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브 하인즈는 자신의 내면을 유유히 유영한다. 순간순간 느끼는 것을 음악의 언어로 표현한다. 그가 자신의 음악을 명료하게 설명하지 못하는 데는 그런 이유가 있다.
오늘 촬영을 함께한 반려견의 이름은 뭐예요? ‘콜트레인 Coltrane’이에요. LA의 유기견 카페에서 입양했어요. 녀석이 제 무릎에 앉는 순간 좋은 기운이 느껴졌어요. 바로 데리고 왔죠.
촬영은 어땠나요? 화려한 프린트와 강렬한 색의 옷이 거침없이 어울리던데요. 재킷이 특히 마음에 들 었어요. 옷에 관한 취향이 까다롭지 않아요. 멋져 보이기만 하면 돼요. 데이비드 보위, 마릴린 맨슨, 프린스를 존경하는데 그들은 하나같이 어떤 스타일이든 잘 소화해요.
다양한 종류의 모자를 즐겨 쓰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그냥 습관처럼 쓰고 다녀요. 대신 평범한 모자에는 손이 안 가요. 뭔가 특별해야 해요. 지금 쓰고 있는 패딩 소재의 버킷 햇은 뉴욕 날씨가 무척 추워지면서 장만했어요.
말하면서 손목에 바른 향수는 뭐예요? 향이 좀 특이한데. 가죽 재킷 향이에요. 사연이 있는 향수인데, 한 번은 친구와 아이슈타인이 즐겨 입었던 가죽 재킷에 대한 대화를 나눈 적이 있어요. 얼마 뒤 그 재킷이 소더비 옥션에서 팔렸다는 소식을 들었죠. 그러고는 디에스 앤 두르가 D.S. & Durga에서 그 가죽 재킷 향을 베이스로 한 향수를 선보였는데 바로 이거예요. 달달한 향을 섞으면 딱 좋아요.
3월부터 북미 투어를 시작한다면서요? 콘서트를 여러 번 했지만 이번 투어는 매우 특별해요. 제 음악 커리어를 총망라하는 무대가 될 거예요. 규모도 커요. 라디오 시티 뮤직홀에서 공연을 하게 되다니!
고향인 런던에서 뉴욕으로 온 지 10년쯤 됐죠? 처음에는 퀸즈 롱아일랜드 시티의 친구 집에서 지냈다고 들었는데 지금은 어디 사나요? 1년 전 그리니치 빌리지로 이사했어요. 매일 워싱턴 스퀘어 공원을 산책하죠. 그 전에는 로어 이스트사이드, 이스트빌리지, 차이나타운에서 지냈어요. 월리엄스버그에도 몇 년 살았고요. 그 당시 블러드 오렌지의 첫 앨범을 만들었네요.
미국인은 아니지만 스스로 뉴요커라 여긴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뉴욕이 왜 그렇게 좋아요? 산책을 하거나 자전거를 타기에 좋은 도시예요. 걸어서 어디든 갈 수 있고요. LA와는 많이 다르죠. 음악 작업을 하러 LA에 종종 가는데 운전을 하지 않는 저한테는 뉴욕이 잘 맞아요. 게다가 10년을 살았지만 여전히 영화처럼 느껴지는 곳도 많고요.
그 정도의 시간이면 아무리 좋은 것도 흥미를 잃게 되지 않나요? 저는 습관의 산물이에요. 그래서 루틴을 중요하게 여겨요. 괜찮은 카페를 발견하면 매일 그곳에 갈 정도예요. 그런 일정함이 내가 사는 동네를 집처럼 느끼게 만들죠. 그리고 뉴욕은 엄청나게 큰 도시이다 보니 매일 새로운 걸 경험할 수 있어요. 얼마 전에는 어퍼이스트 사이드를 지나다 낡고 특이한 외관의 맨션을 발견했어요. 10년 동안 한 번도 보지 못했다는 사실이 신기했죠.
규칙적으로 유지하고 있는 일상은 어떤가요? 아침에 일어나면 콜트레인을 데리고 커피를 사러 나가요. 그리고 워싱턴 스퀘어 공원에서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고 산책을 해요. 집으로 돌아와서는 넷플릭스를 보거나 뭐든 읽고 쓰기 시작해요. 영화를 보러 나갈 때도 있고요. 영화관이 집 근처에 있거든요.
최근 본 영화는 뭔가요? 노아 바움백 감독의 <결혼 이야기>를 봤어요. 스칼렛 요한슨과 애덤 드라이버가 이혼을 결심한 부부로 나오는데 굉장히 현실적인 이야기를 그린 영화예요. 친구한테 들었던 실제 이혼 과정과 아주 흡사했어요.
결혼 생각은 있나요? 하하. 한 번쯤은 생각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네요.
최근 당신이 음악을 맡은 영화 <Queen & Slim>을 봤어요. 인종 차별이란 무거운 주제를 다뤘지만 시적인 영상미와 설득력 있는 이야기가 음악과 잘 어우러졌어요. 어떤 계기로 음악 작업을 하게 됐나요? 비욘세의 동생인 솔란지의 소개로 멜리나 맷소카스 감독을 알게 됐어요. 그녀가 곡 작업을 해줄 수 있겠냐고 제안했어요. 저로서는 영화 음악 작업 기회가 드물기 때문에 고마웠죠. 오케스트라 곡을 만드는 게 도전이기도 했지만 즐거운 작업이었어요.
여러 뮤지션과 협업을 했는데 FKA 트위그스, 플로렌스 앤 더 머신, 스카이 페레이라, 솔란지 놀스, 머라이어 캐리 등 여성 뮤지션의 비중이 높아요. 의도한 건가요? 듣고 보니 그렇네요. 영화 음악도 모두 여성 감독들과 작업했어요. 2013년에 참여한 영화 <Palo Alto>는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손녀인 지아 코폴라가 연출했어요. 특별한 이유는 없어요. 아티스트의 취향과 관점이 마음에 들면 함께 작업을 할 뿐이에요. 다른 관점들이 섞여 새로운 결과물을 만드는 걸 흥미롭게 느껴요.
눈여겨본 아티스트가 있나요? 함께 작업해보고 싶다거나. 이틀 전에 비벌리 글렌 코플랜드 Beverly Glenn-Copeland라는 뮤지션을 만났어요. 일흔 살이 넘었지만 여전히 에너지가 넘치고 40대처럼 보이는 분이었죠. 조만간 작업을 같이하게 될 것 같아요. 1980년대 초반 카세트에 녹음한 앨범을 우연히 들었는데 진짜 아름다운 음악이었어요. 음, 설명하기 어려운데 클래식, 솔, 뉴에이지의 어디쯤에 맞닿아 있어요.
당신의 음악처럼요? 하하.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그래서 그분과 이어져 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늘 주위에 사람들이 있는 것 같아요. 무대에서도 그렇고요. 사교성이 좋다고 생각해요? 일할 때만 그래요. 일로 만난 친구가 몇 명 있지만 내성적인 성격이에요. 아까도 말했듯이 집에 있거나 산책을 하는 게 일상의 대부분이에요.
어린 시절 프리미어리그 진출이 보장됐을 정도로 뛰어난 축구선수였다고 들었어요. 솔직히 상상이 되질 않아요. 축구를 할 때도 음악은 좋아했어요. 다만 음악을 직업으로 삼아야겠단 생각을 하진 못했어요. 축구를 그만둔 건 간절함이 느껴지지 않아서예요. 알잖아요. 뛰어난 운동선수가 되려면 스스로 얼마나 철저하고 엄격하게 관리를 해야 하는지. 저는 열네 살이었는데 제 자신을 다 던질 만큼 축구가 간절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그만뒀고, 후회하진 않았어요. 단 한 번도.
자신의 길을 스스로 선택한 거네요. 그런 셈이죠. 이런 일도 있었어요. 경기를 망친 적이 있는데 한 친구가 저한테 실력이 형편없다고 하는 거예요. 그 말이 저를 움츠러들게 만들었어요. 무슨 일을 하든 마음의 여유가 없으면 안 돼요. 잘 해내고 싶어도 힘들어요.
음악을 할 땐 그런 부담을 느끼지 않나 봐요. 다른 사람의 곡은 부담스럽지만 제 곡을 연주할 땐 그런 게 전혀 없어요. 오히려 마음이 차분해져요.
2004년 런던에서 밴드 ‘테스트 아이시클스 Test Icicles’로 활동한 뒤 2007년에는 ‘라이트스피드 챔피언 Lightspeed Champion’이란 예명으로 록과 포크 장르를 기반으로 한 음악을 선보였어요. 또 2011년부터 ‘블러드 오렌지 Blood Orange’라는 솔로 프로젝트를 시작해 알앤비와 일렉트로닉을 결합한 다양한 음악적 시도를 하고 있어요. 커리어를 몇 개의 챕터로 나눌 수 있는데 각각의 음악적 성취는 그 당시 가장 좋아하는 장르에 기반을 둔 건가요? 글쎄요. ‘가장 좋아하는 것’을 꼽기가 어려워요. 블러드 오렌지의 음악만 해도 여러 장르를 다루거든요. 저는 즉흥적인 사람이에요. 그때그때 저를 건드리거나 좋다고 느끼는 것을 음악으로 만들어요. 그러다 보니 열일곱 살 때부터 지금까지 다양한 음악을 다루고 있네요.
라이트스피드 챔피언과 블러드 오렌지라는 예명으로 발표한 음악의 간극은 작지 않아요. 그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나요? 전에 했던 방식이나 스타일은 의식적으로 피해요. 모든 앨범을 그렇게 만들었어요. 라이트스피드 챔피언의 앨범은 오케스트라 사운드가 돋보여요. 블러드 오렌지로 발표한 첫 번째 앨범 < Coastal grooves>를 기타, 베이스, 드럼 사운드로 채웠다면, <Negro swan> 앨범에는 어쿠스틱 기타를 주로 썼어요. 또 최근작 <Angels’ pulse>의 첫 번째 트랙인 ‘I wanna c you’는 라이트스피드 챔피언 시절의 음악과 비슷한 느낌이죠. 예상 가능한 음악을 반복해서 만들다 보면 하나의 스타일에 안주하게 되는데 그건 좀 위험하다고 생각해요. 제가 원하는 건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음악이에요.
근데 어쩌다 블러드 오렌지란 이름을 쓰게 됐나요? 실은 저도 몰라요. 머릿속에 한동안 그 단어가 맴돌았어요. 이건 분명해요. 과일을 염두에 둔 이름은 아니었어요. 하하.
블러드 오렌지의 음악을 쭉 듣다 보면 옅은 슬픔, 멜랑콜리함, 단정한 섹시함같이 일관된 결이 느껴져요. 이런 감성은 어디에서 나오나요? 제 안에서 자연스럽게 내보내는 산물이라고 해둘게요. 미리 구상하고 계획을 세워서 곡 작업을 하진 않아요. 순간순간 제가 느끼는 것에 영감을 받아 음악으로 만들죠. 어째서 그 감정이 일었는지,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이건 중요하지 않아요.
가사를 살펴보면 다양한 정치적, 사회적 장치를 적재적소에 배치하기도 해요. 사회적 목소리를 내는 것이 아티스트로서 해야 할 일이라고 여기나요? 저는 그런 역할과 맞지 않아요. 말했듯이 저의 모든 음악은 제가 느낀 것들에 관한 이야기예요. 주위에서 일어나는 사회적 이슈에서 완벽히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알아요. 정치적 관점이 생기기도 해요. 그렇다 하더라도 음악에 그 관점을 담진 않아요. 누군가 만약 제 음악에서 어떤 관점을 끌어낸다면 그 나름대로 멋질 거예요. 하지만 다른 사람의 의견을 반드시 따르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해요. 누군가를 무조건 우러러보는 것도 위험해요. 본인과 주위 사람을 존중하고 굽어보는 게 더 중요하죠.
전위파 아티스트란 평가에는 동의하나요? ‘프린스의 화신’이라는 수식어도 있는데요. 와, 엄청난 칭찬이네요. 같은 스타일을 고집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 이야기가 나온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프린스를 좋아하지만 제 음악에 영향을 미치진 않았어요. 그래도 프린스의 화신이란 칭찬은 새겨둘게요.
어떤 팬들은 당신이 그래미 어워즈에 한 번도 초대받지 않았다는 사실이 말도 안 된다고 얘기해요. 어떻게 생각하나요? 마침 그래미 어워즈 홈페이지에 올라온 제 투어 소식을 보고 분통했어요. 저에 관한 뉴스를 다루는 것이 자신들을 쿨하게 만든다고 생각하면서 제 음악은 인정하지 않고 있어요. 이중잣대를 들이대는 거죠.
미국에선 힙스터가 희화되기도 하지만, 한국에선 뭘 좀 아는 멋진 부류로 통해요. 그리고 당신의 음악은 그들에게 특히 인기가 많아요. 자신의 음악은 인디와 팝 또는 어떤 영역에 걸쳐 있다고 생각해요? 정말요? 서울에 꼭 가봐야겠어요. 질문에 대한 답을 하면 제 음악은 그 어떤 장르도 아닌 것 같아요. 그런 식의 구분에 관심을 두지도 않고요.
그럼, 당신에게 음악이란 어떤 의미인가요? 평온, 휴식, 대략 그런 거예요. 집 같은 존재.
- 에디터
- 박나나
- 포토그래퍼
- JDZ Ch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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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승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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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hristine Hw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