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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가 (개의) 매트에 앉았다

2019.10.29GQ

존 르 카레가 말했다. “고양이가 매트에 앉았다”라는 문장으로는 이야기가 시작되지 않지만 “고양이가 개의 매트에 앉았다”라면 그건 확실한 첫 문장이 될 수 있다고. 존 르 카레다운 얘기다. 1960년대 영국 정보부 MI6에서 일하면서 동시에 스파이 소설을 쓰던 그는 신분을 숨기려고 데이비드 무어 콘월이란 본명 대신 존 르 카레란 필명으로 책을 냈다. 시간이 지나 결국 이것저것 다 들통났을 때 기자들은 가짜 이름의 출처부터 물었고, 그는 출근길에 매일 보던 가게 간판에서 거저 따왔다고 심드렁하게 답했다. 호기심에 들뜬 팬들이 불어로 네모란 뜻의 ‘르 카레’ 간판을 경쟁하듯 찾았으나 그런 이름의 가게는 도시 어디에도 없었다.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는 존 르 카레의 침착하고 고상하며 견고한 첩보물 중에 가장 좋아하는 얘기이고, 2011년에 토마스 알프레드슨 감독에 의해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초호화 캐스팅이란 점이 무척 마음에 안 들었지만 게리 올드먼, 콜린 퍼스, 톰 하디, 베네딕트 컴버배치, 어떤 자도 별로인 순간이 없어서 불평을 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스파이물의 기본이자 별수 없는 클리셰일 액션 대신 대화와 분위기로 스토리를 곧게 이어가는 것도 좋았다. 등장인물들은 다짜고짜 총질을 하고 내 차 남의 차 가릴 것 없이 부수는 대신, 침침한 사무실에서 줄담배를 피우고 어둑한 골목에서 에스프레소를 마시면서 서로를 지치지도 않고 쏘아본다. 이처럼 조용한 요원, 고요한 스파이들이 또 있을까. 음악도 아주 괜찮은데, 영화 내내 일부러 그랬는지 잊어버렸는지 모를 각종 거리의 소음들을 얇은 베일처럼 덮어 두었다. 그게 멋있어서 볼륨을 아주 크게 하고도 더러 되풀이해서 봤다. 어쨌거나, 길든 짧든 글을 쓸 땐 존 르 카레의 첫 문장에 대한 조언을 다시 생각한다. 구름에서 뚝 떨어지는 문장은 없으니 직접 경험한(혹은 들은) 모든 것, 순간순간, 시시각각이 다 글의 재료가 되는 셈인데, ‘이제 써볼까’ 하는 동시에 목소리와 향, 이미지와 감촉, 기분과 표정이 두서 없이 쏟아진다. 내 경우엔 그것들을 우선 따로 떼어 차분히 공중에 띄워둔다. 머릿속에 있는 장면이 아무리 구체적이어도 그것을 언어로 바꾸려 할 땐, 누구나 어렵다. 가령 파리의 카페, 한겨울, 남자로 이어지는 에피소드를 쓴다고 치자. 문이 열리자마자 들리는 가게 안 여러 가지 소리들, 머플러를 풀어 나무 의자 등받이에 걸고 코트를 벗으면서 안부를 묻는 일련의 동작들, 옆 테이블의 바게트 부스러기와 담배 꽁초, 뭉뚝한 싸구려 와인 잔 같은 작고 귀여운 장면들. 이 무수한 것들 중에 도대체 무엇을 제일 앞으로 가져온단 말인가. 설상가상으로 그곳에서 마침 빈둥거리고 있던 하찮은 코트를 입은 수상한 남자까지 불쑥 떠오른다면! 이들 중 무엇도 첫 문장의 소재로 부족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당연하지도 않다. 돌아가는 골목마다 마주치는 얼굴마다 이야기는 기다리고 있고, 결국 좋은 문장의 핵심은 과잉 속에서 어떤 것과 다른 것을 골라 제대로 추리는 문제다. 경험상 첫 번째 문장을 쓰고 글을 너무 오래 붙들고 있는 건 대체로 결과가 안 좋다. 대개 첫 문장으로 글의 주제와 분위기가 정해지는데 스토리가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같은 지점에서 뭉개고 있는 동안, 시점과 서사, 무드는 점점 무뎌지고 흐려진다. 그래서 망친 작품도 꽤 많고, 작가들은 ‘시간을 지나치게 많이 들인’ 자신의 실수를 인정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겨울 저녁 파리 외곽의 한 카페에서 남자에게 일어나는 이야기의 첫 줄을 존 르 카레라면 어떻게 시작했을까. “남자는 뒷문으로 들어왔다” 정도면 너무 후진 건 아니겠지?

    에디터
    강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