톰 포드에게서 땡큐 레터를 받았을 때, 두 가지가 놀라웠다. 우선은 종이 사이즈. 광택이 전혀 없는 미색 편지지는 B5보다 조금 작은 크기였다. 어디서도 이런 치수의 지류는 본 적이 없는데 그 어정쩡함이랄까 어색함이랄까 하는 것이 굉장히 특별하게 느껴졌다. 또 하나는 잉크 색깔. 그는 구식 타자기로 친(것 같은) 심플한 감사 인사 아래 서명을 대신한 간결한 표식을 했고, 그때 쓰인 색깔 역시 드문 것이었다. 검정이되 검정은 아닌, 푸르스름한 기운이 있는 이상한 블랙. 나중에 알고 보니 톰 포드는 그 컬러의 잉크를 만들고자 몇 가지 기성 잉크를 고유한 배합으로 섞었고, 수줍지만 ‘미드나이트 블랙’이란 이름으로 부른다고 했다. 예상했겠지만, 당연히 그 색깔을 따라 만들어봤다. 검정과 파랑 계열의 잉크를 도열해놓고 유물 발굴이라도 하듯, 전구에 연신 병을 비쳐가면서. 그러나 보일러가 부실한 집의 온수 온도처럼, 매번 이것이 과하거나 저것이 모자랐다. 비록 잉크 창조에는 실패했으나 그 후 편지 쓰는 일을 더 좋아하게 되었다. 존 치버는 “사무적인 편지조차 쓰기 두려워하는 사람이 있다. 자기 자신의 정체와 직면하고 다 드러나게 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편지는 그렇다. 표정이나 숨, 호흡으로 말에 더할 수 있는 게 없으니 생각의 밑천이 들통난다. 아니, 편지는 그렇지 않다. 일부러 그랬는지 잊어버렸는지는 모르겠으나, 내용 없이 반듯하게 접힌 빈 종이 하나가 천 마디 말보다 더 드라마틱한 성과를 내기도 한다. 말보다 글이 편한 사람은 편지 쓰는 품을 기꺼이 들인다. 반대 경우엔 성탄절 카드 한 장을 쓰는 것도 대단한 고통이겠지만. 내 경우엔 종이와 펜, 문장과 기호를 다 좋아하니 편지 쓰는 시간이 꽤 즐겁다. 책상을 깨끗이 치우고 단정하게 앉아서 피나이더의 고급 지류에 뚱뚱한 만년필로 첫 줄을 쓸 때도 있고, 여행지의 델리에서 빵 봉투에 볼펜을 꾹꾹 눌러(연신 볼펜 똥을 닦아내면서) “자, 그러면 내내 어여쁘소서”로 끝나는 편지를 쓰기도 했다. 한때 이상의 ‘이런 시’에 나오는 구절이 하도 예뻐서 걸핏하면 편지에 썼는데, 지금은 후회한다. 작가의 의도는 그러라는 게 아니었고, 이제 와 새삼 면목이 없다. 그건 잠깐 귀엽기라도 했지. 술을 진탕 퍼마시고 나태주의 ‘안부’에서 발췌한 글을 편지에 쓴 일을 생각하면 화로를 안고 지옥불로 뛰어든 듯 새빨갛게 부끄럽다. “오래 보고 싶었다. 오래 만나지 못했다. 잘 있노라니 그것만 고마웠다.” 분명 낭만적인 글이지만 이런 문장이 적힌 편지를 받는다면, 미안하지만 마냥 달갑지는 않다. 시는 가만히 시로 둘 때 아름답다. 무거운 용건이 아니라면 일상적인 얘기들을 가볍게 적은 편지가 받는 사람 입장에선 한결 좋다. 영화 <캔 유 에버 포기브 미>에서 유명인의 편지를 위조해 먹고사는 리 이스라엘(멜리사 맥카시)은 일찍이 그 점을 간파해 정작 해야 할 말 외에 짤막한 에피소드 한두 개를 추가, 서적상에서 단돈 얼마라도 더 챙겼다. 어렸을 땐 굳이 돈을 들여 편지지와 봉투 세트를 사고 왁스 스틱에 이니셜을 새긴 스탬프까지 구비해 씰로 봉합도 해봤지만, 참으로 부질없는 짓. 그보다는 호텔에서 서비스로 제공하는 편지지 세트가 훨씬 유용하다. 웬만한 호텔의 책상 서랍엔 자체 제작한 편지지와 엽서, 봉투가 꽤 넉넉히 들어 있다. 호텔의 문장과 로고, 주소가 성의 있게 적혀 있어 고풍스럽고도 이국적인 멋이 고아하게 흐르는 데다 종이의 질도 상당히 좋다. 제일 멋진 건, 연필로 쓱쓱 그린 호텔의 전경이 조그맣게 담긴(주소는 무려 선셋 블루바드) 엘에이 샤또 마몽의 봉투. 투스카니의 일 펠리카노, 마이애미의 파에나, 런던의 칠턴 파이어 하우스, 뭄바이 타지마할 팰리스의 편지지 세트도 예뻐서 야금야금 아껴 쓰고 있다. 편지는 대체로 로맨틱한 용도로 쓰이지만 더러 다른 경우도 있다. 얼마 전 하루키 에세이에서 컴플레인 편지 쓰는 법을 배웠다. 불평을 하려면 칭찬을 먼저 해야 하고, 그 비율은 3:7 정도가 적당하다. 문투는 “분하고 억울해서 죽겠다”는 식이 아닌, 참 좋아했는데 이번 일로 실망한 나머지 “적잖이 마음이 착잡하다”를 시작으로. 그리하여, 매번 분리수거 쓰레기를 복도에 보란듯 내놓는 옆집을 수취인으로 편지를 썼다. “오신 후로, 동네에 생기가 넘칩니다. 강아지 목청이 참 청아해서 빈 합창단에 유학이라도 보내면 어떨까 생각해봤습니다. 성대의 울림과 음성의 고저로 볼 때 조약돌처럼 어여쁜 포메리안이 아닐까 추측해봅니다. 밤낮 없는 노랫소리는 그것만으로 충분하니 라디오는 갖다 버려야겠어요. 댁의 문앞이 마침 수거 장소인 듯한데 그쪽에 두어도 괜찮을지요? 당신의 신실한 이웃으로부터.”
- 편집장
- 강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