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바둑 랭킹 1위 신진서의 성장 비결 | 지큐 코리아 (GQ Korea)

한국 바둑 랭킹 1위 신진서의 성장 비결

2019-01-14T10:54:26+00:00 |culture|

지금 한국의 바둑 랭킹 1위는 신진서라는 열아홉 살 소년이다. 그는 지금까지의 어떤 고수와도 다른 방식으로 성장했다.

신진서를 처음 본 것은 8년 전, 우리나라에서 가장 권위 있는 어린이 바둑 대회장이었다. 당시 초등학교 4학년이었던 이 어린 소년은 우승 후보였던 6학년 형, 누나들을 연거푸 꺾고 우승을 차지한다. 나를 비롯한 많은 이가 충격에 빠졌다. 생전 처음 보는 앳된 소년의 당당한 군무에 전국의 내로라하는 쟁쟁한 아이들이 맥없이 나가떨어졌다. 그의 스타일은 보통의 잘 훈련된 정파의 ‘검술’과는 다르게, 야생의 사나운 맹수처럼 돌발적이고 거칠었다. 이 어린 소년의 신선한 초식에 놀랐고 그의 신들린 듯 화려한 군무에 반했다. 그렇게 등장한 열한 살 소년의 깜짝 우승은 그날 그를 지켜본 많은 이에게 신진서라는 이름을 제대로 각인시켰다.

그리고 8년 후, 이 소년이 한국 바둑 랭킹 1위에 오른다. 무려 60개월이라는 긴 시간 동안 한국랭킹 1위를 지켜온 박정환 9단을 제쳤다. 그동안 한국 바둑 랭킹 1위는 박정환 9단의 전유물이었다.

한 선수가 랭킹 1위를 5년 동안 독식한 분야는 드물다. 한국 바둑계만이 박정환에 의해 새로운 역사가 쓰이고 있었다. 신진서는 이 길고 긴 기록을 종결시키고, 박정환의 독주체제에 정면으로 제동을 걸었다.

신진서는 바둑을 독학으로 연마했다. 보통 프로 기사가 되려면 바둑교실을 거쳐 전문 바둑도장에 입문하고 적어도 5년 이상 그곳에서 수련한 끝에 프로에 입단한다. 신진서는 바둑교실만 나왔다. 이후 고향인 부산에서 개인 공부와 인터넷 대국만으로 프로급 실력에 도달한 매우 특이한 경우다.

이후 약 1년 정도 유명 도장에 입문하기는 했지만 이미 프로급 실력을 갖춘 뒤였다. 사실상 독학으로 프로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시 유명 바둑도장 사범이었던 나는, 신진서가 바둑도장 소속이 아니라는 사실이 놀라웠고 하루 빨리 서울로 상경해 유명 바둑도장에 들어가길 바랐다. 정말 귀한 재능을 가진 아이라는 것은 누가 봐도 알 수 있었으므로, 감수성이 풍부한 시기에 한시바삐 전문 도장에 들어가 그 재능을 꽃피워야 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신진서는 서울로 상경하지 않고 부산에서 묵묵히 독학으로 일관했다. 그저 타이젬바둑(유명 인터넷 바둑 사이트)에 매일같이 접속해 그곳의 강자들과 스파링만 했다.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훈련을 받지 못해 그가 가진 탁월한 재능이 금세 시들어버리지는 않을까 우려됐다. 신진서의 재능을 익히 알고 있던 당시의 모든 지도자가 그런 염려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신진서는 지금 그 모든 우려가 기우였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신이 내린 낭중지추의 재능은 범인들로서는 가늠키 어려운 깊이에 있는 것일까. 그 또래의 뛰어난 아이들이 하나같이 바둑도장에 소속돼 있고, 한국기원 연구생(전문 바둑 사관생도 같은 개념)으로 하나둘씩 들어갈 때 신진서의 부모님은 그 절차와 단계를 그리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던 것 같다.

그는 매일같이 인터넷 바둑 사이트의 뭇 9단 고수들에게 숱한 매를 맞아가며 맷집을 키웠다. 강자들과의 전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법을 야전에서 스스로 터득하며, 거칠지만 날카로운 자신만의 스타일을 구축했다. 신진서와 겨루던 인터넷 9단 강자들이 점점 그에게 밀리기 시작했고, 어느덧 웬만한 인터넷 9단들은 그에게 적수가 되지 않았다. 그 과정을 지켜본 한 사람으로서, 매일이 충격이었다. 짐작은 했지만 상상 이상의 성장 속도였다. 이쯤 되자 인터넷 프로 기사들이 소년 신진서를 의식하기 시작했다. 어린 소년과의 일전을 마다하지 않고 대국 신청을 자처하는 프로 기사가 늘어갔다. 또래의 뛰어난 아이들을 훨씬 웃도는 수준에 도달한 것이다.

현재 세계 랭킹 1위 중국의 커제 9단이 얼마 전 이런 얘기를 했다. “나를 키워준 것은 인터넷 대국이었다.” 무명 기사였던 그가 인터넷에서 강호들과 무수한 대국을 거치며 실력을 크게 향상시켰고, 이를 동력으로 세계 랭킹 1위에 올랐다는 이야기였다. 신진서를 보며 그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 누구도 아닌 인터넷의 수많은 고수가 그의 잠재력을 끌어올린 것이다. 2012년, 신진서는 초등학교 6학년의 나이로 프로 입단에 성공한다.

국내 기전에서 서서히 두각을 나타내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국내 최고의 기전 바둑리그에서 1장에 뽑히는 쾌거를 이뤘다. 박정환의 대항마로 불리며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던 그는 몇 년 안에 세계대회 우승에 도전하겠다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거칠 것 없이 진격하던 신진서에게도 세계 무대의 벽은 높았다. 공식 세계 대회에서는 아직까지 이렇다 할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중국의 강호들에게 번번이 가로막혔다. 작금의 세계 바둑계는 바야흐로 중국의 독무대다. 중국 랭킹 15위까지는, 누가 세계 대회에서 우승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실력자다. 우리나라에서는 이세돌 9단이 어느덧 30대 후반으로 접어들며 하향세에 들어간 지금 박정환 9단, 신진서, 김지석 9단 세 명 정도로 중국에 대항하고 있다.

하지만 신진서는 이제 고작 열아홉 살이다. 과거 이창호 9단도 ‘국내용’이라는 수식어에 시달렸고, 박정환 9단은 세계 대회 우승까지 절치부심의 시간을 견뎌야 했다. 난공불락 같았던 국내 랭킹 1위에 오른 그는 지금 막 날개를 폈을 뿐이다. 글 / 서중휘(프로 바둑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