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과 일, 모든 면에서 새로운 장을 맞은 미셸 윌리엄스는 그토록 원하던 자유를 찾았다.
미셸 윌리엄스가 리들리 스콧 감독의 영화 <올 더 머니>를 재촬영할 때였다. <워싱턴 포스트>는 배우 간의 출연료 차이에 대한 기사를 내보냈다. 해당 기사가 중점적으로 다룬 것은 남자 주인공 역을 맡은 마크 월버그와 여자 주인공을 맡은 미셸 윌리엄스의 출연료였다. 둘 사이의 출연료 차이가 정확히 얼마나 심했는지는 다음 해 1월 초가 되어서야 세상에 알려졌다. 2017년 8월, 지난 1년간 총 6천8백만 달러를 벌어들임으로써 출연료 수입이 가장 많은 배우로 <포브스>가 선정한 마크 월버그가 재촬영을 대가로 1백50만 달러의 출연료를 받은 사실을 <USA 투데이>에서 밝힌 것이다. 반면 미셸 윌리엄스는 오스카상 후보에 4번이나 올랐고 골든 글로브 여우주연상을 수상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당 80달러를 받는 데 그쳐 재촬영 출연료가 1천달러에도 못 미쳤다. 추가 촬영은 성폭행 혐의를 받아 크리스토퍼 플러머로 교체된 케빈 스페이시의 분량을 다시 찍기 위한 것이었다. “재촬영의 대가로 돈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어요. 피해자를 위해 옳은 일을 하고 싶었던 것뿐이거든요”라고 미셸 윌리엄스는 말한다. 그가 언급한 인물은 스페이시로부터 열네 살 때 성폭행을 당한 사실을 폭로한 배우 안소니 랩이다.
브루클린의 가장 분주한 길목에 자리 잡은 윌리엄스버그의 한 호텔에서 미셸 윌리엄스를 만난 건 6월의 어느 후덥지근한 오후였다. 그는 2005년부터 보럼 힐과 레드 훅에서 지내왔다. 우리가 만난 날은 마침 그가 아직 대중에 공개하지 않은 파트너와 함께 브루클린 내의 다른, 그러나 알려지지는 않은 동네로 이사를 하려던 참이었다. 윌리엄스에 대해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그는 영화계의 토마스 핀천이다. 사생활을 드러내는 일이 거의 없다는 뜻이다.
원래는 미셸 윌리엄스와 함께 뭔가를 하며 이야기를 나눌 예정이었다. 미술 전시를 보거나 클로이스터스를 둘러보고 돌아와, 그가 했던 이런저런 말들에서 의미를 유추해 정리하려 했다. 하지만 인터뷰를 며칠 앞두고 미셸 윌리엄스가 할리우드의 임금차별에 대한 얘기를 나누고 싶어 한다는 전달을 받았다. 그는 함께 출연한 남자배우가 받은 출연료의 1천분의 1보다도 적게 받았고, 이 확연한 차이에 비판 여론이 들끓었다. 결국 마크 월버그는 출연료 관련 기사가 나오기 몇 주 전 설립된 피해 여성 법률지원기금인 타임스 업 리걸 디펜스 펀드에 그가 받은 재촬영 출연료를 전액 기부했고, 마크 월버그와 미셸 윌리엄스가 소속된 에이전시 윌리엄 모리스 엔데버는 거기에 50만 달러를 추가로 얹었다. 확실히 관람객과 아이폰 카메라에 둘러싸여 이런 얘기를 나누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스트 리버를 따라 늘어선 창고가 내려다보이는 고층 스위트룸의 배 한 척만 한 가죽 소파에 앉아 얘기를 시작했다. 그는 냉기를 뿜어대는 에어컨을 바로 껐다. “남성은 시원한 것을 좋아하는 반면 여성은 따뜻한 것을 선호하지만, 그와 상관없이 일상적인 건 뭐든 차갑게 유지한다는 얘기를 어디에선가 읽었어요”라며 윌리엄스는 거대한 소파에 털썩 앉았다.
“사무실도 남자들을 위해 낮은 온도를 유지하죠.” 거슬릴 정도로 싸늘한 냉방부터 삶에 변화를 주는 임금 격차까지, 여성이 감내해야 하는 무수한 크고 작은 불평등을 나타내는 비유였다.
마크 월버그가 받은 출연료의 액수를 알게 되었을 때 화가 났는지 묻자, 미셸 윌리엄스는 말했다. “내 자신의 가치가 완전히 바닥으로 떨어진 느낌이 들었죠.”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도 기사를 보고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껏 일터에서 마주해야 했던 거의 대부분의 경험과 비슷한 사건이었어요. 그냥 꾹 참고 삼켜버리는 법은 이미 익힌 상태였죠.” 신중하게 말을 고르고, 의견을 밝히기에 앞서 종종 눈을 지그시 감는 그는 단어 하나하나를 점검하는 듯했다. 이것이 그가 명료하고 사려 깊게 얘기하는 방법이라는 것을 이해하게 되기까지는 조금 더 시간이 필요했다. 그는 출연료 격차와 관련된 일들이 최종적으로 정리된 방식에 대해서는 만족한다고 했다. 사람들을 담론의 장으로 이끌었기 때문이며, 궁극적으로는 가시적 변화를 이끌어낼 것을 기대한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굴욕을 당했지만 사회적으로는 전환점이 된 거죠.”
인터뷰 전날 밤 윌리엄스는 새벽 3시까지 일했다. 바트 프룬디치 감독의 덴마크 영화 <애프터 웨딩> 리메이크 작품에 기존 남자 주인공 둘을 대체해 줄리안 무어와 함께 영화를 이끌어가는 중인 그는, 촬영을 마치는 대로 LA로 날아가 소니의 마블 차기작 <베놈> 재촬영에 들어간다고 한다. 촬영 강행군 중 만난 윌리엄스는 별다른 장식이 없는 브루클린 특유의 스타일로 옷을 입었다. 플레어드 청바지에 흰 리넨 셔츠를 허리춤에 묶고, 플랫을 신고 왕골 가방을 든 그의 얼굴에는 화장기가 없다. 그날 아침 피곤에 절어 눈을 떴을 때, 맨 얼굴로 나가도 될 상태인지에 대한 걱정이 들지 않은 것은 아니라고 했다. “그런데 저는 ‘괜찮겠지, 세상이 변했잖아’라고 생각했어요. 들어서자마자 저한테서 나는 향이 어쩌고저쩌고, 피부에 뭐를 발랐네 안 발랐네 따지고 드는 인터뷰를 하러 가는 게 아니니까요. 예전의 인터뷰 기사들은 매번 여성의 외모에 대한 일종의 성적 묘사로 글을 시작했지요. 적어도 과거에는요. 무슨 말인지 아시죠? 그런 인터뷰를 하러 온 게 아니라서 참 다행이에요.”
그가 하는 말이 무엇인지 잘 안다. 그리고 이 기사에서 그의 피부 결이나 얼굴빛에 대해 말하거나 여배우가 치즈버거를 먹었다는 사실에 놀라거나 하는 일은 없을 거라는 점을 확실히 해둔다. 대신 우리는 진한 커피를 연신 마시며 그의 창작 활동과 작업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미셸 윌리엄스의 근작들을 살펴보면, 그가 이전까지 활약한 데릭 시엔프랜스나 켈리 리처드의 시적인 예술 영화들과는 사뭇 거리가 있다. 지난 12월 미셸 윌리엄스는 <위대한 쇼맨>에서 노래와 춤을 선보였고, 올봄에는 에이미 슈머의 기발한 코미디 <아이 필 프리티>에 화장품 회사 후계자로 출연해 관객과 평론가 모두의 호평을 받았다. <허핑턴 포스트>의 매튜 제이콥스는 그의 정신 나간 연기를 두고 “감칠맛이 난다”고 평했다.
하지만 그의 커리어 변신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건은 지난해 출연한 리들리 스콧 작품과 더불어 오는 10월 개봉할 마블 영화다. “이전엔 해보지 못한 일에 도전하려고요. 장르이건 배역이건 간에 말이죠.” 그는 커피를 따르며 말했다. 켈리 리처드의 영화처럼 작고 가족적인 촬영장에서 제일 마음이 편하다는 그녀는, <올 더 머니>와 <베놈>을 거치며 “더 큰 세트, 낯선 사람들, 여러 대의 카메라와 다른 사람들의 간섭에도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고 한다. 미셸 윌리엄스의 첫 영화는 1994년 열네 살의 나이에 출연한 <래시>였다. 이듬해 부모로부터 독립한 그는 홀로 샌디에고에서 로스엔젤레스로 옮겨갔고, 얼마 지나지 않은 1998년에는 <도슨의 청춘일기>에 반항아 젠 린들리 역으로 캐스팅되어 6년간 연기를 했다. “꾸준히 연기를 할 수 있어 좋았지만 제가 가장 원했던 것, 존중과 자존감은 얻지 못했어요. 사람들은 절 아티스트로 보지 않았거든요.” 당시에도 그의 취향은 이후 이름을 알리게 된 독립 영화로 기울어 있었다. 결국 그의 커리어가 일대 전환을 맞이한 건 2004년 이안 감독의 <브로크백 마운틴>에 캐스팅되면서부터다.
그는 클로짓 게이인 카우보이 남편을 둔 아내 알마를 담담하면서도 강렬하게 연기해 여우조연상 부문으로 첫 오스카 후보 지명을 받았다. “사실적이고 진실된 연기에 가슴이 무너졌죠. 두 명의 게이 카우보이에 관한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알마 때문에 마음이 아파오는 건, 윌리엄스가 굉장히 훌륭한 배우라는 방증이에요.” 이안 감독의 말이다. 극중 남편 에니스를 연기한 고 히스 레저와는 영화 촬영 중 연인 사이가 됐다. 얼마 안 있어 윌리엄스는 임신했고, 영화 개봉 직전 마틸다가 태어났다. 둘은 보럼 힐에 널찍한 타운하우스를 장만했다. 빠르게 전개된 이 커플의 동화 같은 로맨스에 미디어는 열광했고, 브루클린에서 유모차를 끌고 다니는 둘의 모습은 자주 보도됐다. 하지만 그들은 3년간의 동거를 끝으로 이별했고, 그로부터 5개월이 지난 2008년 1월 히스 레저는 소호의 한 아파트에서 약물 과다 복용으로 사망한 채 발견되었다.
파파라치들은 미셸 윌리엄스와 그의 두 살 난 딸에게 달려들었다. 그와 관련된 한 기사에는 ‘병적인 컬트’가 형성되었다고 적혀 있기까지 했다. 미셸 윌리엄스의 친구이자 히스 레저가 죽은 후 한동안 윌리엄스와 함께 지낸 홀리스틱 영양 지도사 다프네 자비치는 말한다. “남겨진 이들에게 그토록 공격적인 방식으로 관심이 쏟아진 건 폭력을 당하는 거예요. 그 가족에게는 비극이라고밖에는 할 수 없는 일인데 말이죠.” 윌리엄스는 결국 브루클린을 떠나 한적한 곳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리고 새로 구한 집에서 6년간 마틸다를 키웠고, 촬영이 있을 때는 데리고 다녔다. 이제 와서 하는 얘기지만 매일 같은 스토킹엔 도저히 버틸 방도가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떠난 거예요. 온전한 가정환경을 위해서요.”
그는 천성적으로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데, 괴롭힘을 당하자 더더욱 숨어들었다. “기자회견에 참석해 뭔가를 공개하고 얘기하는 것을 늘 어려워했어요.” 윌리엄스와 함께 <도슨의 청춘일기>에 출연했고 그의 가장 친한 친구 중 하나인 배우 부시 필립스의 말이다. “안 그래도 그런 사람인데, 두 모녀의 슬픔에 걸신들린 듯 달려들자 그로선 감당하기 어렵고 고통스러웠죠.” 그 시기에 대해 윌리엄스에게 묻자 나지막하게 목을 가다듬는다. “함께 부양할 파트너 없이 홀로 아이를 키우는 건 겁나는 일이에요”라는 짧은 대답이 돌아온다.
몬태나주의 칼리스펠에서 태어난 미셸 윌리엄스는 새집으로 이사를 하면서 그가 어렸을 때 누렸던 것처럼 마틸다에게도 자연과 교감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자 했다. “자전거 타고 나가 실컷 놀고, 뱀 껍질이나 화살촉을 줍고 식물을 탐구하고, 절벽을 타보거나 폐가를 탐험하며 자유를 만끽하는 것 말이에요”라고 윌리엄스는 어린 시절을 회상한다. 이사한 새 지역에서 자연환경에 둘러싸여 정원을 가꾸고 식물을 돌보는 것은 윌리엄스 자신에게도 위안이 되었다. “제 안에 초록빛 싹이 자라나는데, 아직 보이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황색 언론의 서치라이트에서 멀어졌다 해도 히스 레저의 죽음을 둘러싼 이야기들은 그의 사망 이후 10년간 끊임없이 미셸 윌리엄스의 삶을 괴롭혔다.
사실 팬들에겐 그에 관한 기사와 글에 비극적인 개인사가 주된 비중을 갖고 끈질기게 언급되는 것은 불쾌하기도 할 것이다. 지난 10년간 종종 예상치 못한 일련의 작품들에 출연하며 미셸 윌리엄스는 우리 시대의 가장 뛰어난 배우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으니까. 이 영화 저 영화를 떠돌며 똑같은 모습만 보여주는 영화배우가 아니라 아티스트이자 카멜레온처럼 배역에 완전히 몰입하는 배우로서 말이다. “그의 재능은 흔히 볼 수 있는 게 아니에요. 복잡하면서도 동시에 명확하죠. 단순하고 분명해 보이는 상황에서도 뭔가 이면의 이면이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니까요.” 바트 프룬디치의 평가다.
미셸 윌리엄스는 관객의 기대나 예상에서 벗어난 배역을 연기하는 것을 꺼리지 않는다. 비호감을 사는 캐릭터들에게도 진실된 인간성을 불어넣어 관객의 공감을 이끌어낼 정도다. <블루 발렌타인>에서 불행한 결혼생활을 하는 예민한 간호사나 <마릴린 먼로와 함께한 1주일>의 마약에 찌든 교활하고 매력적인 주인공이 좋은 예다. 켈리 리처드 감독의 영화 <웬디와 루시>, <어떤 여자들>에서 선보인 그의 연기는 어찌나 미묘하도록 섬세한지, 암시적 표현들만으로 감정을 풍부하게 전달할 정도였다. <맨체스터 바이 더 씨>도 빼놓을 수 없다. 미셸 윌리엄스가 등장하는 장면은 적지만 그는 고통스러운 과거에 대해 알 수 있게끔 한다. 케네스 로너건 감독은 이렇게 말한다. “그의 존재감은 그가 등장하지 않을 때조차도 지배적이에요. 수화기 너머로 목소리만 들리거나, 장례식에서 슬로모션으로 보이는 조문객일 때도 말이죠. 그의 현실감과 강인함, 그리고 깊은 온화함은 그가 등장하는 모든 장면을 변화시키죠.”
미셸 윌리엄스는 사생활 지키는 것을 중시하는데 그에게 닥친 불행은 만인에게 알려졌다는 사실, 그리고 그가 연기한 역할들이 강렬했던 점들이 그에 대한 오해 비슷한 것을 형성하는 데 일조했던 것 같다. 그에 대한 묘사 중 일말의 독특함이라도 지닌 것이라고는 그를 다치기 쉬운, 상처받은, 슬픔에 잠겨 있는 새 따위로 비유하는 것이었다. 그와 반대로 내가 보는 그는 재미있고 지적인 사람으로, 예상했던 것처럼 방어적이지 않았다. “우리가 아는 그는 무척 재미있고 밝은 사람이에요. 필모그래피를 본다면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겠지만 말이죠.” 애비 콘과 함께 <아이 필 프리티>를 쓰고 감독한 마크 실버스타인의 말이다. 윌리엄스는 굉장한 독서가로 생생하고 시적인 비유를 사용한다. 인터뷰를 진행하는 동안 그는 콜슨 화이트헤드, 앤드류 솔로몬, 애니 딜라드, 엘레나 페란테, 레베카 솔닛, 짐 해리슨 그리고 헨리 데이비드 소로를 언급했다. 다만 짐 해리슨의 경우 소설 <달바> 말고 그의 시를 좋아한다고 한다. 그는 해리슨의 시와 여성 축구선수 애비 웜바크가 최근에 한 바나드대학 졸업 축사를 몇 차례 인용했다. 그의 친구들 말에 따르면 새로운 작가를 찾아내고 책을 추천해주는 사람은 언제나 윌리엄스였다. “아무도 엘레나 페란테를 모르던 시절, 저에게 그 작가를 추천해준 게 그였어요”라고 필립스는 기억한다. 윌리엄스를 보면 모든 게 다 까발려지는 시대에서 사적인 것은 종종 단호함 또는 섬세함과 의미가 뒤섞인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사적인 영역을 고수하는 것은 원칙을 지키는 것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혼자 딸을 키우고, 우여곡절을 이겨내며 성공적인 커리어를 일구고, 또 그 과정에서 온전함을 유지하는 건 미디어가 그린 그의 모습과 정반대지 않은가. “윌리엄스는 금세 꺾일 것 같은 연약하고 예쁜 꽃이 아니에요. 사람들이 그에 대해 얘기하거나 글을 쓸 때 절 화나게 하는 게 바로 부분이에요. 윌리엄스는 제가 아는 가장 강한 사람이에요. 그는 여전히 여기에 남아 일하고 있어요. 그리고 그냥 일을 하는 게 아니라, 가장 잘하는 사람이란 말이죠”라고 필립스는 말한다.
예기치 못한 새로운 방향으로 뻗어나가는 커리어와 7학년에 들어가는 딸을 둔 미셸 윌리엄스는 스스로에 대해 더 많이 보여주고 더 많이 말하며, 세상과 부쩍 가까워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가 펼친 다음 장은 블록버스터다. 슈퍼히어로 만화를 원작으로 한 영화에 등장하는 것만큼 그의 모습과 동떨어진 건 상상하기 어렵다. “<베놈> 같은 걸 해낸다면 제 삶이 바뀔 것 같았어요. 새로운 가능성에 도전해보고 싶었던 거죠.” 자세를 고쳐 앉은 그는 책상다리를 하고 말을 고른다. “지금까지는 어떤 순수함에 집착해왔어요. 하지만 이젠 여성 아티스트들과 얘기를 나누며 저의 미래에 대해 장기적으로 고민해보게 되었죠. 그러면서 삶을 꾸려가는 것에 대한 생각을 바꿔나가기 시작했어요.”
본격적으로 마크 월버그 사태의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요청했다. 둘 사이의 어마어마한 임금 격차가 어떻게 처음 알려졌는지? 질문을 받은 윌리엄스는 곡예를 앞두고 자세를 가다듬는 것처럼 큰 소리로 숨을 깊이 들이마신다. “그 이야기가 알려졌을 때 누구도 신경을 쓰지 않았어요. 마치 일어나지도 않은 일 같았고, 어디에도 의지할 곳이 없다는 점을 확인했죠.” 하지만 2017년이 저물어갈 무렵 할리우드는 빠르게 변하는 중이었다. <워싱턴 포스트>와 <USA 투데이>가 게재한 두 기사 사이의 6주 동안 ‘타임스 업’ 기금이 설립됐고 골든 글로브 시상식은 검은색 드레스 일색이었으며 로라 던, 수잔 서랜든, 메릴 스트립 등의 여성 배우들은 활동가들과 함께 레드카펫을 걷기도 했다. 아닌 게 아니라 윌리엄스는 미투 운동의 창시자 타라나 버크와 함께 시상식에 참석했다. 시상식 다음 날, 드디어 불이 일었다. 할리우드의 불평등을 타파하기 위해 목소리를 크게 내는 인물 중 하나로 미셸 윌리엄스와 오랜 친구 관계(둘은 2004년 연극 <벚꽃 동산>의 무대에 함께 선 적 있다)인 제시카 채스테인이 윌리엄스에게 메시지를 보내 월버그 건에 대한 트윗을 남겨도 되겠냐고 허락을 구한 것이다. “응 물론. 마음대로 해. 하지만 이미 밝혀졌는데 아무도 신경 안 쓰던데”라고 윌리엄스는 답장을 보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채스테인은 트윗을 올렸다. “재촬영 출연료로 몇백만 달러나 받은 마크 월버그와 달리 미셸 윌리엄스는 일당 80달러만 받았다고 들었다. 이와 관련해서 해명해줄 사람 없나? 전부 다 들통난 상황인 만큼 그에게 정당한 보상이 주어졌으면 한다. 그는 훌륭한 배우고 이번 영화에서 역시 환상적이었다.” 미셸 윌리엄스가 연기한 게일 해리스는 존 폴 게티 3세의 어머니이자 타락한 가족의 도덕적 중추가 되는 냉정한 사람이며, 영화에 숨결을 불어넣은 장본인이었다. 그가 이 영화로 골든 글로브 후보에 올랐다는 사실은 보잘것없는 출연료에 대한 분노를 더욱 키울 뿐이었다. (<USA 투데이>와의 인터뷰 중 모든 배우가 “일체의 대가 없이” 재촬영에 참여했다고 밝힌 리들리 스콧 감독은 코멘트 요청에 응답하지 않았다.) “부탁이니 다들 <올 더 머니>에서 미셸의 연기를 봐주세요. 미셸은 오스카상 후보로 4번이나 지명됐고 골든 글로브상을 수상하기도 한 훌륭한 배우예요. 그는 20년간 배우로서 활동해왔죠. 공동 주연을 맡은 남자 배우가 받은 출연료의 1퍼센트는 넘게 받아야 마땅해요.” <USA 투데이>가 정확한 출연료 차이를 보도한 다음날 올라온 제시카 차스테인의 트윗이다. 타이밍이 좋았다. 세상은 바뀌었고, 윌리엄스의 말에 따르면 그 뉴스는 “들불처럼” 번져나갔다.
그리고 윌리엄스의 전화기가 미친 듯이 울려대기 시작했다. 이제 어떻게 할 것인지, 소속사를 떠날 것인지, 성명을 낼 것인지 등 질문이 쏟아졌다. 그때 그는 그 순간이 상징적이라는 점을 분명히 알았다. “뉴스에 제 이름이 오르내릴 정도의 주목을 받아본 적이 없었어요. 비극적인 사망 사건 외에는 말이죠.” 그로부터 일주일간, “제시카 채스테인이 사건의 핵심내용을 다시 트윗한 때로부터 소속사가 사과의 뜻으로 금전적인 보상을 제안하기까지” 그는 소속사의 (남성) 고위급들과 수차례 전화로 얘기를 나눴다고 한다. 그는 새로 사귄 친구이자 미국 여성 농업인 연합의 공동창립자이며 미국 라틴계 여성 동일 임금 지급 캠페인을 이끄는 활동가 모니카 라미레즈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들은 골든 글로브 시상식 참석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윌리엄스가 도움을 요청하며 알게 됐다. 둘은 “일하다 쉬는 시간에, 아이들을 재운 후에, 그리고 아이들이 잠에서 깨기 전에 통화를 했다”고 한다.
소속사 WME와의 통화를 마칠 때마다 윌리엄스는 자신의 손이 떨리는 걸 느꼈다. “모니카가 해준 얘기를 떠올리곤 했어요. 스스로를 위해 협상하는 것이 어렵다면 모니카를 대신해서, 또는 제 딸을 대신해서 협상한다고 생각을 해보라고요.” 마크 월버그는 스스로 생각해서 기부 결정을 내렸고, 윌리엄스는 그와 관련해 월버그와 얘기를 나눈 적이 없다고 한다. (마크 월버그에게 코멘트를 요청하자, 그의 매니저으로부터 답신이 왔다. “우리들 중 어느 누구도 그와 관련된 얘기를 다시는 하고 싶어 하지 않을 거예요.) 결국 미셸 윌리엄스는 소속사를 떠나지 않기로 꽤 뜻밖의 결심을 했다. 어찌된 일인지 물어보자 그는 그의 에이전트 브렌트 몰리의 창의적인 능력을 의미 있게 여기며, “누구에게나 한 번의 기회를 더 줘야 한다고 믿어요”라고 덧붙인다.
그는 이 경험을 통해 여성이 뭉쳤을 때 낼 수 있는 힘이 크다는 걸 깨달았다. “저 혼자선 할 수 있는 게 없었어요. 하지만 늑대 무리(애비 웜바크의 표현이다)에 들자 가능성이 생겼죠. 무리를 이끄는 누군가, 즉 제시카 채스테인이 저를 끌어 올려줬고, 그러자 다른 많은 여성이 곁에 모여 절 이끌어줬어요.” 채스테인은 이에 대해 “누구도 자기 혼자서 위험을 감수하는 일은 없어야 해요. 우리는 모두 서로의 부담을 나눠 질 거예요. 여성 배우 한 명을 까탈스럽다고 치부해버리기는 쉽지만, 집단에 대해 그렇게 말하기는 훨씬 어렵죠”라고 말을 보탠다.
성별을 불문하고 배우들이 받아가는 출연료가 얼마나 과한지에 대해서도 할 얘기가 많다. 하지만 좋건 나쁘건 대중은 할리우드 배우들을 보며 사회문화적 변화를 감지하고, 영화계의 기준이 변하지 않는 이상, 여성 배우가 남성 배우에 비해 현저히 덜 받아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엔터테인먼트 업계에 종사하는 여성들도 똑같이 여성 노동자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해요. 그리고 우리는 모든 여성 노동자들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어요. 단순히 돈을 더 받아야 한다는 게 아니에요. 우리가 추구하는 건 공정함이에요.” 라미레즈의 설명이다.
이튿날 저녁, 포트 그린의 프랑스 음식점에서 만나자는 미셸 윌리엄스의 문자를 받았다. 우리는 커피 대신 로제 와인을 마셨다. 그는 마흔이 되기 전인 지금이 “굉장히 많은 것을 해낼 가능성이 있는 시기”라는 점을 알고 있으며, 어느 때보다도 일을 즐기고 있다. 그는 재니스 조플린 전기 영화에서 재니스 조플린을 연기할 예정이며, <디스 이즈 제인>에서는 임신 중절 합법화 운동가를 맡을 계획이다. “여성 배우는 나이가 들면 외적으로 망가지기 시작한다고들 하죠. 하지만 전 이제 본격적으로 궤도에 올랐어요.” 그는 그의 연기와 자신에 대해 갖고 있던 “일말의 믿음”이 드디어 “빛을 본 것”이라고 얘기한다. 어깨를 으쓱하고 미소를 지으며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너무 괴롭겠죠”라고 덧붙인다.
윌리엄스가 얘기를 꺼내지 않는 주제는 딱 하나 그의 사생활이다. 그에게 비교적 새로운 사람, 또는 적어도 미디어가 보기엔 새로운 누군가가 생긴 건 사실이고, 사랑에 빠진 사람들이 그런 것처럼 그 또한 입이 근질거리는 게 보였다. “여성들끼리 서로 공유해야 한다는 의미로 전부 다 말해주고 싶지만, 인터넷은 얼간이거든요.” 몇 주 후 그는 생각을 바꿔 내게 얘기를 들려주기로 했다. 언젠가 결국 공개되었을 때 사람들의 “관심과 혼란을 조금 줄이기” 위해서라고 한다.
이 인터뷰를 읽고 있을 시점이라면 이미 미셸 윌리엄스와 그의 파트너 싱어송라이터 필 엘버룸은 아디론닥스에서 친구 몇 명과 그들의 두 딸만 참석한 비밀 결혼식을 올렸을 것이다. 배우자는 마운트 이어리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인디 뮤지션으로, 그 또한 배우자가 어린 딸을 남겨두고 비극적으로 세상을 떠난 경험이 있다. 평단의 찬사를 받은 두 장의 앨범 <A Crow Looked at Me>와 <Now Only>는 비통한 감정과 그럼에도 슬픔에 굴하지 않고 상실감을 이겨내는 예술의 힘을 노래한다. 윌리엄스는 엘버룸과의 관계를 “굉장히 신성하고 특별”하다고 설명한다. 지난 7월 그는 집을 정리하고 미셸 윌리엄스와 각자의 딸들과 브루클린에서 살기 위해 대륙을 횡단했다.
“저는 한 번도 사랑을 포기한 적이 없어요.” 나중에 윌리엄스가 내게 들려준 말이다. 그는 히스 레저의 사망 이후 10년간, “완벽한 받아들임”을 찾아왔다고 한다. “전 마틸다에게 ‘어느 누구도 내게 재능이 있다는 걸 알아주지 않았을 때부터, 네 아버지는 날 사랑해줬단다’라고 항상 얘기해왔죠.” 윌리엄스의 목소리가 갈라진다. 마침내 그런 사랑을 찾아냈다는 것이 가끔은 믿기지 않을 때가 있다고 한다. “맞아요. 확실히 저는 지금껏 한 번도 저의 사적인 관계에 대한 얘기를 꺼낸 적이 없어요. 하지만 필은 어느 누구와도 달라요. 그가 절 사랑하는 방식은 제가 남은 인생을 살아가고 싶은 방식이에요. 전 일할 때 자유로워지고 싶어요. 마틸다 역시 자기 자신이 되고 자유를 찾을 수 있도록 노력하고요. 그리고 전 마침내 제게 자유로움을 느끼게 해주는 사람과 사랑하게 됐어요.”
미셸 윌리엄스는 다른 여성이 희망 혹은 지침을 얻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수입과 더불어 사생활을 공개할 결심을 했다고 한다. “원래 전 그런 것들에 대한 얘기를 조금도 하고 싶지 않았어요. 하지만 이런 생각이 든 거예요.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도 있지 않을까, 저만큼 힘겹게 허우적대고, 뭔가를 오랫동안 찾아온 사람에게 제 얘기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은 거죠.” 결국 그가 얻은 깨달음은 단순하다고 한다. “감옥처럼 느껴지거나, 힘들거나, 상처를 주는 것들에 안주하지 말라. 사랑으로 느껴지지 않는다면 그건 사랑이 아니다.”
저녁 식사 자리로 되돌아가 보자. 그는 가방으로 손을 뻗어 작은 수첩을 끄집어낸다. 그 안에는 전날 했던 인터뷰에 대한 단상이 휘갈겨 적혀 있다. 사우나 안에서 쓴 것이기 때문에 희미하게 번진 채다. “훨씬 보기 좋게 옮겨 적을 거예요”라고 말하고 2주 뒤, “완벽주의자 처녀자리로서 끊임없이 자신을 검토하고 재고한다”는 윌리엄스의 이메일이 도착했다. “여성은 서로가 서로를 지켜줘야 해요.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다고는 하지만 저 개인이나 제가 속한 업계에 한정된 채 끝나버리는 것으로는 부족해요. 아무리 작고 약하게 느껴지더라도 여성으로서 우리가 지닌 힘이 어떤 것이며 어디에서 힘을 찾을 수 있는지 알아야 하고, 서로가 서로를 위해 그 힘을 사용해야 해요”라고 그는 적었다. 또한 그는 새로 시작하는 TV 시리즈 출연 제의를 받았으며, 그쪽에서 협상할 필요도 없이 남자 주인공과 같은 출연료를 제안했다고 밝혔다.
그로부터 몇 시간 후, 밤에 진행될 <베놈> 재촬영을 위해 로스엔젤레스로 향하는 길에 그가 전화를 걸어 부연설명했다. 린-마누엘 미란다가 제작하는 그 티비 시리즈는 토마스 카일이 감독을 맡고 촬영은 뉴욕에서 하며 윌리엄스는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게 될 거라고 한다. “출연 제안을 받았을 때, ‘그래 그럼 이제 달려가서 평등과 투명성에 대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를 차례구나’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제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먼저 얘기를 하더라고요. ‘제작진은 제게 샘 록웰과 같은 출연료를 제안했어요’라고 말이죠. 울음이 터졌어요.”
문학 작품이나 인디 영화였다면 이런 식의 결말은 어림도 없었을 것이다. 진정한 사랑에 동일 임금까지, 지나치게 깔끔하고 억지스러울 만큼 완벽한 해피엔딩 같지 않은가. 어느 시점엔가 윌리엄스는 자신이 “한 여정을 마치고 이제 다른 여정을 시작하려는 중”이라는 말을 하고서는 그 표현이 너무 진부한 건 아닌지 걱정했다. 하지만 때로 현실은 각본을 벗어나 우리가 상상한 것보다 더 흥미롭고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기도 한다. 결혼식을 며칠 앞두고 우리는 다시 얘기를 나눴다. 인생과 사랑 모두에서 오랫동안 찾아온 드넓은 광활함을 발견했다는 그의 말은 단순하고 담백하다. “제가 추구하는 게 바로 이런 자유예요. 제 인생의 과제였죠. 제가 몬태나에서 누렸던 자유이고, 무대 위에서 느끼는 자유이며, 연기를 할 때 ‘액션’과 ‘컷’ 사이에서 얻는 자유예요.” 그러더니 잠시 멈춘 후에 다시 얘기한다. “저는 자유로워요. 저는 자유로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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