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서울독립영화제 장편 경쟁에 오른 작품들이 예사롭지 않다. 그중 가장 또렷하게 빛나는 영화 세 편.
<겨울밤에> 장우진 감독
겨울밤은 길고 길다. 걷고 마시고 노래를 부르고 오래된 과거와 마주쳐도 끝나지 않을 만큼. <겨울밤에>는 춘천 청평사에서 보낸 하룻밤 이야기다. 아내가 휴대 전화를 잃어버려 춘천에서 하룻밤 묵게 된 중년 부부는 민박집 방에 나란히 눕지만 잠이 오질 않는다. 그들 사이는 어둠 속에서 천천히 돌아가는 붉은 난방 팬보다도 적막하다. 뒤척이던 남자는 방을 빠져나와 휘적휘적 걷는다. 노래를 부르다 우연히 마주친 옛 친구와 술잔을 기울이기도 한다. 날벌레를 쫓는 푸른 등이 희붐하게 빛나고, 남자는 자꾸 실없는 소리만 하고, 포장마차의 비닐은 파도처럼 펄럭인다.
장면이 바뀌어, 남자의 상념처럼 젊은 커플이 등장한다. 중년 부부와 달리 서로에 대한 호감과 생기로 가득 찬 젊은 남녀는 과거 부부의 직접적인 은유다. 그들은 꿈도 말하고, 사랑도 말하고, 입도 맞춘다. 한편, 여자는 여전히 휴대 전화를 찾는 중이다. 찾아도 찾아도 찾아지질 않아 서글프다. 얼어붙은 폭포에서 위험에 처한 여자를 젊은 남녀가 구하고, 셋은 퍽 다정한 시간을 보낸다. 여자는 젊은 여자와 포옹하며 이별한다.
다시, 붉은 난방 팬이 돌아가는 방 안이다. 다시, 휴대 전화를 잃어버렸다는 걸 깨달은 택시 안이다. 영화는 자꾸 춘천의 겨울밤 안에서 회귀한다. 여러 경우의 수들을 퍼즐처럼 늘어놓지만 맞추지 않는다. 어긋났다 홀연히 나타나고 사라지며 서로를 붙잡지 못한다. 다만 어떤 부유물과 소리들은 끊임없이 기척을 내며 바스락거린다. 어둠 속에서 돌아가는 난방 팬의 붉은 불빛, 뜨거운 국물에서 펄펄 오르는 김, 펄럭이는 비닐, 대웅전 한가득 매단 연등의 흔들림, 얼음 속을 흐르는 물, 흰 눈을 밟는 감촉, 멈춰 선 택시의 깜빡이등 소리…. 오로지 누군가의 기척만을 기다리던 긴긴 겨울밤처럼 적막하고, 아름다운 영화다.
<김군> 강상우 감독
단 몇 장의 사진으로 남은 김 군은 어디에 있을까. <김군>은 지만원에 의해 북한군 리더 ‘제1광수’로 지목된 518 시민군, 김 군을 찾는 다큐멘터리다. 감독은 당시 사진을 찍은 사진기자, 518 연구자와 생존한 시민군들을 한 명 한 명 찾아가며 김 군의 발자취를 더듬는다. 증언은 다음 증인으로 이어지고, 추적은 느리지만 집요하다. 시민군 기동순찰, 조사부장, 희생자 시신 담당자, 주먹밥을 만들어 준 여성…. 카메라는 더운 여름 선풍기에 날리는 그들의 머리칼을, 지난 세월을, 붉은 얼굴을 어루만지는 것만 같다. 김 군과 함께 트럭에 올랐던, 세 명의 시민군은 38년 만에 극장에서 조우한다. 살아서 이렇게 만났네요, 손을 잡는다. 바람에 가로수가 흔들리고, 묘역의 풀들이 눕는다. 진실을 찾는 걸음은 곧고, 담는 시선은 깊다. 김 군, 죽거나 살아남은 이들, 잊지 말아야 할 삶들이 여기에 있다.
<아워바디> 한가람 감독
마음처럼 되는 건 몸뿐이다. 공무원 시험에 실패한 자영은 무기력 속 생생한 육체를 가진 한 여자를 만난다. 곧고 튼튼한 몸으로 힘 있게 달리는 현주를 동경하던 그는 운동을 시작하고 생기를 되찾는다. 여기까지는 흔한 갱생 서사로 읽힐 수 있지만, 이 영화가 특별한 건 거기서 멈추지 않기 때문이다. 몸은 자기완결적이지만 구조라는 벽을 넘을 수 없다. 누구나 꿈꾸는 신체를 가졌으나 정작 꿈을 이룰 수 없어 죽음을 택한 현주의 역설이 남기는 쓴맛처럼, 자영의 몸도 자꾸만 거꾸러진다. 생생한 몸, 통과할 수 없는 구조, 근본적인 물음을 좇는 자영 역 최희서의 연기가 빛난다. 세대와 여성의 고민이 담긴 영화다.
- 에디터
- 이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