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한국 농구’는 언제쯤 빛날까?

2019.07.30GQ

농구는 ‘버티컬’의 스포츠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이 농구는 ‘피지컬’이 유리한 스포츠일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1950년대 NBA에서 ‘포인트가드’의 역할을 정의했던 밥 쿠지(Bob Cousy)는 “신장은 잴 수 있어도 심장의 크기는 측정할 수 없다”는 명언을 남겼다. 쿠지는 185센티미터의 작은 키였지만, 어시스트 1위를 여덟 번이나 하고 우승도 여섯 번 차지한 ‘전설’이었다. 앨런 아이버슨도 농구팬들이 평생 잊지 못할 말을 남겼다. “농구는 신장이 아닌 심장으로 한다.” 신발을 벗으면 180센티미터도 채 안 될 작은 키의 아이버슨은 NBA에서 득점왕도 차지하며 그 말을 입증했다. 그리고 오늘날까지도 수많은 ‘단신’들에게 강한 영감을 주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명언’과 달리 우리 농구는 집 밖에만 나가면 힘을 못 쓰고 있다. 신장도 작은데 심장은 더 작아 보일 때가 있다. 몸싸움에 밀리고, 상대 높이 때문에 슛 쏘기를 주저하고, 그렇게 무너지기를 반복한다. 지난 6월, 남자 3×3 농구 대표팀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국제농구연맹(FIBA) 3×3 월드컵에서 예선 탈락의 결과를 맛봤다. 첫 경기에서 김민섭의 신들린 외곽 슛 덕분에 터키를 꺾은 것은 큰 성과였지만, 네덜란드나 미국 등과 만난 다음 경기부터는 신장과 힘, 기술 등 모든 면에서 열세를 드러내며 참패했다.

반대로 지난 7월 8일 막을 내린 19세 이하 농구 월드컵에서는 아프리카의 ‘만년 약체’ 말리가 결승전에 진출해 난리가 났다. 라트비아, 캐나다, 프랑스 등 내로라하는 강팀들을 꺾고 아프리카 대륙 역사상 최초로 월드컵 4강을 통과한 것이다. 결승에서 미국에게 지긴 했지만 누구도 미국을 이기지 못했다고 비난하지 않을 것이다. 말리는 기술이나 전술이 많이 부족했다. 슛은 10번 던져 3번 들어갈까 말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승까지 올랐던 건 운동능력과 근성 덕분이었다. 몇 번이고 공격 리바운드를 걷어내며 상대를 괴롭혔다. 발에 스프링을 단 것처럼 계속 날아들었는데, 그게 원동력이었다. 이 사례만 본다면 농구는 역시 운동능력이나 신장이 중요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게 꼭 필수는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상반된 사례도 있다. 2016년 리우올림픽 여자 농구는 아시아 농구 역사에 획을 그을 만한 대회였다. 평균 177센티미터의 일본 여자대표팀은 벨라루스, 브라질, 프랑스를 꺾고 8강까지 진출했다. 하필 8강에서 ‘영원한 우승 후보’ 미국을 만나 그 질주가 끝나고 말았지만(64-110으로 졌다), ‘아시아는 서양에 안 돼’라는 인식을 바꾸기에는 충분했다. 일본은 ‘월드 클래스’ 호주전에서도 겨우 6점 차로 졌고, 바로 다음 해 열린 아시아 대회에선 호주마저 이기며 우승을 차지했다. 높이를 초월할 만한 개인 기술과 스피드, 조직력 덕분이었다. 일본의 선전을 보면서 배 아파하기도 하고, 부러워하기도 했다. 20년 전만 해도 일본 농구는 몇 수 아래라는 평가를 받았다. ‘한국 농구를 배우고 싶다’며 우리 코치들을 영입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상황이 역전됐다. ‘설마’하는 사이에 수준 차이가 나버린 것이다. 이제는 프로팀끼리 연습 경기를 해도 10번 싸워 5번 이기기도 힘든 상황이 됐다. 심지어 상대가 안 될 거 같아 미안하다는 말까지 나온다.

3×3도 ‘키와 운동능력이 전부는 아니다’라는 것을 보여주는 팀이 있었다. 지난 3×3 월드컵 여자부 우승팀 중국이다. 190센티미터가 넘는 선수는 단 한 명. 180센티미터가 안 되는 선수가 둘이나 있었는데도 우승을 거머쥐었다. 야오밍이 농구협회 회장으로 취임한 이래, 중국은 3×3 농구 특성을 파악하고 집중 육성했다. 반면 우리는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전까지는 3×3 농구를 애들 장난쯤으로 치부했다. 프로 선수 출신이 3×3 농구를 한다는 것에 자존심 상해하기도 했다. 지금은 인식이 바뀌었지만, 바뀐 인식을 뒷받침할 만한 재정 상태나 영업력, 육성 능력이 아직 부족하다.

일본이나 중국 사례를 보면 ‘동양인의 운동능력’ 하나만으로 ‘불가능’을 논하기에는 우리가 너무 빨리 스스로를 한계에 가두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NBA의 제레미 린은 미국에서 나고 자랐지만, 백인이나 흑인의 피가 한 방울도 섞이지 않은 대만인이었다. 밑바닥부터 짚고 올라오면서 ‘피지컬이 모든 어려움의 이유가 아니다’라는 것을 보여줬다.

결국 우리는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해답은 기술이다. 한국 농구는 신장도 작은데 기술도 없다. 20년 전까지만 해도 세계 농구인들이 한국 농구를 말할 때면 ‘슛’을 먼저 꼽았지만, 이제는 그 슛마저 장점이 아니다. 당장 NBA를 보라. 3점 슛이 홍수처럼 콸콸 쏟아진다. 우리는 게을렀던 것이 아니라 무엇이 중요한 기술인지 몰랐고, 어떻게 전수해야 할지 몰랐다. 그리고 그 빈자리를 ‘용병’이라 불리는 외국인 선수에게 기대다 보니 골든 타임을 놓쳤다.

그나마 5년 전부터 기술 훈련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공감대가 젊은 선수들 사이에서 형성되고 있어 다행이다. 또 유튜브로 NBA 농구를 보며 동경해온 유망주들이 ‘바뀐 농구’를 따라 하기 시작했다. 덕분에 스킬 트레이너라는 직군이 탄생해 성공적으로 시장이 형성되었다. 다만 현장의 지도자들이 아직 마음을 열지 못하고 있다. 기술이 부족하니 ‘조직력’의 농구를 추구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들은 이를 ‘한국 농구’라고 부른다. 이런 부분조차도 바뀌어야 한다. ‘한국 농구’는 단 한 번도 아시아에서 빛난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한국 농구’가 아시아를 제패한 것은 1970~1980년대가 마지막이었다. ‘타도 일본’, ‘국위선양’이란 마음가짐이 육체를 지배했던 시기였다. 국가대표라는 자부심을 가질 만한 금전적 보상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 대회에 나가면 항상 예선 전패 탈락이었다. 몇 년에 한 번 나올 (잘 생긴) 재능 덩어리들이 무더기로 쏟아졌던 1990년대에도 중국을 이긴 적이 없다. 그런데 시대가 바뀌었는데도 우리는 여전히 같은 방식으로 선수 개인의 희생을 강요하고 조직력과 체력을 우선시한다. 정작 드리블로 선수 한 명도 제대로 못 뚫는 경기력 때문에 팬들은 한숨만 쉬는데도 말이다. 이런 농구로는 1백 년이 지나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한때 한국 프로농구(KBL) 모 구단의 자문을 맡았던 한 미국인 코치는 “자꾸 ‘한국 농구’를 고집하는데, 그 빌어먹을 ‘한국 농구’는 어떤 농구냐. 그래서 그 농구로 너희는 어디까지 가봤냐”라며 역정을 내기도 했다. 중국이나 일본, 필리핀과 우리를 비교하기도 했다. 그들은 이미 15년 전부터 유망주들의 해외 연수를 주선하고, 기술 코치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체질을 개선해갔다. 선배들의 좋은 사례 덕분에 일본조차 NBA 선수를 2명(유타 와타나베, 루이 하치무라)이나 배출했다.

우리도 바꿔야 한다. 작은 신장을 극복하려면 개인 기술부터 갖춰야 하며, 이를 위해 훈련 문화부터 바꿔야 한다. 개인기 훈련은 즐거움에서 비롯해 자발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우리는 그런 식으로 훈련해본 적이 없다. 연습한 기술을 경기 중에도 코치 눈치 안 보고 과감히 써보고, 안 들어가면 왜 안 됐는지 연구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어야 한다. 프로농구 올스타전을 보면서 팬들은 재미가 없다고 입을 모은다. 선수들도 기술이 없고 즐길 줄 모르기 때문에 재미가 없는 것이다.

팬들로부터 “언제쯤 한국 농구가 다시 존중받을 수 있을까요?”라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나는 “한 세대가 지나야 가능할 것 같다”고 말한다. 앞서 말했듯, 패러다임이 조금씩 바뀌어가고 있다. 미국식으로 훈련하고, ‘팀원’이 되어 영어로 소통하는 것을 어색해하지 않는 유망주들이 등장하고 있다. 당장 2019년 겨울부터는 한국 유망주 이현중이 NCAA(전미 대학 농구) 1부 리그 소속의 데이비슨 대학에서 뛰게 된다. 그의 도전은 바뀌어가는 패러다임의 상징적인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보장된 미래를 포기하고 NBA에서 직영하는 NBA 아카데미에 입단해 훈련과 영어공부, 새 문화 적응에 투자했다. 그리고 그 가능성을 인정받아 마침내 미국 대학에 입학했다. 이러한 도전은 다음 세대에게도 영감을 줄 것이며 문화도 바뀌어갈 것이다. 프로에서도 여름에 자기 돈을 내고 따로 수업을 받는 선수들이 늘고 있다. 이들이 은퇴하고, 제자들을 양성하면서 ‘개인 기술’부터 강조하는 새로운 한국 농구를 만들어갈 때, 우리는 비로소 자신 있게 외칠 수 있을 것이다. 농구는 신장도 중요하지만, 심장으로도 충분히 감동을 줄 수 있다고. 글 / 손대범(<점프볼> 편집장)

    에디터
    이재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