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궁금할 땐 이 노래를 아침 사과처럼 꺼내 먹어요.
정원영
‘어느날 오후’
세상 슬픈 어린이처럼 굴던 초등학생 때 처음 들었다. “나 지나간 날 모두 어디로 갔나” 같은 가사에 공감하던 청승이 좀 귀여웠던 것 같다. 이젠 술에 취해 집으로 돌아와 듣는다. 그 무렵의 나와 다를 게 없다. 가사가 현실이 됐네. 이선주(그래픽 디자이너)
이정현
‘Heaven’
이토록 세기말의 음울과 밀레니엄의 혼돈을 잘 표현한 노래가 있을까. IMF의 망령과 신세기의 환희가 교차하던 그때 그 사람들. 내가 영화로 말하고 싶은 과거의 심상이 가장 잘 담겨 있는 노래. 김태용(영화감독)
양수경
‘사랑은 창밖에 빗물 같아요’
보통 딸은 엄마의 삶을 닮는다던데 나는 엄마의 인생과 정반대로 흘러가는 중이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나의 삶을 통해 엄마를 이해하는 순간이 문득문득 찾아온다. 눈을 감고 이 노래를 부르던 엄마의 모습을 떠올린다. 정다운(다다이즘 클럽 비디오그래퍼)
윤영배
‘어쩐지 먼’
걱정이 많을 때면 찾아 듣는다. 내가 할 수 없는 일들과 할 수 있는 일들이 명확하게 정리되는 기분이다. 건조하고 냉소적인 노래지만 선택지에 놓여 복잡할 때의 내 머릿속을 아주 차분하게 해준다. 경성수(공중그늘)
송창식
‘선운사’
선운사에 가본 적도, 어디 있는지도 모르지만 이 곡을 수도 없이 들어온 나의 심상에는 선운사가 지어져 있다. 동백꽃도 한창 피어 있다. 조웅(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
선우정아
‘구애’
살아가는 이유는 결국 사랑받기 위해서가 아닐까. 삶으로부터, 타인으로부터,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으로부터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깊어갈 때. 이 노래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자 위로로 내게 온다. 안희연(시인)
포스탈 서비스
‘Such Great Heights’
실연당하고 불면증이 왔을 때 이 노래를 들으면 신기하게도 잠이 잘 왔다. 도입부에 깔린 전자음이 마치 ‘엠씨스퀘어’의 신호처럼 들려서 그랬을 수도 있겠지만…, 듣고 있으면 우주를 유영하는 기분이 들면서 모든 걸 내려놓게 된다. 정세용(대림미술관 프로그램 매니저)
신해철
‘The Hero’
만화의 주인공이 되고 싶었고, 만화의 꿈같은 이야기를 만드는 창작자가 되고 싶었다. 결국 일러스트레이터가 되었지만 만화 속에서 살고 싶은 마음은 여전하다. 내가 원했던 삶에 대해 잊지 않으려고 이 노래를 듣는다. 김정윤(일러스트레이터)
쳇 베이커
‘I’m Old Fashioned’
나는 유행에 밝은 편이 아니다. 최신 전자기기에도, 힙스터들이 좋아하는 노래에도, 세간에 오르내리는 레스토랑이나 바에도 그다지 흥미가 없다. 쿰쿰한 술집의 먼지 쌓인 스피커로 옛날 노래나 들으며 버본을 마시는 게 제일 편하다. 이재민(그래픽 디자이너)
빌리 조엘
‘Just The Way You Are’
세월이 흘렀지만 들을 때마다 새롭다. 내 취향의 멜로디도 그렇지만, 가사에 특히 매료됐다. 사랑하는 사람의 지금 모습 그대로를 좋아한다는 내용인데, 내겐 자신의 지금 모습도 사랑하라고 말하는 것 같다. 임재민(카카오IX C 스튜디오 리더)
킨
‘Everybody’s Changing’
모든 것은 변한다. 지나고 나면 늘 아쉽다. 내가 지나온 애틋한 순간들이 떠오르는 노래가 그 순간들에 대해 건네는 위로는 각별하다. 모든 것은 변했고 앞으로도 변해갈 테지만, 기억 속 푸르던 순간은 이 노래 속에서 변함이 없다. 달파란(영화음악 감독)
대릴 홀 앤 오츠
‘You Make My Dreams’
학창 시절부터 별명이 노인네였다. 좋게 말하면 아침형 인간. 이 노래는 대학 때 처음 들었고, 거의 매일 아침 들으면서 씻고 들으면서 학교에 갔다. 괜히 더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이 된 것 같았고, 학생이 아닌 지금은 괜히 더 부지런한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리오(서프코드 디렉터)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Cello Suite No. 1 in G Major, BWV 1007: Prelude’
어릴 적 첼로를 배울 때 이 곡은 가장 쉬우면서도 어려웠다. 연주하긴 쉽지만 무반주라 연주자의 개성이 중요했다. 하지만 별다른 개성이 없더라도, 힘을 빼고 담담히 연주하면 마음이 편안해졌다. 첼로를 연주하지 않는 어른이 돼서도 이 곡을 종종 듣는다. 내 삶을 닮았다. 조수연(샨탈 서울)
다이노서 주니어
‘Little Fury Things’
BMX나 스케이트보드를 탈 때 나는 가장 뜨겁다. 겨울엔 스노보드에 빠져 사는데, 리조트로 가는 길에 항상 이 노래를 듣는다. 내 마음을 예열하는 루틴이다. 최진수(반스 코리아 마케팅 매니저)
양성
‘삼박자’
대학 입시를 앞둔 열아홉 살의 10월. “무엇이 될까보다 어떻게 살까”라는 이 곡의 한 구절을 듣고, 어디선가 불어온 기분 좋은 바람을 느꼈다. 그렇게 대학에 가지 않았다. 8년이 지난 지금도 ‘무엇이’ 되진 않았고 ‘어떻게’든 살아가고 있다. 기분 좋게. 노아임낫(디제이)
프란시스 랭포드
‘I’m In The Mood For Love‘
얼마 전 왕쟈웨이 감독의 인터뷰를 읽다가 “제 에너지의 대부분은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쓰입니다”라는 대목에서 눈이 멈췄다. 분위기. 내가 하는 일이란 결국 이런 게 아닐까. <화양연화> 영문 제목의 모티브가 된 노래로, 들을 때마다 다른 분위기에 빠진다. 목정욱(사진가)
모임별
‘진정한 후렌치 후라이의 시대는 갔는가’
영화 잡지 <키노> 부록 CD에서 처음 들었다. 무슨 뜻인지, 무슨 음악인지도 모르면서 그 무드에 빠져들었다. 그 무드가 지금도 나와 내 작업을 이끈다. 아직도 작업할 때 가장 많이 듣는다. 노상호(미술가)
키린지
‘耳をうずめて’
일본어를 알지 못해도 이 노래의 분위기에 빠져들 수 있었다. 그렇게 한껏 감정이입 해서 들었는데, 정작 가사는 내 생각과 사뭇 달랐다. 이 노래에는 여러 해 가을 동안의 내 감정, 버려야 하지만 끝없이 뜨겁고 그리운 감정이 들어 있다. 그때의 감정이 날 만들었고 여전히 난 이 노래를 듣는다. 박혜인(글로리홀)
시가렛 애프터 섹스
‘Apocalypse’
차분한 멜로디와 나른하게 읊조리는 보컬, 섬세한 가사. 고된 작업에 치여 머리가 잔뜩 복잡할 때 듣는다. 원래의 나로 돌아가는 것 같다. 윤새롬(가구 디자이너)
백미현
‘정말 미안해(KBS 2TV <사랑과 전쟁> 주제곡)’
이렇게 미안한 인생일줄 낸들 알았겠나. “난 모르겠어 무엇이 진정 나의 삶인지.” 이봉수(비트볼 레코드)
- 에디터
- 손기은, 정우영, 이예지, 이재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