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과 밖에서 자동차를 포위한 <모터그래프>의 촬영 장비들.
자동차를 영상으로 살펴보는 건 TV만 할 수 있는 영역이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프로그램인 BBC의 ‘탑기어’를 비롯해 자동차 리뷰 전문 프로그램은 각국에서 꽤 오랜 시간 전성기를 누렸다. 하지만 유튜브가 등장하면서 자동차 영상 콘텐츠의 주된 공급처가 완전히 재편됐다. TV가 아니라 PC와 모바일에 최적화된 영상이 쏟아져 나왔다.
콘텐츠 제작자도 다양해졌다. 자동차는 고정 시청자가 보장된 소재인 만큼 영상 콘텐츠 제작을 전문으로 하는 온라인 매체가 많이 생겼다. 활자 뉴스를 생산하는 매체 중 몇은 영상 제작을 겸하기 시작했고. ‘자동차 블로거’에서 유튜버로 활동 무대를 바꾼 사례도 적지 않다. 새로 나온 차에 관한 정보부터 경쟁 모델 둘을 두고 같은 조건에서 테스트하는 비교 시승기까지, 다룰 수 있는 정보의 유형도 점점 다양해졌다. 모델명만 쳐도 세기 어려울 정도의 리뷰 영상이 쏟아지고, 덕분에 콘텐츠는 넘치게 축적되었다. 국내에 정식 수입되지 않는 모델은 시청자의 차를 섭외해 다루기도 한다. 그러니까 지금 유튜브에서 정보를 얻을 수 없는 차는 없다.
자동차 리뷰 영상이 유튜브에 처음 등장할 때만 해도 영상의 흐름은 단조로웠다. 편집과 화질 문제도 있었지만, 당시 촬영 장비로는 찍을 수 있는 구도가 제한적이었기 때문이다. 비슷한 시점에서 찍은 영상이 반복되고, 스토리가 평이하게 전개되면 짧은 분량이라도 당연히 지루하다.
하지만 ‘액션캠’의 등장으로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손바닥 안에 쏙 들어오는 크기여서 차에 붙여도 방해가 되거나 부담스럽지 않다. 자동차 외부에 붙일 수 있는 전용 거치대도 순식간에 보급됐다. 둘을 조합하면 자동차를 찍을 수 있는 구도와 시점이 획기적으로 늘어난다.
드론도 이젠 자동차 영상 촬영에 많이 쓰인다. 산과 건물 때문에 수평 시야가 매우 좁은 국내 도로 환경에서 드론은 영상에 담을 수 있는 구도를 하나 더 추가했다. 달리는 차를 공중에서 내려다보는 장면은 영상 중간중간에 시각적인 청량감을 선사한다. 무엇보다 드론의 등장은 코너를 통과하는 차의 움직임을 ‘객관적인 시점’에서 볼 수 있게 했다.
촬영 장비가 다양해지면서 영상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는 방식도 늘었다. 테스트로 측정한 수치를 보여주는 데 특화된 매체는 차가 움직이는 장면을 통해 숫자에 대한 설득력을 얻는다. 반면 인테리어와 디자인 설명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리뷰에선 해설자의 손끝에 카메라의 초점이 집중된다. 두 리뷰어가 함께 차에 오르고 이야기를 주고받는 콘셉트도 드물지 않은 방식이다. 시청자는 관찰자가 되어 둘의 대화를 보고 듣는다. 차에 탄 리뷰어 둘 모두가 나와야 하니 자동차 내부 공간을 최대한 넓은 화각에 담는 방법도 자연스럽게 찾았다.
현재 유튜브의 자동차 전문 매체 중에서 가장 구독자 수가 많은 곳은 <모터그래프>다. 2위에 비해 두 배 이상 많은 26만 명이다. 시승기와 차를 주제로 한 토크쇼를 진행하고, 자동차와 관련된 뉴스를 영상 콘텐츠로 만들어 유튜브에 업로드한다. ‘굵직한’ 신차라면 출시 행사를 라이브 방송으로 중계하기도 한다. <모터그래프>가 시승 영상을 촬영하는 차의 도어와 루프엔 액션캠이 부착된 석션컵이 붙어 있다. 도어에 붙은 것은 조향에 따른 바퀴의 움직임을, 루프에 붙은 것은 전방에 보이는 주행 상황을 담는다.
액션캠은 이 밖에도 다양하게 활용된다. 석션컵을 부착할 수 있는 면만 있다면 주행 상황을 어떤 각도로도 찍을 수 있다. 바퀴 너머에 있어 눈으로는 거의 보기 힘든 서스펜션의 상하 움직임도 액션캠을 팬더에 부착하면 얼마든지 찍을 수 있다. 서킷에서 고속 주행하는 장면을 촬영할 때는 다른 차에 부착해 팔로잉 및 트래킹으로 찍는 데 활용하기도 한다. 주행 영상은 시속 200킬로미터를 넘나들고, 급격한 방향 전환을 계속하기 때문에 사람이 도어 밖으로 몸을 내밀어 앞서가거나 따라오는 차를 찍는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액션캠은 그 역할을 안전하고 성실히 수행한다.
자동차 외부에서 쓰는 카메라는 두 가지가 더 있다. 풀프레임 미러리스 카메라는 화질이 중요한 장면을 찍을 때 사용한다. 주로 차 주변을 돌며 디자인을 설명하는 인물을 촬영하거나 차의 세부를 찍어야 할 때 요긴하다. 좌에서 우로, 혹은 위에서 아래로 흔들림 없이 일정한 속도로 움직이는 화면이 필요할 땐 짐벌에 연결하기도 한다.
<모터그래프>의 시승 영상 촬영에서 미러리스 카메라는 내부 동승석 측 윈드실드에 한 대 더 부착되어 있었다. 액션캠보다 무거워서 흡착기가 3개 달린 마운트에 고정한다. 이 카메라로 운전하고 있는 인물의 정측면을 촬영한다. 반면 운전석 쪽 도어에는 액션캠이 붙어 전방을 비추고 있다. 윈드실드 너머의 전방 상황을 운전자의 시점으로 전달하기 위해서다. 운전자와 도어 사이의 공간이 좁기 때문에 화질이 아쉬워도 액션캠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
또한 자동차의 인테리어 중에서 사람들이 관심을 많이 가지는 것은 뒷좌석 공간이다. 자동차 리뷰에서도 거의 빼놓지 않고 뒷좌석을 다룬다. 머리 위와 무릎 앞에 공간이 얼마나 남는지 사람이 직접 앉아 보여준다. 뒷문을 열고 카메라나 캠코더로 인물의 옆모습을 찍기도 하지만, 선루프 유리에 액션캠을 부착하면 시트에 앉았을 때 뒷좌석 공간이 얼마나 나오는지 쉽게 가늠할 수 있다.
영화 혹은 TV 프로그램 제작 수준의 촬영 장비를 동원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유튜브 자동차 채널의 ‘영상 문법’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다. 더 작고, 더 또렷한 화질을 지원하는 영상 장비가 많아진 덕도 있지만, 자동차의 물성과 속성에 더 정직하게 집중해 역동적이고 시선을 뺏는 영상을 만들어내는 의지도 한몫한다. 마침 영상 편집 프로그램의 진화도 맞물리면서 장비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었던 숙제도 점점 풀리고 있다. 신차 시승기 촬영지를 찾은 날, 20분 내외의 짧은 시승기 한 편을 위해 <모터그래프>의 카메라 8대는 3시간 넘게 꺼지지 않고 차와 사람을 좇았다.
- 에디터
- 이재현
- 포토그래퍼
- 원도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