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일리 사이러스의 지금 | 지큐 코리아 (GQ Korea)

마일리 사이러스의 지금

2019-05-27T14:12:13+00:00 |interview|

산불이 캘리포니아를 휩쓸고, 마일리 사이러스의 저택은 불타 사라졌다. 순식간에 치른 결혼식, 새로 마련한 집, 이 모든 게 가슴 아픈 상실 뒤에 일어난 일들이다. 불길같이 타오른 숱한 사건은 어린 팝스타의 삶을 스쳐갔고, 마일리 사이러스는 여전히 자기 자신을 찾고 있다.

물속에 뛰어들기
“스스로도 놀랄 때가 있어요. 가끔은 ‘내가 대체 왜 그랬지?’라고 생각할 때도 있죠.”
드레스, 스윔 수트, 벨트, 모두 샤넬 벨트, 이자벨 마랑. 귀고리, 불가리.

록 스타
드레스, 셀린느 by 에디 슬리먼.

한 발 더 내딛기
아리아나 그란데는 사이러스의 목소리가 독보적이라고 말한다. “눈을 감고 들어도 마일리라는 걸 알 수 있죠.”
가운, 구찌.

꺼지지 않는 불꽃
마일리 사이러스의 새 앨범은 “지금까지 해본 모든 것의 모자이크”일 것이라고 한다.
드레스, 발렌티노.

인터뷰를 하기 전, 마일리 사이러스는 자신이 직접 쓴 글을 읽어주고 싶다고 했다. “논평”이라고도 했지만 논평은 아니다. 그렇다면 성명서? 비슷하긴 하다. 마일리는 자신에 대해 설명하려는 것이다. 지난 11월, 그가 파트너 리암 헴스워스와 더불어 돼지 두 마리, 말 두 필, 고양이 네 마리, 그리고 개 일곱 마리와 지내던 말리부의 자택이 불에 전소됐다. 그로부터 한 달 반이 지난 크리스마스 즈음 그는 헴스워스와 결혼식을 올렸다. 마일리는 아직도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애쓰는 중이다. 화재와 결혼이라는 두 사건이 대체 어떻게 연결된 것인지 말이다.

마일리는 얼마 전에 스물여섯 살이 됐다. 그에게 유명세를 안겨준 디즈니 시리즈 <한나 몬타나>가 방영될 당시 그는 열세 살이었다. 십 대 아이돌로 시작해 팝스타가 되었다가 외톨이로 전락하기도 하는 여러 과정을 거쳐,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현재 모습에 이르기까지 삶의 절반 이상을 공인으로 살아온 것이다. 차트 1위에 오른 앨범은 이미 세 장이고 인스타그램 팔로워는 8,200만 명이 넘어가는데, 심지어 지금도 매일 늘고 있다. 결혼을 발표한 날은 신규 팔로워가 40만 명에 육박했다. 그가 이런 상황에 놓인 게 처음은 아니다. 관객이 지켜보는 가운데 스스로에 대해 알아가야 하는 그런 상황 말이다. “운전면허를 땄는데 제가 운전을 한다는 사실이 커다란 사건이 되었던 게 생각나요. 미국이 저의 대부, 대모가 된 것 같은 느낌마저 들 정도였죠.” 돌이켜보면 그 반대였던 것 같기도 하다고 말한다. “당시 아이들의 삶에 미치는 제 영향력이 얼마나 컸던지 전 거의 미국을 돌보는 보모나 마찬가지였죠.” 사이러스는 웃었다. “이를테면, ‘애들을 그냥 제 앞에 앉혀두세요. 착하게 자랄 수 있게 가르쳐줄게요’ 같은 식이었는데 결국 그 때문에 역효과가 났죠.”

<한나 몬타나>부터 지금까지 마일리는 가능한 거의 모든 종류의 관심과 주목을 받아왔다. 친구이자 같은 아역 배우 출신인 아리아나 그란데의 말을 빌리면, “비판을 받거나 사생활이 파헤쳐질 일이 평생 없을 이들이 던지는 수백만 개의 시선이 주는 중압감” 속에서 살아온 것이다. 마일리는 사라지는 데도 능숙해졌다. 지난해의 계획은 간단했다. 말리부에 숨어 새 앨범 작업을 하며 개들과 돼지들, 그리고 ‘생존 파트너’와 함께 지내는 것. ‘생존 파트너’란 그가 남편 헴스워스를 부르던 호칭이다. 그런데 산불이 일어 그는 말리부를 떠날 수밖에 없었고, 결혼식 때문에 곧장 대중의 눈앞으로 돌아와야 했으며, 갑자기 2019년이 닥친 것이다. “제가 처한 상황은 굉장히 복잡해요. 그래서 인터뷰 전에 미리 하고 싶은 얘길 써왔어요.” 마일리는 잠이 오지 않았던 어느 날 밤을 회상한다. “갑자기 하고 싶은 말들이 떠올라 스마트폰에 적었죠.” 그는 지금 여기서 소리 내어 준비한 글을 끝까지 읽어보겠다고 한다.

나는 모든 순간,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지키려 한다. 나의 창작은 영감에서 비롯되며, 업계의 규칙이나 압박 속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난 커리어에 도움이 된다는 이유만으로 스스로의 성장을 가로막는 선택은 하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 내 음악을 듣는 건 내 시간들의 편린을 듣는 일이다. 그들의 귀에 닿을 때면 난 그 시간을 지나 성장했을 수도 있지만, 적어도 그 순간 스스로에게 가장 충실한 내가 담겨 있다. 내겐 만족할 줄 모르며 쉽게 싫증내는 예술가의 모습도 있다. 그래서 난 삶의 다음 단계들로 빠르게 넘어간다. 하지만 내겐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본거지가 있다. 그곳은 시작할 때부터 있던 기반이다.

지금 그가 머무는 곳은 내슈빌이다. 자라났던 곳에서 멀지 않다. 하지만 이번 주에 그는 마이애미에 있다. 몇 주 동안 구경도 못 한 햇빛이 그리워서, 사진촬영이 있어서, 그리고 지아니 베르사체의 오래된 저택에 가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저택은 활기찬 이탈리아인 아르만도가 관리하는 호텔로 변했다. 인터뷰를 위해 아르만도는 사적으로 운영하는 식당을 내주었다. 직원들이 물러나자 마일리는 베르사 체 클러체에서 조그마한 베이프 펜을 꺼내 몇 차례 흡입한다. 그는 방문에 맞춰 차려입었다. 빈티지 베르사체 카프탄, 슬라이드, 귀고리와 손목시계, 그리고 하프 달러 동전만 한 메두사가 달린 빈티지 베르사체 반지까지. 마일리는 자연스레 호텔에 녹아든다. 장인들이 베르사체 스카프를 본떠 만든 수영장 앞에 선 그는, 일렁이는 색이 교차하는 가운데 분간이 어려울 정도로 화려하다.

마일리는 우리와 마찬가지로 마일리 사이러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내고 싶어 하는 것처럼 말했다. “저의 선택들은 제 자신도 놀라게 해요. 가끔은 이런 생각까지 하죠. ‘대체 내가 왜 그런 짓을 했지?’ 또는 ‘어떻게 이 지경까지 오게 됐지? 대체 왜? 어떻게?’라고요.” 그는 진실한 만큼 비선형적이다. 프로듀서 마크 론슨은 마일리가 자기만의 옷 관리 방식을 그에게 설명하려 한 적이 있다고 한다. “기분, 색상, 그리고 디자이너에 따라 옷을 관리하더군요. 마치 누군가 레코드 컬렉션에 대해 설명하는데, 음반들이 레코딩 엔지니어의 이름 마지막 글자 순으로 정리되어 있다는 것 같았어요. 두통이 올 지경이었죠.” 스튜디오에서도 그는 마음이 휙휙 바뀐다. 플레이밍 립스의 프론트맨이자 자주 공동 작업한 웨인 코인은 그와 차에 탔던 일화를 들려준다. “마일리는 내슈빌에 있는 감옥이었던 건물을 사겠다고 했어요. 노숙자 쉼터 겸 공연장으로 바꿀 생각이라고 했죠. 그리고 항공사를 인수해 반려동물과 함께 비행기를 탈 수 있게 하겠다고도 했죠. 이 모든 얘기가 한 번에 나온 거예요. 그에겐 모든 것이 가능성으로 다가오는 거죠.”

마일리와의 대화는 주파수를 맞추기 위해 채널 사이를 오가며 여러 노래를 듣는 것 같다. “제가 결혼이라는 걸 했는데, 어쩌면 그건 제 음악과 상당히 모순될 수도 있어요”라고 말한다. “하지만 아시잖아요. 어땠는지. 이번 앨범 수록곡 상당수는 제 빌어먹을 집이 불타버리기 전에 썼고, 그러던 중 제 인생이 완전히 뒤바뀌었으니까요.”

지금은 불타버린 그 집을 몇 년 전에 구입한 것은 헴스워스였다. 하지만 그 집에 먼저 발을 들인 건 마일리였던 것이다. “신기한 일이었어요. 한나 몬타나로서가 아닌 제 이름을 걸고 만든 첫 앨범의 녹음 대부분을 그 집에서 했거든요.” 마일리는 부지 내 스튜디오에서 프로듀서 매튜 와일더와 작업했다. 몇 년이 지난 2010년, 마일리는 <라스트 송>을 촬영하며 만난 헴스워스와 사귀다가 헤어졌는데, 그 헤어짐은 길지 않았다. 헴스워스가 마일리가 거기서 앨범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모른 채 그 집을 샀기 때문이다. “헴스워스가 새집에 들어가는데 사람들이 제 사진이 담긴 액자 같은 잡동사니들을 치우고 있었어요. 그는 엄청나게 당황했죠.”

얼마 지나지 않아 둘은 재결합했고, 마일리는 헴스워스의 새 집에 들어가 같이 살게 되었다. 집 안 곳곳에 그의 음악 활동과 관련된 기록들이 보관되어 있었다. 산불이 일어났을 당시, 사이러스는 남아프리카에서 <블랙미러>를 찍고 있었다. 헴스워스는 동물들을 대피시켰고, 그러고나서는 다른 집들과 마찬가지로 모든 걸 잃어버렸다. 산불이 일어난 날 밤, 마일리는 일기장을 꺼냈다. “무작정 써내려 가기 시작했어요. 어떤 감정은 다른 감정과 충돌하기도 했죠. 굉장히 화가 났고, 한편으로는 안도감이 들기도 했어요. 이상한 기분이었죠. 발목에 무거운 추를 매단 채 바다에 빠져 있었는데 누군가 그걸 끊어준 것만 같았어요. 저를 옭아매는 게 모두 사라져 수면 위로 떠올라 자유로워진 것만 같았죠. 분노와 안도, 그리고 슬픔. 마치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기분이었지만, 우리는 나아지기 마련이죠.”

현재로서 마일리는 근거지 없는 삶을 충분히 경험해보려 한다. “제가 아꼈던 기억이나 사진 같은 것들을 잃은 상심은 사라지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이런 경험을 통해 제가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강하게 느꼈죠.” 재난을 헴스워스와 이겨낸 것이 결혼으로 이어졌다. “그런 상황을 누군가와 겪으면 둘 사이에 끈끈함이 생겨나죠. 그 모든 걸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둘밖에 없는 거예요.”

내 집을 잃는다는 것은 뿌리가 잘려나간 듯한 느낌이었다. 남아프리카에서 <블랙미러>를 촬영하던 중 집이 소실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공황발작을 연기해야 했는데 내게 실제로 일어난 그 일은 많은 영감을 줬다. 이미 타버린 집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내게 어머니 같은 존재라고는 안네 세비스퀴 감독뿐이었다. 그리고 생생한 경험을 나누며 환상적인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내가 내 작업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일은 드물고, 결과물을 두고 만족감을 느끼는 경우도 거의 없지만 이번만큼은 자랑스럽다. <블랙미러> 시리즈가 지금껏 해온 것처럼, 그리고 인생이 늘 그런 것처럼 내 이야기를 어두우면서도 웃긴 방식으로 풀어내고 싶다. 물질적인 거의 모든 걸 잃어버림으로써 리암과 나는 잿더미 속에서 새로운 유대감을 형성했다. 자연재해가 안겨주는 슬픔은 다른 어떤 종류의 상실감과도 다르다. 사람들은 집을 잃는 것이 새로운 물건들로 메울 수 있는 상실이라고 여길 수도 있다. 하지만 그에 깃든 정신이나 영혼은 돈을 주고 살 수 있는 게 아니다. 우리가 살던 집을 채운 건 값비싸고 무의미한 잡동사니가 아닌 예술이었다. 내가 만든 것, 히스 레저, 존 크리스펄루시, 조앤 제트, 무라카미, 데이비드 라샤펠, 라이언 맥긴리를 비롯해 존경하는 많은 사람의 편지와 그림들이 있었다.

“결혼을 한다는 건 나답지 않았다”는 마일리의 말에 대해 더 물어봤다. “결혼은 이미 옛날 방식일 수도 있죠. 하지만 우리가 결혼을 하기로 한 이유는 구식이 아니예요. 일종의 뉴에이지죠. 저처럼 퀴어인 사람이 헤테로 파트너와 관계를 맺는 방식을 재 정의하는 거예요. 제 정체성의 큰 부분은 퀴어라는 점에 있으니까. 인간은 젠더도 아니고 외모도 아닌 인간 그 자체와 사랑에 빠져요. 제가 하는 사랑은 그런 차원에 존재해요. 섹슈얼리티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죠. 새로운 세대가 맺을 관계나 파트너십은 성이나 젠더와 별 상관이 없을 거예요.” 재해를 겪은 후 정착하고 싶지는 않았을까? “어떤 사람들은 결혼을 일종의 해결책으로 이용하는 것 같아요. 반창고를 붙인다고 모든 게 해결되진 않죠. 단지 저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여성인 힐러리 클린턴이 얘기한 것처럼, 우리는 함께일 때 더 강해질 수 있는 거예요. 제 결혼 상대가 남성이든, 제가 여성이든 또는 그가 여성이든 알 게 뭐예요. 우리는 함께라서 더 강해요.”

LGBTQ+ 공동체의 자랑스러운 일원인 내게 지금 세대가 정의하는 관계의 양상은 고무적이다. 섹슈얼리티와 젠더 정체성은 파트너십과 철저히 분리된다. 결혼식에서 내가 드레스를 입은 것도, 머리를 편 것도 그냥 내가 그렇게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 것들 때문에 내가 갑자기 ‘얌전한 헤테로 숙녀’가 되는 것은 아니다.(물론 헤테로 여성도 엄청 멋질 수 있다.) 리암과 맺고 있는 관계는 내게 무척 특별하다. 하지만 내 관계의 한 부분이 변한다고 해서 내 개성이 급격하게 변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말리부의 집을 잃지 않았다면 우리가 결혼할 준비가 되었을지, 아니면 결혼이라는 것이 평생 가능하기나 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이 적기라는 느낌이 들었고, 나는 내 마음을 따르는 사람이다. 누구에게도 다음은 보장되지 않으며, 나는 현재에 충실하기 위해 애쓴다. 내 감정이나 기분은 매 순간 바뀔 수 있기 때문에 모든 건 관점에 달려 있다. 난 다른 사람에게 운전대를 맡기지 않고 스스로 파일럿이 될 것이다. 삶은 뒤에 앉아 잔소리나 늘어놓는 게 아니다. 스스로 생각하기. 그런 태도가 “다 필요 없고 내 마음대로 할 거야”라는 식이 되지 않도록 경계한다. 나는 주변을 엄청나게 신경 쓰는 사람이다. 나는 타인의 인정 속에서 살아가며, 내가 누리는 자유를 다른 이들도 느끼기를 바란다! 나 같은 사람들은 절충이나 타협을 하는 데에 어려움을 느끼며 극단을 추구하지만, 이젠 근질거리는 중간 상태를 받아들이는 법을 배워가는 중이다. 나는 사랑과 음악, 그리고 모험으로 가득한 삶을 오래 살고 싶다. 그리고 균형을 통해 가능할 것이라 믿는다. 균형과 절제. 내게 외국어처럼 낯설게 느껴지는 것들이다. 하지만 연습하고 있다. 실수도 있겠지만, 그럼으로써 나를 만들어갈 것이며 나는 내가 어떤 모습으로 완성될지 기대된다. 보위가 말했던 것처럼, 절대로 지루하지는 않을 것이다. 어떻게 지루할 수 있겠나? 인생이란 내가 가장 좋아하는 TV 쇼를 ‘빈지워칭’(여러 에피소드를 한 번에 보는 것)하는 것과 같다. 다음에 어떻게 되는 거야? 알아내기 전까지는 잠에 들 수 없을 것이다….

마일리는 올여름에 신곡을 공개할 예정이다. “사이키델릭한 부분도 있고 팝적인 부분도 있어요. 힙합 느낌이 강한 곡들도 있고요. 제가 젠더리스 상태를 좋아하듯, 음악도 장르의 구분이 없는 걸 좋아하거든요. 다음 앨범은 지금까지 해본 모든 것의 모자이크가 될 거예요. 마일리는 아버지나 대모 돌리 파튼과 같은 컨트리 뮤지션들 사이에서 자랐고, 목소리에서 그 흔적을 엿볼 수 있다. “마일리의 목소리는 한 번에 알아볼 수 있어요. 눈을 감고 들어도 알 수 있죠”라고 아리아나 그란데는 말한다. 2013년부터 함께 작업해온 퍼렐은 그에 대해 “마일리가 노래를 부를 때면 음을 전달하는 방식에서 고전적인 질감이 느껴져요”라고 말한다.

열다섯 살 무렵, 사이러스는 침대보만 두른 화보를 찍은 적이 있다. 돌이켜보면 “지금이야말로 어른의 문턱을 넘어 사람들 신경을 건드리기에 딱 좋은 시점인지 확인해보려는 건 아니었어요. 그저 그렇게 하고 싶었을 뿐”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마음 내키는 대로 한 행동들은 한동안 그를 연이은 곤경에 빠뜨렸다. 2013년 MTV 비디오 뮤직 어워드에서 그가 선보인 퍼포먼스는 대중문화계의, 나아가 대통령까지 얽힌 전설이 되었다. 퍼포먼스 다음 날, 뉴욕의 트럼프 타워에 머무르고 있던 사이러스는 도날드 트럼프의 전화를 받고 잠에서 깼다. 마일리의 트월킹 퍼포먼스를 축하하기 위한 전화였다. 그는 “마음에 쏙 들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제는 그런 사람이 우리나라의 대통령인 거죠.” 사이러스는 한숨을 내뱉었다. “저는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면 나라를 떠나겠다고 했죠. 그렇게 말하면 사람들이 들을 거라고 진심으로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트럼프가 당선되면 이 빌어먹을 나라에 얼마나 큰 해악을 끼칠지 사람들이 알아차릴 거라고 생각했던 거죠. 하지만 제가 나라를 떠난다고 해서 바뀌는 게 뭐가 있겠어요? 활동가로서 자부심을 갖고 사는 제가, 인종차별과 성차별을 일삼는 가증스런 멍청이의 지배 하에 남들을 내버려두고 혼자 도망친다면 과연 스스로 떳떳할 수 있을까요? 각자 알아서 싸우라고 다른 사람들을 내팽개칠 수는 없는 거예요.”

2013년은 가장 크게 히트한 싱글 ‘Wrecking Ball’이 수록된 <Bangerz>를 발매한 해이기도 하다. ‘Wrecking Ball’은 그를 최고의 팝스타 반열에 올려놨다. 사이러스는 마이크 윌 메이드 잇, 퍼렐 등의 프로듀서들과 <Bangerz>를 작업했으며, 그들과의 협업 관계는 지금도 이어진다. 하지만 대중은 그가 힙합에 대한 이해와 존중 없이 힙합을 이용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2015년, 비디오 뮤직 어워드 시상식에서 마일리와 충돌한 니키 미나즈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의 문화와 라이프스타일을 누리고 싶다면 우리와 유대감을 형성하고, 춤을 추고 랩을 하라는 거예요. 그러면 무엇이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는지, 우리가 어떤 것을 부당하게 여기는지 알고 싶어지겠죠.” 마일리는 <Bangerz>를 내놓은 후로 자신의 배경이 다른 이들과 어떻게 다른지 인식하려고 애썼다.

“저는 주변 사람들에게 많은 영향을 받아요. <Bangerz>를 만들 때 함께 작업하던 사람들은 곧 제가 속한 커뮤니티였어요. 퓨처와 마이크 윌의 대화를 듣고 있기만 해도 그들이 저와 다른 방식으로 자랐다는 것을 알 수 있었죠.” 퍼렐은 말한다. “마일리는 그냥 다른 세대인 거에요. 하지만 동시에 모든 걸 섭렵하는 문화의 일원이기도 하죠. 어쩌면 우리가 민감하게 여기는 것들이 그들에게는 아닐 수 있어요. 무거운 주제들이기 때문에 약간의 역사를 알려주기도 하죠. 하지만 제가 그와 함께 작업하는 건 그에겐 굉장히 색다른 재능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아직까지도 마일리가 노래를 시작할 때면 ‘와우’ 하며 그를 보게 되죠.” 마일리는 그에게 도움을 준 퍼렐이나 마이크 윌에 비해 자신이 어렵지 않게 음악계에 진출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아버지가 이미 자리를 잡고 계셨죠. 저는 투어버스 안에서 자란 거나 마찬가지예요. 하지만 퍼렐이나 마이크 윌은 백 퍼센트 스스로 해낸 사람들이죠. 굉장한 자극이 돼요. 저도 혼자 힘으로 해내고 싶어졌죠.”

마일리는 자기 힘으로 뭔가를 만들고자 했다. 세간의 주목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대신 사라짐과 나타남을 반복하며 사람들의 관심을 돌렸다. 2015년, 마일리는 느슨한 분위기에 반쯤은 사이키델릭 록 앨범인 <Miley Cyrus & Her Dead Petz>를 내놓았다. 2017년에 발표한 ‘Younger Now’는 스스로 작사 작곡했으며, 자신이 만들 수 있는 가장 정통에 가까운 내슈빌 앨범이라고 한다. “마리화나도 파티도 모두 끊은 채 1년간 맨 정신으로 지냈어요. 여성 팝 뮤지션인 제가 ‘좋아, 난 내 곡은 전부 다 내가 혼자 쓸 거야. 가사도 나 혼자서만 쓸 거야. 내가 느끼는 대로만 쓸 거야’라고 하는 게 제가 지금껏 했던 어떤 행동들보다 체제에 도전적이었죠.

지난해 말 마일리가 론슨과 녹음한 ‘Nothing Breaks Like a Heart’는 그의 새 앨범 첫 싱글이다. 그는 2019년에 팝스타의 역할이란 정확히 뭔지 진지한 고민을 해보게 되었다. 뮤직비디오에서 마일리는 빈티지 메르세데스를 몰며 개인적이며 정치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장면들을 보여준다. “팝 문화와 정치가 만나는 지점이 좋아요. 그 둘은 비슷한 지점이 있죠. 지금 우리의 대통령을 본다면 더더욱 그렇죠. 셀러브리티를 대통령으로 뽑은 거잖아요. 사람들은 셀러브리티들의 말에는 귀를 기울이지만 활동가들의 얘기는 절반도 듣지 않죠. 저에게 그런 플랫폼이 주어졌으니 저는 뭐라도 말을 해야 하는 거예요.” 마일리는 스튜디오라는 사적인 공간에서조차 젠더와 정치가 팝음악의 모든 면에 지속적으로 작용한다는 점을 상기하게 된다고 한다. “새 앨범을 함께 작업하고 있는 프로듀서들은 모두 남성이에요. 선택할 수 있는 여성 프로듀서가 별로 없다는 건 큰 문제죠. 하지만 여성인 제가 가장 큰 발언권을 갖는 것은 재미있는 상황이기도 해요.”

나는 기묘한 사회 실험을 한 셈이 되었다. 삶을 모방하는 예술, 그리고 반대로 예술을 모방하는 삶. ‘Nothing Breaks Like a Heart’ 뮤직비디오의 주제는 그게 전부였다. 사회의 기준에서 벗어난 여성의 존재가 몰고 오는 혼란이 얼마나 큰지 보여주는 것. 남성에게는 찬사를 보내고 여성에게는 눈살을 찌푸리는 사회적 기준 말이다. 난 그것을 몸소 겪었다. 무대에 올라 남성용 수트를 풀어헤치고 가슴을 훤히 드러내 논란을 일으키는 것과, 공들여 스타일링한 긴 머리에 치마를 걸친 채 호텔을 빠져나오며 팬들과 인사하는 것과의 차이. 내가 ‘예쁜’ 모습으로 규칙을 잘 따를 때 주어지는 우등생 표창은 시시하고 맥빠지지만 한편으로는 열의를 불태우게 했다. 계속해서 경계에 도전하고 내가 나다울 수 있도록 말이다. 최근 들어 나의 독특한 패션은 과거에 비해 많이 ‘온순해졌다’는 평을 듣는데, 오히려 과거 어느 때보다도 지금의 내가 우리 사회의 시스템을 더욱 강하게 흔들고 있다고 생각한다. 지속 가능한 비건 활동가의 삶을 선택한다는 것은 빈티지 옷을 더 많이 입고, 최신의 환경 친화적 소재를 쓰며, 그리고 스텔라 매카트니처럼 내가 가장 좋아하는 디자이너들과 비건 의류를 제작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스텔라 매카트니와는 패션계의 동물실험 반대를 독려하기 위해 멧갈라에 참석했다. 내가 이유 없이 반항하는 거라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나를 그다지 주의 깊게 보지 못했다. 내 얘기는 여기까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