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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규어 I-페이스를 샅샅이 관찰했다

2019.05.10GQ

도로를 달리며 I-페이스의 정체를 확인했다. 전기차로 둔갑한 재규어의 새 스포츠카.

JAGUAR I-PACE
크기 L4682 × W2011 × H1558mm
휠베이스 2990mm
무게 2285kg
변속기 1단
배터리 형식 리튬 이온
배터리 용량 90kWh
서스펜션 (앞)더블 위시본, (뒤)멀티링크
타이어 (모두)245/50 R20
구동방식 AWD 0→100km/h 4.8초
최고출력 400마력
최대토크 71.0kg·m
1회 충전 주행거리 333km CO₂
배출량 0g/km
가격 1억 40만원부터

요즘 가장 떠들썩한 레이싱 대회는 ‘포뮬러 E’다. ‘포뮬러 1’의 전기차 버전으로, 모터로만 구동하는 레이싱 머신이 이리저리 엉켜가며 선두 자리를 두고 달린다. 그런데 2016년, 잠잠하던 재규어가 합류했다. 흔히 홍보와 마케팅 전략으로 레이싱 대회에 참가하지만, 재규어는 더 중요한 목적이 있는 듯했다. 레이싱 머신을 개발하고 실전에서 얻는 데이터는 양산차를 개발할 때 엄청난 자산이 된다. 스포츠 드라이빙에 최적화된 차를 만들고자 한다면 더욱 그렇다. 재규어가 고성능 전기차를 개발하기로 마음을 굳힌 것으로 보였다. 그로부터 약 2년 뒤, 재규어 최초의 전기차 I-페이스가 출시됐다.

사실 ‘전기차 시대’가 빠르게 전개되고 있는 지금, 전기차를 만들었다는 게 그다지 새로운 일은 아니다. 이제 중요한 것은 전기차라는 카테고리 안에서 얼마나 차별화되고 새로운 전략을 만들어내느냐의 싸움이다. 최대 주행거리는 상향 평준화됐고, 실용적인 측면의 가능성은 이미 충분히 증명됐다. 재규어가 I-페이스로 진입하고자 한 곳은 아직 절대 강자가 없는 영역, ‘스포츠 전기차’다.

I-페이스의 성향은 시트에서부터 읽을 수 있다. 두께가 얇은 세미 버킷 시트가 옆구리를 빈틈없이 조여 기분 좋게 몸을 고정시킨다. I-PACE엔 2개의 구동 모터가 각각 전륜과 후륜을 굴리는데, 가속페달을 밟자마자 71.0kg·m의 포악한 토크로 발진한다. 시속 0→100킬로미터의 기록은 4.8초. 전방을 향해 거칠게 돌진하는 초반 가속을 견디다 보면 어느새 팔뚝과 허벅지에 힘이 바싹 들어갔다.

예상보다 빠른 속도가 즐거워 주행 모드를 스포츠에 맞췄다. 가속하는 동안 차내에 울리는 소리가 속도감을 증폭시킨다. 전기차는 조용해야 하는데, 이상한 일이었다. 내연 기관차에 익숙한 현 세대는 속도마다 엔진이 생성하는 소리를 경험을 통해 기억한다. 달리는 자동차가 침묵으로 일관하면 이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재규어는 I-페이스에 전자식 사운드 제너레이터를 달아 속도와 소리 사이의 보폭을 맞췄다. 단, 엔진 소리를 흉내낸 게 아니라 고출력 진공청소기 같은 기계음을 울려 전기차라는 점을 청각적으로 명시했다.

모터로 구동한다는 것만 제외하면 ‘주행 감성’은 재규어의 스포츠카 ‘F-타입’을 상당히 많이 참고한 듯 하다. F-타입, 특히 조련되지 않은 야수처럼 거친 엔진을 품은 F-타입 SVR은 서스펜션을 비롯한 ‘하드웨어’가 엔진의 울화를 버텨내며 균형을 잡는다. I-페이스도 비슷했다. 400마력의 최고출력을 내는 모터가 시시각각 폭정을 일삼아도 잘 훈련된 시스템이 이를 상쇄했다. 롤링(주행 중 가로축의 흔들림)을 최대한 억제해 깊숙한 코너에서도 쫀득하게 선회하고, 스티어링에 따라 차체가 아주 예민하게 반응했다. 재규어 역사상 가장 강하게 설계한 비틀림 강성 덕분에 급격한 방향 전환 등 차체에 극심한 스트레스가 전달될 때도 완강하게 버텨낸다. 무게 중심도 스포츠카처럼 낮았다. 차체 바닥에 배치된 배터리와 시속 105킬로미터 이상에선 자동으로 높이를 낮추는 에어 서스펜션의 ‘기교’ 덕분에 고속으로 달려도 매우 차분하다.

돌무더기가 질서 없이 늘어선 비포장 도로에 들어서자 전기차에 기대하지 않았던 의외의 면모가 존재를 드러냈다. 재규어가 보유한 오프로드 주행 시스템이 가동되며 네 바퀴로 전달되는 동력을 노면 상태에 따라 조절해 접지력을 최대로 높였다. 배터리가 놓인 공간을 꼼꼼하게 방수·배수 처리했기 때문에 성인의 무릎 높이에 해당하는 500밀리미터 수심의 계곡이나 하천 정도는 거뜬히 건넌다.

내부 설계에선 전기차의 구조적 장점을 최대한 활용했다. 커다란 엔진과 변속기가 차지했던 공간은 수납 시설과 탑승자를 위한 여백으로 대체했다. 특히 휠베이스는 2990밀리미터에 이른다. 크기만 놓고 따지면 상위 클래스의 SUV인 레인지로버(보그)보다 길다. 3미터에 육박하는 휠베이스는 여유로운 뒷좌석의 토대가 됐다. 실제로 다리를 쭉 뻗고 눕는 ‘비즈니스 클래스’까진 아니어도 비상 탈출구 앞자리 좌석 수준까지는 다리를 펼 수 있었다.

전기차 생산에 뛰어든 브랜드들이 처음 내놓은 것은 대부분 ‘보급형’이었다. 대중이 납득할 만한 주행 거리와 가격, 그리고 보통 수준에 맞춘 동력 성능이었다. 일단 파이를 키우는 게 목표였을 것이다. 반면 재규어는 접근 방식이 달랐다. 처음부터 패기 있게 고성능 프리미엄 전기차를 내놓았다. 안정보다 모험을 선택한 것이다. ‘보통의 전기차’를 선택할 사람을 설득하고, 내연 기관 고성능 차를 고려하는 사람까지 끌어들여야 한다. 아직 이 영역에 깃발을 꽂은 차는 없다. 완성도와 성능이 결과를 좌우하는 절대적인 기준이 될 것이다. 지금으로선 I-페이스가 가장 유력해 보인다.

공기를 흡입할 필요가 없는 전기차라서 프런트 그릴이 막혀 있다.

자동 전개식 도어 핸들을 장착해 주행 중 공기 저항을 덜어낸다.

세미 버킷 시트가 어깨부터 옆구리까지 상반신을 꼭 붙들어 맨다.

고성능 차의 상징이 된 리어 스포일러가 루프 끝에 달린다.

도어 트림에 달린 앰비언트 라이트가 은근한 빛으로 내부를 밝힌다.

2개의 스크린으로 차량 기능 및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을 제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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