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art

EDITOR’S LETTER – 밤은 부드러워

2019.07.22GQ

얼마 전 남산이 보이는 아파트 고층으로 이사했다. 전에 살던 집은 낮은 층이었고 그나마 변변치 않은 거실 창을 열면 길 건너 중학교 담벼락이 보였다. 어차피 집에는 밤에만 있으니까 벽이든 전봇대든 상관없겠지, 하는 마음으로 계약을 했고 실제로도 그랬다. 불평 없이 잘 살았고 창 밖으로 보이는 것들은 곧 잊었다. 언제나 새집을 구할 때 우선 조건은 안전하고 빛이 잘 들고 주차 공간이 있는 집이었다. 창 밖의 풍경은 (그랬다간 일이 커질까 봐) 굳이 고려하지 않았다. 불운한 글자나 재수 없는 넘버, 천박한 조명만 없으면 그럭저럭 다 괜찮았다. 집에서 보이는 특정한 단어나 숫자는 어쩐지 운명으로 이어질 것 같은 맹렬한 기운이 있다. 친구는 거실 창 밖으로 맞은편 아파트의 동 숫자가 정면으로 보이는 집에서 오래 살았다. “41이란 숫자를 굳이 저렇게까지 볼드하게 써야 돼?” 우리끼리 베란다에서 담배를 피울 땐 늘 쑥덕거렸는데 그가 스위스로 이민을 가고 나서 깨달았다. 41은 국제 전화를 할 때 스위스의 국가 번호였다. (그렇지!) 어떤 믿음은 사소한 해프닝으로 더 굳어지는 법이다. 하여튼, 이사한 집은 새집을 보러 다닐 때 세 번째로 본 집이었다. 20년 전에 지은 아파트를 검소한 주인이 간단한 수리도 없이 그대로 산 집이어서 낡고 수수했고, 여럿이 움직인 탓인지 마루에서 삐걱삐걱 소리가 났을 땐 중개인의 안색이 다급하게 바뀌었다. 그가 황망히 다음 집에 전화를 하는 사이, 나는 베란다에 선 채 넋이 완전히 나가 있었다. 창 밖으로 보이는 것들을 보고도 믿을 수 없었다. 흐릿하게 보이는 먼 산, 선명하게 보이는 가까운 산. 무수한 나무와 구름과 잎사귀가 헤엄치듯 흔들리는 이상하고도 아름다운 풍경. 창을 여니 청명한 산 공기가 왈칵 쏟아져 들어왔고, 우우웅 하는 낮고 와일드한 바람 소리가 귀 옆으로 큰 새처럼 지나갔다. 순간, 지체 없이 계약했고 서둘러 이사했다. 짐을 들이고 자세히 살펴보니 예상보다 더 허름한 집이었지만, 시간을 두고 천천히 낡은 나름의 멋이 있었다. 아르데코풍의 거실 등이라든지, 욕실의 흐릿한 알전구 조명, 도금이 벗겨진 둥근 손잡이 같은 것들. 집을 두고 이런 비유는 안 맞겠으나, 순하게 나이 든, 털이 좀 지저분하고 부스스한 강아지처럼 착하고 가엽고 애틋한 감정이 들었다. 이사 후엔 창 밖을 자주 보는 습관이 생겼다. 특히 밤에. 매일 보는 풍경이어도 매번 달랐다. 어둠의 깊이와 밀도에 따라 산은 전혀 다른 형태가 되었고, 나무는 대체로 어떤 사물로, 그리고 매우 드물긴 하지만 가끔은 나무로 보였다. 맨발로 베란다에 서서 타일의 차갑고 매끄러운 감촉을 느끼면서 캄캄한 밤 풍경을 보고 있으면 신경이 부드럽게 풀린다. 낮 동안의 거세고 격한 울분, 미움, 질투, 경멸은 연해지고 때론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분노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분노를 제대로 인식하는 것이란 생각 대신, 그런 품위 없고 어리석은 감정이야말로 버리는 게 상책이란 다소 대책 없는 낙천적 기분마저 든다. 밤에 깨어 있는 시간은 훨씬 늘었지만 술은 덜 마시게 되었고, 주기적으로 불쑥 드는 절망적인 기분도 차츰 줄었다. 며칠 전 밤은 유난히 어두웠다. 산은 검은 천으로 뒤덮인 부정형의 커다란 형상으로 더 가깝고 뚜렷하게 보였고, 그 존재감은 평소와 다르게 싸늘하고 냉정했다. 낮에 읽은 문장을 생각했다. ‘어떤 여름은 너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꾼다.’ 밤의 부드러움에 취해 이렇게 멀리서 서성대기만 하다간 여름은 곧 끝난다.

    에디터
    강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