적인 반응이 압도적일 줄 알았는데 뜻밖이네요. 흥미롭죠. 아이디어는 훌륭해요. 런웨이의 옷을 바로 살 수 있다는 것, 심지어 온라인 쇼핑보다 빠르다는 점에서요. 하지만 이 방식을 지속하는 것에 대해선 의문이 들어요. 뚜껑을 열어보니 호불호가 예상보다 더 심하게 나뉘었으니까요. 프레스조차 어려워했어요. 화보를 찍으려 해도 기존의 시즌 체제와 맞지 않았죠. 그렇다고 완전히 포기한 건 아니에요. 보완책을 연구하고 있어요.
2017년엔 당신의 차고에서 쇼를 했어요. 네. 랄프 로렌의 옷과 자동차, 모두 각각의 역사가 뚜렷하고, 시간이 흘러도 변치 않는다는 점에서 비슷하다고 봐요. 그 생각을 표현하고 싶었죠. 유행을 타지 않고, 시간이 지나도 가치가 있는 스타일, 제가 추구하는 건 바로 그거예요.
언제부터 자동차를 모으기 시작했나요?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1980년대부터예요. 어릴 적부터 차에 관심이 많았어요. 초반엔 영국차만 좋아했죠. 처음 산 건 모건이라는 스포츠카. 다음엔 포르쉐 터보를 샀어요. 굉장히 특별하고 빠른 차예요. 그렇게 하나둘 산 것을 다시 팔지 않았더니 어느새 꽤 괜찮은 컬렉션이 되어 있더군요. 차를 수집하리라곤 꿈에도 몰랐는데. 너무 아름다워서 무엇 하나 팔 수 없었어요.
루브르 장식 미술 박물관에서 자동차 컬렉션을 전시하기도 했죠? 굉장했어요. 첫 번째 전시는 2005년에 보스턴 미술관에서 했고, 그 소식을 들은 루브르에서 저의 자동차 컬렉션으로 전시를 기획하고 싶다는 제안을 해왔죠. 2011년으로 기억해요. 1930~1990년 사이 유럽에서 제작한 스포츠카가 주제였고, 제 차 중 17대를 전시했어요. 세상에 네 대 밖에 없는 1938년형 부가티 애틀랜틱, 1929년형 벤틀리 블로워 등 희귀하고 아름다운 차만 골라서.
컬렉션 중 가장 좋아하는 차는 뭐예요? 없어요. 전부 다 사랑해요. 마치 자식 같아요. 성격이 다른 형제들처럼 각 모델의 개성이 있죠. 자동차의 디자인, 엔진, 기술력 같은 요소가 저를 끌어당겨요. 공부하면 할수록, 운전하면 할수록 흥미로워요.
아직도 운전을 즐기나요? 그럼요. 레이싱을 따로 배웠어요. 모터사이클도 전문적으로 마스터했고요. 자동차의 특성이나 기술에 따라 승차감이 다르잖아요. 운전하는 방식도 달라지고요. 그런 점이 무척이나 매력적이에요. 여전히 탈 때마다 신나요.
몇 대쯤 가지고 있는지 물어봐도 되나요? 글쎄. 숫자를 언급하고 싶진 않아요.
운전 외에 요즘 빠져 지내는 건 뭐예요? 사는 것 자체라고 말하고 싶어요. 제가 수집한 차, 제가 디자인한 집들, 우리 가족을 사랑해요. 모든 걸 하나의 그림 속에 담을 수 있죠. 손자가 네 명인데,
그 아이들과 있으면 한없이 행복해요. 나이가 들었다고 움츠러드는 건 싫어요. 전 여전히 활동적이고, 운동도 자주 해요.
어떤 운동요? 모든 스포츠를 좋아해요. 그중에서도 테니스와 승마를 즐겨요. 오토바이 사고로 발목을 다쳐서 약간 힘들긴 하지만. 아, 양키스 스타디움에서 시구를 할 예정이에요. 미국에선 큰 영광이죠.
당신이 브랜드를 통해 그려온 미국과 지금, 2018년 미국의 모습은 조금 다른 것 같아요. 동의해요. 다른 면이 있죠. 현재 미국의 정체성, 이 나라가 갖는 의미 같은 것들에 대해 논쟁이 있다고 생각해요. 다들 느끼고 있죠. 하지만 제가 관여할 부분은 아니라고 봐요. 정치적인 이슈니까요. 지금 미국은 변화의 과정을 겪고 있고, 이 시기가 지나면 또 다른 모습으로 변하겠죠. 전 항상 미국에 대한 애정이 넘쳤고, 그건 지금도 변함없어요. 이 나라의 정직함, 진정성을 사랑하니까요.
요즘 세대 중 랄프 로렌의 옷이 가장 잘 어울릴 것 같은 인물은 누군가요? 셀러브리티를 말하는 거라면 글쎄요. 많은 유명인사가 제 옷을 입지만 전부 알진 못해요. 물론 그들이 제 옷을 입는 건 감사한 일이죠. 그중엔 랄프 로렌을 정말 잘 소화하는 사람도 있고요. 하지만 셀러브리티를 내세우는 건 제 목표가 아니에요. 전 세련된 취향을 가진 사람을 위해 디자인해요. 저만의 확고한 세계관이 있고, 트렌드에 휩쓸리지 않아요. 자신의 스타일이 있고, 일상을 열심히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 그들이 뭔가 멋진 옷을 입고 싶을 때 랄프 로렌을 선택하길 바라죠.
‘50주년이 됐다’는 건 심플한 문장이지만 매우 이루기 어려워요. 당신이 지금껏 가꾼 아카이브를 보면 어떤 생각이 들어요? 아무것도 없이 시작해 회사를 이만큼 키운 건 제가 생각해도 대단해요. 미국은 빠르게 변하는 곳이고, 패션은 더 빠르게 바뀌죠. 그런 환경에서 저만의 비전을 가지고 이렇게 성장했다는 건, 세상에, 제가 그걸 해냈다니! 새삼 놀라워요. 초창기의 모든 것이 어제 일처럼 선명하거든요. 열심히 일에 몰두하다 보면 시간이 금세 지나가잖아요. 그렇게 된 것 같네요. 무척 자랑스러워요.
100년, 200년 후에도 랄프 로렌이란 브랜드가 건재할까요? 그때까지 제가 살아 있다면 물론이죠. 하하. 랄프 로렌의 옷은 생명력이 길다고 생각해요. 두고 봐요. 첫 50년은 성공적이고, 다음 50년 역시 더 성장해 있을 거예요. 우리 팀은 유능하고 헌신적이에요. 전 그들을 믿어요. 얼마 전 새로운 CEO를 영입했는데 느낌이 아주 좋아요. 게다가 지금 랄프 로렌은 그 어느 때보다도 젊은이들에게 인기가 많아요. 그러니 미래가 밝아요. 아주!
- 에디터
- 안주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