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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민주화운동의 시민군을 닮은 다큐멘터리 영화 <김군>

2019.06.09GQ

5월의 영화가 도착했다. 죽거나 살아남은 이들, 잊지 말아야 할 삶을 추적한 다큐멘터리 <김군>의 강상우 감독을 만났다.

광주 민주화운동이 일어난 5월에 <김군>을 개봉하는 소감은 어떤가? 항상 감정이 늦게 도착하는 편이라 몸만 열심히 달리고 있다. 개봉까지 같이 달려준 분들께, 이래도 되는 건가 싶을 정도로 감사하다.

전두환이 광주에 가서 사살 명령을 내렸다는 증언이 나온 시점이라 이 영화가 더 의미 있게 다가온다. 5.18을 다루려는 생각이 먼저였나, ‘김군’을 찾고 싶다는 마음이 먼저였나? 후자였다. 원래는 지금의 광주를 다루려 했다. <백퍼센트 광주>라는 공연 메이킹을 찍으러 광주에 갔다가, 시민군에게 주먹밥을 날라주신 주옥 선생님을 알게 됐다. 그분께서 지만원이 북한군 ‘제1광수’로 지목한 ‘김군’을 선명하게 기억하더라. 그래서 ‘김군’을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왜 ‘김군’에 꽂혔나? ‘김군’은 총을 든 시민군의 이미지로 등장했다. 기관총을 들고 있는 과격한 이미지 때문에 ‘1번 광수’로 지목당한 것이다. ‘김군’의 사진을 보면, 강렬하면서 무섭고 매혹적이지 않나? 우리는 5.18 시민군들을 잔혹한 학살 피해자로서만 기억했고, 주체적으로 싸운 모습에 대해선 잊고 있었다. 지만원이 그 빈틈을 ‘북한군’이라며 공략한 것이고. 우리는 광주에서 맞서 싸운 무장 시민군들에 대해서도 직시하고 들을 필요가 있다. 그래서 총을 들 수밖에 없었던 상황의 시민군들을 탐문하는 게 중요했다.

‘김군’을 찾아도, 찾지 못해도 영화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나? 찾지 못해도 과정에 의미를 두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정말 최선을 다해 찾았다. 당시 사진을 찍은 사진 기자를 만나 네거티브 필름 스캔을 받았고, 시민군으로 참여했던 분들을 찾아다니며 탐문을 했는데, 그분의 행적이 23일에 멈춰 있었다. 그 후에 사라졌다면, 사라짐에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이유를 규명할 수만 있다면 영화가 성립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증언자 한 명, 한 명의 사연이 사무쳤다. 지금도 잠들지 못하는 시신관리 담당자, 아들을 잃고 대문을 닫고 주무신 적 없는 어머니, 동지 대신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을 품고 살아온 남자. 카메라가 그들의 얼굴을 어루만지는 느낌이 들었다. 어떤 이는 눈을 마주치지 않는 옆모습을, 어떤 이는 앞을 응시하는 정면을 담은 것도 좋았다. 아직까지도 이런 얘기를 하면 큰일 나는 줄 아시는 어르신들이 많다. 어떤 분은 반년을 설득해 가까스로 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 진행할 땐 좀 다른 방식으로 질문을 했다. 그날의 날씨, 냄새, 음악, 당시 십 대, 이십 대로서 감각적으로 체험했던 것들에 대해 물어 생생한 기억을 이끌어내려 했다. 눈을 마주치지 않고 “사람들이 이걸 받아들이냐”고 물으신 분에 대해선, 자기 안에서 오랫동안 숨죽이고 산 사람만이 그런 식으로 말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무거운 역사적 주제를 다룬 다큐멘터리지만, 음악과 그래픽이 동세대의 감각이라 색다르더라. 난 표피와 겉멋에 목숨 거는 사람이다. 하하. 신스팝을 좋아한다. 어떻게 보면 이건 유령에 대한 이야기다. 스산한 바람소리 같은 전자음이 잘 어울릴 거라 생각했다. 그래픽은, 지만원이 만든 조악한 느낌을 가져가면서도 직관적이며 공격적인 느낌을 날카롭게 살려봤다.

<어느 게이 소년의 죽음>, 양심적 병역 거부로 수감된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백서>, 출소한 주인공이 등장하는 <클린 미> 등을 연출했다. 소수자들에게 애정이 깊은가? 내 얘기밖에 할 줄 몰랐으니까 그런 거다. 자전적 재료로 이야기를 시작하는 버릇이 있었다. 하지만 <김군>을 만들며 작업하는 리듬과 삶에 대한 태도가 바뀌었다. 어릴 적엔 자기 연민과 사회에 대한 분노에 빠져 있었다면, 이젠 사회의 1/n로서 생각하게 됐다. 나 역시 광주 출신이 아니고, 5.18을 겪은 세대가 아니다. ‘김군’이 누구인지부터 영화를 시작해 나간 것처럼, 관객들과도 같은 속도로 호흡할 수 있기를 바란다.

    에디터
    김예지, 김영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