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범죄의 재구성 | 지큐 코리아 (GQ Korea)

비트코인 범죄의 재구성

2019-05-27T13:47:00+00:00 |culture|

경제 위기, 마약, SNS, 암호 화폐가 얽히고설킨 범죄 실화.

아이슬란드 비트코인 사건의 주요 인물

탈주범
신드리 토르 스테판슨
Sindri Thor Stefansson
7명으로 구성된 비트코인 절도단 중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사람. 감옥에서 탈출해 아이슬란드 총리와 같은 비행기를 타고 유유히 영공을 넘었다.

공모자
하토르 로기 린슨
Hafthor Logi Hlynsson
마약 밀수로 유죄를 선고 받은 경력이 있고, 강도단을 지휘한 혐의로 기소됐다. 스테판슨과 같은 동네에서 자랐으며 현재 스페인 코스타 브라바에 거주한다.

전직 마약 밀수업자
안토르 크리스티안 칼슨
Annthor Kristjan Karlsson
프로 복서처럼 잘 다져진 몸의 공모자. 아이슬란드의 마약 밀수업단 멤버였던 것으로 유명하다. 아이슬란드 내 모든 마약 공급책을 알고 있다.

비트코인 채굴자
아트리 페투르 오딘슨
Atli Petur Odinsson
아이슬란드를 덮친 금융 위기로 통장에 있던 돈을 날린 사람 중 하나. 2010년에 비트코인을 채굴하기 시작했고, 암호 화폐 채굴 열풍을 쭉 지켜봤다.

경찰청장
올라푸르 카르탄슨
Olafur Kjartansson
강도 사건 발생지 ‘쉬뒤르네스’ 지방의 경찰청장. 아이슬란드의 비트코인 탈취 사건이 국제적인 조직이 벌인 범죄라고 굳게 믿고 있다.

탈출
새벽이 밝기 직전의 고요한 아침, 신드리 토르 스테판슨은 주섬주섬 짐을 챙겨 감옥의 담장을 넘었다. 절도 사건을 벌인 혐의로 체포된 지 두 달 만이다. 스테판슨은 한적한 언덕에 있는 소그 Sogn 감옥의 수감자였다. 판사들이 수감 기간 연장 여부를 의논하고 있는 사이에 컴퓨터를 전공한 서른한 살의 죄수는 탈주에 성공했다.

그는 감옥에서 탈출하자마자 약 2킬로미터의 자갈길과 얼마 되지도 않는 보안 요원의 감시망을 뚫고 운전 기사와 접선했다. 차는 케플라비크 국제공항으로 향했다. 공항에서 검은 야구 모자와 후드 재킷으로 복장을 바꾸고,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스웨덴 항공권을 구매했다. ‘스톡홀름 무역 정상 회담’에 참석하기 위해 탑승한 아이슬란드의 총리가 같은 기내에 있었다. 교도관들은 비행기가 이륙한 지 30분이 지나서야 스테판슨의 탈옥을 알았다. 아이슬란드 경찰은 유럽 전역에 스테판슨의 탈옥을 알렸지만, 스테판슨은 이미 스웨덴에 내린 후였다.

그는 친구들과 3일 동안 스톡홀름 교외에서 지냈다. 경찰에 따르면, 독일행 기차를 타기 전까진 덴마크를 전전했고, 독일에서 만난 지인들이 그를 네덜란드에 데려다줬다. 암스테르담에 도착해선 어릴 때부터 친구이자 ‘마약판’의 동료이기도 한 로기 린슨을 만난다. 린슨은 암스테르담 쇼핑몰 ‘데 비엔 코르프’ 옆 ‘담 광장’에서 찍은 ‘셀카’를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스테판슨은 선글라스를 끼고 친구 옆에서 미소를 지으며 당당하게 포즈를 잡고 있었다. 사진 아래엔 ‘#팀신드리-’라는 해시태그가 달렸다.

스테판슨이 인스타그램에 등장했다는 사실은 전체 인구가 약 40만 명도 안 되는 아이슬란드 전역에 퍼졌다. 소셜 미디어에는 신드리를 응원하는 메시지와 경찰을 조롱하는 메시지가 뒤섞였다. 3시간 뒤, 그들이 셀카를 찍은 장소에서 자전거를 탄 두 명의 경찰이 스테판슨을 발견했다. 경찰은 자전거를 탄 채로 스테판슨에게 접근했고, 체포하는 데 성공했다. 닷새 동안 이 나라 저 나라의 국경을 넘나든 신드리 스테판슨 추격전이 드디어 막을 내렸다. 하지만 7명의 강도가 연루된 이 범죄는 9개월간 더 이어졌다.

지난 10년간 암호 화폐 채굴자들은 아이슬란드의 해안가에 모여 전자 화폐를 채굴했다. 목표는 ‘글로벌 경제 혁명’이었다. 하지만 이들이 권위에 대한 혐오와 부에 대한 욕망을 품고 아이슬란드에 온 첫 번째 무리는 아니다. 마약 수요를 바탕으로 마약 밀수업자와 재배자, 유통업자로 인해 아이슬란드의 지하 경제는 수십 년간 몸집이 불었다. 세계 금융 위기에도 불구하고 승승장구하던 암호 해커들과 마약 범죄 집단은 조금씩 가까워졌고, 스테판슨은 두 세상을 모두 잘 알고 있었다.

대안 경제
2008년 9월 15일, 아이슬란드의 범죄자와 암호 해커의 세계가 충돌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리먼 브라더스가 무너진 날이었다.

직격탄을 맞은 건 북극권 끄트머리에 있는 아이슬란드였다. 원래 아이슬란드는 수세기 동안 국가 재정 운영에 보수적인 국가였다. 그러나 2000년대 초반, 아이슬란드 정부는 은행가들에게 세계를 순회하며 아이슬란드의 부를 거래하라면서 규제를 풀어줬다. 은행가들은 재빠르게 거대한 돈을 거둬들였다. 아이슬란드 근로자의 연봉은 치솟았고 평범한 집 차고는 비싼 자동차로 채워졌다. 스물아홉 살이었던 IT 전문가 아틀리 페투르 오딘슨은 당시를 ‘찰나의 파라다이스’라고 말했다. 그의 연금 펀드는 3만 파운드에 달했고, 소규모 인터넷 서비스 회사에서 일하면서 남아도는 시간을 컴퓨터 활용 능력을 키우는 데 쓸 수 있었다.

하지만 판도는 금세 바뀌었다. 아이슬란드에서 가장 큰 은행이었던 글리트니르, 란즈방키, 카우프싱은 아이슬란드의 GDP 6배에 달하는 금액을 빌려 불안한 자산에 투자했다. 리먼브라더스가 무너지자 세 은행과 아이슬란드도 함께 넘어졌다. 재계의 97퍼센트가 3일 만에 땅으로 꺼졌다. 주식 시장의 80퍼센트가 사라졌다. 아이슬란드 사람들은 종잇장이 되어버린 지폐를 비닐봉지에 가득 담아 은행 문을 두드렸다.

아이슬란드 정부는 3개의 주요 은행에 대해 엄격한 자본 통제를 시행했다. 2009년 1월, 아이슬란드 수도 레이캬비크에 위치한 알팅그 은행 건물 앞에서 비폭력 시위인 ‘냄비 혁명’이 터졌다. 시위에 참여한 시민들은 앞치마를 두르고 냄비와 프라이팬을 두드렸다. 은행장은 직원들에게 대응을 떠맡기고 해외로 도피했다. 아이슬란드 경제에 대한 믿음이 산산조각 났다. 은행에 있던 오딘슨의 재산도 하룻밤 사이에 폐지로 변했다. 연금 펀드는 2천 파운드로 곤두박질쳤다. 그는 믿고 돈을 맡길 수 있는 대안 금융 체계를 찾기 시작했다.

냄비 혁명이 일어난 바로 그달에 신원이 밝혀지지 않은 개발자(혹은 개발자 집단) ‘사토시 나카모토’가 비트코인을 개발했다. 화폐가 컴퓨터 안에만 존재해 정부나 중앙은행의 권한이 닿지 않았다. 일부는 형태가 없는 화폐를 믿지 말라며 경고했다. 어떤 사람들은 비트코인의 탄생이 전통 화폐의 종말을 뜻한다고 믿었다.

비트코인이 생겨난 지 1년 뒤, 오딘슨은 암호 화폐에 대해 집중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의 실력은 노트북으로 비트코인을 추출하는 수준에 도달했다. 비트코인은 광물처럼 채굴이 가능한 시스템이다. 하지만 광부와 달리 곡괭이와 삽이 아니라 컴퓨터로 수학 문제를 풀어 코인을 얻는다. 초기에는 오딘슨의 경우처럼 아무 컴퓨터에서나 채굴할 수 있었다. 일찍부터 비트코인을 채굴한 사람들은 10분에 50비트코인씩 파냈다. 현재 시점으로 50비트코인의 가치는 약 13만5천 파운드(약 2억 1백만원)에 달한다. 비트코인은 은행을 대체하고, 이미 꼬일 대로 꼬인 세계 경제의 타래를 푸는 데 도움을 줄 것 같았다.

하지만 비트코인에 대한 이야기는 곧 잠잠해졌다. 현금화를 고려했을 때의 가치가 여전히 낮았다. 오딘슨도 가상 화폐 대비 현금의 가치를 실시간으로 비교하는 일을 그만뒀다. IT 기술 관련 작가들은 예측도 불가능한 문제를 풀어 사이버 머니를 얻는 것 외에는 아무런 가치가 없다며 비웃었다. 오딘슨도 자기 비트코인의 존재를 잊어버렸다. 가상 공간 어디엔가 계속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방치하다가 비트코인의 현재 시세를 확인하는 경로까지 잊어버렸다.
비트코인은 오딘슨의 관심사에서 점점 멀어졌지만, 그때서야 잠재력이 폭발하기 시작했다. 2013년, ASICS(주문형 응용 반도체)가 비트코인 채굴에 사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식빵 한 덩이 크기의 기계 덕에 기존보다 50배 빠른 가내 채굴 작업이 가능해졌다. 세계 곳곳의 회사들은 수천 개의 ASICS를 쌓아놓고 비트코인을 빠르게 채굴했다. 현재까지도 신원이 비밀로 남겨진 나카모토는 2013년 비트코인 최대 소유자였고, 1백만 BTC 이상을 보유했다는 소문이 퍼졌다. FBI는 마약, 포르노, 청부 살인 등 비트코인이 오가는 지하 경제에서 거의 15만 BTC를 압수했다고 발표했으나 비트코인과 연계된 범죄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고 다시 접속해 비트코인이 사라진 걸 알았죠. 백업을 해놨어야 했는데….” 오딘슨이 말했다. 비트코인을 허튼 데 낭비하거나 계좌를 잊어버려 보유하고 있던 암호 화폐를 모두 날린 것은 오딘슨만이 아니었다. 훗날 엄청난 재산이 되리라고 예측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ASICS는 빠른 채굴이 가능했지만, 출력이 떨어지고 쉽게 과열된다는 단점이 있었다. 하지만 아이슬란드는 두 가지 큰 이점이 있다. 추운 기후 덕분에 컴퓨터 냉각 시스템에 돈이 적게 들었고, 전체 전력의 25퍼센트는 저렴한 지열발전으로 생산된다. 최적의 금광인 셈이다. 다국적 기업이 재빨리 아이슬란드에 몰려들어 이윤을 남겼다. 현지 업체는 그들에게 격납고 같은 공간을 데이터 센터로 임대했다. 아이슬란드 남서쪽에서 그린란드와 맞닿아 있는 레이캬네스 반도의 낮은 지대에 자리를 텄던 미군 해군기지 터에 작업장을 만든 사람들도 있었다. 비트코인을 취미로 채굴했던 오딘슨 같은 사람은 이런 흐름을 읽지 못했지만, 비트코인을 채굴하는 기업이 속속 생겨나고 있었다.
2017년 12월, 비트코인 하나의 가치가 1만4천7백60파운드(약 2천2백만원)까지 올랐다. 아이슬란드 내에서 비트코인 채굴에 쓰이는 에너지는 전체 가정에 보내는 전력과 맞먹었다. 정치인들은 아이슬란드가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불안정한 산업에 전력투구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채굴 속도는 보란 듯이 빨라졌다. 아이슬란드 내에서 가장 크게 채굴 작업을 벌인 보렐리사는 회장이 채굴 작업을 ‘골드 러시’로 묘사하고부터는 거의 모든 업무를 중단하고 채굴에만 몰두했다.

채굴 공간을 임대하던 기업 아드바니아도 사업의 70퍼센트를 비트코인에 할당하고 채굴에 나섰다. 아드바니아의 한 임원은 “아이슬란드는 서부 개척 시대의 미국 같았어요”라고 말했다. 은행은 비트코인 데이터 센터 역할을 했다. 누구라도 마음만 먹고 달려든다면 엄청난 부를 거머쥘 수 있었다. 수십 개의 작업장엔 CCTV와 도난 경보기가 빼곡했다. 하지만 보렐리, 아드바니아 등의 기업은 아이슬란드 지하 세계의 법칙을 모르고 있었다. 언제나 내부에 정보원을 둔다는 사실을.

2008년 경제 붕괴 직후 일어난 ‘냄비 혁명’은 아이슬란드 정부를 무너뜨렸다.

죄수의 천국
“아이슬란드로 마약을 반입하는 건 해외에서 보낸 편지 한 통 받는 것보다 아주 조금 까다로워요.”

안토르 크리스티안 칼슨의 말이다. 사건의 연결고리 격인 그는 아주 건장한 체격의 마흔두 살 남자다. 20년 넘게 코카인, 암페타민을 비롯한 마약을 아이슬란드내로 들여왔고, 폭행 및 갈취 혐의로 7년간 복역했다. 칼슨은 수백 킬로그램의 코카인과 암페타민을 아이슬란드로 가져왔다. 보안, 세관 등엔 내부에 심어놓은 사람이 있어서 마약 운반을 돕거나 모른 척해줬다. 하지만 그가 주축은 아니었다. 아이슬란드의 마약 거래는 카르텔이라기보다 공동체에 가깝다. 구성원들은 서로를 감시한다. 1990년대에 베트남 갱이 헤로인을 반입하려고 했을 때 칼슨과 현지 운반책들은 단체로 움직였다. “우리 시장에 헤로인이 끼어드는 걸 원치 않으니까요. 여긴 작은 나라고 서로 다 아는 이웃이에요. 외부인에게 시장을 내줄 순 없어요.”

아이슬란드는 교육 수준이 높고, 인터넷 보급률도 매우 높은 나라다. 가수 비요크를 비롯해 걸출한 뮤지션도 여럿 배출했다. 오로라가 반짝이는 북유럽의 복지 국가인 건 맞지만, 동시에 1인당 마리화나 소비량이 가장 많은 나라이기도 하다. 국가 재정이 무너지기 전 아이슬란드인들은 수입 해시시를 피웠다. 하지만 곧 알팅그의 자본은 수입업자들을 통제하기 시작했고, 마약 밀수를 하던 큰손들은 거래에서 손을 떼야 했다.

대마초광들은 참신한 방법을 떠올렸다. 깊고 추운 야산에 텐트를 치고 고품질 대마를 재배하며 아이슬란드 해안가를 찾은 여행객을 꼬드겼다. (2016년, 스눕독이 아이슬란드 마리화나를 해보겠다며 “아이슬라드 쿠시 좀 봐”라는 트윗을 남기기도 했다.) 신드리 스테판슨은 아이슬란드의 새로운 대마 산업에 가장 많이 투자한 사람 중 하나다. 2002년, 열여섯 살이었던 스테판슨은 법적으로 금지된 약물에 처음으로 손을 댔다. 이후 2년간 그는 ‘거의 모든’ 약물을 경험했고, 스무 살이 될 때까지 2백 건에 달하는 범죄 기록을 남겼다. 지역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지옥 같았어요. 악마를 위해 일하고 있었죠.” 2010년, 스테판슨은 실형 4개월을 산 후 재활 치료를 받았다. 이후 가정을 꾸려 아버지가 됐고, 레이캬비크 대학교에 컴퓨터 전공으로 입학했다. 집에서 HTML5 버전으로 코딩한 모바일 게임 ‘플래피 버드’가 큰 인기를 얻었다. 동시에 그는 대마를 길렀다.

무기력한 아이슬란드의 공권력도 마약 생산과 유통을 부추기고 있다. 2014년 아이슬란드 해안 경찰은 노르웨이로부터 해클러&코흐가 생산한 기관단총 ‘MP5’ 1백50정을 지급 받았다. 대중은 당장 총기를 반환하라고 항의했다. 아이슬란드에선 대테러 부대인 ‘바이킹 스쿼드’만이 무장할 수 있다. 아이슬란드의 치안 부대는 범행 검거 현장을 포함해 어디에서도 총기를 소유할 수 없다.

교도소 역시 아이슬란드의 신세대 마약 사범을 저지하지 않았다. 아이슬란드에서는 마약 밀수범이 검거돼도 긴 형을 선고받지 않는다. 5개의 감옥에 단 1백72명만이 수감돼 있고, 소그 교도소를 포함한 두 곳은 자유롭기까지 하다. 수감자들은 창문과 평면 TV가 있는 독방에 배정된다. 심지어 전화기도 쓸 수 있다. 낮에는 농장 일을 하거나 각종 시설을 유지·보수하는 일을 한다. 아이슬란드에서 범죄자를 수감하는 주요 목적은 처벌이 아니라 재활이다.
보안 요원은 턱없이 부족하고 일부 수감자들은 가족이 보고 싶어서, 혹은 술 마시고 싶어서 탈옥한다. 심지어 탈옥을 범죄라고 보지도 않는다. 아이슬란드의 헌법은 “자유에 대한 갈망은 어떤 상황에서도 인간의 본능”이라고 명기하고 있다. 칼슨이 말했다. “여름 캠프나 다름없죠. 남자 기숙사 같다고 보면 돼요. 수감자라는 직업이 나쁘진 않아요.”

하지만 모두가 칼슨의 의견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과거 마약 밀수업자였던 구드문두르 토롯슨은 감옥 개혁을 외치고 있다. 그는 감옥이 ‘마약 사범 배양 접시’ 역할을 한다고 털어놨다. “해시시부터 시작해 온갖 약물이 감옥으로 흘러들어와요. 약물을 맛본 수감자는 출소 후엔 선량한 친구들까지 끌어들이죠. 이런 식으로 순식간에 퍼지는 거예요.” 요즘 토롯슨의 걱정거리는 미국에서 ‘오피오이드 남용’을 불러일으켰던 처방약이다. 그가 옳다. 정부는 펜타닐 같은 진통제가 국가적 위기를 부추긴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감옥에서 플레이스테이션을 하고, 마약을 하고, 범죄에 대해 토론이나 하면서 몇 년 머물면 끝이에요. 그러다 나와서 뭘 하겠어요?”

2009년, 오딘슨은 연금과 펀드 90퍼센트 이상을 잃었다. 그는 손해를 만회하기 위해 본격적으로 비트코인 채굴에 나섰다.

완전 범죄
2017년 12월 15일, 얼어붙은 검은 하늘에서 보슬비가 내리던 이른 새벽이었다. 신드리 스테판슨과 마티아스 존 칼슨은 아이슬란드 서쪽 해안에 있는 호젓한 마을 보르가네스의 창고에서 범행을 벌인 후 도망쳤다. 이 피오르드 해안 마을에선 24시간 순찰 중인 경찰을 찾아볼 수 없다.

두 사람은 새벽 2시경 데이터 회사인 AVK 소유의 3층짜리 낡은 건물에 침투했고, 28개의 ASICS를 뜯어낸다. 엄청난 양의 수확은 아니었지만 범행 현장을 안전하게 탈출하는 데 성공했다. 스테판슨과 칼슨은 고속도로를 타고 달려 보르가네스를 벗어났고, 추격하는 경찰이 없다는 걸 확인하곤 완전범죄를 확신했다. 터널 안에 있는 단 한 대의 카메라에 포착되어 경찰에 불려가긴 했지만, 별다른 증거가 없어서 곧 풀려났다.

하지만 그날의 범행은 거사의 일부일 뿐이었다. 스테판슨의 고향 친구인 로기 린슨까지 합류해 보렐리의 데이터 센터 옆에 방치돼 있는 장비를 노렸다. 세 사람은 보렐리와 그 근처에 있는 ‘알그림 컨설팅’이란 회사 소유의 건물에서 모두 104개의 ASICS와 816개의 그래픽 카드, 259개의 파워 서플라이, 121개의 마더보드, 260개의 케이블을 훔쳤다. 회사 임원들은 내부 소행을 염려했다.

몇 주 지나지 않아 스테판슨과 칼슨, 린슨은 이번엔 아드바니아에 있는 ‘아스브루 데이터 센터’를 털기로 한다. 3인조 절도단은 밝은색 지붕을 한 아스브루의 가건물들 사이에서 아무 일 없다는 듯 앉아 있었다. 케플라비크의 중앙 활주로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었지만 활발한 화산 활동 때문에 공기 중에서 유황 냄새와 물 냄새가 짙게 풍겼다. 이번에는 미리 공모한 내부자가 있었다. 센터의 보안을 담당하는 이바르 질파슨이다. 그는 경보 시스템을 해제해놓고 회사 유니폼을 지급해 범행 장소로 쉽게 잠입할 수 있도록 도왔다. 새벽 3시, 북극의 바람이 아스브루를 감쌀 때 검은 옷으로 갈아입은 세 사람은 작업에 착수했다. 2시간 만에 30만 파운드(약 4억 4천만원) 가치의 ASICS 225개를 훔쳐서 주차해놓은 차에 차곡차곡 실었다. 그들은 현장에서 가능한 한 멀리 내달렸다. 스테판슨 일당은 아이슬란드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강도를 저질렀다고 생각했다. 훔친 물건의 가치는 총 64만5천 파운드(약 9억 6천만원)에 달했다. 세 범죄자는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한 사이에 사냥을 마쳤다고 자신했다. 하지만 미처 파악하지 못한 카메라 하나가 그들의 밴을 향해 있었다.

귀환
2018년 2월 1일, 스테판슨과 칼슨을 급습한 경찰이 스테판슨의 아파트에서 코카인 34그램을, 칼슨의 차에서 스턴건 하나를 발견했다.

강도 사건 발생지인 아스브루를 포함하는 ‘쉬뒤르네스’ 지방 경찰청장 올라푸르 카르탄슨은 “범죄 형태가 다르긴 하지만, 각 사건은 공통점이 있어요. 한 사람이 지시를 내리고 다른 이들이 손을 쓴 것이죠. 장교 밑에 여러 사병이 있는 것처럼 조직적인 구조예요”라고 말했다. 카르탄슨은 스테판슨을 강도 사건의 핵심으로 몰았고 국제 범죄 조직과 연계되어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표적이 되었던 데이터 센터는 잃어버린 ASICS를 돌려받는 것과 관련된 정보를 제공하는 사람에게 4천3백 파운드(약 6백40만원)의 보상금을 지급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아이슬란드인은 정확이 무엇을 도둑맞은 것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지역 언론이 여느 절도 사건과 다를 바 없이 보도했기 때문이다. 스테판슨이 나라를 떴다는 걸 모두가 알게 되었을 때쯤이었는데도 언론의 보도는 안일했다.

2018년 4월 20일, 스테판슨은 여전히 도망자 신세인 와중에도 아이슬란드에서 가장 큰 신문사인 <프레타블라디드>에 짧은 글을 기고했다. “사건에 대해 두 가지 관점이 존재하는데, 이게 진실이다. 나는 탈옥이 옳지 못하다는 걸 알고 있지만 이미 저지른 일을 되돌릴 순 없다. 내가 원해서 한 일이라고 해도. 판사의 결정이 아니라 죄의 유무를 판단하는 절대적 기준으로 구속되었다면, 나는 절대 탈옥을 시도하지 않았을 것이다. 탈옥이 옳은 결정이었다고 말하려는 건 아니다. 지금 나는 굉장히 스트레스를 받고 있고 가족도 대중과 언론의 비난으로 고통받고 있다. 마음만 먹으면 아주 먼 곳까지도 도망칠 수 있다. 집과 차, 신분증을 내주겠다는 집단으로부터 끊임없는 연락을 받고 있다. 원하면 생활비도 주겠다고 한다. 하지만 아직은 아이슬란드 땅 안에서 살아갈 방법을 찾고 싶다. 경찰은 정말 내가 공공장소에서 죽는 걸 보고 싶은 것 같다. 너무 많은 걸 말하면 더 큰 문제가 생길 것 같아 이만 줄이겠다.”

스테판슨은 소셜 미디어 메시지를 차단하고 온라인 친구들과의 대화를 거부했다. 그의 번호를 어렵게 알아내 전화를 걸었을 때 그가 항거와 참회 사이에서 흔들리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스테판슨은 자기가 마피아 수장의 오른팔이라는 경찰의 주장을 조롱했다. “아이슬란드 경찰이 미국 경찰을 따라 하고 싶은가 봅니다. 국제 범죄 조직과 고리가 있다고 하는데, 얼마나 멍청한지.”

경찰이 수감 중이었던 스테판슨에게 ‘특별 대우’를 했던 건 확실하다. 체포 당일부터 한 달 동안 독방에 넣었고, 매주 한 번씩 끄집어내서 심문했다. 비폭력 범죄로 이렇게 길고 차가운 대우를 받은 아이슬란드인은 없었다. 스테판슨의 변호사인 토르길슨은 분노했다. 레이캬비크 고등법원 근처 카페에서 만난 그는 패키지 여행 중 볼 법한 ‘분위기 리더’ 같은 생김새를 하고서 호기심과 자신감이 넘치는 말투로 이야기했다. 사건의 담당 검사가 몇 테이블 떨어진 곳에 있었기 때문에 그는 조용히 속삭였다. “우리는 아이슬란드가 아주 큰 국가라고 믿고 살아요. 웃기죠?”

매주 목요일, 토르길슨은 그의 고객 스테판슨과 경찰 심문에 동참했다. 성실하게 수사에 응하면 보통 일반 수감실로 옮겨주는 게 관례였다. 하지만 스테판슨에게 또다시 일주일간의 독방 구금이 내려졌다. 토르길슨이 말했다. “또 독방에 가둘 줄은 몰랐어요. 사람에게 희망을 줬다가 그걸 그대로 빼앗아가는 것도 고문이에요. 그저 단순하게 불법 행위를 저지른 경우를 갖고 말이죠.” 스테판슨은 결국 소그 교도소로 이송된다. 그는 내성적이지만 다른 죄수들에게 친절했다. 같은 시기에 수감됐던 한 죄수는 “스테판슨은 조용하고 괜찮은 사람이었어요. 별다른 문제 한번 일으키지 않았고요”라고 말했다. 2018년 4월 16일, 판사가 수감 기간 연장을 고민하는 동안 스테판슨의 형기가 만료됐다.

그날 스테판슨은 다른 4명의 수감자와 함께 점심을 먹었다. 그리고 오후 4시에 경찰로부터 “넌 이제 자유의 몸이지만 아무 설명 없이 떠날 경우에는 다시 체포될 것”이라는 고압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그날 저녁 11시경에 스테판슨은 보란듯이 스톡홀름으로 가는 비행기를 예약했다. 솅겐 조약으로 묶인 지역이라서 아이슬란드 사람이라면 여권을 제시하지 않아도 입국할 수 있었다. “몇 가지 이유가 있었어요. 하나는 시간이었죠. 그 비행기가 일찍 뜨더라고요. 분명 문제가 발생하리라는 건 예상했지만 별로 개의치 않았어요. 경찰이 내가 탈옥하면 다시 잡아넣겠다고 협박하기에 아주 고소하게 약을 올리고 싶어졌죠.”

스웨덴에 도착한 바로 다음 날 아침, 그는 지인을 만나 교외에 숨어 지낼 곳을 구했다. 하지만 곧 스웨덴 언론에 자신의 얼굴이 도배된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스웨덴에서의 생활 역시 쉽지 않겠다고 여긴 그는 스페인에 있던 린슨을 암스테르담으로 불렀다. 네덜란드는 두 사람이 함께 시간을 보낸 적이 있는 곳이자 스웨덴과 스페인의 중간쯤에 있는 나라다.

딱 3시간 경험한 암스테르담에서 그는 자전거를 탄 경찰들에게 붙잡혔다. 스테판슨이 말했다. “전 살인자도 아니고, 갱단 리더도 아니에요. 내가 유럽 경찰에게 뭘 얼마나 잘못했다고 암스테르담 거리에 있던 흔한 경찰까지도 내 얼굴을 알고 있냐는 거죠.” 체포된 지 3일이 지나자 네덜란드 판사는 스타판슨에게 19일 형을 명했다. 네덜란드 감옥은 아이슬란드와는 딴판이었다. 음식은 부족했고 ‘위험한 녀석들’로 가득 차 있었다고 스테판슨은 회상했다. 9일이 지난 후, 토르길슨은 스테판슨 송환을 위해 아이슬란드 당국을 설득했다. 린슨은 스페인으로, 탈주범은 집으로 돌아왔다.

딜레마
스테판슨이 ‘비트코인 대도’가 된 직후, 암호 화폐 가치가 곤두박질쳤다. 2017년 12월 개당 1만5천 파운드(약 2천2백만원)였던 비트코인의 가치는 현재 3천 파운드(약 4백40만원)에도 미치지 못한다.

아드바니아와 보렐리 같은 데이터 센터의 수요는 여전히 높지만, ‘카우보이’들이 떠나면서 골드러시도 명을 다했다. 유명한 기술 투자자 제프 슈마커는 “비트코인 값이 0에 수렴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아이슬란드의 정치인들도 암호 화폐에 퍼붓는 국가적 에너지에 대해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금융 붕괴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 지도자들은 비트코인과 그 라이벌인 이더리움 같은 암호 화폐가 또 다른 파멸을 낳을 수 있다고 우려한다. 아이슬란드의 재무장관은 “국가 재정을 위협하는 요소에서 암호 화폐를 제외할 순 없다”고 발표했다.

반면 채굴자들의 시각은 다르다. 정치인들과 은행가들은 이미 한 번 아이슬란드의 경제가 급부상한 시기를 겪었다. 일부 시민들에게 암호 화폐는 스스로를 지킬 보험 같은 방책이다. 취미로 채굴하는 오딘슨이 말했다. “암호 화폐 판에 뛰어든 사람들 중 아이슬란드 화폐가 영원하리라고 믿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을걸요?” 오딘슨은 다시 사업에 복귀했고 아이슬란드 블록체인 협회 미팅에도 주기적으로 참석한다. “크로나가 다시 무너질 상황도 염두에 둬야 해요. 아이슬란드 경제가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잖아요.”

도둑맞은 ASICS에 대해 수사하면서 경찰들은 전력망 이상에 관한 수색영장을 확보했다. 하지만 전력 낭비는 분실된 채굴 기기와는 관계없었다. 대마를 기르느라 전기를 엄청나게 잡아먹는 업체들만 이따금씩 발견됐다. 하지만 다른 종류의 마약 사용량도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2017년 케플라비크 세관 요원은 국경에서 20.7킬로그램의 코카인을 압수했다. 지난 4년간 압수한 총량보다 많은 양이었다. 현재 코카인은 아이슬란드에서 가장 쉽게 구할 수 있는 마약 중 하나가 됐다. 처방 받을 수 있는 오피오이드(아편과 비슷한 작용을 하는 합성 진통제)도 중대한 사안이다. 2018년 상반기에만 29명이 약물 남용으로 사망했다. 2017년 한 해를 통틀어 비교해도 단 3명 모자란 수치다. 안토르 칼슨과 같은 전직 밀수꾼들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마약은 단순히 ‘돈이 된다’는 근거로 점점 확산되고 있다. 올라푸르 카르탄슨 경찰청장은 아이슬란드의 지하 세계가 해외 곳곳으로 뻗어나가고 있다고 걱정한다. ‘비트코인 대도’ 사건의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경찰청장 카르탄슨의 팀은 스테판슨에 대한 경찰의 대우가 비트코인과는 연관성이 없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철저한 조사를 받았다. 심지어 카르탄슨이나 그의 팀원 중 누구도 ASICS가 어디서 났는지 모르는 눈치였다.

2018년 4월 스테판슨이 암스테르담에서 체포된 직후, 중국 관영 언론은 비트코인 채굴 기기 6백 대를 베이징 근처에서 찾았다고 보도했다. 그는 흥미를 느꼈지만 어디에도 물어볼 곳이 없었다. 중국 관료 체제를 상대하는 것은 “흙탕물에서 수영하는 것과 같다”고 그가 말했다. 많은 이들은 ASICS가 아이슬란드 내륙 어딘가, 빙하 밑에 묻혀 가치를 잃으며 낡아가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모든 장비가 버려졌다 해도 범인들은 소소한 이득을 취하고 손을 뗐다. 오딘슨에 따르면 암호 화폐의 일종인 ‘알트코인’을 채굴하는 장치 ‘GPU 프로세서’ 하나만 있어도 한 사람 정도는 먹여 살릴 수 있다고 주장한다. 심지어 하락세인 코인 시장에서 달마다 8천 파운드(약 1천2백만원)를 ASICS로 채굴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돌고 있다.

스테판슨은 이 기계에 전원을 공급하면 자는 동안에도 돈을 벌 수 있다는 걸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그는 다른 곳에서 꿈을 꿔야 한다. 올해 1월, 그와 나머지 6명의 비트코인 도둑들은 모두 징역을 선고받았다. 스테판슨의 형량은 4년 6개월. 그리고 데이터 센터인 아드바니아에 21만 파운드(약 3억 1천만원)를 배상하라는 판결이 내려졌다.

직접 가상 화폐를 주조하는 것보다 정부의 통제에서 벗어날 수 있는 더 좋은 방법이 있을까? 스테판슨은 부와 자유를 좇았지만, 한 번 탈출했던 감옥으로 불확실한 미래와 함께 다시 돌아가야 했다. 비트코인 판에 운명을 걸었다가 전부를 잃어버린 사람이 세상에 그 혼자만은 아닐 것이다. 아이슬란드의 암호 화폐 커뮤니티는 물가가 폭락하고 시장이 바닥을 칠 만큼 불안하다. 거대한 비트코인 사이버 저장소를 털려고 시골로 내려간 범죄자도 더는 없다. 스테판슨이 처한 운명 때문에 배운 바가 있을 것이다. 아이슬란드의 무법자라면 비트코인보다 마약으로 ‘잭팟’을 꿈꾸는 게 빠를 것이다.

스테판슨은 6만4천5백 파운드(약 9천5백만원)어치에 달하는 비트코인 채굴 장비를 훔친 세 사람 중 하나다.

범죄의 재구성

1. 2008년 9월 15일
미국의 투자은행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으로 아이슬란드 경제도 붕괴한다.

2. 2009년 1월
아이슬란드인들은 국회 앞에서 냄비와 프라이팬을 두드리며 정부의 재정 위기 대처에 항의했다.

3. 2009년 1월 9일
‘사토시 나카모토’가 첫 번째 암호 화폐인 비트코인을 최초로 내놓았다.

4. 2017년 12월
비트코인 하나의 가치가 1만4천7백60파운드 (약 2천2백만원)까지 치솟았다.

5. 2017년 12월 5일
신드리 스테판슨이 아이슬란드 남서쪽 아스브루에서 30만 파운드(약 4억 4천만원)가치의 비트코인 채굴 장비를 훔쳤다.

6. 2017년 12월 15일
갱단은 훔친 물량의 일부를 갖고 서쪽으로 이동한다. 스테판슨과 칼슨이 체포됐지만 곧 풀려났다.

7. 2017년 12월 26일
스테판슨과 칼슨은 아스브루 데이터 센터를 다시 털기 위해 돌아왔지만 경보음이 울려 빈손으로 도망쳤다.

8. 2018년 1월 16일
내부에 심은 보안 요원의 조력으로 아스브루 데이터 센터를 터는 데 성공한다.

9. 2018년 2월 1일
스테판슨을 포함해 공모자 3명이 체포됐다. 범죄에 연루된 19명이 추가로 잡혔다.

10. 2018년 4월 17일
몇 주 동안 수감됐던 스테판슨이 탈옥에 성공한다. 그는 비행기를 타고 스웨덴으로 간다.

11. 2018년 4월 22일
탈주범 스테판슨이 암스테르담에서 자전거를 탄 경찰에게 체포된다.

12. 2018년 7월 5일
7명의 용의자가 범죄 행위 공모, 강도, 마약 소지 등의 혐의로 기소된다.

13. 2019년 1월 17일
7명 모두 ‘비트코인’ 사건에 가담한 이유로 실형을 선고받는다. 스테판슨은 4년 6개월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