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스트리밍 서비스 스포티파이가 한국 진출을 앞두고 있다. 이미 포화 상태인 국내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 시장에 새로운 화두를 던질 수 있을까?
스포티파이가 2월 24일 공식 블로그를 통해 자사 서비스에서 지금까지 재생된 케이팝 스트리밍에 통계를 공개했다. 스포티파이는 2014년부터 케이팝의 동향에 민감한 반응을 보여왔다. 통계에 따르면 지금까지 스포티파이에서 케이팝은 총 410억 번 스트리밍되었고, 케이팝을 자신의 플레이리스트에 넣은 유저의 수는 9천3백만 명이다. 가장 많이 듣는 나라는 미국, 인도네시아, 필리핀, 일본, 브라질 순. 특히 최근에는 이집트와 베트남에서 30퍼센트 이상 성장했다. 북미, 아시아, 남미는 물론이고 중동에서도 케이팝의 인기가 커지고 있다는 증거로 볼 수 있겠다.
스포티파이는 전 세계에서 2억 7천1백만 명이 사용하고 있는 스웨덴의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다. 이 가운데 1억 2천4백만 명이 유료 결제로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 이용자 수 2위인 애플뮤직의 이용자가 6천만 명. 아이폰이라는 플랫폼을 들고 유리한 상황에서 성장했지만 아직 스포티파이의 아성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 현재 스포티파이는 79개국에서 서비스되고 있다. 아시아에서는 일본, 인도네시아, 필리핀, 태국, 베트남, 인도 등 외국 서비스의 접속을 제한하고 있는 중국을 제외하고 서비스되지 않는 나라는 소수다. 그중 하나가 한국이다. 전 세계 사람들은 스포티파이를 통해 케이팝을 듣지만, 정작 한국은 스포티파이를 통해 전 세계의 음악을 듣지 못하는 거다. 이제는 슬슬 케이팝의 나라에서 스포티파이가 서비스를 시작할 때도 된 게 아닐까.
그렇다면 왜 스포티파이는 한국에 들어오지 않고, 또는 못 하고 있는 건가. 가장 큰 이유는 통신사와 포털 중심으로 이미 굳어버린 시장 상황이다. 국내 스트리밍 서비스에서 절반에 가까운 점유율로 1위를 차지하고 있는 멜론은 다음카카오의 카카오M이 서비스한다. 본래 SK텔레콤에서 운영했고 1위 이동통신사의 위치를 이용해 통합요금제, 요금 할인 같은 혜택을 통해 1위를 차지한 후 아직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2위인 지니는 KT와 엠넷닷컴이 서비스한다. 역시 해당 통신사를 이용할 경우 요금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두 번째 이유는 위에서 언급한 서비스사가 제작과 음원 유통을 겸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아이유의 음악은 카카오M에서 제작하고 유통하며 멜론과 대부분의 국내 음원 서비스에서 들을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의 애플 뮤직에는 아이유의 음원이 없다. 카카오M이 한국 애플 뮤직에 음원을 유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이유는 물론이고 카카오M에서 유통하는 음악은 애플 뮤직에서 들을 수 없다. 재미있는 건 한국을 제외한 다른 국가 애플 뮤직에서는 아이유의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점이다. 그 많고 많은 애플 뮤직 중 자신의 나라에서만 아이유가 실종된 셈이다.
여기에 스포티파이는 한 가지 문제를 더 해결해야 한다. 다른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와 달리 스포티파이는 무료 서비스와 프리미엄이라는 유료 서비스가 함께 존재한다. 무료 서비스는 프리미엄 서비스에서 일부 기능을 제한하고 라디오처럼 셔플로 재생할 수 있으며 중간 광고가 삽입된다. 문제는 무료 서비스의 저작권 징수 규정이다. 소비자가 사용료를 지불하고 스트리밍해 음악을 듣는 주문형 스트리밍 서비스의 경우 한 곡당 발생하는 저작권료는 4.2원 또는 매출액의 60퍼센트다. 사용자가 무료로 스트리밍해 음악을 듣는 광고기반 스트리밍 서비스의 저작권료는 4.56원 또는 매출액의 65퍼센트다. 무료 음원이 유료 음원보다 비싼 저작권료를 무는 셈이다. 규모의 경제를 만들지 못한 ‘비트’와 ‘밀크’ 같은 광고기반 스트리밍 서비스는 모두 살아남지 못했다.
이미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가 많은데 굳이 스포티파이를 이용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있다. 그것도 확실하게. 스포티파이가 국내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와 다른 사용자 경험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스포티파이의 홈 화면은 사용자에 맞춰 모두 개인화되어 있다. 즉, 우리가 서로 다른 첫 화면을 보게 될 거라는 얘기다. 어떤 기준으로? 바로 우리가 평소 듣는 음악으로. 스포티파이의 추천 알고리즘은 판도라 라디오, 라스트에프엠 등 기존의 서비스에 비해 월등하다. 나는 스포티파이의 플레이리스트를 타이달, 애플 뮤직, 유튜브에 모두 옮겨 그에 따라 어떤 추천곡이 뜨는지 매주 테스트하고 있다. 가장 먼저 서비스를 시작하고 오랫동안 서비스를 해온 스포티파이의 추천이 다른 서비스에 비해 훨씬 다양하고 취향에 잘 맞는다. 물론 내가 판단할 수 있는 건 순간의 느낌일 뿐이지만, 스포티파이는 백그라운드의 데이터를 통해 내가 느낄 느낌을 소름 돋을 만큼 잘 맞춘다. 스포티파이는 이를 위해 에코 네스트, 사이언티픽, 닐랜드와 같은 인공지능 데이터를 다루는 회사를 연이어 인수하고 오랜 경력을 가진 선곡 전문가를 통해 플레이리스트를 만들고, 다시 이를 통해 데이터를 모은다. 한국 시장을 위해 스포티파이는 지금껏 ‘K-Pop Daebak’은 물론이고 ‘K-indie Picks’ 같은 플레이리스트를 직접 업데이트해오며 데이터를 모았다. 스포티파이가 직접 만든 플레이리스트만 4억 개, 이용자들이 만든 플레이리스트는 16억 개다. 여기에 모인 데이터를 통해 음악을 추천받다 보면 국내 인디 음악을 듣다가 자연스럽게 요즘 하나의 신으로 묶이고 있는 아시아의 인디 음악을 발견하는 것 같은 놀라운 순간을 마주하게 된다.
자신의 음악이 스포티파이 내에서 어떻게 소비되는지 통계를 보여주는 ‘Spotify for Artists’는 음악가의 입장에서 단비 같은 서비스다. 멜론 역시 비슷한 종류의 서비스인 ‘파트너 센터’를 운영하고 있지만 스포티파이만큼 직관적이지 않고, 로컬 서비스의 한계가 분명하다. 해외 투어가 중요해지고 있는 요즘 이미 많은 음악가가 스포티파이를 통해 자신의 음악을 소비하는 지역을 확인하고 그에 맞춰 투어 계획을 짜고 있다. 지금의 ‘스트리밍’이 단지 순위를 올리기 위한 것이라면 스포티파이의 ‘스트리밍’은 음악가를 직접 부를 힘을 갖고 있다.
아쉽게도 스포티파이는 애플 뮤직처럼 국내에서 크게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할 것이다. 같은 글을 애플 뮤직 진출 때도 썼고 아직까진 현실이 됐다. 서비스 2년이 지난 애플 뮤직의 한국 시장 점유율은 1퍼센트가 되지 못한다. 위에서 언급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한국에선 반쪽 서비스를 할 수밖에 없다. 이미 ‘바이브’나 ‘플로’ 등 새로운 세대의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가 스포티파이를 벤치마킹해 순위 중심이 아닌 취향 중심 서비스로 마케팅했지만, 여전히 공룡 서비스를 위협하고 있지는 못하다. 거기에 사재기, 스트리밍이 난무할 만큼 순위가 중요한 한국 시장에서 스포티파이는 큰 메리트가 없을 것이다. 그래도 혹시 넷플릭스처럼 성공할 가능성은 없을까? 넷플릭스는 OTT 시장이 거의 존재하지 않을 때 들어와 직접 한국 독점, 협력 콘텐츠를 만들며 자리를 잡았다. 포화 상태인 국내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 시장에서는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스포티파이가 단순히 음원이 아닌 차별화된 콘텐츠를 제공한다면 어떨까? 최근 스포티파이는 오디오 기업을 선언하며 김렛, 파캐스트, 앵커 같은 팟캐스트 서비스를 인수했다. 국내에서도 네이버가 오디오클립을 론칭하는 등 오디오 콘텐츠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이미 팟빵처럼 상장을 앞두고 있는 팟캐스트 기업도 있다. 만약 이를 스포티파이가 인수한다면? 어디까지나 가정일 뿐이다. 가정은 접어두고 그래도 스포티파이를 써야 한다면 왜일까. 정말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통해 새로운 음악을 발견하는 기쁨을 얻기 위해서다. 사람인지 기계인지 누가 들었는지 모를 차트와 서비스사와 음원 유통사와의 관계와 유명세를 통해 결정되는 메인 추천 음악에서 벗어나서 말이다. 내가 2019년에 스포티파이를 통해 새로 알게 된 음악가는 100팀이 넘는다. 대부분의 음악 작업과 유통, 홍보를 혼자 할 수 있는 기술의 발달과 좁아진 네트워크로 그 어느 때보다 새로운 음악가가 많이 탄생하고 있는 시대다. 우리도 새로운 시대에 맞춰 새로운 음악을 발견하는 일을 게을리하면 안 되는 때가 아닐까. 스포티파이는 당신이 좋아할 만한 새로운 음악을 찾는데 적어도 기존 국내 서비스보다 좋은 친구가 될 것이다.
글 / 하박국(영기획 대표)
- 피쳐 에디터
- 김아름
- 사진
- 스포티파이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