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채우고 싶고, 자꾸 그리고 싶고, 더 많이 쓰고 싶은 송민호의 욕심. 이 휘황한 맥시멀리스트에게 천국이란 그의 작업실이다.
당신이 작업하는 스튜디오 문에는 ‘HEAVEN WELCOME’이라는 말이 쓰여 있다고요. 거기가 송민호에겐 천국인가요? 제 작업 공간은 천국일 때도, 지옥일 때도 있죠. 그 밑에 조그맣게 ‘DEVIL ONLY’라고도 적어놨어요. 모순된 메시지를 통해 재미를 만들고 싶었거든요.
쉬지 않고 곡을 쓰는 하드워커죠. 전 더 나은 내일을 살기 위해 목숨 거는 사람이라서.
스스로를 몰아붙일 정도로 기준이 높은 건 왜인가요? 재수 없게 들릴 수도 있지만, 제 잠재력에 비해 꺼내놓은 것이 적다는 느낌이 커요. 하하. 욕심이 많은 거겠죠. 한번 시작한 건 스스로 생각한 기준을 충족시킬 때까지 해봐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에요. 그 과정 자체를 즐기기도 하고요.
위너의 ‘SOSO’는 그저 그런 마음에 대해, 무뎌지는 것에 대해 노래해요. 지난해 발매한 솔로 앨범 ‘알람’에서도 “스무 살 무렵 느낀 설렘과 열정은 차츰 안개처럼 개인다/점점 보이는 현실은 모노톤”이라며 무미해지는 것에 대해 말했죠. 지금은 잠시 멈춰서 숨가쁘게 달려온 지난날을 돌아보는 과도기일까요? 제겐 매일매일이 과도기예요. 지금보다 더 나은 내일을 살기 위해 노력하다 보니 습관처럼 어제를 돌아보고는 하는데, 가끔은 어제가 될 오늘에 멈춰 있고 싶을 때도 있어요. 지금이 그런 시점 같네요.
문학적인 표현이네요. 송민호의 가사들처럼. 솔로곡 ‘흠’에서 ‘너의 흠, 돌리는 등, 죽이는 숨, 피하는 눈’ 같은 대목은 상당히 시적으로 느껴지는데, 어떤 마음으로 그런 가사들을 써요? 어떤 곡은 들리는 그대로 머릿속에 그려질 수 있게끔 직관적으로, 아주 섬세하게 가사를 그려내요. 한편으로 어떤 곡은 듣고 또 듣고, 결국 가사 창을 띄워 멜로디를 따라 들어봐도 이게 대체 무슨 소리지, 할 정도로 비비 꼬아 쓰고는 해요. 여러 방식으로 가사를 구성하는데, 결국 제가 쓰는 가사의 근본적인 메시지는 이거예요. “나 좀 위로해줘”, “누군가 한 명이라도 내 말을 알아들어줘.”
시를 읽죠? 가사와 시는 닮은 점이 꽤나 많아요. 전달하고자 하는 감정 혹은 이야기들을 문장 속에 간결하게 녹여야 한다는 점에서 그렇죠. 물론 때에 따라 형식이 무궁무진하게 달라지기는 하지만, 제가 선호하는 것들은 대부분 짧고 깊은 문장들이에요. 그런 구절들을 만날 때마다 굉장히 설레죠. 그리고 그 문장들 속에서 나를 발견할 때, 그 짧은 구절에서 긴 시간을 멈춰 있게 되는 거예요. 결국 시도 음악도 혼자 발화하고 허공에 사라져버리는 것이 아닌, 그걸 듣고 읽는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거잖아요? 그런 공감과 공명이 가장 큰 힘이라는 점에서도 닮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좋고요.
직접 써볼 생각도 있어요? ‘시를 쓴다’고 하기는 좀 거창하고, 그냥 잠들기 전에 드는 생각들을 써요. 울적한 마음을 그럴싸해 보이게 포장하고, 후회를 반성문처럼 적어보는 정도죠.
인스타그램에 올린 직접 그린 그림들을 봤어요. 자유롭게 드로잉하고, 색을 화려하고 과감하게 써 재미있었어요. 손으로 문질러 그리기도 하고, 캔버스에 그리다 창문에 그리기도 하던데요. 하하. 그림은 음악보다 훨씬 자유로워요. 온전히 내 속으로 파고드는 데만 집중할 수 있으니까요.
어릴 적엔 에곤 실레를 좋아한다고 했는데, 지금 좋아하는 화가는 누군가요? 요즘 세상엔 터치 몇 번에 정보가 차고 넘치니, 세상이 더 넓고 거대하게 느껴져요. 그래서 최근엔 유명한 작가의 작업들에 천착하기보단, 랜덤하게 스쳐가는 이미지의 편린들에 좀 더 흥미를 느끼고 있어요.
꿈과 현실이 뒤섞인 초현실적 이미지, 화려하고 맥시멀한 스타일을 추구하는 것처럼 보여요. 그런 스타일에 매혹되는 까닭이 있나요? 이유는 모르겠고, 제게 자꾸 무언가를 채우려는 욕구가 있나 봐요. 그만큼 허한 탓인지. 너무 많은 물건들에 치이고 질려서 미니멀리즘을 지향하려 ‘노력’했던 적도 있긴 했죠. 하하. 그런데 결국 실패했네요. 이젠 전 그냥 맥시멀리스트인가 보다, 하고 있어요.
옷 리폼에 재미를 붙여서 같은 그룹의 김진우에게 재봉틀을 선물받기도 했다던데, 어떤 식으로 옷을 만지나요? 그러고 보니 요즘엔 재봉틀을 예뻐해주지 못했네요. 한창 꽂혔을 땐 제가 좋아하는 몇 가지 브랜드를 조합해서 새로운 옷을 만들거나, 오랫동안 입지 않은 옷들의 핏을 고쳐 입곤 했어요.
사진가 비비안 마이어를 좋아한다면서요? 중형 필름 카메라를 쓰기도 한다던데, 요즘엔 어떤 카메라를 애용하나요? 올드 카메라에 꽂혀 중형 필름도 써보고, 어느 정도 욕심을 충족시킨 뒤로는, 결국 ‘기록’이라는 사진의 본질 그 자체로 돌아오더라고요. 뭐, 어떻게 보면 중형 필름 카메라는 무겁고 번거로워 손이 안 가게 된다는 말이기도 하고요. 하하. 그래서 요즘엔 그냥 일회용 카메라나 가벼운 똑딱이 카메라를 애용해요. 지금은 그걸로도 충분해요.
좋아하는 피사체는요? 인물 사진을 좋아해요. 직업상 잔뜩 꾸민 사진은 무수히 많이 찍혀 봤잖아요. 그러니까 제가 찍는 것들은 꾸며낸 것보다, 그 순간의 느낌이 가장 많이 담기길 원해요. 사진만 봐도 “아 그때!” 하며 냄새까지 확 느껴질 정도로.
아름다운 돌을 모아서 찍은 사진을 보고 흥미로웠어요. 주변에 흔하게 있는 것들에서도 아름다움을 찾아낼 줄 아는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죠. ‘SOSO’ 뮤직비디오 촬영 로케이션에서 가공된 듯한 묘한 느낌의 돌들을 만난 거예요. 일단 다 주워왔어요. 원기둥 모양이 재미있더라고요. 그 후로 돌에 대한 신비감을 갖게 됐어요. 최근에는 돌을 주우러 다녀왔는데, 딱히 거창한 작업을 하려는 건 아녜요. 그냥 주우러 갔다 왔어요. 하하.
어떤 방식으로든 창작하는 걸 즐기는 건 천성인가 봐요. 뭘 자꾸 만들어내고 싶은 마음은 어디에서 나와요? 그 자체가 너무 큰 즐거움이에요. 물론 그 속에 고통도 외로움도 질투심도 잔뜩 엉켜 붙어 있지만, 창작하는 것 외에 제가 깊이 몰두할 수 있는 것은 많이 없거든요. 그래서 그런 마음이 어디서 나오냐는 질문은 제겐 “왜 배가 고프니” 같은 말이나 다름없어요. 너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이니까.
어릴 땐 어떤 애였어요? 겉으론 외향적인 모습을 했지만 사실 내향적인 아이였죠. 극도로 소심한 아이. 그래서 언제나 외향적인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서바이벌 프로에서 자신을 과시하는 대신 자신의 ‘겁’을 담담히 토로하던 모습이 인상적이어서 아직도 기억해요. 스물셋에 ‘겁’을 부르던 송민호와 스물일곱의 송민호는 어떤 점이 달라졌나요? 겁도, 겁이 나는 이유도 오히려 더 다양해졌어요. 그리고 그걸 컨트롤하는 방법도 달라졌고요.
지금의 송민호에게 가장 겁나는 건요? 호기심 결핍. 무언가가 더는 궁금해지지 않는 것.
타투가 많아요. ‘be nice, be kind’, ‘바른 자세 맑은 정신’, ‘사랑’. 과시적이지 않고 건강한 레터링들이죠. 어떤 기준으로 글귀를 택해요? 저는 튀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과하게 혹은 뻔하게 튀는 것은 싫어요. 언젠가 어떤 타투를 할까 고민하다가, 당연하게 영어 단어를 고르는 스스로의 모습이 불현듯 모순적으로 느껴지더라고요. 전 모국어인 한글을 사랑하고, 한글로 가사를 쓰고 노래하는 걸 업으로 삼고 있잖아요. 그걸 느끼고부터 한글 타투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그리고 제게 가장 필요한 메시지를 가장 한글다운 필체인 붓글씨체로 양 어깨죽지 뒷부분에 새겼죠.
‘바른 자세 맑은 정신’? 네. 바른 자세, 맑은 정신. 언제 어디에선가 송민호가 앞만 보고 하염없이 걷는 뒷모습을 본다면, 절 툭툭 치며 한 번씩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하하.
파란 장미, 세월호 리본, 하회탈, 뒤집어진 왕관, 하나 같이 이유가 궁금해지는 타투들이에요. 좋아하거나 믿는 것들을 새기나요? 때에 따라 달라요. 깊게 생각하고 언젠간 새겨야지 한 것도 있고, 정말 즉석에서 꽂혀서 한 것도 있죠. 그렇지만 후회하는 건 아무것도 없어요. 다 너무 내 것들이거든요. 그중에서 제일 마음에 드는 건 ‘사랑’이에요.
송민호의 삶을 지탱하는 건 뭔가요? 솔직할 것, 사랑할 것, 표현할 것.
친구들에게 “나는 어떤 애 같냐”고 자주 묻는다면서요? 남이 보는 나와 내가 보는 나는 어떤지, 다른지, ‘나는 어떤 사람인 건지’에 대해 왜 깊은 관심을 기울이나요? 그럴 수밖에 없어요. 창작하는 과정에서 가장 풀기 어려웠던 문제들은 온전히 나 자신으로부터 파생된 것들이더라고요. 지금도 많이 궁금해요. 제가 앞으로도 계속 꾸준히 알아가야 할 것이기도 하고요.
그렇게 물어보면 주변에선 뭐라고 대답해요? 특이한 애, 그냥 송민호 같은 애.
지금 송민호가 생각하는 송민호는 어떤 사람인데요? 이렇게 말하고 싶네요. “누구냐, 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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