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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크제품 패키지에 담긴 사연

2019.10.22GQ

쓸모없는 제품은 없다. 제품을 담은 패키지도 마찬가지. 뜯어보면 가볍게 지나칠 수 없는 사연이 있다.

Dyson – Supersonic
부디 패키지를 후다닥 벗겨 꼬깃꼬깃한 셔츠처럼 던져놓지 말길. 그러기엔 패키지의 사면에 새겨진 매뉴얼이 주옥 같다. 3년 만에 새롭게 출시된 다이슨 슈퍼소닉 헤어드라이어의 구성요소와 스펙, 부위별 특징이 비행기 안전수칙 가이드처럼 이해하기 쉽게 적혀 있다. 고온으로 인한 모발 손상을 염려해 초당 40회씩 바람 온도를 측정하거나, 다이슨의 역대 가장 작고 가벼운 모터가 손잡이에 장착됐다는 정보도 인터넷 검색이 아닌 패키지를 통해 기꺼이 알 수 있다. 심지어 패키지를 벗기면 제품 설계도가 인쇄된 묵직한 박스가 튀어나온다. 그 안에는 헤어드라이어와 다양한 스타일을 돕기 위한 4개의 노즐이 딸려 있다. 각각의 성능과 어떤 스타일링이 가능한지 또한 패키지의 귀퉁이에 명료한 이미지로 잘 설명되어 있다. 이를테면 얇은 모발과 민감한 두피를 위해 설계된 젠틀 드라이 노즐은 넓은 범위로 연한 열기가 분산되는 그림을 통해 이해를 끌어낸다. 다이슨식 화법은 이렇게 쉽고 유연하다. 아차, 모든 설명은 영어로 쓰여 있다. 44만9천원, 다이슨.

Bang & Olufsen – Beoplay H9i Rimowa
기술적 완성도와 심미적인 관점에서 프리미엄 지위를 획득한 블루투스 헤드폰 베오플레이 H9i가 섹시하고 근사하면서 다부진 보디가드를 대동했다. 리모와와 협업을 꾸려 알루미늄 러기지를 닮은 헤드폰 전용 케이스를 마련한 것이다. 마땅히 가능한 일이다. 패키지 뒷면의 “음악과 여행의 유니크한 연결을 위한 기념”이란 문구가 만남의 의도를 어색함 없이 드러내며, 리모와 트렁크와 여행자를 그린 측면의 일러스트가 이를 강조한다. 어쭙잖은 설명보다 효과는 곱빼기. 인연을 당기듯 살살 패키지를 들어올리면 리모와의 그루브 패턴을 적용한 실버 케이스가 물고기 비늘처럼 번득이며 등장한다. 그 안에 보관된 헤드폰 역시 알루미늄 터치 패널, 헤드 밴드, 이어 쿠션을 연회색으로 통일해 든든한 빽과 이질감 하나 없이 어울린다. 뱅앤올룹슨과 리모와의 구분이 무의미해진 순간, 홀로 완성할 수 없는 세련미가 자르르 흐른다. 1백10만원, 뱅앤올룹슨.

Logitech – G913
G913 무선 RGB 기계식 게이밍 키보드의 패키지에 두둑하게 새겨진 G 로고는 로지텍의 게이밍 기어 브랜드를 의미한다. 큼지막한 크기는 전문성에 대한 자신감과 비례한다. 뒷면에는 두 가지 핵심 스펙이 명시되어 있다. 첫 번째 자질은 다음과 같다. “라이트스피드 무선은 1ms 보고율의 놀라운 속도와 무선 연결 안정성을 자랑합니다.” 1초 동안 PC와 정보를 주고받는 횟수가 1천 번에 이른다는 의미. 이는 유선 연결과 동급이다. “G913은 새롭게 선보이는 고성능의 로우 프로파일 기계식 스위치가 탑재된 첫 키보드입니다.” 로우 프로파일 스위치는 여타 기계식 스위치와 비교해 높이가 절반 수준으로 설계됐다. 덕분에 반응속도가 월등히 좋다. 타건감도 뛰어나 게임의 ‘손맛’을 흠뻑 느끼기에 제격이다. 누를 때마다 이길 것 같은 기분이 쌓인다. 설명은 여기까지. 알루미늄 합금의 쿨한 질감, 슬림하고 간결한 디자인, 두근거리게 만드는 RGB 백라이트, 30시간 연속 사용 가능한 배터리. 패키지에 다 풀어 적지 못한 것들이 즐비하다. 29만9천원, 로지텍.

Samsung – Galaxy Watch Active2
갤럭시 워치 액티브2의 자신감일까? 스마트 워치의 얼굴과 이름만으로 패키지를 채웠다. 서둘러 패키지를 풀고 직접 향유하며 느끼라는 무언의 외침일지도. 그게 아니더라도 까맣게 반짝이며 튀어나올 것 같은 제품 사진에 손이 앞서 나간다. 시원하고 깔끔한 첫인상은 오롯이 실물로 이어진다. 곡선형 터치스크린으로 베젤이 거의 없다시피 해 눈이 다 개운하다. 대신 베젤을 돌리는 것처럼 손가락을 움직여 화면과 메뉴를 조작할 수 있다. 디스플레이 디자인은 다양하게 교체할 수 있는데 스마트폰 사진에서 색상을 추출해 워치 페이스를 만드는 재주는 다시 봐도 신박하다. 새롭게 탑재한 스피커도 강조할 부분. 통화가 가능해지면서 전작의 단점을 메웠다. 후면도 폼 나게 달라졌다. 아이언맨의 아크 원자로를 연상케 하는 센서를 통해 스트레스 수치를 자동으로 측정하고, 수면 패턴도 세세하게 파악한다. 그 외에 40여 종류의 운동 기록을 관리하는 코칭 프로그램도 제공한다. 갤럭시 워치 액티브2의 완성도는 결국 쓰기 나름이다. 29만9천2백원부터, 삼성전자.

    에디터
    김영재
    포토그래퍼
    이현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