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키토리 굽는 향기에 홀린 듯 골목으로 들어섰다.
야키토리 묵
연남동
가오픈 기간이지만, 예약은 매일 꽉 찬다. 자리를 잘 잡으면 독백을 준비하는 연극배우처럼 우뚝한 김병묵 셰프의 모습을 정면으로 감상할 수 있다. 조리가 시작되고 셰프의 미간에 살짝 주름이 잡히면 앞에 앉은 손님은 밀려오는 기대감에 조용히 침을 넘긴다. 프랑스 요리를 하던 김 셰프, 와인 관련 일을 하던 정은주 대표가 만난 만큼 왁자지껄한 야키토리집 분위기 보다는 와인과 요리에만 집중하기에 더 좋은 공간이 완성됐다. “토종닭을 직접 발골해서 사용해요. 그래서 꼬릿살(본지리)이나 어깨살(토리마츠바) 같은 다양한 특수 부위를 낼 수 있죠.” 하나하나 손질하기 때문에 영업 전 준비시간은 7시간 가까이 걸린다. 토종닭의 고소한 육향을 살리기 위해 소금간은 약하게 하고, 타래도 잘 쓰지 않는다. 부모님 논에서 가져온 짚으로 향을 슬쩍 입힐 때도 있다. “꼬치는 나오자마자 먹어야 해요. 핑크빛이 돌아도 놀라지 말고요. 그래야 ‘주시’합니다.” 070-8835-3433
쿠시라쿠
논현동
광고 일을 하던 청년이 일본 유학 중 아르바이트를 하던 야키토리집에 흠뻑 빠져 아예 직업을 바꿨다. 요리 만화에나 나올 법한 스토리가 논현동 쿠시라쿠의 이야기다. 천장이 낮은 카운터 자리에 앉아 전깃불로 구워내는 야키토리를 기다리고 있자면 일본의 어느 골목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이 든다. “오사카의 스승님에게서 타래 소스를 받아왔어요. 작년 9월부터 계속 끓여가며 사용하고 있습니다..” 신인범 대표는 퇴근길에 가볍게 들러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야키토리집을 만들려도 가격도 낮췄다. 혼자도 갈 수 있게 한 꼬치씩 따로 파는 것도 그 이유다. 닭 목살(세세리)처럼 흔한 듯 귀한 부위도 배불리 먹을 수 있고, 돼지고기와 소고기도 다양하게 굽고 있다. 집 앞 편의점에 드나들 듯 자주 찾아야 이 집의 진가를 확실하게 느낄 수 있다. 그리고 그쯤 되면 온몸에 베어드는 야키토리 연기가 매일 밤 그리워질지도 모른다. 02-6013-9494
도쿠로야
합정동
“희한하고 맛있는 집이 있다”는 흥미로운 추천으로 방문한 도쿠로야는 소리부터 범상치 않았다. 록 음악이 공간을 꽉 채우고, 해골이 그려진 티셔츠도 곳곳에 걸려 있다. 록 밴드의 멤버가 하는 가게라는 풍문도 있었지만, 음악은 취미일 뿐이라고 이종혁 대표가 먼저 말을 꺼낸다. “저는 그저 이곳이 ‘시타마치노오야지’처럼 느껴졌으면 해요. ‘뒷골목의 아저씨’요. 최대한 싸게, 최대한 두툼하게 해요. 꼬치를 미리 빼서 두지 말고, 꼬치 하나를 나눠 먹지도 말고, 얘기도 많이 하지 말고, 뜨거울 때 빨리 먹어야 해요. 몰아서 시키지 말고 그때그때 주문하고요.” 툭툭 무심하게 팁을 던져주고는 숯 앞에 선 이 대표가 이야기를 이었다. “숯은 정말 애인 같아요. 계속 봐줘야 하고 관심 줘야 하고 만져주고 달래줘야 하거든요.” 웃음기 없는 표정으로 이런 말을 하니, 록 음악과 야키토리의 조화가 어디서 나온 건지 알 것 같았다. 010-6363-5442
텐카이
한남동
그랜드 하얏트 서울에 정갈하고 정중한 야키토리 텐카이가 있다. 깨끗한 냅킨이 접힌 테이블이 한눈에 들어오는데, 역시나 닭의 각종 부위를 곱게 접은 야키토리를 만든다. 숯 위에 꼬치를 올렸을 때 어느 한쪽이 들쑥날쑥하게 익지 않도록 가로의 길이도 정확하게 맞추고, 꼬치가 돌아가지 않도록 무게중심마저 신경 써서 꽂는 걸 보면 침보다 감탄이 먼저 나온다. “껍질(카와) 때문에 이곳을 찾는 손님이 많아요. 더 바삭하게 맛볼 수 있도록, 한번 삶아 미리 손질해둡니다. 몇몇 부위는 토종닭을 함께 쓰고 있어요. 껍질을 말아서 굽는 닭 가슴살처럼, 쫄깃한 식감이 어울리는 부위도 있으니까요.” 자욱한 연기 속에서 한잔 기울이는 허름한 식당도 좋지만, 세심하게 발라낸 부위를 보물 다루듯 하는 이곳에서 천천히 식사를 하는 것도 즐거운 경험이다. 닭 한 마리에서 야키토리 부위가 스무 가지 이상 나온다는 일본인들의 이야기를 떠올려 보면서. 02-799-8274
- 에디터
- 프리랜스 에디터 / 손기은
- 포토그래퍼
- 이현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