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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프림의 리더, 제임스 제비아와의 인터뷰

2019.08.09GQ

뉴욕의 작은 스케이트 숍에서 시작해 이제는 패션 산업을 완전히 바꿔놓은 슈프림의 창립자 제임스 제비아를 인터뷰했다. 슈프림은 앞으로도 최고의 자리를 지킬 수 있을까? 어떤 전략이 있을까?

GQ 슈프림에서 처음 옷을 만들기 시작했을 때, 어디서 영감을 얻었나? 내가 알기로는 일본에 첫 스토어를 개장했을 때는 품목을 더 늘리는 것을 고려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물론 스케이터들을 위한 의류들, 뉴욕의 스케이터들이 입었던 옷들로부터 영감을 얻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당시에 존재했던 다른 스케이트 브랜드와 슈프림은 완전히 달랐다. 혹시 패션 브랜드를 지향했었나? 헬무트랭이나 랄프로렌으로부터 영향을 받았을까?
제임스 제비아 숍을 찾는 사람들, 즉 스케이터들로부터 영향을 받았던 것 같다. 그들은 늘 멋진 옷을 입고 있었다. 심지어 스케이터의 의류도 아닌 폴로나 구찌의 벨트 혹은 챔피언 같은 브랜드들이었다. 거기에는 스케이트의 요소 뿐만 아니라 뉴욕이란 장소의 감각 또한 담겨 있었다. 그들은 일반적인 의류는 결코 입지 않았다. 그들은 조화롭게 섞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게 바로 우리가 시도해보고 싶었던 것이었다. 적절한 조화. 우리가 정말 좋아한다고 느끼는 것들을 만드는 것이 우리의 목표였다. 몇 종류의 티셔츠부터 스웻셔츠, 카고 팬츠, 백팩까지 점진적으로 진행되었다. 일본을 여행하면서 그들의 놀라운 스타일로부터 영감을 얻기도 하였다. 그리고 런던 여행으로부터 얻은 영감까지 합쳐지면서 우리의 스타일이 조합되기 시작했다. 나는 스케이트 브랜드에서 만들 수 있는 한정적인 고정관념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다. 우리는 단지 우리가 만들어낼 수 있는 한 가장 쿨한 아이템을 만들고 싶었다.

하이엔드 디자이너들에 대해서도 잘 인지하고 있었나?
물론이다. 그건 너무 당연하다. 헬뮤트랭에 대해 잘 알고 있었지만 동시에 후부(FUBU)도 잘 알고 있었다. 뉴욕에 살게 되면 수많은 것들에 대해 인지하게 된다. 하지만, 우리가 유행을 좇고 있다고 느끼지는 않는다. 유행하는 것들에 편승하기보다는 한정적인 고객들에게 만족감을 주는 것에 기쁨을 느낀다.

하이엔드 브랜드와 그렇지 않은 것들의 조화에 대한 인식이 있었는지?
지금처럼 많이 알지는 못했다. 당시에는 잡지나, 거리의 사람들, 특히 개성이 강한 사람들로부터 그러한 조합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처럼 큰 패션 브랜드들이 많지도 않았다. 물론 패션계가 어떻게 흐르는지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우리도 샤넬처럼 만들어야 해”와 같은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말은 꼭 하고 싶다. 당시의 헬무트랭은 개인적으로 정말 중요한 브랜드였다. 헬무트랭은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도 중요한 브랜드였다.

헬뮤트랭의 디자인 접근 방식은 매우 실용주의적이다. 같은 맥락에서 단순하게 “내가 입은 옷 따위에는 관심없어” 보다는 자신의 스타일을 표현할 줄 아는 스케이터들에게 슈프림 또한 실용주의적이다.
물론이다. 그렇지만 실용적인 라인을 만들기 위한 계획을 세우지는 않는다. 우린 그냥 우리에게 맞는 것들을 만들 뿐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일본은 정말로 잘 섞는다. 우리도 그런 옷을 만들어야 한다고 느꼈다. 저 일본 소년은 무엇을 입고 있으며, 무엇을 원할까? 하지만 우리는 뉴욕의 브랜드이기 때문에 일본 브랜드처럼 보이고 싶지 않았다. 우리는 일본의 브랜드를 모방하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었다. 진정성 있는 우리가 가진 진짜 브랜드를 만들고 싶었다. 그게 바로 우리가 정말로 시도했던 것이다. 슈프림은 뉴욕의 거리로부터 가장 큰 영향을 받았다. 애런(A-Ron), 헤롤드 헌터(Harold Hunter), 저스틴 피어스(Justin Pierce) 같은 사람들은 어떻게 조화롭게 믹스하는지 아는 사람들에게 영향을 받았다.

처음 제작했던 피스를 기억하는가?
스웻셔츠를 제외하고, 가장 처음 만든 피스는 카고 팬츠이었다. 재밌게도 우리가 보워리 스토어의 벽화 작업을 하고 있을 때, 푸투라(Futura)가 들어와 물었다. “이 팬츠 기억해?”라고.

그가 그 팬츠를 입고 있었다고? 와우.
그렇다. 그가 낡은 옷장을 뒤져서 바지를 찾았다고 이야기하면서. 호피 무늬로 된 카고 형태의 바지였다.

패션계에서 슈프림이 남기고 있는 가장 놀라운 족적 중 하나는 일관성 있는 디자인과 품질을 모두 챙기고 있다는 점이다. 에르메스나 샤넬 같은 엘리트 럭셔리 브랜드를 제외하고 다른 브랜드에서는 거의 볼 수 없는 드문 특징이다. 대부분의 브랜드가 결국은 변덕스러운 패션 마켓에 굴복하는 상황 속에서 슈프림은 어떻게 계속해서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사실 그렇지는 않다. [웃음] 디자인과 품질 모두 챙기는 브랜드에는 폴로도 있다. 그리고 아페쎄나 아네스 베 또한 초창기 때부터 늘 일관성을 유지해온 브랜드이다. 그들은 모두 자신들만의 관점을 지녔다. 남들이 한다고 따라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만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그런 관점 말이다. 나는 그러한 일관성을 지닌 브랜드가 멋지다고 생각한다. 스투시도 역시 그 카테고리에 있다고 생각한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우리가 처음 시작했을 무렵, 헬무트랭이나 샤넬을 제외하고는 그런 브랜드들이 많지 않았다. 루이비통은 아직 의류 사업을 제대로 시작하지 않았을 무렵이기도 하다. 의류 사업을 하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아마 옛 시대의 신사들을 위한 옷들 뿐이었을 것이다. 반면 샤넬은 루이비통이랑은 완벽하게 달랐다. 꼼데가르송도 마찬가지고. 그들로부터 영감을 기대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우리는 당시의 럭셔리 브랜드가 어떤 것들을 만들고 있었는지 아주 잘 인지하고 있었다.

당신이 언급했던 브랜드들은 트렌드를 따르기보다는 패션 세계에서 섣불리 도전하지 않는 영역을 발견하고, 그 구간을 메꾸려는 시도를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렇다. 패션계에는 무언가 놓치고 지나치는 것들이 존재한다. 개인적으로는 현재도 마찬가지라고 느낀다. 처음 우리의 스토어를 열었을 무렵, 만약 우리가 사고 싶을 만큼 멋진 아이템들이 시장에 충분히 존재했다면, 우리에게는 무언가 멋진 제품을 만들고 싶은 욕구가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뭔가를 만들려는 시도도 하지 않았을 테고, 결국 어떠한 옷도 만들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당시 우리는 이렇게 느꼈었다. “좋아, 이 뉴욕의 패션에도 무언가 빠진 게 있어”라고. 대상은 그 어느 지역도 아니라 오로지 뉴욕이었다. 뉴욕의 샵들을 드나드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뉴욕에 없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했다. 패션뿐만 아니라 샵에도 뭔가 없는 것들이 보였다. 스케이트 샵도 마찬가지였다. 없는 게 무엇인지 따로 시간을 할애해서 생각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본능적으로 감지할 수 있었다. 당시 LA도 상황은 비슷했지만, 그곳에는 ‘X-Large’가 있었다. 그들이 그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었다. 그들이 처음 스토어를 오픈했을 때, ‘Check Your Head’시대를 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들은 벤 데이비스(Ben Davis)와 함께 시작했으며 아주 훌륭했고 아주 멋졌다.

제품의 품질의 측면에서, 초기에는 학습 곡선의 경사가 가팔랐는지?
스웻셔츠의 경우, 그 당시에는 리(Lee)나 챔피언(Champion)의 품질이 좋았기 때문에, 우리도 그 정도의 품질에 맞춰서 만들어야 했다. 당시 오네이타(Oneita)는 심플한 티셔츠조차 품질이 좋았다. 바로 그들의 품질이 우리의 시작점이었다. 이미 존재하고 있는 최상의 품질의 의류들의 기준에 맞춰서 우리도 만들어내야만 했다. 폴로에서 만들법한 품질의 옷을 만들어야만 했다. 뉴욕의 젊은이들이 만족할 만한 퀄리티의 옷을 만들어내야만 했다. 우리 또한 그들과 마찬가지로 당시에는 좋은 품질의 제품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많은 옷을 사지 않았었다. 많은 스케이트 브랜드가 있었지만, 품질이 좋지 못했다. 원단도 엉망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뉴욕의 젊은이들이 당시에 입었던 폴로나 노티카, 칼하트, 리바이스와 같은 브랜드처럼 좋은 품질의 옷을 만들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당시에 스케이터들의 지갑 사정에 대해서는 잘 파악하고 있었는지?
물론이다. 지금도 그 점에 대해서는 예전만큼이나 잘 인지하고 있다. 우리는 할 수 있는 한 최상의 제품을 만들려고 노력하며, 동시에 최대한 합리적인 가격에 맞추려고 한다. 우리는 $600짜리 셔츠를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100 정도를 목표로 잡았다. 그 정도의 금액이 퀄리티를 높이면서 가격도 합리적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리는 도매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정도의 가격이 적절했다. 패션 브랜드뿐만 아니라 존재하는 최고의 브랜드들처럼 사람들이 오랫동안 입을 수 있는 품질의 제품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스케이터들은 싸구려 옷들을 입고 다니기 때문에 가격이 중요하다.
그들뿐만 아니라 일반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처음 사업을 시작했을 무렵에 사람들은 옷에 많은 돈을 쓰지 않았다. 나는 당시의 사람들이 자켓을 10벌이나 가지고 있어야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요즘 사람들은 예전에 비해 더 많은 옷을 산다.

새로운 컬렉션을 시작하기에 앞서 인하우스 디자인의 추구 방향에는 어떠한 것들이 있는지? 컬렉션의 많은 부분이 80년대와 90년대 빈티지 스포츠웨어 디자인으로부터 영감을 받았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혹은 슈프림의 자연스러운 감각에 의해 탄생된 기본적이고 클래식한 피스들이 우연찮게 빈티지 스포츠웨어의 맥락을 이어가게 된 것일까?
우리는 90년대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처음 슈프림 스토어를 오픈한 시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이유 외에도, 90년대가 옷이나 음악, 예술 등 많은 분야에서 황금기였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늘 90년대로부터 영감을 얻는다. 확실히 우리의 기반은 90년대였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90년대에는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것들을 만들어냈다. 예를 들어 메이시스 백화점에 가면, 폴로나 노티카, 페리 엘리스 등 많은 브랜드들이 서로 비슷했다. 우리는 90년대로부터 많은 영감을 얻었지만 그 외에 여러 시대나 장소로부터 영감을 받았다. 우리는 지금도 여전히 많은 것들로부터 영감을 얻고 있지만 지금 하고 있는 것들로부터 새로운 이미지를 보여주려는 시도를 하지 않는다. 우리는 늘 우리의 방식으로 나아간다.

나는 늘 슈프림 스토어의 디테일에 놀란다. 예를 들어 완벽하게 잘 접힌 티셔츠 것들 말이다. 그러한 방식은 고객에 예의를 갖추는 것 외에도 그 가치를 끌어올리면서 제품을 소개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슈프림은 도매를 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부분을 직접 제어할 수이다. 제품의 디자인부터 제조까지 동일한 세심함이 적용되어 있을 것 같다. 도매를 하지 않는 결정은 늘 당신의 비전 중 일부였을까? 슈프림의 이러한 감각은 어떻게 개발되었다고 생각하는가? 혹은 슈프림을 이러한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이끈 주요한 영향이나 영감이 있다면 어떤 것들이 있을까?
이러한 방식을 추구하는 가장 큰 이유는 고객을 존중하는 마음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의 방식이 다른 어떠한 브랜드들에 비해 부족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여전히 스케이트 브랜드지만, 그렇다고 우리의 제품을 잘 표현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가 아니다. 스케이트 브랜드라고 너저분하게 진열할 필요는 없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스케이트 보드 브랜드에 가지고 있는 인식이 그렇겠지만, 우리는 어떻게 하면 더 잘 진열하고, 표현하고, 존중할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한다. 스테이플스(Staples, 미국 대형문구점)에 들어가면, 포스트잇이 보기 좋게 잘 진열되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바니스 백화점에 들어가면, 역시 모든 제품들이 멋지게 진열된 모습을 볼 수 있다. 스케이트 브랜드는 왜 그들처럼 멋지게 진열하면 안 될까? 제품 진열은 샵에서 해야 하는 일들 중 하나이다. 우리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고객들을 실망시킬 이유가 없다. 나는 늘 우리라고 물건을 멋지게 만들지 못하라는 법이 어디 있을까? 물건을 멋진 방식으로 진열하고 소개하지 않을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멋진 포토그래퍼를 고용하지 않을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이러한 물음을 품고 있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스케이트 브랜드에 대한 고정관념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처음 우리의 브랜드를 접했을 때의 반응은 이랬다. ‘흠, 이건 스케이트 브랜드 답지 못하군. 스케이트 브랜드라면 꾀죄죄하거나 후줄근 해야 하지 않아? 스케이트 브랜드에게 정돈된 느낌은 어울리지 않아.’ 왜 티셔츠가 정말 멋질 수는 없을까? 왜 청바지가 정말 멋질 순 없을까? 왜 샵이 정말 멋질 순 없을까? 나의 이러한 태도는 일본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니고(Nigo)는 베이프(A Bathing Ape)를 통해 믿을 수 없을 만한 업적을 남겼다. 그는 모든 것을 한 단계 위로 끌어올렸다. 그는 고어텍스 자켓을 만들 때, 정말 최고의 지퍼를 사용한다.

당신은 베이프나 네이버후드 같은 브랜드가 슈프림의 제품을 업그레이드 시켰다고 말했다. 하지만 슈프림은 그 브랜드 외에도 우리가 앞서 언급했던 헬무트랭이나 랄프로렌 혹은 좀 더 아방가르드한 꼼데가르송이나 언더커버 같은 브랜드가 지배하고 있는 패션계에서도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어떤 면에서는 스케이트 브랜드가 패션 브랜드와 어깨를 견주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도 하다. 스케이트ㅍ보드는 정밀한 운동이자 스타일이자 표현이다. 당신은 슈프림이라는 브랜드를 어느 카테고리에 넣어야 할지 고민하는가? 슈프림은 완벽하게 변칙적인 브랜드이다. 당신은 슈프림을 패션 브랜드 혹은 스케이트 브랜드 아니면 아예 전혀 다른 카테고리에 넣을지 선택해야 한다고 느낀 적이 있는가?
그런 걸 선택해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단지 우리가 진화했다고 느낀다. 우리는 젊은 사람들을 위한 것들을 만든다. 그리고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서 만들어내려고 노력한다. 사람들이 옷을 입는 방식, 그들이 듣는 음악 등 모든 것들이 진화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도 노력하고 진화하고 있다. 만약 20년 전에 우리의 샵에서 모피 코트를 팔았다면, 스케이터들이 쇼윈도우를 박살냈을 것이다. 하지만 2013년의 젊은 사람들과 스케이터들은 좀 더 개방적인 마인드를 지녔다. 우리는 그 점에 대해 심사숙고하고, 지금의 젊은 사람들을 위한 물건을 만드려고 노력한다. 과거에 갇혀있지 않은 채, 우리만의 방식으로 진화할 뿐이다. 우리는 쉬운 방식을 선택하는 타입은 아니다.

오늘날의 스케이터들이 스타일 면에서 개방적으로 변한 것에 슈프림이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나?
물론이다. 하지만 우리뿐만이 아니라 마크 곤잘레스(Marz Gonzales) 같은 스케이터의 옷 입는 방식도 큰 영향을 미쳤다. 션 파블로(Sean Pablo)도 역시 마찬가지다. 이 세상에는 그들처럼 아주 독립적이고 기회를 잘 잡는 스케이터들이 있다. 스케이트 보드의 전체 역사를 살펴보면, 자신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고수하는 여러 스케이터들이 존재했다. 그들은 마치 비스티 보이즈(Beasti1e Boys)처럼 남들과는 전혀 달랐다. 이전부터 늘 몇몇 스케이터들은 기존의 것을 탈피하고 원하는 방식대로 옷을 입었다. 스케이터와는 전혀 관계없지만 퍼렐 윌리엄스도 큰 영향을 미쳤다고 느낀다. 많은 사람들이 힙합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에 맞는 복장이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MTV 뮤직 어워즈에서의 퍼렐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그는 카모 무늬의 카고 반바지와 티셔츠를 입은 채 트러커 모자를 썼다. 그는 모든 힙합퍼들이 같은 방식으로 옷을 입을 때, 여전히 자신이 원하는 방식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을 모든 사람들에게 보여주었다. 그는 큰 영향력을 지닌 사람이다.

슈프림은 초기부터 패션계의 이목을 끌기 시작했다. 1995년 보그의 기사 중에 슈프림 샵과 샤넬의 부띠끄를 비교하는 글이 있다. 루이비통이나 고티에(Gaultier), 꼼데가르송 같은 몇몇 브랜드는 최근 슈프림과 직접적인 방식의 콜라보레이션에 긍정적인 태도를 보여주었다. 그 이전에는 톰브라운이나 아페쎄, 아담 키멜과 콜라보레이션을 했다. 당신이 느끼기에 패션계에서 브랜드들이 점점 협력적으로 바뀌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오늘날에는 가능하지만 20년 전이었다면 어려웠을 법한 것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만약 25년 전에 루이비통과 콜라보레이션을 할 수 있었더라면, 진작에 했었을 것이다. 샤넬도 마찬가지고. 우리가 뭔가를 하려고 할 때, 그 대상은 젊은 사람들이라고 느낀다. 사람들이 이전에는 알지 못했거나 생각조차 해보지 못했던 것들을 하면서 그들의 마음을 연다. 루 리드(Lou Reed)와 함께 작업했을 때처럼 말이다. 그 작업은 그냥 멋지다는 말 밖에 할 말이 없다. 잘 모를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엄청 멋진 작업이었다. 과거에 할 수 있었던 여러 가지 콜라보레이션들도 있지만, 어쨌든 지금 루이비통과 함께 작업했다. 그리고 안티 히어로(Anti Hero)나 트래셔(Thrasher)와도 함께 작업 중이다. 무엇보다도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생각한다. 그 점이 중요하다. 이미 과거에 존재했던 작업이라면 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이처럼 단순하다. 누군가 먼저 했다거나, 우리가 선구자가 아니라면 하지 않는다. 또 사람들을 흥분시킬만한 것이 아니라면 역시 하려고 하지 않는다.

슈프림의 주간 드랍 형식의 모델은 패션계를 완전히 술렁거리게 만들었다. 슈프림의 모델을 모방하는 크고 작은 브랜드의 모습을 보면 정말 놀랍고 흥미롭다. 이러한 접근 방식이 가능한 것은 슈프림이 정말로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만들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알맹이 빠진 허울뿐이라면 굉장히 비효율적인 모델이다. 그 모델의 의도에 대해 말해줄 수 있을까? 슈프림의 컬렉션은 이러한 모델에 맞추기 위해 특별히 고안되는지?
짧게 대답하자면, 답은 ‘아니오’다. 어떠한 전략적인 계획이 있었던 것이 아니다. 주간 드랍 모델은 그저 필요에 의해 탄생되었다. 우리는 불확실성을 가지고 옷을 만들지 않았다. 즉 시즌에 맞는 아이템을 주문할 수 있도록 고안된 것이다. 예를 들어, 티셔츠와 스웻셔츠가 팔리지 않으면 재고로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더 적은 양을 제작했다. 만약 정말 멋진 아이템이라면 완판되었을 것이다. 그러면 우리에게는 팔 제품이 남아있지를 않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같은 제품을 또 제작할지 여부를 물어보기보다는 그 옷이 멋졌다면 다른 또 다른 멋진 옷을 만들어 대체해주기로 정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이었다. 슈프림 샵은 베이직 아이템들을 두 달 동안 보관하면서 판매하는 공간이 아니다. 몇 개월 동안 같은 제품을 진열해놓은 브랜드가 되기를 원치 않았다. 우리가 하는 일에는 즐거움이 있어야만 했다. 우리는 기본 아이템을 만드는 회사가 되고 싶지 않았다. 늘 사람들이 정말로 사랑할 수 있는 그런 아이템을 만들고 싶었다. 잘 팔리는 스테디셀러도 있겠지만, 어떤 제품이 성공할지는 미리 알 수 없다. 당시에는 프레스나 인스타그램 같은 홍보 수단이 없었다. 몇몇 사람들이 특정 제품이 멋지다고 말해주면, 우리는 제작하기 시작한다. 단, 확실성이나 자금이 넉넉하지 않았기 때문에 재고를 남기지 않기 위해 소량만 제작했다. 그러니까 이 모델이 의도적인 것은 아니었다. 그러다 여름 제품이 3월에 모두 판매되면, 우리에게는 4월부터 5월, 6월, 7월까지 판매할 제품이 하나도 남지 않게 되기도 한다. 그럴 때 사람들은 샵에 들어와서 이런 말을 남기곤 한다. “최악이군. 왜 사람들이 슈프림에 대해서 떠드는 거야?” 우리는 뭐라고 답변할 수 있을까? “2주 전에 방문했다면, 정말 멋진 샵을 볼 수 있을 거예요.”

시간이 지날수록, 서브컬처가 주류가 되고 있으며, 개인적으로 진정성이 담긴 물건에 의존하는 브랜드들에게는 악영향을 미칠 수도 있을 거라고 느낀다. 하지만 이러한 현상이 슈프림에게는 부정적으로 영향을 미치지 않고 있는 것 같다. 유명세와 성공의 부침이 심한 세상 속에서 당신은 슈프림을 지키기 위해 어떤 계산을 하고 있을까?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생각했을 때 최고라고 생각하는 것을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 이후부터는 고객의 선택에 달려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사람들의 취향과 스타일이 철저하게 변해버린다면, 솔직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우리가 진화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우리는 그저 늘 하던 것을 지속하는 수밖에 없다. 그건 바로 도전하고 개방적인 태도를 지키고, 최선을 다해서 세상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인지하며, 진정성을 지키면서 오늘날의 세대에게 필요한 최상의 제품을 만드는 것이다. 그걸 하지 못한다면, 상황은 어려워질 수도 있다. 수많은 브랜드가 여러 상황을 거치며 누군가는 그곳으로부터 빠져나오고 다른 누군가는 그러지 못했다. 우리는 늘 한결같은 태도를 유지할 것이며, 변하지 않을 것이다.

25년 동안 슈프림을 운영하면서 무엇이 가장 자랑스러운지?
여전히 슈프림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 오랜 시간 동안 많은 사람들과 함께 일할 수 있다는 사실.

    에디터
    글 / 노아 존슨(Noah Johnson)
    사진
    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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