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채식주의자는 세포배양육을 먹어도 될까?

2019.06.16GQ

세포배양육이 대체 육류의 범주로 빠르게 파고들고 있다. 채식주의자의 식탁에 오를 준비도 마쳤지만 신념과 선택의 문제가 남았다.

2014년 여름, 네덜란드 ‘베지테리언 부처’라는 대체 육류 브랜드에서 만든 햄버거 패티, 비프슬라이스, 튜나스프레드 등을 시식할 기회가 있었다. 10년 차 채식주의자인 나는 그동안 콩고기, 밀고기, 쌀고기 등 많은 종류의 대체 육류 식품을 먹어왔다. 하지만 그날 먹은 식품, 특히 튜나스프레드는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았다. ‘비건 튜나스프레드’를 크래커에 발라 입에 넣고 한두 번 씹자마자 비릿하고 느끼한 맛 때문에 하마터면 해당 업체의 담당자 앞에서 토할 뻔했다. 육식을 즐겼던 시절에 자주 먹었던 참치 통조림과 똑같은 맛이었다. ‘식품 가공 기술이 이렇게 발달했구나’라는 생각과 ‘보통 사람들은 이렇게까지 해서 고기나 생선을 먹어야 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그때의 충격적인 기억은 얼마 전 접한 ‘비욘드 미트’로 다시 찾아왔다. 굽는 냄새는 완전 소고기였고, 식감과 육즙은 물론, 소고기 특유의 누린내까지 비슷했다.

이마저도 부족한지 이제는 모조품 수준이 아니라 진짜와 가짜 사이의 경계마저 흐릿한 고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세포배양육, 일명 ‘실험실 고기’다. 고기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살펴보면 분명 찜찜한 구석이 있다. 식물성 원료로 만들었던 그동안의 대체 육류와 달리 동물의 세포로 만들어내기 때문에 호감이 가지 않는다. 하지만 고기를 생산하는 데 드는 비용과 환경 오염, 동물 복지 등 육식에 얽히고설킨 문제를 생각하면 분명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싶은 발명품이다. 세포배양육은 일반 축산에 비해 토지는 1퍼센트, 물은 10퍼센트만 사용하면 만들 수 있다고 한다. 현재 소비되는 육류의 일부만 대체한다고 해도 기대 효과는 어마어마하다. 채식주의자의 성향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대사 질환이나 성인병, 암, 알레르기 등 건강상의 이유로 채식을 하거나, 자신이 지키고자 하는 신념, 즉 기아, 환경, 동물 학대, 식량난 해결에 동참한다는 이유 때문이다. 나는 후자에 속하는 채식주의자이자 동물성 성분이 들어 있는 모든 식품을 식단에서 철저하게 배제한다. 그렇다고 고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비난하거나 폄하하진 않는다. 현재 인류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려면 축산 산업의 규모와 유통·소비되는 육류의 양을 축소하는 게 시급하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축산, 달리 말해 ‘공장식 축산’은 참으로 비효율적인, 요즘 말로 ‘가성비’가 아주 많이 떨어지는 산업이다. 전 세계 인구의 1/3이 먹을 수 있는 곡물이 인구의 1/10이 먹을 육류 생산에 사료로 동원될 정도다. 축산업은 최근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된 대기 오염의 원인이기도 하다. 경유차나 공장에서 배출되는 질소산화물 및 황산화물은 가축의 분뇨에서 많이 나오는 암모니아와 결합해 각각 질산암모늄과 황산암모늄으로 바뀐다. 둘 다 미세먼지의 주요 성분이다. 고기를 많이 소비할수록 미세먼지가 늘어난다는 가설이 설득력을 얻는다. 그럼 유력한 대체 육류로 떠오른 세포배양육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1.살아 있는 가축으로부터 근육 조직 표본을 채집한다. 2.세포에서 근육섬유를 분리하기 위해 채집한 표본을 아주 작은 조각으로 자른다.
3.잘게 잘린 개별 세포들은 영양, 공기, 온도 등의 조건을 설정한 배양반에 놓이고, 세포들은 자가분열을 시작한다. 4.세포들은 섬유 조직에서 섬유 가닥 단위로 자란다. 한 가닥은 1조 개가 넘는 세포로 되어 있다. 이 근육세포 가닥들이 켜켜이 쌓여 고기 패티가 만들어진다.

세포배양육은 네덜란드 마스트리크 대학교의 마크 포스트 박사에 의해 처음 탄생했다. 2013년에는 파운드당 3만2천5백 달러 이상의 비용으로 제조됐지만, 산업 규모가 커지면서 생산비용이 급격하게 감소하고 있다. 2016년에 미국 대체육 기업인 ‘맴피스 미츠’는 소고기 세포배양육의 가격을 파운드당 약 9천 달러까지 낮췄고, ‘알레프 팜스’의 세포배양육 스테이크는 1조각에 약 50달러다. 현재 속도를 보면 머지않아 진짜 고기와 비슷한 수준까지 가격이 내려갈 것으로 보인다. 육류의 종류도 돼지고기나 소고기에 한정된 것이 아니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 ‘저스트’는 2018년부터 녹두를 원료로 만든 달걀 대체 식품 ‘저스트 에그’를 판매해 대성공했다. 대체 식품의 성공 가능성을 본 저스트는 최근 건강한 닭의 깃털에서 추출한 세포에 다양한 식물 성분을 배합한 인공 닭고기를 개발했다. 직원들이 세포배양 닭고기를 조리해 맛있게 먹고 있는 동안 깃털을 제공한 닭이 멀쩡하게 주변을 돌아다닌다. 학대에 가까운 방식으로 동물을 사육하고, 비인도적으로 도축하지 않고도 다양한 고기를 즐길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세포배양육의 상품성은 이미 보장되었고, 얼마나 성공할지는 채식주의자의 숫자에 달려 있다. ‘국제채식인연맹(IVU)’은 2018년을 기준으로 전 세계 채식 인구를 1억 8천여 명으로 추산했다. 수치는 계속 늘고 있다. 2014년부터 2017년 사이, 미국에서만 ‘비건’의 인구가 6배나 증가했다. 현재 맴피스 미츠는 빌 게이츠를 포함한 유명 인사도 투자자로 끌어들인 것은 물론 전통 육류 생산 업체인 ‘타이슨 푸드’의 투자까지 받아냈다. 채식은 이제 소수의 특이한 문화가 아니라 돈 되는 분야가 되어가고 있으며, 세포배양육의 등장은 식품 산업을 둘러싼 자본의 흐름까지 바꾸고 있다.

대체육은 처음엔 채식인을 중심으로 소비되겠지만, 점차 비채식주의자에게도 확산될 것이다. 같은 값이라면, 맛이 같다면, 그리고 건강에 안 좋은 성분은 철저하게 배제한 고기라면 멀리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착한’ 상품으로 등장한 대체 식품이라 해도 우려되는 점이 없는 건 아니다. 아직 배양육 원료 세포에 대한 품질과 의학적인 기준이 없다는 것이 첫 번째 논쟁거리다. 고기의 원료가 될 세포는 어떤 방법으로 골라야 할지 정해진 규정이 없다. 이는 대중적인 식품으로 빠르게 자리 잡는 데 큰 걸림돌이 될 것이다.

두 번째로 실험실에서 탄생한 고기는 ‘진짜 소비자’들은 맛도 보기 전에 견제에 시달리다가 끝날 것이라는 예측이다. ‘미국 축산업자연맹’ 등 육가공 업계는 전통 방식으로 도축된 제품에만 ‘고기’라는 용어를 사용해야 한다며 법령 제정을 위한 로비를 시작했다. 만약 세포배양육에 ‘고기’라는 단어를 쓰지 못하게 된다면 대중화를 위한 홍보와 마케팅에 생각보다 많은 비용과 시간이 들 것이고, 성공 여부도 쉽게 예측할 수 없다. 또 축산 관련 기업, 종사자, 거기서 연구비를 받는 대학, 연구자들, 환자가 많아야 발전하는 제약회사, 각종 육가공 업체의 이해관계가 복잡한 업계 특성을 고려하면 세포배양육의 앞날은 평탄치 않다. 한동안 각종 의학 프로그램에 나와서 채식의 이점을 말하던 ‘베지닥터’들이 어느 순간 사라진 것처럼, 그들은 동물을 먹는 것은 당연한 인간의 권리이고 자연의 이치라면서, 동물 학대는 동물 복지 시설로, 환경 오염은 과학적 사후 처리로 감당할 수 있다고 설득할 것이 분명하다.

세포배양육 대량 생산의 길이 열리고 품질, 가격 면에서 상품으로서의 자격을 온전히 갖춘다는 가정하에 과연, 채식주의자들은 세포배양육을 먹을까? 이 또한 각자의 생각과 신념에 따를 것으로 보인다. 건강과 질병 때문에 고기를 못 먹는 소극적인 채식인들은 도살된 동물 고기보다 세포배양육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페스코나, 세미베지테리언, 플랙시테리언 등 성향과 상황에 따라 채식을 선택하는 중간 그룹도 배양육을 먹을 것이다. 그러나 신념에 따라 채식하는 사람이라면 그조차 선택하지 않을 확률이 높다. 비건은 동물로부터 유래된 어떤 것도 먹지도 바르지도 입지도 쓰지도 않는 라이프스타일을 고수하기 때문이다. 고백하건대 비건이 되고 몇 년이 지나면 고기 굽는 냄새조차 역겨워진다. 치즈나 버터 정도를 빼고는 전혀 그립지 않다. 콩고기를 비롯해 시중에 나와 있는 식물성 고기도 잘 먹지 않는데, 하물며 고기와 가장 비슷한 가짜 고기라면 식단에 포함할 생각이 전혀 없다.

어디선가 굶어 죽어가고 있는 인류를 위해 모금 활동을 하는 것도 좋다. 하지만 고기를 덜 먹거나 안 먹는 방법이라면 인간이 공동으로 직면한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 그러려면 채식주의자는 더 많아져야 하며, 채식주의자를 위한 식품은 더 다양해져야 한다. 이번에도 모든 채식주의자의 선택을 받는 데는 실패하겠지만, 지금으로선 세포배양육의 보급을 응원하는 수밖에 없다. 글 / 이향재 (<비건> 편집장)

    에디터
    이재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