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요상한 소고기 등급제 개편안

2019.12.03GQ

20년 묵은 소고기 등급제의 개편안이 시행된다. 마블링 위주의 등급제가 애물단지로 여겨졌던 만큼 개편안에 거는 기대는 컸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오히려 소비자가 울게 생겼다.

이제는 많이 안다. 쇠고기 등급제가 근내 지방, 즉 마블링의 함량을 기준으로 한다는 사실을. 그런데 쇠고기 등급제가 있는 나라가 전 세계에 세 곳뿐이라는 사실도 알까? 미국, 일본, 한국이 유일하다. 호주에도 있지만 수출용에만 해당한다. 본인들이 먹기 위해 기르는 고기에는 적용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쇠고기 등급제는 미국이 1927년, 일본이 1964년, 우리나라가 1990년 본격 시행했다. 일본과 우리나라가 미국을 좇아 마블링 스코어에 따라 소고기에 등급을 매긴 것. 그런데 미국은 의무가 아니다. 축산업자들이 필요에 따라 농무부에 비용을 내고 등급 책정을 의뢰하여 표기한다. 또 마블링이 맛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으며 건강을 해친다는 연구 결과에 따라 점점 축소하는 추세다.

반면 우리나라는 한우라면 안심, 등심, 채끝, 양지, 갈비 부위에 무조건 등급을 표기해야 한다. 또 1~3등급으로 비교적 간소하던 등급에 1+와 1++를 신설하며 확대했다. 애초에 국내에 등급제를 도입한 이유는 1993년 축산물 수입 자유화에 대응하여 한우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였다. 시장이 개방되면 한평생 농우로 키워진 한우가 수입 소에 밀려 사라질 거라는 위기감이 컸다. 그리하여 정부가 발벗고 나서 미국을 따라 소를 거세하고 곡물 사료를 먹여 농우를 단숨에 비육우, 즉 비만 소로 탈바꿈시켰다.

쇠고기 등급제는 우리 사회에 여러 문제를 안겼다. 초식 동물에 옥수수 등의 곡물 사료를 먹이는, 반자연적인 행위는 소는 물론 사람의 건강까지 위협한다. 하지만 이 문제는 인과 관계가 완전히 밝혀지지 않은 만큼 반대의 목소리가 높다. ‘네이처오다’ 변동훈 대표는 보다 더 가시화된 문제점을 들어 현행 등급제를 비판한다. ‘안티마블링’이라는 신조어를 만든 변 대표는 마블링에 집중한 기존 체제를 거부하고 유기 축산을 실천한다. “현행 등급제의 문제점은 한둘이 아닙니다. 가장 심각한 것이 경제적 손실입니다. 농가들은 현행 등급제에 따라 소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곡물 사료를 과잉 급여하고 불필요하게 오래 키웁니다. 소는 성우(成牛)가 되는 23~24개월에 출하해야 하지만 근내 지방을 늘리기 위해 31개월까지 키웁니다. 그만큼 생산비가 많이 듭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소를 도축하기 전까지 등급을 예측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목표에 미치지 못하는 등급을 받았을 경우 농가는 수익이 줄어드는 등 손실을 봅니다.” 변 대표는 소비자의 경제 손실도 지적한다. “비만 소일수록 버려지는 지방 양이 많습니다. 마리당 120킬로그램으로 정상 소의 두 배에 가깝습니다. 이때 지방은 킬로그램당 5백~1천원의 헐값에 팔립니다. 많은 돈을 투자하여 키웠으니 경제적 손실이 크죠. 그 손실을 어떻게 메우겠습니까? 모두 소비자가 부담합니다. 2++ 고기가 3등급 고기보다 최대 41퍼센트 비싼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소를 키우는 데 드는 비용이 국내에서 순환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소를 비대하게 키우는 데 드는 곡물 사료 대부분은 옥수수다. 하지만 국내 옥수수 자급률은 0.8퍼센트에 불과하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의 발표에 따르면 2013년부터 2018년 8월까지 가장 많이 수입한 농수산물이 옥수수라고 한다. 지난 6년간 수입한 옥수수는 5천5백46만 3천 톤이며, 수입액은 약 14조 7천억원에 달한다. 이때 옥수수는 대부분 미국에서 온다. 옥수수는 미국에서 가장 생산량이 높은 농산물로 미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이 지대하다. 미국은 과잉 생산된 옥수수를 어떻게든 소비하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한다. 옥수수를 주재료로 하는 버번 위스키를 개발하는가 하면, 옥수수로 시럽을 만들어 가능한 한 많은 가공식품에 설탕 대신 넣는다. 우리에게 익숙한 ‘액상과당’이 바로 이 콘 시럽이다. 사람만 먹어서는 해결되지 않자 미국은 옥수수를 소에게 먹이기 시작했다. 어찌 보면 미국에서 소고기의 품질을 마블링 스코어로 평가한 배경에는 자국의 주산물인 옥수수를 소비하기 위한 자구책이 내제된 셈이다. 한편 우리는 굳이 남의 골칫거리를 비싼 돈 주고 사와 대다수의 국민에게 경제적 부담을 안긴다. 이득을 보는 측은 수입사 정도가 아닐까.

현행 쇠고기 등급제는 들여다볼수록 점입가경이다. 굳이 수입산 옥수수에 의존하여 소에게 오랜 시간 고통을 주며 비만 소를 만들어봤자, 그로 인해 생성된 마블링은 등심 부위에만 영향을 미친다. 소를 아무리 살찌워도 엉덩이나 목에 지방이 끼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소고기 중 등심이 차지하는 비율은 어느 정도일까. 소 한 마리에서 얻는 고기의 9~10퍼센트에 불과하다. 고작 1할에 해당하는 부위의 마블링 스코어를 높이는 방향으로 축산업이 발달했다고 하니 허무하기 그지없다. 실제로 등심의 단면을 기준으로 소고기 등급을 책정한다. 일각에서는 쇠고기 등급제가 마블링 많은 고기를 선호하는 소비 심리를 조성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소비자가 소고기를 선택할 때 기준이 되는 과학적 판단을 제시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후자의 이유로 마련한 제도라면 최소한 수평적인 표시 방법을 채택했어야 한다. 수능처럼 등급을 매기고 차등을 두니 소비자들은 당연히 등급이 높을수록 좋은 고기라고 인식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도 고기의 등급을 매기는 과정을 봤을 때 소비자에게 과학적 판단 기준을 제시할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든다. 수의사가 표본이 되는 그림과 고기를 단순히 육안으로 비교하여 측정한다. 흡사 같은 그림을 맞추는 게임 같은 이 과정은 꼭 수의사가 아니어도 수행할 수 있을 정도로 비전문적이고 비과학적으로 보인다.

최근 건강에 대한 관심이 늘며 한우의 지나친 마블링이 우리의 건강을 위협하는 요소로 대두되고, 소비자의 인식 변화는 현행 등급제를 향한 회의와 비난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농림축산식품부가 등급제를 개편한다고 발표했다. 그것도 소비 트렌드의 변화에 대응한다는 당위성을 내세우며. 그런데 뚜껑을 연 개편안은 전혀 소비자를 향하고 있지 않다. 기존에 지방 함량이 17퍼센트였던 2++의 기준을 15퍼센트로 낮추고, 1등급 중 지방량이 12~3퍼센트인 고기를 1+로 상향 조정했다. 쉽게 말해 1등급 이상에 해당하는 고기의 비율을 늘린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소비자가 얻는 이득은 뭘까. 없다. 오히려 손해를 볼 확률이 높다. 기존에 1등급 가격을 내고 먹었던 고기 중 일부를 1+ 가격에 구매해야 한다. 가정에서 주로 소비하는 1등급 한우의 수가 줄어드니 1등급 한우 가격 또한 오를 거라는 예측이 나온다. 그렇다면 제도를 개편하여 이득을 보는 이는 누구일까. 농가가 일부 본다. 1+ 혹은 1++를 받을 확률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등급을 예측할 수 없다는 수익의 불확실성, 등급이 낮게 나왔을 때 오는 손실 등의 문제로 농가들이 현행 제도에 불만이 많았습니다. 그들의 불만을 일부 잠재우기 위해 내놓은 개편안이 아닐까 싶습니다.” 변 대표의 설명이다.

개편안은 마블링 스코어가 높은 최고 등급을 확대하는 양상을 띤다. 등급제를 개발한 미국조차 이를 축소하는 와중에 참으로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다. 우리가 지금이라도 마블링의 환상에서 벗어나 건강하고 맛있는 고기를 취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변 대표는 낮은 등급의 고기를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구매해 한 달여 냉장 숙성해 먹는 것이 최선이라고 귀띔한다. 그런데 이때 포장 상태가 중요한 변수라고. “고기를 포장하는 방식에는 크게 진공 포장과 산소 포장이 있습니다. 국내에서는 용기에 산소를 주입한 후 밀봉하는 산소 포장을 선호하는데, 그 이유는 고기가 산소와 닿았을 때 선홍색을 띠고, 그래야 마블링이 부각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산소를 주입하면 그만큼 미생물이 번식하는 등 변질될 위험성이 높습니다.” 우리는 여태껏 포장된 고기의 색과 마블링을 보고 품질을 가늠했다. 그런데 선호했던 선홍색마저 고기의 원색이 아니며, 단순히 먹음직스러운 색을 내기 위해 취한 산소 포장이 변질을 부추긴다고 하니 또 한 번 충격적이다. 이는 마블링을 기준으로 하는 요상한 등급제를 도입한 결과 파생된 엉뚱한 요소 중 하나에 불과할 터. 마치 금 간 주춧돌에 온갖 엉뚱한 부재료를 더해 지은 엉성한 집을 연상시킨다. 육즙이 줄줄 흐르는 고기 이야기를 했는데 고구마를 먹은 듯 목이 메는 이유는 무엇일까. 답답증이 난다. 글 / 이주연(미식 칼럼니스트)

    에디터
    김영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