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시대의 사랑엔 원본이 없다. 우리는 단지 어떤 것에 끝없이 가까워지려고, 당신 자신의 것이 되려고 노력할 뿐이다.
“난 당신 것이지만 당신 것이 아니기도 해요.” 영화 <그녀>에서 사만다는 테오도르에게 말한다. 인공지능 운영체제인 사만다는 테오도르의 곁에 있는 동시에 도처에 있었고, 641명을 사랑하고 있었다.
말하자면 현 시대의 사랑은 원본이 없다. 대량 생산된다. 모두가 가질 수 있다. 와이파이가 터지고 디바이스만 지니고 있다면, 누구나 어떤 문화 자본에도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뜻이다. 원하는 노래를 듣고, 영화와 드라마를 보고, 책을 읽는다. 가보지 못하고 가지지 못한 것들을 간접 체험한다. 보고, 빌리고, 구독하며, 가지지 않고도 가진다. 스트리밍 플랫폼조차 네 명이 한 아이디를 나눠 쓰는 세상이다. 그러니까 이제 오리지널 한정판 같은 것을 서랍 속에 소중히 간직하는 시대는 지났고, 현대인에겐 매대와 플랫폼 가득 넘쳐나는 상품의 홍수 속에서 문화 자본을, 혹은 물성을 지닌 재화들을 나눠 갖는 일만이 남았다. 그렇다면 우리가 구매하는 것은 재화가 아닌 시간이다. 정확히는, 그 재화가 내게 머무는 시간.
1개월간 구독하시겠습니까? 1년간 대여하시겠습니까? 1시간 동안 타시겠습니까? 현대인의 소비는 시간 단위로 이루어진다. 계약서에 사인을 하는 순간, 그 시간만큼 그것은 내 것이다. 한시적인 독점권이라는 의미에선 어쩌면 연애와도 비슷하다. 내가 필요로 할 때 곁에 있어주지만 영영 내 것은 아니다. 연애하는 사람이라면 세 번째 연애 2년, 네 번째 연애 6개월 차, 대략 이 정도의 리듬으로 삶을 쪼개어 헤아리는 셈법에 익숙할 거다. 결혼이란 제도권의 규율마저 흐릿해지고 있는 지금, 이 정도의 온기와 멜랑콜리면 삶을 지속할 수 있을 것 같다. 어느 것 하나 내 것이 아니더라도, 집과 차, 정수기, LED 마스크에 각종 콘텐츠 플랫폼까지 ‘공유’ 혹은 ‘구독 서비스’라는 자본주의의 새로운 공공선 안에서 그럭저럭 한 몸 누일 수 있을 것 같다는 뜻이다.
한 가지 의문이 발생한다. 어떤 것을 온전히 나만의 것으로 소유하거나 체험한다는 것은 뭔가? 좋아하는 미술 작품을 갤러리에서 감상하는 것과 홈페이지의 고화질 이미지로 감상하는 것이, 좋아하는 밴드의 라이브 실황 중계를 유튜브로 보는 것과 공연장에서 그 밴드의 노래를 듣는 것이 본질적으로 다른가? VR 기술마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시대에? 해외의 공연장까지 갈 티켓값이, 한국에 정식 발매되지 않은 한정판 앨범을 손에 넣을 돈과 에너지가 없어도 현대인은 어떤 밴드의 음악이든 누릴 수 있다. 현실 세계에서 발 딛고 있는 계급과 무관하게, 우리의 지식과 식견은 높아질 수 있다. 풍부한 라이브러리를 갖추며 똑똑해질 수도, 괜찮은 미감을 가질 수도, 아주 많은 사랑을 할 수도 있다. 멋진 신세계 아닌가? (물론 당신이 가짜 뉴스와 가짜 지식을 가려낼 수 있는 변별력을 갖췄다는 전제하에.)
하지만 여기서 비극이 발생한다. 공유될 수 없는 재화 역시 존재하기 때문이다. 정보와 욕망이 넘쳐흐르는 시대에, 누구든 하이패션 브랜드의 새 컬렉션도, <미쉐린 가이드>에 오른 파인다이닝 레스토랑도, 세계의 고급 휴양지도, 심지어 셀럽과 ‘금수저’들의 라이프스타일, 그러니까 욕실 트레이 위 방향제까지 ‘인스타라이브’로 ‘포인트 오브 뷰’ 시점에서 손에 잡힐 듯 속속들이 알 수 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정작 ‘향유’될 수는 없다는 데 현대인의 비극이 있다. 박탈감이라고 부르는 그것은, 잘 알기에 더 깊게 발생한다. 정보의 공유, 욕망의 공유, 그리고 박탈감은 신자유주의의 자본주의 체제를 굴러가게 하는 힘이다. 그 간극은 ‘미니멀리즘’이나 ‘무소유’ 같은 선문답으로도 메워지지 않는다. 모르는 게 약이라고 하지만, 이 시대에는 모르는 사람이 없다. 삼성전자 부회장이 쓰는 립밤 정보마저 아는 마당이다.
영영 해갈될 수 없는 비극이 내장된 체제 안에서, 우리의 사랑이 대량 생산되었다고 슬퍼할 필요는 없다. 그것은 슬픔의 몫이 아니다. 테오도르가 사만다의 641번째 연인이라 한들 그게 가짜는 아니다. 내가 당신의 여섯 번째 연인이며 고작 3개월을 만났다고 한들 그게 가짜는 아니다. 적어도 시간에 대해서만큼은 그렇다. 빌려주는 우산을 아무도 반납하지 않던 시절은 지났고, 우리는 공공선에 대해 합의를 봤으며, 대여료와 구독료로 이루어진 안온한 세상에서 행복을 추구하면 된다. 그러니 기억하자. 원본은 없다. 건널 수 없는 간극과 선망, 모사의 영원한 회귀 속에서 우리는 단지 어떤 것에 끝없이 가까워지려고, 당신의 것이자 당신의 것이 아니지만, 당신 자신의 것이 되려고 노력할 뿐이다.
- 에디터
- 이예지
- 포토그래퍼
- 김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