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 같은 꽃, 눈부신 색의 스포츠웨어로 확 바뀐 닐 바렛의 여름.
단정한 블랙 보머 재킷, 밀리터리풍이지만 터프한 구석 없이 말끔한 트렌치코트, 완벽하게 재단한 모노톤 수트. 닐 바렛은 늘 한결같이 밀라노 남성 컬렉션의 중심 자리를 지켰다. 그런데 2019 S/S 시즌은 베뉴에서부터 그간의 닐 바렛과 분명 달랐다. 개나리 물을 들인 듯한 샛노란 런웨이는 바닥이 반질반질했는데, 마치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깊고 노랗고 믿을 수 없게 잔잔한 호수 같았다. 모델의 머리는 모두 촉촉하게 젖었고, 옷엔 흑백의 꽃 프린트가 다양한 크기로 자리했다. 간결한 꽃무늬는 나비처럼 가벼웠고, 명랑한 색과 무척 잘 어울렸다.
쇼 음악은 더 사이키델렉 퍼스의 ‘러브 마이 웨이’.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속 아미 해머가 신나게 춤추는 장면에 흐르는 바로 그 음악이다. 따뜻하고 밝은 색과 꽃, 사랑 노래. 무슨 일일까? 닐 바렛이 변했다. 마치 새로운 연애를 시작하기라도 한 것처럼.
개인적인 이유를 벗어나 짐작한다면, 올해가 닐 바렛에 매우 특별하기 때문일 것이다. 2019년은 브랜드 닐 바렛의 20주년. 어엿한 청년이 된 셈이다. 일찍이 패션 디자이너가 되기로 결심한 닐 바렛은 센트럴 세인트 마틴스와 영국왕립예술학교를 차례로 다녔다. 졸업 후 피렌체로 둥지를 옮긴 다음 구찌 남성복 팀에서 5년간 일했고, 이후 프라다에 조인해 8개월 동안의 준비 과정을 거쳐 남성복 컬렉션을 론칭했다. 전통적인 테일러링과 스포츠웨어를 어색하지 않게 믹스한 프라다의 남성복이 알고 보면 닐 바렛의 솜씨였던 것. 그리고 1999년 드디어 자신의 이름을 딴 브랜드를 만들었다. 미니멀한 스포츠웨어, 모노크롬, 기하학적인 그래픽. 정돈된 밀리터리 룩. 처음부터 닐 바렛이 고수한 콘셉트다. 그러나 이번 시즌 그는 마음을 좀 더 열기로 했다. 현재의 남성성에 대한 그의 시각을 보다 유연하게 표현하기로 한 것이다. 수 없이 많은 모티브 중 꽃을 선택한 것이 첫 번째, 21세기 남자의 유니폼을 스포츠웨어로 정하고 재해석한 것이 두 번째.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우선 꽃을 묘사하지 않고 단순화해 패턴으로 활용했다. 평면의 검은색 꽃이 만발한 재킷, 꽃을 분할해 프린트한 셔츠 등이 그 예. 꽃무늬를 견장 자리에 프린트하거나 메달처럼 가슴에 단 것도 새롭다. 쇼 막바지엔 꽃을 수묵화같이 서정적으로 표현해 옷 전면에 프린트했는데, 지금까지의 닐 바렛 컬렉션 중 가장 드라마틱한 순간이었다. 한편, 잠수복에서 힌트를 얻은 옷도 많았다. 하이테크 소재로 만든 집업 점퍼와 쇼츠, 방수 지퍼를 단 점프 수트가 등장했고, 산업용 고무 소재를 적용한 스쿠버 백이 나왔다. 테크노-코튼 소재로 만든 오버사이즈 파카는 실용적인 동시에 멋있었다. 색은 한층 과감해졌다. 화이트와 카키, 블랙에서부터 선샤인 옐로, 울트라 마린, 레드로 급변하는 스펙트럼. 간결하고 단정한 밀리터리 팬츠와 가죽 블루종 같은 닐 바렛의 시그니처 아이템은 여전히 남았지만 그 밖의 화사함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반전이다. 어쩌면 닐 바렛은 이번 시즌을 새로운 시작으로 명명했을지 모른다. 마침내 자신의 브랜드를 선보인 1999년의 설레임을 기억하면서.
- 에디터
- 안주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