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F/W 남성 패션 위크의 극적인 순간을 모았다.
2020년 가을, 겨울을 위한 컬렉션 기간. 새로울 것이 얼마나 더 있을까 싶지만 비상한 창작자들은 이번에도 기어코 잊지 못할 장면들을 만들어냈다. 침묵이 깔린 런웨이, 오프 화이트는 탭댄서의 발 구르는 소리로 쇼의 시작을 알렸다. 그는 런웨이 내내 음악에 맞춰 모델들 사이에서 아름다운 탭댄스를 췄고 마침내 피날레 행렬이 끝났을 땐 곳곳에서 박수 갈채가 쏟아졌다. 환호가 터져 나온 것은 오프 화이트 쇼만이 아니었다. 아코디언 연주와 연극적 연출을 시도한 아미, FKA twigs의 라이브 공연과 함께한 발렌티노, 사막의 신기루 같았던 발망 무용수들의 군무, 악기 연주와 곡예, 춤, 노래까지 종합 예술 무대 같던 옴므 플리세 이세이 미야케, 안무가 미셸 리초의 연출로 완성한 마르니의 쇼 등 역동적이고 예술적인 쇼가 줄을 이었다. 연출력이 돋보인 건 쇼 공간 디자인, 시노그래피도 마찬가지. 푸른 하늘과 흰 구름 배경, 커다랗게 확대한 테일러링 도구 등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을 연상케 한 루이 비통의 시노그래피는 이번 시즌의 다채로운 수트, 초현실주의에서 모티프를 얻은 룩과 어우러지며 앙상블을 이뤘다. 모래가 깔린 텅 빈 쇼장 한가운데, 거대한 시계추가 들어선 구찌 역시 추의 움직임을 통해 비선형적으로 흐르는 패션계의 유행과 관념에 대한 변화 등 이번 쇼에서 말하고 싶은 메시지를 함축적으로 담아냈다. 이 밖에도 지속 가능한 패션에 대한 고찰이 엿보인 에르메네질도 제냐는 멀티미디어 아티스트 앤 패터슨과 협업해 잔여 원단으로 만든 수천 개의 리본 테이프 설치 미술 작품을 시노그래피로 활용했다. 거대한 리사이클링 작품이 무대가 된 것. 준비한 컬렉션을 보여주는 장소와 방식은 완성도만큼이나 중요하다. 매 시즌 새로운 결과물을 내놓기 위해 디자이너들의 고민은 깊어질 테지만 그럴수록 우리의 눈과 귀는 즐겁다.
- 에디터
- 김유진
- 사진
- Courtesy of Louis Vuitton, Off-White,Homme Plissé Issey Miyak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