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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네 개의 테크 제품 리뷰

2020.02.12GQ

보는 순간 미소짓게 만드는 물건은 실제로도 기쁨만 줄까? 그런 의문에서 빠르게 쓰기 시작한 열네 개의 물건.

PHILIPS
<스타워즈> 시리즈의 세트장에서 빌려온 소품이 아니다. 실은 필립스의 뉴 비바 핸드 블렌더다. 대신 여기에도 포스가 함께했다. 800W의 강력한 모터와 표창처럼 설계된 삼각형 날이 채소를 뚝딱 갈아버렸다. 아몬드, 호두, 냉동 과일도 칼춤을 막지 못했다. 식재료가 밖으로 튀지 않고 세척도 간단해 손이 많이 가지 않았다. 무게는 지나치게 가볍지 않다. 스피드 버튼으로 속도를 올릴 수 있는데 적당한 무게감 때문에 촐랑대지 않아서 좋다. 본체에는 회전 채 썰기가 가능한 스파이럴라이저도 쉽게 장착할 수 있었다. 오이, 감자, 당근을 재물로 바쳤다. 얇은 굵기로 손질된 재료들이 줄줄이 이어져 나왔다. 왠지 모를 희열이 느껴졌다. 스파이럴라이저의 종류에 따라 스파게티 모양, 링귀니 모양, 리본 모양으로 뽑아낼 수 있다. 유튜브에서 이렇게 만든 재료들로 채소면 파스타, 오이 국수를 만드는 레시피 영상들을 찾아볼 수 있다. 재료 손질이 요리의 절반이라고, 이 정도면 문제없겠다. 뉴 비바 핸드 블렌더 스파이럴라이저 패키지 13만9천원, 필립스.

BEATS BY DR. DRE
모든 건 귀 때문이다. 이어폰을 여럿 사용하면서 깨달은 것은 소리의 좋고 나쁨은 지극히 주관적인 평가라는 점이다. 이런 믿음 탓에 소리의 질보다 착용감을 우선으로 삼는다. 하루의 절반 이상을 이어폰을 꽂고 생활하는 내게 파워비츠 프로는 짝꿍과도 같다. 이어후크로 거는 방식이라 웬만해선 쉽게 빠지지 않고, 긴 시간 착용해도 크게 불편하지 않다.
매일 파워비츠 프로와 같이 출퇴근하고, 일을 하며, 군것질도 하고, 화장실도 간다. 타인의 말에 귀를 내어줘야 할 때 한쪽 이어폰을 빼면 자동으로 음악이 정지되고, 다시 꽂으면 이어서 재생된다. 양쪽 모두에 음량 조절과 컨트롤 버튼을 갖춘 것도 흡족하다. 파워비츠 프로의 존재감은 운동을 할 때 더 돋보인다. 아무리 달리고 뛰어도 나가 떨어지지 않는다.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 26만9천원, 비츠 바이 닥터드레.

APPLE
소음 차단이 간절한 시대. 에어팟 프로는 거의 혁명에 가깝다. 부드럽고 가벼운 실리콘 소재의 인이어 이어폰으로 두 귀를 꼭 막은 순간, 정말이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사무실은 물론이거니와 기차, 비행기에서는 심신의 안정감마저 전해줄 수 있겠다 싶었다. 뛰어난 사운드와 몰입감이 남다른 액티브 노이즈 캔슬링 기능이 탁월했다. 특히 주변음 허용 모드를 통해 상황에 따라 꼭 들어야 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옵션을 제공한 점도 애플다웠다. 에어팟 프로가 삶에 더 많은 자유와 향유를 허락했다. 32만9천원, 애플.

JBL
‘기분 좋은 배신감’이란 표현이 적절하겠다. 7만원대의 가격에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았지만, 예상과는 달리 다양한 음역대를 무리 없이 소화했다. 바둑돌처럼 동글동글하고 소담한 데다 귀에 은밀하게 밀착되는 착용감도 만족스럽다. 달리거나 몸을 격하게 흔들어도, 손으로 잡초 뽑듯 빼내기 전엔 절대 귀에서 빠지지 않는다. 블루투스 이어폰의 필수 조건이 되어버린 통화 음질도 불만 제로. 단, 이어버드로 볼륨 조절이 가능했다면 보급형 이어폰이란 사실을 떠올리지 않았을 텐데. 7만7천원, JBL.

BERNARDAUD
오래도록 바라보게 된다. 무엇이든 담아보고 싶다. 숙련된 장인의 손에서 탄생한 브랜드 베르나드도가 아티스트 제이알 JR과의 협업으로 선보인 그릇을 보고 든 생각이다. 영화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로 잘 알려진 제이알은 전 세계 곳곳의 거리와 건물에 그라피티를 남기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의 작업에는 언제나 메시지가 있다. 접시 뒷면엔 이런 글자가 쓰여 있다. “나는 손안에 있는 것을 먹을 거예요.” 그저 비어 있는 상태로도 충분히 근사한 작품. 가격은 6개 세트에 1백16만8천원, 베르나드도.

MOLESKINE
인간은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 노트를 쓰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새해가 되자 책상 위에 수십 권의 새 노트가 쌓여간다. 쓰지 않는 유물을 계속해서 만들고 받는 반복적인 행위가 가끔은 아이너리 하지만. 영원히 우주 어딘가 자신만의 행성에서 음악을 만들고 있을 것만 같은 데이비드 보위 한정판 노트는 종이 그 이상의 무엇이다. 그 안에 내밀하고도 기발한 무언가를 야금야금 기록하고 싶어진다. 가격은 3만9천6백원(블랙 라지), 5만1천7백원(컬렉터스 에디션), 몰스킨.

RAMUN
혼자 살기 시작한 이후로 세상의 모든 조명이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빛의 색감, 세기, 그런 것들이 감정의 변화에 얼마나 미세하게 영향을 주는지. 길고 깊은 밤은 조명의 힘을 다시금 느끼게 하는 시간대다. 라문의 침실 스탠드 벨라 Bella를 곁에 두고 며칠 밤을 지내봤다. 우선 종 모양을 닮은 형태가 눈에 들어온다. 솔직히 손에 쥐고 흔들어보기도 했다. 의미는 없을지라도. 전설적인 디자이너 알레산드로 멘디니와 뉴에이지 디자인의 아이콘 마르셀 반더스의 협업으로 완성된 제품이다. 한 번 터치하면 밝은 빛이, 두 번째 터치에서는 옅은 음악 소리가 들렸다. 부드러운 색조가 주변 반경을 따스하게 감쌌다. 부담스럽지 않은 골드 컬러가 안정감을 선사했다. 벨라는 안과 의사와 함께 제작한 스탠드 조명이다. 눈 건강을 고려해서 만들었다. 빛이 눈에 미치는 영향을 측정하는 광생물학적 안정성에서 최고등급 인증을 받았다. 또한 자외선, 적외선, 빛 떨림과 발열 현상이 없다. 조도 조절도 20단계로 가능해 섬세하게 빛을 조절할 수 있다. 오래도록 함께해도 무해한 존재 벨라. 우아한 빛 아래서는 시간이 더디게 흐른다. 공허한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 누구에게도 속박당하지 않는 시간. 벨라의 숨은 매력 중 하나는 조명 하단에 자신만의 문구 혹은 별자리를 각인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은밀한 기호를 숨겨놓은 조명을 머리맡에 두고서 잠에 빠져든다. 벨라가 선사한 한겨울 밤의 편안하고 따뜻한 꿈. 가격은 20만원대, 라문.

SENA
자전거를 탈 때면 매번 이어폰의 유혹 앞에서 갈등했다. 노래를 듣겠다는 일념으로 귀를 닫고 달리다간 생애 마지막 음악 감상이 될지도 모를 일이니까. 모터사이클 라이더를 위한 통신기기를 제작하는 세나가 이번에는 자전거 라이더의 딜레마를 해결해줄 헬멧을 출시했다. 좌우로 외장 스피커를 갖춰 라디오나 음악을 듣는 동시에 주변에서 발생하는 소리에도 귀를 기울일 수 있다. 세나의 신제품은 헬멧과 AI 스피커의 결합체다. ‘헤이 카카오’ 어플과 연동하면 날씨, 뉴스, 정보 검색 등 인공 지능 스피커의 기본 기능을 모두 활용할 수 있다. 특히 자전거를 세우지 않고도 음성만으로 카카오톡을 제어하는 능력은 귀를 솔깃하게 했다. “헤이 카카오, 새로 도착한 메시지 읽어줘”라는 명령어를 무리 없이 알아듣고, 유창한 한국어 실력으로 문장을 읽었다. 하지만 아직 완벽하지 않은 인공 지능 어플이 완성도에 흠집을 냈다. 카카오톡에 저장된 이름을 인식하는 수준이 아쉽다. 카카오톡 메시지를 전송하거나 보이스톡을 걸려고 하자 우왕좌왕했다. 가장 기대했던 방향 지시등 제어 기능도 아쉽긴 마찬가지. 매뉴얼대로라면 “왼쪽 깜빡이 켜줘”라는 명령어에 따라 헬멧 뒷부분의 조명을 점멸해야 하지만, 자꾸만 스피커에서 “깜빡 깜빡이를 켜주세요. 훅 들어오면 놀라요”라는 가사가 흘러나왔다. 명령어를 인식하는 데 오류를 일으켜 엉뚱하게도 트로트 가수 비너스의 노래 ‘깜빡이’를 찾아 재생했다. 구형 시스템인 블루투스 4.2를 탑재해 감동적인 페어링 속도를 기대하긴 어렵다. 성미 급한 사람이라면 고려해야 할 사항. 가격은 19만8천원.

CITROËN
시트로엥이 약이나 패치의 도움 없이 멀미를 방지할 수 있는 도구를 선보였다. 차 안에서 자유롭게 업무를 보거나 독서를 할 수 있는 자율 주행 시대에 착안한 제품이다. 안경 프레임 내부의 파란 용액이 좌우로 움직이며 가상의 기준점을 만들면, 우리의 두뇌는 거짓된 시각 정보를 통해 평형이 유지되고 있다고 착각한다. 안경에는 눈의 시야각을 고려해 좌우로 동그란 프레임을 하나씩 더 달았다. 기이한 외형 때문에 버스에선 꺼낼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대신 총알처럼 내달리는 심야 택시에서 착용했다. 30분 이상 휴대 전화를 들여다보는 동안 진작 찾아와야 했을 어지러움이 느껴지지 않았다. 뜻밖의 효과에 고무되어 다른 실험에 나섰다. 안경을 착용하고 코끼리코를 한 채 빙빙 돌았다. 8바퀴도 채우지 못하고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10만원대, 시트로엥.

GARMIN
햇살에 손목을 내줬다. 이렇게 자연의 온기를 느낀 적이 또 언제였을까? 태양은 내게 힘을 줬다. 손목 위에서 반짝이는 시계의 디스플레이에 태양광 수치가 그래프로 표시됐다. 피닉스 6X 프로 솔라 에디션은 태양광 충전을 지원하는 GPS 시계다. 스마트워치 모드에서 최대 3주 사용 가능한데 이 기능을 활용하면 3일 더 쓸 수 있다. 또 사용 패턴에 따라 배터리 수명을 관리하는 파워 매니저 기능도 갖췄다. 장기간 사용에 최적화된 배터리 시스템, 티타늄 소재의 탄탄한 외형, 직관적으로 표시된 기압, 고도, 일출 데이터까지, 모든 기능이 아웃도어 활동으로 쏠린다. 러너들을 위해 페이스 조절을 할 수 있도록 구간별 가이드를 제공하는 기능도 운동 욕구를 독려한다. 하지만 나처럼 바쁘다는 핑계로 운동과 멀어진 사람에겐 태양광 충전 기능으로 족하다. 광합성이라도 할 수 있으니. 1백38만원, 가민.

UNDER ARMOUR
왕년에 잘나가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로 말하면 농구가 있다. 왕년에 어디 가서 뒤처지지 않을 만큼 농구를 했다. 어딜 가든 농구 코트만 있으면 친구가 생겼다. 커리7(컬러 404, 슈퍼 소커 에디션)을 보며 회상했다. 만약 이걸 신었다면 게임이 달라졌을까? 접지력이 우수하다고 정평이 난 커리7은 순간적으로 빠르게 움직이거나 방향을 전환할 때 밀리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밑창에는 두 가지 쿠셔닝을 위아래로 장착했다. 반발력과 에너지 리턴이 장기인 호버 쿠셔닝과 밀착력을 강조한 마이크로 G 쿠셔닝. 둘 사이에 삽입된 주황색 플렉서블 플레이트는 발목을 지지한다. 이런 안정감은 코트에서 적극적이고 과감한 플레이를 이끌어낸다. 커리7을 신고 내가 그랬다는 얘기는 아니다. 왕년이었다면 모를까. 17만5천원, 언더아머.

LG ELECTRONICS
역시 등잔 밑이 어둡다. 눈가에 아이크림을 바르고, 얼굴이 수분크림으로 범벅되는 동안 목 부위는 피부 관리의 사각지대로 남았다. 밭고랑처럼 움푹한 주름과 모차렐라 치즈처럼 탄력 잃은 목 상태를 뒤늦게 발견하고 프라엘 넥케어를 집어 들었다. 수분크림을 목에 도포한 후 스카프처럼 기기를 둘렀다. 예상과 달리 열이 발생하거나 피부를 자극하진 않았다. 약 일주일간의 체험 후, 뿌리를 내린 주름을 제거하긴 어렵겠지만 꾸준히 사용하면 피부 탄력은 유지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다. 프라엘 넥케어는 목 두께에 따라 둘레를 조절할 수 있다. 또 실리콘으로 만들어 피부에 들러붙지 않는다. 물론 치명적인 단점도 있다. LED가 기기 앞쪽에만 장착돼 뒷목까지 챙기려면 2번씩 사용해야 한다. 배터리와 리모컨을 겸하는 컨트롤러도 거추장스럽다. 무엇보다 빛의 퀄리티가 다르다면 할 말은 없지만, 합리적인 가격일까? 1백19만9천원. LG전자.

NESCAFÉ DOLCE GUSTO
2020년 캡슐 커피는 계속해서 진화한다. 커피를 마시면서 건강해지고 있다는 기분을 느끼기란 쉽지 않지만 이 제품만은 다르다. 인삼의 풍미가 담겼으니까. 머신의 ‘톡’ 터지는 경쾌한 소리가 들리면 캐러멜의 달콤함과 벨벳처럼 부드러운 크레마가 얹어진 커피 한 잔이 완성된다. 블라인드 테이스팅을 했을 때 쉽게 맞출 수 없을 정도로 미묘한 인삼의 쌉싸름한 맛이 끝에 전해진다. 과로와 피로에 지친 하루. 아침을 힘차게 시작하고 싶을 때 손이 갈 것 같다. 가격은 9천9백원(16개), 네스카페 돌체 구스토.

MICROSOFT
서피스 프로 7은 속이 더 여물었다. 전반적으로 성능 향상에 힘썼다는 인상을 준다. 최신 10세대 인텔 쿼트코어 프로세서를 탑재해 전작과 비교해 처리 속도가 2.3배 이상 빨라졌다. 그래픽 성능도 향상됐다. 새로운 무선랜 표준인 와이파이 6는 어떤 환경에서든 빠르고 안정적인 네트워크 환경을 구축한다. 초고속 부팅이 가능한 인스턴트 온 기능도 눈에 띈다. 노트북과 태블릿을 자유롭게 오가는 2 in 1 제품이지만 성능 면에서 노트북 쪽으로 입지를 더 굳혔다. 그 외의 부분은 힘 주어 이야기할 게 없어 보인다. 외형은 전작과 동일하다. 12.3형 디스플레이와 제품 크기, 바닥에 고정하는 킥 스탠드의 각도까지 그대로다. 직전 모델의 커버 키보드도 그대로 쓸 수 있다. 사용자들의 요구가 컸던 USB 타입C를 측면에 추가한 것이 괄목할 만한 변화라면 변화. 아쉬운 일은 아니다. 단숨에 강렬한 존재감을 차지한 서피스 프로 4 이후 지속적으로 내실을 다지는 데 집중했으니 말이다. 그 진화의 정점에 서피스 프로 7이 있다. 지금까지 고수해온 디자인의 완성도도 인정할 수 있다. 다만 눈에 보이는 변화에 마음이 먼저 동하는 건 어쩔 수 없다. 색상은 매트 블랙과 플래티넘. 99만5천원부터, 마이크로소프트.

    에디터
    김영재, 김아름, 이재현
    포토그래퍼
    이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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