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할리우드엔 몇 번의 지각변동이 있었다. 흑인 히어로 영화 <블랙팬서>가 박스오피스를 흔들었고,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이 아시안 무브먼트를 이끌었다. 그리고 1년. 더 큰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3대 제임스 본드를 연기한 로저 무어는 2015년 이런 말을 했다. “게이나 레이디 본드가 탄생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건 본드가 아니다. 본드를 이성애자 백인 남성으로 견지하는 것은 인종차별적인 것이 아니라 그저 캐릭터의 근원을 지키는 것이다.” 그러나 세상은 로저 무어의 생각보다 빠르게 변하는 중이다. 흑인 영국 배우 러샤나 린치가 <본드 25>에서 더블오(00) 살인면허를 부여받는다는 보도가 나왔다. <본드 25>는 6대 제임스 본드 대니얼 크레이그의 마지막 007 출연작이다. 영화엔 대니얼 크레이그가 MI6(영국비밀정보부)를 은퇴하며 러샤나 린치가 맡은 요원 노미에게 살인면허를 넘겨주는 장면이 등장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예상대로다. 인터넷 세상이 발칵 뒤집혔다.
1대 제임스 본드 숀 코너리를 시작으로 반세기 넘게 007은 백인 남성의 전유물로 맹위를 떨쳐왔다. 많은 남성이 반짝이는 오메가(과거엔 롤렉스)를 손목에 차고, 애마인 애스턴 마틴으로 대륙을 누비고, 관능적인 미녀와 호텔도 가고, 마티니도 실컷 즐기는 본드의 삶을 욕망했다. 남성 판타지에 발 딛고 선 세계에서 여성의 입지는 좁았다. ‘본드 걸’로 대변되는 007의 여성 캐릭터는 성을 상품화하는 전형으로 비판받았다. 본드와 잠자리를 가진 상당수의 본드 걸이 죽음이란 기구한 팔자로 생을 마감함으로써, 한 여자에게 오래 머무르지 않는 본드의 바람기에 명분을 부여하기도 했다. 그랬던 본드가 피부색은 물론 성별을 확장한다? 놀라움을 넘어선 파격이고, 파격을 넘어선 사건이다. 다문화주의와 페미니즘에 힘을 실은 007의 변화는 현재 세계 영화계의 흐름을 읽게 하는 거대한 예시다.
영국 첩보 드라마 <킬링 이브>는 한국계 배우 샌드라 오가 주연을 맡은 작품이다. 아시아계 여성 배우가 첩보 스릴러에서 단독 주연을 맡은 첫 사례다. 그동안 수많은 첩보 스릴러에서 여성은 남자 주인공의 조력자이거나, 무참하게 살해되는 희생자이거나, 전문성과는 상관없이 러브 라인을 담당하는 경우가 많았다. <킬링 이브>는 이 모든 걸 전복시킨다. 사이코패스 암살자도, 이를 뒤쫓는 정보요원도 여자다. 두 인물 사이에 흐르는 사랑인지 증오인지 모를 미묘한 긴장감을 타고 <킬링 이브>는 새로운 스타일의 첩보물로 호평받았다. 샌드라 오가 맡은 역할은 정보요원 이브 폴라스트리. 시나리오를 처음 읽을 때 샌드라 오는 자신이 제안받은 캐릭터가 정보요원 이브인 줄 차마 상상하지 못하고 에이전트에 이렇게 물었단다. “제 역할이 뭐죠?” 이브에게 섬세한 매력을 입힌 샌드라 오는 이 역할로 올해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아시아계 배우로는 38년 만의 일이다.
할리우드의 다양성 바람을 이끄는 ‘프런트 러너(선두주자)’는 디즈니다. 과거 디즈니 작품은 가부장작이고 백인 우월주의 가치관을 주입하는 ‘보수적 세계관’의 첨병처럼 여겨졌다. 배우 키이라 나이틀리는 “어린 딸에게 디즈니 애니메이션 <신데렐라>와 <인어공주>를 금지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수동적인 공주 캐릭터가 여성에 대한 그릇된 인식을 심어줄 것을 우려해서다. 비판에 대처하는 디즈니의 자세는 사뭇 능동적이다. 디즈니는 최근 고전 장편 애니메이션의 실사화 리메이크를 통해 시대에 뒤처진 낡은 요소들을 빠르게 수정하는 중이다. 실사 버전 <알라딘>엔 인도계 배우 나오미 스콧이 자스민 공주로 발탁, 원작보다 한층 더 주체적으로 변한 여성상을 선보였다. 내년 개봉할 <뮬란> 실사판엔 중국 배우 유역비가 올라탔다. 그리고 지난 7월 발표된 <인어공주> 캐스팅은 디즈니의 거침없는 다인종 끌어안기 행보에 화룡점정을 찍었다. 붉은 머리에 백인으로 설정된 1989년 애니메이션 에리얼의 설정을 뒤집고 흑인 가수 겸 배우 할리 베일리가 파격 캐스팅된 것이다.
일련의 변화를 대하는 여론이 호의적인 것만은 아니다. 러샤나 린치의 ‘007’ 보도 후 반평생 넘게 이어져 온 ‘007’ 유산이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PC(Political Correctness), 즉 정치적 올바름 강박 때문에 변질될 위기에 놓였다고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흑인 인어공주’에 대한 팬들의 저항감은 더 과격하다. SNS에서는 #NotMyAriel(나의 애리얼은 이렇지 않아)이라는 해시태그 운동까지 벌어졌다. ‘블랙워싱’이라 빗댄 표현도 눈에 띈다. 유색인종 캐릭터를 할리우드가 억지로 백인화시켰다는 ‘화이트워싱’을 뒤집은 개념이다. 많은 팬이 디즈니가 사회적 분위기에 휩쓸려 원작을 훼손했다고 생각한다. 있을 수 있는 불만이다. 그러나 여기엔 백인 중심 서사에 깊게 감정 이입해온 고정관념의 개입이 없을까. 백인들이 주요 캐릭터를 장악한 TV를 보고 자란 세대의 무의식 속에 공주 이미지란 무릇 ‘흰 피부’일 것이다. 할리 베일리의 <인어공주>는 미디어가 왜곡해온 인종주의적 편견을 부수는 전환점일 수 있다.
일부 팬들은 ‘여성 007’이나 ‘흑인 인어공주’를 반대한다는 이유로 ‘인종차별주의자’라고 몰아가는 분위기가 불편하다고 토로한다. 어느 정도 동의하는 부분이다. 원작이 존재하거나, 막강한 팬덤을 지닌 작품의 경우 캐스팅 논란은 통과의례 같은 면이 있기 때문이다. 대니얼 크레이그 역시 007에 처음 캐스팅됐을 당시 극성팬들로부터 엄청난 반대에 부딪힌 걸 기억하는가. 기존 007과 달리, ‘금발에 파란 눈’을 가졌다는 이유에서다. 캐릭터가 여성이라서, 흑인이라서 ‘무조건 싫다’고 하는 진짜 차별주의자의 의견과 원작과 유사한 이미지의 캐릭터를 원하는 대중의 의견은 구분해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그것이 또 다른 편견을 낳고 있다면 말이다.
007과 인어공주에 불거지고 있는 논란의 배경에는 할리우드의 창의력 고갈도 어느 정도 자리한다. 되돌아보자. 만화나 소설을 원안으로 하지 않은 오리지널 시나리오 작품을 최근에 얼마나 봤는가. 리메이크, 리부트, 시퀄, 프리퀄은 또 왜 이렇게 넘쳐나나. 지난 몇 년간 할리우드에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젠더 스와프’(기존의 남성 배역을 여성으로 변경)의 경우에도 다양성을 존중하라는 시대적 요구의 반영이긴 하지만, 인지도 높은 작품으로 손쉽게 생명연장의 꿈을 이어가려는 할리우드의 전략이 숨어 있기도 하다. 독자적인 매력을 지닌 여성 캐릭터를 만들지 않고, 왜 자꾸 팬덤의 추억을 건드리냐는 일부의 불만은 여기에서 기인하는 바가 크다. 대니얼 크레이그의 아내이자 배우인 레이첼 와이즈 역시 과거 ‘여성 007’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인 바 있다. 다양성에 입각한 캐스팅이 싫어서가 아니다. 여성들이 자신만의 스토리를 맡길 바라서다. 비교가 굳이 필요 없는, 시대정신을 반영한 캐릭터를 기획 단계부터 치밀하게 고민하는 것이 바람직한 해답일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인종·성별을 파괴하려는 할리우드의 움직임은 영역을 가리지 않고 앞으로 더욱 확산될 게 자명하다. 그동안 외면해온 불공정한 것들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 때문에? 맞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라고 보는 건 순진한 생각이다. 이것이 소위 상업적으로도 ‘먹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전 세계적으로 13억 달러란 엄청난 수익을 빨아들인 <블랙팬서>는 슈퍼히어로가 반드시 백인 남성일 필요는 없다는 걸 증명해 보였다. 출연진 전원이 아시아계 배우들로만 구성된 영화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은 아시아 문화를 다룬 영화가 세계적인 티켓 파워를 가질 수 있음을 할리우드 투자사들에게 각인시켰다. 개봉 전 ‘캡틴 페미’ 논란으로 홍역을 치른 마블의 첫 여성 히어로 <캡틴 마블>의 성공은 ‘논란과 흥행은 별개’라는 증거를 남기기도 했다.
최근 중국계 히어로를 내세운 <샹치>와 다인종(파키스탄 출신 쿠마일 난지아니, 멕시코계 셀마 헤이엑, 아프리카계 흑인 브라이언 타이리 헨리, 한국계 마동석)으로 구성된 <이터널스> 제작을 확정한 마블의 행보도 이러한 흐름과 무관치 않다. 마블 스튜디오 제작팀장 빅토리아 알론소는 최근 잡지 버라이어티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 관객들은 글로벌하고 다양하며 폭이 넓다. 그들을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 이제, 다양성을 수용하려는 할리우드의 변화는 단순히 인류애적인 차원을 넘어섰다. 어쩌면 이것은 할리우드의 새로운 생존전략이다. 시장은 이미 변했고 변하고 있으며 더욱 변할 것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빠르게. 글 / 정시우(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