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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만 진심인 아이돌 서바이벌 프로그램

2019.10.11GQ

지금 수많은 아이돌 지망생과 기획사 연습생들이 겪고 있는 입시부정 실태가 드러나려는 걸까? 내부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지난 7일, Mnet 아이돌 서바이벌 프로그램 ‘아이돌학교’에서 탈락한 이해인이 자신의 SNS에 장문의 글 한 편을 올렸다. “그저 ‘아이돌학교’라는 기회도 그저 제가 못 잡은 것뿐이라고 생각하며 지내고 있을 따름이”었다는 그는 자신이 ‘아이돌학교’에 출연했던 당시에 비인간적으고 불합리하다고 느꼈던 대우까지 털어놓으며 투표 결과 조작과 관련한 이슈를 인권 문제로까지 확장했다. 같은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빈하늘도 자신의 SNS에 “진실이 꼭 밝혀지길. 우리의 억울함이 꼭 밝혀지길”이라는 글을 게재했으며, 타샤, 조영주, 이슬, 신시아 등 많은 출연자들이 이해인의 게시물에 ‘좋아요’를 누르거나, 응원하는 메시지를 보냈다. Mnet의 여러 오디션 프로그램이 지니고 있던 문제점들이 점차 명쾌해지고 있는 모양새다.

여러 출연자들이 이해인에게 동조하는 모습은 마치 집단소송이 일어날 때의 움직임을 연상케 한다.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지 또 어떻게 행동하는 게 맞는 것인지 망설이느라” 고민한 흔적이 역력한 이해인의 글은 “현재 회사라는 울타리가 없어 어떻게 입장을 전해야 하나 고민”한 연습생들의 현재를 대변함으로써 더욱 파장이 커진다. 만일 이해인과 다른 연습생들이 꺼낸 이야기들이 모두 사실이라고 밝혀진다면, ‘프로듀스 X 101’으로 인해 드러난 일부 소속사와 방송사 및 제작진 사이의 담합 여부에 확증을 갖는 사람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문제는 단순히 아이돌 연습생들의 사례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오히려 근본적으로 아이돌과 소속사, 방송사 관계자들의 오랜 관행이 빚어낸 결과에 가깝다. 한 음악방송 관계자 A씨는 이에 대해 “방송사 관계자들 중에 이런 문제에 관해 의연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A씨는 “음악방송 순서와 무대 연출 규모를 결정할 때도 어떤 회사 소속인지가 큰 영향을 끼치고, 방송국에 온 소속사 사람들끼리도 그걸로 은연중에 신경전을 벌인다”며 “회사가 크지 않더라도 업계에서 얼마나 이름난 제작자 아래에 있느냐에 따라 대우가 달라지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음악방송 관계자 B씨는 “모든 음악방송 관계자들이 윤리 의식이 없다는 건 아니지만, 방송 산업도 근본적으로 돈을 움직여야 하는 것이지 않냐”며 “이해가 가는 부분도 있다”는 입장을 보였다.

철저히 산업적인 관점에서 보면 맞는 말일 수도 있다. 그러나 아이돌 산업, 넓게는 음악 산업과 미디어 관계자들이 평균 연령 17~18세 내외의 청소년들을 상대로 “돈을 움직여야 하는”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나야 나’, ‘내 거야’, ‘지지마 포기하지마’를 구호로 내세운 <프로듀스> 시리즈를 비롯해 ‘할 수 있다고 믿어봐’, ‘빛나는 날 상상해봐’라며 용기를 내라고 노래한 <아이돌학교>의 주제곡 ‘예쁘잖아’는 모두 이루지 못한 꿈을 향해 달려가는 연습생들의 마음을 담은 노래들이었다.

일반 학생들의 사례에 빗대어 “명백한 입시부정”이라고 표현하는 사람들도 존재하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이번 사례를 남의 일처럼 느끼지 않는 10대들도 적지 않다. 현재 고등학교 3학년인 김은지(가명) 학생은 “내가 응원했던 연습생이 투표 조작으로 떨어졌다는 뉴스와 정치인의 자녀 입시부정 얘기가 같은 뉴스에서 나오는 걸 보고 기분이 이상했다”고 말했다. 반면에 아이돌 연습생 경험이 있는 고등학교 1학년 황윤기(가명) 학생은 연습생들의 입장에서 사안을 바라본다. 그는 자신의 연습생 시절을 떠올리며 “어떤 연습생들은 미션을 미리 알았다는 얘기를 봤다”며 “붙은 연습생들도 어른들이 드디어 꿈을 이룰 수 있다며 설득했을 때 거절하기 어려웠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털어놨다. “어느 쪽이든 꿈을 이룰 수 있을 줄 알았던 연습생들이 피해자 아니겠냐”며 안타까운 마음 또한 숨기지 않았다.

<프로듀스 X 101>으로 인해 시작된 논란이 앞서 방송된 Mnet 아이돌 서바이벌 프로그램에까지 영향을 미치면서 대중이 짐작하지 못했던 문제들까지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데까지 성공했다. 어린 출연자들이 대다수인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법적, 윤리적으로 심각한 문제제기가 이뤄진 경우는 전무후무할 것이다. A씨는 “음악방송은 어른들끼리 조율하는 거니 어쩔 수 없다고 쳐도, 적어도 어린 연습생들을 상대로 기회의 평등을 주겠다던 약속은 지켰어야 하는 게 아니냐”고 말한다. 이 말이 눈 가리고 아웅하는 어른의 변명처럼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진실은 경찰 조사에서 밝혀질 거라고 생각한다”는 이해인의 말을 떠올리면 이런 어른이라도 필요한 게 2019년의 한국 아이돌 산업 아닐까. 그리고 놀랍게도, 얼마 전 Mnet에서는 <투 비 월드 클래스>라는 새 아이돌 연습생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방영하기 시작했다. “좀 더 공정할 수 있게, 잘못된 부분을 보완해서 모든 사람들이 납득하고 인정할만하게 준비 중(정창환 프로듀서)”라고 강조하면서.

    에디터
    글 / 박희아(대중문화 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