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LETTER – 8 | 지큐 코리아 (GQ Korea)

EDITORS LETTER – 8

2018-10-24T10:50:05+00:00 |book|

글을 읽을 때 함께하면 좋을 것.
Les Grands Assemblages Bas-Armagnac 12, Francis Darroze
Sommeliers Cognac XO glass, Riedel

그는 흡연가지만 골초는 아니다. 하루에 보통 다섯 개비를 피우고 어떤 날은 덜 피운다. 일을 하고 있을 때보다는 아무것도 안 할 때 좀 더 피운다. 누군가를 기다리거나 약속이 없는 일요일 같은 경우. 초록색 갑에 든 맨톨이나 포장에 흰색과 연한 회색을 쓴 ‘라이트’, ‘울트라 라이트’가 붙은 것보다 그냥 담배를, 단단한 박스 형태 말고 주머니에 넣으면 포장이 주글주글해지는 소프트를 더 많이 사고 바지 주머니에서 구겨진 담배를 꺼내 그걸 다시 통통하게 만들 때의 기분을 좋아한다. 담배를 피우면 잃는 것이 많다는 건 그 자신도 안다. 세상의 어떤 물건도 포장지에 괴멸된 잇몸과 죽은 채 태어난 아기, 쓰레기통에 처박힌 구멍 난 스펀지 형상의 폐 사진을 붙인 채 팔진 않는다. 경고가 이 정도니까 바보가 아닌 이상, 과연 문제가 있단 생각은 하게 마련이다. 실제로 담배를 피우고 나서 피부가 거칠어지고 눈 밑이 어두워지고 이가 변색됐다. 엄지와 중지 사이가 노리끼리해지고 손가락을 코 밑에 대면 아직 한 개비도 피우지 않은 아침부터 니코틴 냄새가 난다. 미용이야 그렇다 치고, 건강에 관해서는 훨씬 무시무시한 말을 듣는다. 흡연으로 인한 폐암과 심근 경색, 협심증과 뇌졸중은 결국 깔대기처럼 한 군데로 모인다. ‘그러므로 너는 그걸 피우고 곧 죽는다’. 주변의 친구들은 하나 둘씩 결심을 했다. 멀쩡한 담배를 동강내는 것으로 금연 계획을 알리고, 이틀 후쯤 몸이 한결 가벼워졌다고 자랑을 하다가 일주일이 지나면 부들부들 손을 떨면서 남의 담배를 하염없이 바라본다. 그러기를 여러 번 하고 나서, 몇은 정말로 담배를 끊었다. 그의 경우는 아직 미적거리고 있는 중이다. 결심은 굳었으나 매번 의지가 연했다. 한 때 꽤 오래가나 싶었지만, 결국 모처럼의 저녁 모임에서 디저트를 못 기다리고 문밖으로 나가 담배를 피웠다. 유리 너머로 오종종한 스푼을 들고 단호박 타르타르를 먹는 친구들을 보면서, 숟가락만 놓으면 불부터 켜대던 것들이 언제부터 저런 새침한 걸 먹었냐고 침통해했다. 위로 차원에서 함께 프랑스 영화를 봤다. 파리 애들은 역시 담배를 많이 피운다. 저녁으로 양고기 커틀릿을 먹고 난 부부가 나가려고 일어서는데, 남편이 입에 담배를 문 채 아내의 코트를 입혀주고 코트 깃 안으로 들어간 머리도 살짝 들어 빼준다. 담배는 손에 들고 있을 때보다 입에 물고 다른 일을 할 때 역시 더 폼이 난다. 그는 장면에 마음이 동해 한 개비를 더 피웠다. 그를 좋아하고 걱정하지만, 한 번도 이제 그만 끊으라고 말하지 않았다. 담배가 주는 안도감과 위로를 알아서만은 아니고, 짧게 탄 담배를 입술 끝에 문 모습이 더러 멋지게 보여서도 아니다. 요즘 같은 때 살았으면 비스마르크와 처칠이라도 금연을 고민했겠지만, 모두가 건강하게 살기 위해 철저하게 스스로를 컨트롤하는 세상은 어쩐지 너무 무섭다. 무용한 것을 열렬히 사랑하는 낭만은 이제 더는 없는 걸까. 다만 지금보다 더 많이는 아니면 좋겠어서, 가끔 <중경삼림> 스타일로 농담을 한다. “입맞추고 사랑받고 불타오르다가 곧 버림받는 담배의 기분을 생각하면, 다음 담배까지 시간은 좀 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