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만난 것은 필연이었다. <지큐> 에디터들을 매혹시키고 담대한 삶에 힘을 더해주는 특별한 물건.
톰 포드의 ‘lux’를 동경하고 에디 슬리먼의 ‘style’을 좋아한다. 톰에게선 좋은 옷의 충만함을, 에디로부턴 멋진 옷의 자존심을 배웠다. 톰 포드를 입으면 어깨가 펴지고, 에디 슬리먼을 걸치면 다리를 꼬게 됐다. 비싸도 아깝지 않다는 걸 톰 포드 캐시미어 코트를 살 때 처음 느꼈고, 얼핏 비슷해 보여도 그러니까 그게 아니라는 걸 에디 슬리먼의 스키니 팬츠가 증명했다. 딸이 립스틱을 바르고 집에 오는 게 소원인 엄마는 톰 포드 코트를 입었을 때 잔소리가 줄고, 청와대 대변인처럼 옷을 입는 의사 친구는 에디 슬리먼의 점퍼를 탐낸다. 매번 톰과 에디의 고집에 감탄한다. 변화에 무디다는 수근거림에도, 내가 가장 좋아하고 잘하고 제대로 아는 것에 대한 확신이 있으면 태도와 자세를 유지할 수 있다는 걸 배운다. 톰의 가죽 점퍼는 제일 많이 입은 옷이고 에디의 웨스턴 부츠는 제일 많이 산 아이템이다. 그래서 둘을 같이 입고 신은 날이 제일 많다. 내일도 그럴테지만. 박나나
사실 이 물건이 나와 닮았다고 하기엔 어색하다. 난 90년대에 태어났고 LP보다는 CD, 아이팟이 더 익숙한 사람이니까. 솔직히 말해 ‘닮았다’와 ‘닮고 싶다’ 사이 어딘가에 있는 물건을 골랐다. 한동안은 누군가 좋아하는 음악을 물어보면 쉽게 대답 하지 못했다. 페스티벌에서는 록이 좋았고, 우디 앨런 영화를 보면 재즈가 최고 같았다. 솔, 펑크 음악을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여전히 변덕스러운 취향으로 살고 있지만 이제 좋아하는 음악은 명쾌히 대답할 수 있다. 어떤 이는 마르지엘라를 입고, 다른 이는 페라리를 타며 자신을 찾듯. 자유로운 에너지를 가진 이 음악을 들을 때 내가 나다워진다는 기분이 든다. 쪼그리고 앉아 디깅하며 몇 장 살지 고민하고, 턴테이블로 듣는 일련의 행위는 취향의 범람 속에서 나를 잃지 않고자 하는 의식 같다. 그래서일까. 새 LP보다는 먼지 냄새 나는 지하상가 LP 박스를 뒤적이는 게 더 좋다. 할머니가 돼도 샬라마 Shalamar처럼 춤추고 싶다. 이진수
간간이 스치는 바람이 기분 좋은 여름 밤이었다. 선물에 큰 감동도, 별다른 미동도 없는 나에게 그가 이 사진집을 건네던 날은 뚜렷하다. 가장 좋아하는 모델을 가장 좋아하는 사진가가 찍었고, 이 둘은 사랑했다. 그래서인지 둘이 연인이였던 1990년대, 마리오 소렌티가 찍은 케이트 모스의 모습을 오랫동안 좋아했다. 차분히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날의 계절과 온기, 향, 대화, 시선 같은 것들이 느껴진달까. 거울에 비친 나, 사랑하는 사람이 바라보는 내 모습, 낯선 이가 기억하는 첫인상…. 나를 설명하는 수많은 장면 중 사랑하는 사람이 바라보는 내 모습을 ‘나’ 라고 정의하고 싶다.(친구들도 모르고, 가족도 모르고, 정작 나도 모르겠는 진짜 내 모습 같아서.) 이 사진집은 책장 대신 침대맡 창문 틈 사이에 가지런히 놓아두었다. 술에 취해 기분이 한껏 들뜨거나 우울이 극에 달하는 밤에 종종 펼쳐본다. 그러고 나면 널뛰기하듯 요동치던 마음이 이내 고요해진다.신혜지
“어떤 부츠든 지금 하나 장만해 두세요. 그럼 10년 후쯤, 멋진 부츠를 갖게 될 테니까요.” 8년 전, 당시 레드윙의 아시아 본부장이었던 미치야 스즈키가 내게 한 말이다. 원하는 멋진 부츠는 한참 뒤에야 가질 수 있으니, 우선 어떤 부츠든 곁에 두고 오래도록 즐겨보라는 것이었다. 결국 시간을 들여 가꿔야 비로소 얻을 수 있는 것이 ‘멋’이라는 얘기일까. 문제는 지금도 멋진 부츠를 찾는 일만큼 ‘멋진 아저씨’가 되는 과정도 영 어렵다는 거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몇 년 전 얻은 스즈키의 대답 이후 무엇이든 곁에 두고 즐기다 보면, 결국엔 멋진 아저씨가 될 거란 막연한 믿음이 생긴 정도. 그 믿음의 동료들을 소개하면 35만 킬로미터를 넘게 달린 아버지의 자동차, 얇은 데님 셔츠, 제이크 질렌할을 보고 따라 산 선글라스, 싱거운 고등학교 친구들, 그리고 저 부츠 정도가 있다. 지금도 부츠에 밍크 오일을 바를 때면 스즈키가 말한 ‘한참 뒤에 갖게 될 멋’을 떠올리며 웃는다. 신기호
덜렁대는 성격 탓에 몇 개의 지갑을 분실하고 난 뒤 나에게 안착한 이 지갑은 일 년 남짓 사용했지만 오랜 시간을 함께한 듯 친근하다. 지갑이라는 물건의 특성상 집을 나설 때부터 매 순간 함께하는 데다 이 안에 담긴 신분증이나 명함, 신용카드 같은 내용물에 ‘나’에 대한 모든 정보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이 지갑에는 평소 잘 드러나지 않는 나의 키치하고 아방가르드한 취향이 스며 있다. 꼼 데 가르송과 레이 가와쿠보, 1990년대 아방가르드를 경외하는 마음을 옷 대신 지갑으로 대체했다. 네온 핑크 컬러의 앞면과 네온 오렌지 컬러의 뒷면으로 완성된 다소 유치한 디자인도 좋지만, 지퍼 고리에 단 오브제들의 조합도 마음에 든다. 사랑스러운 모양만 골라서 달았고 의미 역시 같다. 여행지에서 구입한 열쇠고리나 작은 수비니어, 소중한 사람에게 받은 가죽 오너먼트 같은 사랑스러운 마음과 아름다운 추억이 초롱초롱 달려 있다. 이연주
아끼는 후배가 준 아끼는 노트다. 이걸 주고받은 상황을 둘 다 기억하지 못하지만 언제 처음 썼는지 나는 알고 있다. 5년 전 여름, 한국에 온 프랑스 아티스트와의 인터뷰 질문이 첫 장부터 연필로 빼곡하게 채워져 있다. 가장 윗줄에는 인터뷰 날짜가, 마지막 질문 밑에는 그가 펜으로 구불구불 쓴 이메일 주소가 적혀 있다. 그날부터 루틴처럼 인터뷰 질문을 여기에 적는다. 연필을 꼭 쥐고. 이 노트의 텅 빈 공간을 채우면서부터 마법처럼 ‘인터뷰의 신’이 되거나 하진 않았다. 그랬다면 애지중지했겠지만 닳고 해진 몰골을 보다시피 아무렇게나 쓴다. 오래 의지해온 파트너의 장점은 휴대성이다. 문고본 판형이라 주머니에 쓱 들어간다. 살짝 말아 한 손으로 쥐는 것도 가능하다. 익숙한 몸짓으로 코트나 재킷에서 노트를 꺼내 펼치며 인터뷰이에게 내 소개를 하는 순간 고전 느와르 속 사립탐정이 된 듯한 기분도 든다. 다른 사람 눈에는 어떻게 보일까? 그러고 보니 이 질문은 한 적이 없다. 김영재
나에겐 몇 가지 주사가 있다. 부끄러운 일화가 대부분이지만 아주 가끔 낭만적인 순간도 찾아온다. 그중 하나는 다 마신 빈병을 집에 들고 오는 것이다. 품안에 갓난아기라도 끌어안은 것처럼 비틀비틀 갈지자로 애지중지 데려온다. 술병을 방에 들이는 경우는 주로 두 가지다. 술 자체가 너무 맛있다거나 그날의 밤을 기억하고 싶어서. 좁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밤새도록 ‘꺄르르’ ‘푸하하’ 뭐가 그렇게도 즐거운 건지. 비디오카메라라도 설치해놓고 소란스러운 그 밤을 기록해보고 싶은 심정이다. 장르는 블랙 코미디 아니면 신파극이겠지. 어쨌거나 붉고 샛노란 물방울로 가득 채워져 있던 유리병은 우리 집에서 꽃병으로 회생한다. 작은 방에서 가장 화사하고 생기 넘치는 구역. 다채로운 주종이 뒤섞여 일렬횡대로 꽃밭이 되는 내 방식대로의 기억법. 가끔은 혼자서 멍하게 그 풍경을 바라보며 ‘피식’ 웃곤 한다. 어처구니가 없고 애틋하기도 해서. 김아름
‘청와대 경호원’. 학교생활 기록부의 장래 희망 칸을 채운 직업명이었다. 단정한 수트와 절도 있게 갈라지는 가르마보다 ‘중 2병’ 걸린 나를 매료시킨 직업적 속성은 보이지 않는 헌신이었다. 유도관을 드나드는 과정은 그래서 예정된 수순이었다. 하지만 더 이상 자라지 않는 키 때문에 어렵게 딴 단증은 종이 쪼가리 신세가 됐다. 숙명의 강요에 떠밀린 나는 성장기와 허무하게 이별했다. 그로부터 10년 뒤 다시 유도를 시작한 과정은 미련에서 전개된 수순이었다. 대통령 경호처의 공채 요건은 이미 기억도 나지 않았지만, 10대 시절에 찢긴 열망을 봉합하고 싶었다. 사회로 내던져지고 경험한 유도는 전혀 달랐다. 상대를 넘기려면 끌어안는 게 먼저라는 전제, 절반을 내준 절망 속에서도 부침개 뒤집듯 엎어버리면 게임이 끝나는 한판의 기적이 그제야 보였다. 유도는 이후 무형의 인생 지침서가 됐다. 더 넓은 세상을 접하고, 보다 많은 사람을 만날수록, 유도는 그땐 몰랐던 것들을 속삭였다. 이재현
나중에 언젠가는 캘리포니아 어딘가에서 살겠다고 다짐한다. LA가 되어도 좋고 샌프란시스코가 되어도 좋다. 그 대상이 누가 되든 매료시키는 밝고 건강한 캘리포니아의 날씨와 무엇보다 에너지 넘치고 자유로운 분위기를 좋아한다. 캘리포니아라는 도시가 사람이 된다면 그 매력에 누가 반하지 않을 수 있을까. 스포츠팀 볼 캡을 여럿 갖고 있지만, 얼마 전까지 캘리포니아에 연고지를 둔 팀은 하나도 없었다. 친구가 줄곧 써오던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모자가 탐이 났지만 나란히 쓰고 다니고 싶진 않아 골든 스테이트 워리어스로 골랐다. 뜨거운 태양에 그을린 듯 빛바랜 파란색이 제법 마음에 든다. 스타일이 맘에 들지 않을 때를 대비해 챙겨두거나, 조금 더 자유롭고 내 맘대로 살고 싶은 기분을 표현하고 싶을 때마다 머리를 넣어본다. 캘리포니아라는 도시 혹은 사람처럼 건강하고 자유롭게 인생을 즐겨 보겠다고 다짐하면서. 한재필
시계에 큰 흥미가 없다. 아무리 값비싸고 세상 진귀하다 한들 딱히 마음이 동하지 않는 분야가 있기 마련이니까. 액세서리를 즐기는 편이 아닌 데다 신경 쓸 구석이 늘어나는 것도 싫고. 그렇지만 외출할 때마다 부적처럼 꼭 챙기게 된다. 작고 네모난, 그다지 특별한 건 없지만 모자람도 없는 세이코 손목시계. 스무 살 무렵의 엄마가 선물 받은 이후 장장 40년의 시간을 기록해왔다. 엄마의 첫 순간들을 함께 보낸 이 시계는 나의 수능도, 입사 면접도, 첫 인터뷰도 고스란히 동행했다. 그동안 시곗줄을 열 번은 바꿔 달았을 텐데 고장 난 기억이 없다. 철저히 기능에 집중해 만든 담백한 디자인이라 질리지도 않는다. 어쩌다 잊는 날이면 괜히 손목이 허전하다. 가장 가까이에서 묵묵히 일상에 명료한 기준을 제시하는 존재. 덕분에 하루를 충실하게 대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물론 앞으로의 낯선 시간들에도 거뜬할 거다. 아주 믿음직하게. 새 시계를 사도 버리지 못할 것 같다. 이지훈
모험심으로 가득한 나는 어디든 고프로와 함께한다. 몸이나 장비 어딘가에 고프로를 설치하는 것이, 자연 속으로 뛰어들기 전에 행하는 마지막 의식이다. 손바닥보다 작은 물건이지만 나를 지켜보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용기를 낼 수 있었다. 도전과 포기는 언제나 손바닥 차이이지 않은가. 지금 사용 중인 8세대 고프로는 작년 샌프란시스코 고프로 본사까지 가서 구해왔다. 이 고프로를 손에 넣자마자 산타크루즈 비치로 이동해 나흘 동안 서핑을 즐겼다. 컨베이어벨트처럼 균일한 간격으로 아름다운 너울이 밀려오고 있었다. 고프로는 팽팽한 공기를 뚫고 바다에서 튀어 오르는 작은 물방울이나, 긴장과 희열을 동시에 품고 있는 내 표정까지 읽어냈다. 가장 나다운 모습을 되찾고 싶을 때 그때의 영상을 되돌려 본다. 고프로만큼 나의 솔직한 모습을 알고 있는 존재도 없으니까. 특히나 요즘처럼 집 밖이 어수선한 시기엔, 종종 고프로의 기억이 필요할 때가 있다. 이재위
일 년에 하나씩, 그렇게 세 번째 보틀을 비워내는 중이다. 어딘가 콤콤하고 술 냄새도 조금 나는 것 같은데 시간이 지날수록 은근하고 묵직한 향을 가졌다. 사실 처음엔 브루클린 재즈 클럽에서 영감을 얻었고, 위스키와 타바코 잎 노트가 베이스로 들어갔으며, 남자를 위해 만들었다는 등의 조향 스토리는 몰랐다. 그냥 좋았다. 왜 좋았을까? 왜 여전히 좋을까? 손목과 목덜미 여기저기에 향수를 뿌리고 깊은 숨으로 음미해봤다. 무작정 여성스럽기보단 적당히 우아하고 남들 다 하는 것 말고 나만 아는 세련됨이 있는 멋있는 사람이 떠올랐다. 그러니까 메종 마르지엘라의 재즈 클럽은 내가 닮고 싶은 사람의 향이다. 누군가 향이 잘 어울린다고 했을 때 괜히 기분이 좋아지는 이유도 그래서였나 보다. 세 번째 병이 바닥을 드러낸 지금 향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네 번째 재즈 클럽도 다시 비워낼 생각이다. 김유진
- 피쳐 에디터
- 김영재
- 포토그래퍼
- 이현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