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밀레니얼이 바라보는 사회주의

2019.06.15GQ

사회주의가 젊고 섹시해졌다? 서구권의 밀레니얼 세대에게 사회주의는 가장 쿨한 트렌드다. 시대적 유물로 전락한 과거의 사회주의와는 의미가 완전히 다르다.

런던 필수품 중 하나는 킨들이다. 내가 살고 있는 런던의 지하철에선 인터넷은 고사하고 문자 메시지조차 가지 않기 때문에 읽을 거리가 필수다. 스마트폰처럼 전자책 리더기를 항상 구비하고 다니는 친구에게 사용법과 구매 경로에 대해 묻자 대뜸 이런 조건을 붙였다. “아마존에서 주문하지 않는다고 약속한다면 알려줄게.” 그런가 하면 다른 친구는 얼마 전까지 데이트하던 여자와 그만 만나기로 결심했다. 그녀가 아침마다 스타벅스에 간다는 게 몇 가지 이유 중 하나였다. 이토록 유난스러운 태도를 보인 이유는 간단하다. 아마존과 스타벅스가 현대 자본주의의 얼굴이기 때문이다. 한편 펍에서 이런 질문을 받은 적도 있다. “소개팅에서 상대방이 스스로를 사회주의자라고 소개하면 무슨 생각이 들 것 같아?” 신선하기 짝이 없는 질문에 함께 있던 영국인, 스웨덴인, 프랑스인은 당연하다는 듯이 이렇게 답했다. “오히려 자본주의자라고 하면 도망갈 것 같은데?”, “공공의 이익에 관심이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일 것 같아.”, “섹시하지.”

지금 미국과 영국 등 서구권의 밀레니얼 세대에게 사회주의는 가장 쿨한 트렌드다. <뉴욕 매거진>의 ‘언제 모두 사회주의자가 되기로 결심했나’ 라는 기사의 서두만 읽어도 분위기를 파악할 수 있다. 뉴욕 브루클린의 한 파티 현장. 스스로를 ‘4세대 사회주의자’라고 지칭하는 팟캐스트 진행자, 저널리스트, 아티스트들이 ‘안티 로맨스’ 테마의 밸런타인데이 파티를 즐기면서 아마존이 퀸즈에 새로운 지사를 건설하려던 계획을 취소했다는 잡담을 나눈다. 이스트강이 한눈에 들어오는 적당히 허름한 로프트에서 3달러짜리 맥주를 홀짝이면서. 여기까지만 들어도 HBO에서 제작하는 힙한 미드의 한 장면이 떠오르지 않나? <뉴욕 매거진>은 “브루클린에서는 자신을 사회주의자라고 부르는 게 무엇보다도 섹시하게 여겨진다”라고 하면서, 특히 “수입은 적지만 문화적으로는 강력한 크리에이티브 집단” 사이에서 그렇다고 덧붙였다. 힙스터 말이다.

스타벅스와 아마존을 애용하는 상대를 만나지 않기 위한 사회주의자 전용 데이트 플랫폼이 있을 정도다.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사회주의자들의 만남을 주선해주는 플랫폼 ‘레드 옌타’의 인스타그램 계정 ‘@RedYenta’에는 런던, 뉴욕, 토론토 등 세계 각 도시 사회주의자들의 프로필이 가득하다. “28세. 헤테로섹슈얼 여성. 마르크스와 레닌의 사상을 선호하며 로맨스가 부르주아적인 콘셉트인지 궁금함.” “23세. 헤테로플렉시블 남성. 현재 27세 여성과 다자 연애 중. 민주사회주의자. 기후 변화의 심각성을 알고 있으며 함께 환경 운동을 할 비건 파트너 구함.” 하나같이 범상치 않은 포스를 풍긴다.

사회주의의 뜨거움은 숫자로 살펴보면 더욱 분명해진다. 미국의 여론조사 기관인 ‘갤럽’은, 18~29세 미국인의 51퍼센트가량이 사회주의에 대해 우호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고 발표했다. 지난 1월 실시한 온라인 리서치 사이트 ‘서베이몽키’의 설문에서도 18~24세 응답자 61퍼센트가 사회주의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미국민주적사회주의자(DSA)’ 모임의 회원은 2016년 5천여 명에서 현재 5만6천여 명으로 약 11배가량 늘었고 평균연령은 64세에서 30세로 크게 낮아졌다.

정치계에서도 사회주의는 더 이상 금기어가 아니다. 일명 ‘민주사회주의자’이며 미국 상원의 유일한 사회주의자인 버니 샌더스가 대표적이다. 전 세계에서 제일가는 힙스터 중 한 사람인 뎀나 바잘리아가 2017 FW 발렌시아가 남성복 쇼에서 오마주한 77세의 미국 정치인 말이다. 1972년 첫 공직 선거 출마에서 겨우 2퍼센트의 득표율밖에 얻지 못했던 그는 2016년 말 대선 후보 경선에서 힐러리와 접전을 벌였고, 미국 정치 역사상 가장 많은 기부 숫자를 기록했다. 그리고 현재 다시금 2020년 대선 민주당 경선 후보로서 나섰다.

그리고 지난해 11월 DSA 회원인 29세의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가 최연소로 미국 하원의원에 당선되면서 지금의 사회주의는 더욱 젊어졌다. 버니 샌더스와 함께 70퍼센트의 부유세를 주장하는 그녀는 이렇게 외쳤다. “우리가 성장한 미국은 부모, 조부모들이 성장한 미국과 전혀 다르다!”

밀레니얼 세대가 사회주의에 열광하는 건 바로 그 때문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후 사회에 진출해 고용 감소, 일자리 질 저하 등을 겪었고, 이로 인해 평균 소득이 낮으며 대학 학자금 부담도 안고 있다. 경제적 부담 때문에 결혼을 미루고 내 집 마련에 적극적이지 않다”는 밀레니얼 세대의 사전적 설명을 덧붙이지 않더라도 본능적으로 추측 가능하며 이해 가능한 이유, 즉 지금의 암울한 현실 말이다. <허핑턴 포스트 US>는 “밀레니얼에게 자본주의란 ‘책임지지 않고 세상을 파괴한 부자’를 뜻하고 사회주의는 ‘그렇지 않은 것’을 의미한다”라고 동시대 사회주의의 배경을 분석했다. 주변인들의 삶만 훑어도 “이번 생은 망했다”는 인터넷 농담이 거의 시대 정신에 가까울 정도니, 변화를 갈구하는 게 무리는 아니다.

밀레니얼 사회주의는 과거의 사회주의와는 그 맥락과 의미가 완전히 다르다. 밀레니얼 사회주의의 입문서라고도 할 수 있을 에드워드 로렌스의 <왜 지금 사회주의는 섹시한가>에서는 그 차이를 이렇게 설명했다. “지금의 사회주의는 경제보다는 믿음에 관한 것이다. 인종과 젠더 이슈를 포함한 평등, 복지, 이민자 문제, 직업 윤리 등에 대한 믿음 말이다. 본래 사회주의가 생산수단의 공유화와 계획경제 실시로 사회를 단번에 개조할 수 있는 것처럼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우리가 지향하는 사회주의는 하룻밤 사이에 이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때문에 지금의 사회주의에서는 지속적인 노력이 핵심이다.”

불평등이 통제 불능 상태이고 경제는 기득권에 이익이 되도록 조작되고 있다는 데서 출발한 밀레니얼 사회주의자들은, 기본적으로 경제 민주화를 통한 소득 재분배와 최저임금 인상, 공공 서비스 확대 등을 추구한다. 부 자체에 대한 세금을 부과하고, 근로자들이 기업 이사회에 더욱 많은 지분을 차지해야 하며, 공공 지출 확대를 통한 기후 문제 해결이 그들의 주 과업이다.

지극히 이상적이고 모호한 이야기처럼 느껴지나? ‘노오력’이 부족한 힙스터들의 트렌드이고 ‘샴페인 사회주의자’나 ‘캐비어 좌파’의 배부른 투정이라고 치부해버릴 수도 있다. ‘경제 민주화’ 같은 과격한 방법론에 한계가 있으며 여전히 민주사회주의의 정의에 대한 논의가 한창 진행 중인 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밀레니얼 사회주의를 둘러싼 논쟁에서 가장 분명한 사실은 지금 뭔가 잘못됐으며 변화가 절실하다는 것이다. 버니 샌더스의 이 말처럼 말이다. “사람들은 제가 과격하다고 말하지만 새롭게 창출되는 소득의 대부분을 상위 1퍼센트가 가져가고 어떤 한 집안(월마트의 소유주인 월턴가)의 경제적 부가 하위 1억 3천만 명의 재산을 합친 것보다 많다는 사실, 이런 미국의 현실이 과격한 것입니다.” 이건 고유명사만 바꾸면 우리나라에도 그대로 적용 가능한 얘기다.

사실 사회주의자라고 해서 ‘크리에이티브’한 친구들과 함께 마르크스를 논하거나 ‘EAT the Rich’ 같은 글귀가 적힌 티셔츠를 입고 분연히 거리로 뛰쳐나가 붉은색 깃발을 휘날릴 필요는 없다. 지금 밀레니얼 사회주의의 요지와 희망은, 이 사상이 꽤 보편적으로 섹시하다는 데 있기 때문이다. 영국 노동당을 지지하는 비영리단체 ‘모멘텀’ 웹사이트에 업데이트된 영상에 따르면, 세상엔 아직 자각하지 못한 사회주의자가 넘쳐난다고 한다. “매번 사회주의가 성공한 케이스를 본 적이 있냐는 질문을 받아요. 대답은 ‘어디에서나 성공해왔다’입니다. 사회주의의 기본은 우리의 자원을 공공의 이익에 사용하는 것이니까요. 만약 당신이 NHS(세금으로 운영되는 영국의 공공 의료 서비스로 대부분의 치료가 무료로 제공된다)를 좋아한다면 당신은 사회주의자입니다. 못 믿겠다고요? 미국 언론에서 ‘공공 의료 서비스’가 얼마나 자주 ‘사회주의’라는 단어와 함께 묘사되는지 보세요. 또한 교사, 경찰, 소방관, 학교, 도로, 도서관 등의 공공 서비스 제도를 지지하나요? 구글과 아마존 같은 거대 기업이 더욱 많은 세금을 내야 한다고 생각하나요? 그렇다면 당신은 완전히 사회주의자예요!” 그러니까, 어쩌면 당신도 사회주의자일지 모른다는 얘기다. 힙스터는 아닐지라도 말이다. 글 / 권민지(칼럼니스트)

    에디터
    김영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