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빅터 베스코보의 심해 잠수 도전

2020.04.21GQ

에베레스트와 지구의 양 극점을 정복한 남자가 자신의 마지막 도전에 나섰다. 빅터 베스코보를 태운 잠수정이 극한의 수압을 견디며 심해 속으로 침잠했다.

심해 잠수정 리미팅 팩터 안에서 천천히 바다 아래로 내려가는 빅터 베스코보.

바르셀로나에서 정비를 받는 리미팅 팩터.

심해의 어마어마한 압력에 견딜 수 있도록 안쪽으로 조금씩 밀려나게 설계한 창문.

심해 깊은 곳까지 잠수할 경우 베스코보가 12시간 가까이 머무르게 되는 1.76세제곱미터의 조종실.

몰로이 해연 탐사를 마친 뒤 스발바르 제도로 귀환 중인 모선 프레셔 드롭호.

리미팅 팩터가 마리아나 해구 탐사를 마치고 돌아오자 한 대원이 잠수정으로 헤엄쳐 선체에 안전선을 연결했다.

파이브 딥스 프로젝트의 최종 탐사 성공을 알리는 베스코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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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터 베스코보가 새로운 역사를 써내려갈 준비를 마쳤다. 2019년 8월 24일 토요일 12시 37분, 텍사스 출신의 쉰세 살 베스코보는 주문 제작한 잠수정에 올라 해저 5,550미터에 이르는 몰로이 해연의 밑바닥 탐사를 시작하려는 참이다. 몰로이 해연은 그린란드해, 그리고 노르웨이해 사이에 위치한 프람 해협에 자리 잡고 있다. 이곳에 오기 위해 모선인 DSSV 프레셔 드롭호는 노르웨이 스발바르 제도를 출발해 17시간에 걸쳐 광활한 북극해로 항해했다. 만약 해저 탐사에 성공한다면 베스코보는 인류 최초로 북극해 바닥에 닿은 인간이자 오대양의 가장 깊은 곳 모두에 도달한 주인공으로 기록된다.

2018년 12월, 베스코보가 자신의 잠수정 리미팅 팩터 Limiting Factor를 타고 대서양에 위치한 해저 8,376미터의 푸에르토 리코 해구 탐사를 다녀오면서 ‘파이브 딥스 엑스퍼디션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이후 남극해의 사우스 샌드위치 해구, 인도양의 자바해, 그리고 태평양 마리아나 해구 탐사를 연이어 성공했다. 마지막 관문은 북극해였다. 4년간의 준비 과정과 지구의 심연을 찾아 헤맨 여정이 몰로이 해연에서 막을 내릴지 관심이 쏠렸다.

프레셔 드롭호의 이동 거리는 8만5천 킬로미터가 넘는다. 수백 명의 과학자와 스태프, 엔지니어와 선원을 고용하는 데만 수백만 달러를 들였다. 비용은 사모펀드를 운영 중인 베스코보 본인이 모두 부담했다. 하지만 마지막 탐사의 성공 여부는 비용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조건과 결부되어 있었다. 시간이 문제였다. 베스코보에겐 단 3일이 주어졌다. 이 기회를 놓치면 몰로이에 태풍이 불어닥쳐 3미터 높이의 파도와 풍속 40노트의 바람을 몰고 올 테고, 그러면 1년 후에나 탐사를 재개할 수 있다는 예측이 나왔다. 잠수정을 띄우기로 한 날, 풍속 냉각 효과 때문에 기온은 영하 8도, 수온은 0.4도로 뚝 떨어졌다. 물은 얼기 직전처럼 차가웠다. 본격적인 해저 탐사를 시작하기 전인데도 벌써부터 부담감이 몰려왔다.

리미팅 팩터는 원통형인 기존 잠수함들과 달리 찌그러진 우유갑에 가까운 모양이다. 주요 소재는 가볍고 부식에 강한 티타늄이다. 눈동자처럼 생긴 창이 달려 바깥 상황도 관측할 수 있다. 잠수정은 거대한 철제 기중기에 매달린 채 탑승객을 기다렸다. 안전 및 시스템 점검이 끝나자 베스코보가 선미의 주갑판에 모습을 드러냈다. 가슴팍에 그의 이름이 새겨진 명찰이 보였고, 오른팔에는 성조기를 비롯한 여러 패치가 부착됐다. 그는 갑판 위에서 선원들과 악수를 나누며 그동안의 과정을 함께한 동료들에게 말했다. “거의 다 왔어. 이제 마지막 단계야.”

베스코보의 잠수정은 기계공학적으로도 의미가 깊다. 반복적인 심해 잠수가 가능한 세계 최초의 잠수정이다. 무게 11.7톤, 길이 4.5미터의 이 탐사 장비는 어두컴컴한 바다 밑바닥에서 베스코보와 수면 위의 세계를 이어주는 유일한 연결고리이기도 하다. 문제가 발생해도 도망칠 곳이 없다. 수면에서 5천 미터나 떨어진 이곳에는 앞선 이들의 족적도, 길을 인도해줄 안전 로프도 없다. 마지막 탐사는 철저히 홀로 끝마쳐야 한다.

베스코보는 잠수 준비를 마친 잠수정에 기어 올랐다. 선내로 내려가기 전, 그는 검지를 치켜 세웠다. 해치가 닫히고 탁한 초록빛 바다로 강하하는 리미팅 팩터의 양옆으로 거센 물길이 사정없이 몰아쳤다. 북극해용으로 특수 제작된 두꺼운 웨트수트를 착용한 대원이 잠수정 꼭대기에 올라 조심히 안전선을 끊어냈다. 이후 그대로 바다에 뛰어들더니 대기 중인 보트를 향해 헤엄쳐 갔다.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선체는 일렁이는 물결 아래로 서서히 가라앉았다. 물속으로 완전히 모습을 감추자 잠수정의 위치를 표시하기 위한 오렌지색 깃발만 수면 위에서 나부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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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코보가 처음으로 운전대를 잡은 것은 1969년, 겨우 세 살 때였다. 부모님 차 앞좌석에 몰래 올라탄 베스코보는 기어를 중립으로 놓았고, 차는 경사를 따라 인근 고속도로로 돌진했다. 끔찍한 사고가 뒤따랐다. 기적적으로 도로를 달리던 사람들은 아무도 다치지 않았지만, 차 안에 있던 세 살배기 베스코보는 엄청난 부상을 입었다. 두개골은 세 조각으로 쪼개진 상태였고, 1백 바늘이나 꿰매며 6주간 집중치료를 받았다. 시간이 지나며 몸 상태를 회복하긴 했으나 여전히 오른손에는 아무런 감각이 없다. “아버지는 하느님이 저를 살렸다고 말했어요. 그런데 저는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생각해요. 덕분에 인간은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잊지 않고 성장했어요.”

우리는 베스코보가 사용하는 프레셔 드롭호의 널찍한 선실에서 얘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벽에는 프랑스 사진작가 피에르 카로가 찍은 파도 사진 6점이 걸려 있었다. 책장에는 그가 고른 SF 서적이 자리를 차지했다. 프레셔 드롭과 리미팅 팩터 모두 이언 M. 뱅크스의 <컬처> 시리즈에 등장하는 인공지능 함선의 이름을 가져다 썼다고 한다. SF에 푹 빠져 10대 시절을 보낸 베스코보는 전투기 조종사가 되고 싶어 했다. 그러나 시력 검사에서 떨어져 희망 사항은 무산됐다. 방향을 바꿔 스탠퍼드 대학교에서 항공우주공학을 전공했지만, 그 또한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그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할 수는 있었어요. 그런데 잘할 수는 없었죠.” 결국 경제학과 정치학으로 진로를 변경한 그는 이후로도 이곳저곳을 떠돌았다. 월가와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금융업에 종사했고, 댈러스에서는 경영 컨설턴트로 일했다. 인터넷이 보급되기 시작할 즈음엔 샌프란시스코의 스타트업에서 근무했다. 1993년부터 2013년까지는 사기업이 아닌 공무원으로 일했다. 미 해군 정보장교로 복무한 그는 이탈리아 나폴리에 위치한 나토군 사령부와 한국, 페르시아만을 거쳤다.

2002년, 베스코보는 마침내 사모펀드에 정착했다. 취미로 ‘등산’을 다닐 수 있을 정도의 자금을 모았다. 이후 세븐 서밋 Seven Summits, 즉 7개 대륙의 최고봉을 모두 정복했고, 내친김에 남극점과 북극점까지 다녀왔다. 얼떨결에 탐험계의 그랜드 슬램을 달성해버리자 다음 단계로 심해 탐사에 도전하기로 한다. 이 같은 결정을 내린 데는 리처드 브랜슨의 영향이 컸다. 역시 성공한 사업가인 그는 오대양의 가장 깊은 곳으로 사람들을 데려가는 여행 상품을 구상하고 있었고, 베스코보와 자주 사업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하지만 잠수정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난관에 부딪혀 2014년 모든 계획이 중지되고 만다. “브랜슨은 탄소섬유를 기반으로 잠수정을 개발하고자 했어요. 조금 무모했죠. 다만 방식을 조금 바꾸면 결코 불가능한 이야기도 아니었어요. 제임스 카메론도 2012년에 마리아나 해구에 다녀왔잖아요. 어려우면 얼마나 어렵겠냐는 생각이었죠.” 처음에는 제임스 카메론의 잠수정을 사서 새단장을 마치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업그레이드에 드는 비용이 너무 막대하다는 견적이 나왔다. 잠수정을 직접 제작하는 게 오히려 나은 선택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베스코보는 결심을 굳히자마자 플로리다에 소재한 트리톤 서브마린즈의 사장 패트릭 라히에게 도움을 청했다.

캐나다 오타와 출신인 라히는 열세 살 때부터 스킨스쿠버를 시작해 40년 가까이 잠수 경력을 쌓은 베테랑이다. 2008년에는 트리톤 서브마린즈의 공동창립자로 이름을 올려 회사를 세우는 주축 멤버가 됐다. 그는 오대양 가장 밑바닥까지 도달할 수 있는 심해 잠수정 제작에 관한 베스코보의 계획을 듣고는 오랫동안 간직해온 꿈을 실현시킬 기회가 생겼다고 확신했다.

첫 미팅은 2015년 5월에 이뤄졌다. 패트릭 라히와 서브마린즈의 수석 디자인 엔지니어 존 램지는 바하마에서 의뢰인을 만났다. 베스코보는 자신이 원하는 잠수정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하강과 상승’이 전부였다. 지극히 기본적인 기능을 요구한 베스코보를 한참 동안 멀뚱멀뚱 바라봤다고 한다. “그는 공산권의 유명한 AK-47 소총의 원칙을 따라야 한다고 말했어요. 신뢰성이 높고, 안정적이어야 한다는 뜻이었죠. 쓸데없이 멋대로 장식을 붙이지 말라고도 했어요. 단순하고 튼튼하게만 만들어달라고요.” 그러나 트리톤의 입장에선 지나치게 단순한 구상이었다. “원래 콘셉트는 창문 하나 없는 둥근 쇳덩이였어요. 베스코보의 목표는 심해 잠수가 전부였으니까요. 그런 끔찍한 디자인으로 만들고 싶었겠어요?”

제작사 측이 원한 잠수정은 상업용으로도 판매가 가능한 ‘트리톤 36,000/2’였다. 상업성을 확보하려면 조종사와 과학자가 탈 수 있도록 2개의 좌석과 로봇 팔이 필요했다. 무엇보다 베스코보가 처음에 제안한 외부 카메라와 스크린이 아닌 제대로 된 창이 반드시 필요했다. “유인 잠수정은 결국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시각적 도구예요. 인간의 시각을 모방하는 카메라는 무의미하죠. 바다 아래로 내려가 창밖을 바라보고 있으면 눈에 들어오는 모든 광경이 그대로 뇌에 새겨지는 것 같아요. 평소와는 다른 방식으로 정보를 빨아들이게 돼요. 상상 이상으로 즉각적이고 효과적이에요.” 결국 라히의 의견에 동의한 베스코보는 자신만의 특별한 잠수정을 제작하기 위해 트리톤에 정식으로 의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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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코보의 꿈을 실현시킬 임무는 디자이너 램지에게 주어졌다. 그에게 설계의 출발점이자 가장 큰 고려사항은 단 하나, 창문이었다. 모든 잠수함은 조종사가 들어가는 공간인 기밀실을 갖춘다. 트리톤이 베스코보를 위해 제작하려는 잠수정의 경우 전통적인 방식으로 조종실을 설계하고, 배선이나 기계장치, 부력재 등은 조종실이 아닌 잠수정 선체 내에 배치되도록 설계했다. 문제는 수압에 의한 형태의 변형이었다. 창문을 만들기 위해 잠수정에 구멍을 뚫으면 강성이 떨어져 휘거나 구부러질 가능성이 컸다. 극한의 수압을 견뎌야 하는 심해 잠수정에 치명적인 구조다. “창을 추가하려면 치밀한 공학적 계산이 동반돼야 합니다. 창문이 바깥으로 튕겨나가거나 안으로 무너지지 않도록 압력의 균형을 정확하게 유지해야 하죠.”

난관에 봉착한 램지는 다행히 영리한 해결책을 내놨다. 아크릴 소재로 된 200밀리미터 두께의 원뿔형 창을 세 겹으로 덧대기로 하고, 수심 11,000미터에서 표면에 가해질 110.3메가파스칼의 압력을 견뎌낼 수 있도록 창문이 잠수정 내부로 갈수록 폭이 좁아지게 디자인했다. 각 창문 사이, 그리고 창문과 창틀 사이에는 약간의 틈을 마련했다. 수심 6,000미터에서 외부 압력이 창문 안쪽을 밀어넣을 수 있도록 7밀리미터의 간격을 비워뒀다. 창문이 조금이라도 움직일 자리를 마련하지 못하면 특정 지점에 집중된 압력이 균열을 일으킨다는 시뮬레이션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또 다른 고려사항은 잠수정의 모양이었다. 일반적으로 잠수정은 길쭉한 형태다. 기다란 원통형 잠수정에 조종실과 좁다란 창이 전면에 자리 잡는 식이다. 하지만 이런 모양으로는 측면으로의 이동이 어렵다. 상용으로 사용하거나 석유 채굴을 위해 잠수하는 경우에는 말썽을 일으키지 않겠지만, 인간의 발걸음이 닿지 않은 미지의 심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해저 생물을 관찰하고, 돌발 상황에 대처하려면 기동성을 최대한 확보할 필요가 있다. 램지는 좌우가 유선형으로 흐르는 형태를 모색한 끝에 럭비공과 초고속열차에서 힌트를 얻었다. “완벽한 대칭 형태를 띠도록 했기 때문에 기동성을 키우고, 타원형 모양도 유지할 수 있었어요. 수직 하강 시 좌우 또는 상하 움직임이 용이하도록 두 방향 모두 유선형으로 처리했죠.”

10개나 장착된 보조 추력 장치 스러스터 Thruster 역시 조종 성능을 대폭 향상시킨다. 하지만 이로 인해 해결해야 할 과제가 하나 더 발생했다. 램지가 말했다. “잠수정 조종사에게 가장 위험한 순간은 그물이나 밧줄이 스러스터에 빨려들어가는 상황이에요. 일반적으론 문제 발생 시 구조 잠수정이 내려가 로봇 팔로 그물이나 밧줄을 끊어주지만, 이번 탐사의 경우 그런 도움을 기대할 수 없었어요. 수심 6,000미터를 지난 시점이라면 그 무엇도 도움을 줄 수 없어요. 바위에 걸린 그물 조각이 스러스터에 엉키기라도 하면 모든 게 끝이라는 뜻이에요.” 실마리는 이미 확보된 기술 안에 있었다. 리미팅 팩터는 유사시 신속히 수면으로 올라가기 위해 고의로 폭발을 일으켜 외부 배터리 팩을 잠수정에서 분리한다. 무거운 스러스트에도 동일한 방법을 적용했다. 스러스트에 피치 못할 문제가 생기면 간단히 분리 장치를 작동시켜 잠수정 본체에서 떼어내고, 가벼운 무게를 발판 삼아 물위로 탈출할 수 있었다.

내장 부품의 경우 일반적으로 석유나 천연가스 채굴용 잠수정에 사용되는 기성 부품을 사용한다. 하지만 그런 잠수정들이 수심 6,000미터를 넘어 잠수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어떤 결과가 나올지 예측할 수 없었다. 램지와 트리톤의 전기 설계 엔지니어 톰 블레이즈가 더 깊은 연구를 해야 했다. 잠수정 모터의 속도와 토크를 통제하는 내압성 조절장치에 필요한 부속품 하나 때문에 이와 연관된 모든 부품을 일일이 테스트한 적도 있다. 동일한 제조사의 부품이라 해도 제조된 공장에 따라 품질에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그들은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톰 블레이즈가 말했다. “제조사 측에서는 부품들의 품질을 가려낼 방법이 없어요. 반면 우리는 제조 공장에 따라 부품의 녹색 빛이 아주 조금씩 다르다는 사실을 발견했죠. 필요한 것보다 두 배 많이 구매해서 하나하나 색깔을 확인한 후 개별 테스트까지 거쳐 회로 기판을 만들었어요.”

통신을 방해하는 잡음에도 대비했다. 수심 11,000미터에서 음성 신호가 수면 위로 전달되는 데 7초가 걸린다. 아무런 방해가 없다는 전제하에 지상으로부터 회신을 받기까지 최대 15초를 기다려야 한다. 블레이즈는 문제 상황을 직접 보여주기 위해 녹음된 자료를 재생했다. 그러자 베스코보의 메시지 대신 고래 무리가 사냥할 때 내는 초음파가 크고 선명하게 들렸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음향 필터를 추가하거나 수중에 잡음이 없을 때 다시 통신을 시도해야 했다. 램지가 말했다. “잠수정 설계는 굉장한 일이에요. 하는 사람이 많이 없거든요. 자동차의 경우 그간 얼마나 많은 세대를 거쳐왔는지 보세요. 아무 자동차에나 올라도 운전대나 페달, 문 손잡이가 어디에 있을지 바로 알 수 있죠. 그러나 잠수정은 완전히 달라요. 정해진 규칙이 없어요.”

최종 관문인 심해 테스트를 위해 제작팀은 2018년 초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위치한 크릴로프 국립연구원을 찾았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바다의 수압과 똑같은 조건을 만들어낼 수 있는 곳이다. 램지는 수압 탱크를 이용해 잠수정 선체에 60,000톤 정도의 압력을 가하는 실험을 했다. 이는 마리아나 해구의 최대 깊이에서 받을 압력의 1.2배에 해당한다. “테스트 도중 압력이 증가함에 따라 파이프를 통해 물이 빠져나오도록 했어요. 잠수정 선체가 실험 도중 내파하기라도 하면 그 충격으로 연구소 전체가 날아갈 수도 있거든요.”

트리톤의 잠수정은 최종적으로 116.7메가파스칼의 압력 테스트를 통과했다. 견딜 수 있는 최대 압력이 17메가파스칼 정도인 상용 잠수정과 비교하면 사실상 무한대나 다름없는 잠수 능력을 공인받은 셈이다. 4년여의 노력 끝에 리미팅 팩터는 바다로 나갈 준비를 모두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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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로이 해연으로 내려가기 전, 베스코보는 완성된 잠수정 내부를 구경시켜줬다. 조종실의 크기는 1.76세제곱미터에 2개의 좌석을 구비했다. 문제의 창은 무릎 높이에 있었다. 최악의 상황이 벌어질 경우를 대비해 탄소섬유를 꼬아 만든 산소탱크 10개가 가슴 높이에 위치했다. 탑승자 2명에게 4일 간 산소를 제공할 수 있는 양이다. 잠수정은 헬리콥터와 비슷하게 조종간으로 조종된다. 조종실 뒤편은 조명과 통신에서 내부 기온까지 모든 기능을 통제하는 스위치로 가득하다. 베스코보는 댈러스의 자택 차고에서 시뮬레이터를 통해 꾸준히 조종 연습을 했다고 한다.

잠수 시 그가 가장 먼저 취하는 과정은 밸러스트 펌프 Ballast Pump의 작동이다. 물탱크 속 물의 양을 조절해 잠수정을 음성 부력으로 만들어야 가라앉는다. 잠수 깊이에 따라 최대 3시간 동안 바닷속으로 빠져들며 시간을 보낸다. 한 번은 스마트폰으로 넷플릭스를 보며 목표 지점에 닿기를 기다렸다고 한다. 물론 통상적인 시스템 점검과 15분마다 해야 하는 프레셔 드롭호와의 교신을 빼놓지 않으면서.

바다 밑바닥에서 200미터 정도 남겨둔 지점부터는 5킬로그램짜리 추 여러 개를 사출해 높이를 일정하게 만든다. 직접 조종을 시작하는 시점이다. 서서히 바닥에 접근한 리미팅 팩터는 무사히 착지한 뒤 2~4시간에 걸쳐 로봇 팔을 조작해 암석 샘플을 채취한다. 그 후로는 심해의 바닥을 부지런히 돌아다니며 생물, 지리 및 지형 관련 정보를 최대한 많이 촬영한다. 다시 수면 위로 되돌아가기 위해서는 10킬로그램짜리 추들을 선체에서 분리시킨다.

길면 12시간까지 걸리는 잠수인데도 불구하고 베스코보는 밀실 공포를 전혀 느끼지 않는다고 한다. 그는 마리아나 해구 탐사 시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조언을 따르기도 했다. “의자에 늘어지게 앉아 콜라의 뚜껑을 열고, 포장해온 참치 샌드위치를 입에 넣으며 창밖을 구경했어요. 혼자 잠수하는 게 좋아요. 바다 깊은 곳을 표류하면 천국을 유랑하는 듯한 기분이 들어요.” 심해는 예상과 달리 공허하고 음침한 사막이 아니었다. “남극해는 완전히 식료품점 같았어요. 크릴과 작은 새우, 해파리, 플랑크톤이 잠수정 주변을 느릿하게 떠다니죠.” 마리아나 해구 탐사에서는 수심 11,000미터에서 떠다니는 쓰레기를 발견하기도 했다. 어떻게 그곳까지 가라앉았는지 언론에서도 주목했다. 다만 비닐 쇼핑백으로 보도된 바와 달리 실제로는 알파벳 ‘S’가 인쇄된 비닐 또는 천 조각이었다고 한다.

탐사가 진행될수록 베스코보는 과학에 점점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따금 뉴캐슬 대학 소속의 해양생태학자 알란 자미에슨 및 영국지질연구소 해양지질학자 헤더 스튜어트와 함께 후속 탐사를 떠났다. 그들은 프레셔 드롭호에 마련된 간이 실험 시설에서 새롭게 발견한 몇 종의 어류를 연구했다. 그 결과 미세 플라스틱이 체내에서 검출됐다. 베스코보는 “먹이사슬의 가장 작은 단위까지 침투하는 마이크로 및 나노 플라스틱은 인류에게 실질적이고 치명적인 위협”이라고 말했다.

해저 탐사가 순조로웠던 것만은 아니다. 심해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한 상황 두 가지는 침수와 화재다. 바하마에서 실시한 초기 테스트 도중 수심 5,000미터를 항해하던 베스코보와 라히는 뭔가 타는 냄새를 맡았다. 수면 위로 돌아가는 데 2시간이나 걸리는 깊이였다. “로봇 팔 조작장치를 가동한 직후였는데, 회로 기판 중 하나의 절연체가 타버렸던 모양이에요. 천운이 따랐는지 문제의 기판을 꺼버렸더니 상황이 해결됐어요.” EYOS 엑스퍼디션즈의 창립 파트너이자 파이브 딥스의 진행을 책임지는 롭 맥캘럼이 당시 수면 위에서의 상황을 설명했다. “완전히 뒤집어졌죠. 베스코보의 목숨도, 그동안의 여정도 모두 끝날 줄 알았어요. 결국 퓨즈 손상이 원인으로 밝혀졌어요. 잠수정에서의 화재는 최악의 시나리오예요. 산소가 풍부한 환경에서는 퓨즈가 끊기며 일어나는 작은 스파크도 큰 문제가 돼요. 챌린저 우주 왕복선만 봐도 알잖아요.”

베스코보는 이 사건을 통해 아무리 엄격하고 철저한 테스트를 거쳤다 해도 문제가 발생할 확률은 여전히 남아 있다는 사실을 똑똑히 깨달았다. “잠수정을 속속들이 다 안다고는 하지만, 마음속 어딘가에 ‘잘못되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분명히 있어요. 잠수정의 내구성에 자신이 있다고 해도 실제 바다에서 예기치 못한 상황이 발생하면 어떻게 하죠? 천재 지변은 알 도리가 없잖아요. 7,000미터, 8,000미터, 9,000미터를 가르키며 움직이는 심도계 바늘을 보면 잠수정을 누르는 압력이 얼마나 클지 상상하게 돼요. 갑자기 누수가 생기거나 불꽃이 튀지 않길 바라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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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수에 나설 때마다 베스코보의 팀은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다. 파이브 딥스의 두 번째 탐사 장소인 남극해의 사우스 샌드위치 해구의 경우 우루과이 몬테비데오에서 남아프리카 공화국 케이프타운까지 30일간 이동하는 고된 일정이었다. 그 중간에 잠수가 가능한 시간은 고작 며칠이었다. 빙하 때문에 각별히 주의를 기울여야 했지만 다행히도 잠수는 성공적이었다. 가장 힘든 기억은 두말할 필요 없이 첫 잠수였던 대서양 푸에르토리코 해구 탐사였다. 롭 맥캘럼이 말했다. “첫 잠수는 어떻게 보면 어렵고 힘들었던 해상 테스트의 최종 단계이기도 했어요. 그런데 진행팀에서 잠수를 준비하는 동안 3일 연속으로 잠수정이 고장 났죠. 엉망진창이었어요. 베스코보가 제 사무실로 찾아와 ‘내일 제대로 안 되면 모두 중지하고 없던 일로 할 거요’라고 하는 지경까지 갔어요.” 4일째 되는 날, 맥캘럼은 진행팀을 불러 모아 이야기했다. “기적을 바라지 않습니다. 다 같이 힘을 모아 잘해보자는 식의 거창한 연설을 할 생각도 없어요. 다만 우리는 지난 4개월간 철저한 연습을 했어요.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우리 모두 잘 알고 있죠. 각자 알고 있는 대로 하길 바랍니다. 더도 덜도 아닌 그뿐이에요.”

시스템 오작동을 해결한 후 시도한 잠수의 결과는 다행히 성공이었다. 푸에르토리코 해구의 바닥에 마침내 닿았다는 베스코보의 통신을 받고 여기저기서 환호가 터졌다. 팀원들은 서로를 끌어안고 눈물을 흘렸다. 맥캘럼이 당시를 회상하며 이야기했다. “베스코보는 해질녘에 돌아왔어요. 하늘이 온통 오렌지색으로 물든 황혼에 딱 맞춰 수면 위로 올라왔죠. 마법 같은 날이었어요.”

파이브 딥스 프로젝트의 마지막 여정인 몰로이 해연 잠수를 앞두고 베스코보는 긍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5,000미터 넘게 내려가는 잠수를 앞두고 긴장이 풀려서는 안 되겠지만, 우리는 앞선 탐사를 통해 잠수정 발사 및 수거 절차, 응급상황 발생 시 조치 방안 등을 꾸준히 개선해왔어요. 오늘 잠수도 원활히 진행되리라고 확신합니다.”

오후 3시 34분. 베스코보가 잠수를 시작한 지 3시간 만에 북극해 안쪽 깊은 곳에서의 통신이 도착했다. 잠수정과 조종사 모두 몰로이 해연 밑바닥에 무사히 도착했다는 메시지였다. 베스코보와 그의 팀이 새로운 기록을 달성한 순간이었다. 다만 한 가지 절차가 남긴 했다. 무사히 돌아오는 과정이었다.

리미팅 팩터는 오후 8시 40분이 되기 직전 프레셔 드롭호에서 150미터 떨어진 지점에 나타났다. 모선은 방향을 돌리는 한편 보트를 띄우고, 물결로 인해 이리저리 흔들리는 잠수정을 수거하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갖춘다. 대원 하나가 헤엄쳐 잠수정 위에 오른 뒤 안전선을 연결하자 줄이 감기며 선체가 물 밖으로 끌려 나왔다. 8시간 전 잠수할 때의 상황을 되감는 듯 부드럽게 모선의 선미 주갑판으로 옮겨졌다.

조종석 문이 열리자 베스코보는 밖으로 나와 가장 먼저 다섯 손가락을 펼쳐 보였다. 오대양 심해 잠수를 모두 마쳤다는 의미다. 지금까지 베스코보는 7대륙 최고봉을 전부 정복한 416명 중 한 명이자 지구의 양 극점까지 다녀온 12명의 미국인 중 한 사람이었다. 베스코보가 잠수정에서 나오는 순간부터 그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오대양의 밑바닥까지 다녀온 인물이 됐다. 모선은 기적을 울렸고, 보트에서는 조명탄을 쏘아올렸다. 베스코보는 대원들과 일일이 포옹을 나눴다.

역사적인 여정을 마친 그는 큼지막한 스파게티 한 접시와 다이어트 콜라를 앞에 두고 배의 조리실에 앉았다. 벽에는 영화 <미스터리 잠수함>과 <해저 2만리> 의 빈티지 포스터가 걸려 있었다. 조용히 사색에 잠겼던 베스코보가 입을 열었다. “제가 왜 이걸 하고 싶었는지 이제야 알겠어요. 지도의 빈칸을 채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죠. 마음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충동 같은 거예요. 어렸을 때 쥘 베른의 <신비의 섬>을 읽었는데, 섬의 지도가 있는 페이지로 계속 되돌아가 들여다본 기억이 나요. 모험과 탐험을 묘사한 장면이 저를 빨아들이는 듯했어요. 나이가 들어서도 그때의 마음을 잃지 않았어요. 여전히 지도 보기를 좋아하고, 지도 속 위치 찾아가기를 좋아했던 그 꼬마의 모습 그대로예요.

“애틀랜틱 프로덕션은 빅터 베스코보의 도전을 담은 5부작 <Expedition Deep Ocean>을 제작 중이다. 프로그램은 올해 말 디스커버리 채널을 통해 방영될 예정이다.”

    Tom Ward
    포토그래퍼
    Reeve Jolliffe, Enrico Sacchett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