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쉐론 콘스탄틴은 누군가의 시간을 의미 있게 직조해내는 브랜드다. 아티스트 세 명이 시간의 의미를 찾는 작업에 동참했다.
바쉐론 콘스탄틴이 작년부터 내세운 캠페인 ‘One of Not Many’는 겸손하고 고상하다. 자극적이고 자아도취적인 표어가 횡행하는 세상에서 바쉐론 콘스탄틴이 나직이 건네는 구호는 ‘흔치 않은 것 중 하나’다. ‘세계 최고’ 같은 무의미한 ‘스웨그’가 아니라, 사실에 근거한 담담한 사실 전달이다. 실제로 바쉐론 콘스탄틴은 많은 양의 시계를 생산하지 않는다. 아름다운 시계에는 정교한 세공이 필요하고, 세공에는 기술과 시간이 필수적이다. 그들은 시계를 한 점 더 만드는 시간을 아껴 백자처럼 고고한 시계를 완성한다. ‘예술’이라고 호들갑스럽게 추켜세우긴 싫지만, 이 단어를 빼면 바쉐론 콘스탄틴을 제대로 설명할 방법이 없다. 홍콩에서 아티스트와 협업한 행사를 연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꽤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 건 이런 이유에서다.
이 작업에 참여한 아티스트는 세 명이다. 홍콩 출신의 건축가이자 사진가인 케빈 막, 대만 출신의 비주얼 아티스트 옌 포춘, 그리고 한국에선 라이프스타일 디자이너 양태오가 참여했다. 먼저 케빈 막은 자신의 장기를 살려 홍콩의 풍경을 사진에 담았다. 그렇게 찍은 몇 장의 사진으로 전시장을 장식했는데, 입구에는 홍콩의 전경 사진을 파노라마로 펼쳐놓고 내부로 들어갈수록 잔잔한 일상 사진을 배치해 마치 도시의 일상으로 빨려드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그리고 그 사진들 앞으로 오버시즈 컬렉션을 전시해, 시계의 묵묵하고 강인한 물성과 홍콩의 역동적인 거리 풍경을 기막히게 오버랩 시켰다. 옌 포춘은 바쉐론 콘스탄틴의 피프티식스 컬렉션을 테마로 한 멀티미디어 작품을 전시했다. 그는 시간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을 도시의 템포라는 시청각으로 구체화했다. 이에 따라 도시의 일상을 찍은 영상을 각기 다른 템포로 시계 위에 투사해 시간의 콜라주를 연출했다. 패트리모니 컬렉션의 순수성과 클래식함을 표현할 방법을 찾던 디자이너 양태오는 결국 석탑이라는 묘안을 떠올렸다. 4세기 이후 무수히 제작돼 지금껏 그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석탑에서 영원성을 엿본 것이다. 그는 3D 프린트로 구현한 작고 뽀얀 ‘플라스틱 석탑’ 안으로 패트리모니 제품들을 넣어 비밀스러운 유적 안에 숨겨진 보물을 감상하는 듯한 느낌을 선사했다.
이 행사에서는 올해 SIHH에 등장한 트래디셔널 트윈 비트 퍼페추얼 캘린더를 아시아 최초로 공개하기도 했다. 이 시계는 시간당 36,000회(5Hz) 진동하게 할 수도, 시간당 8,640회(1.2Hz)로 진동수를 떨어뜨릴 수도 있다. 전자처럼 하이 비트를 활용하면 초침이 유영하듯 움직이고, 비트를 떨어뜨리면 저장된 동력으로 최대 65일까지 사용할 수 있다. 이렇게 긴 파워 리저브는 시간의 영속성을 추구하는 퍼페추얼 캘린더 기능과도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기술 자체도 놀랍지만 그러면서도 외형을 희생시키지 않은 고상한 안목이 더 인상적이다. 실제로 이 시계의 케이스 직경은 42밀리미터, 두께도 12.3밀리미터에 불과하다. ‘One of Not Many’를 이만큼 단적으로 보여주는 시계가 또 있을까? 이 모델이 세 명의 아티스트 작품 사이에서도 전혀 주눅들지 않은 이유다.
- 에디터
- 임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