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코로나 시대의 미술

2020.05.08GQ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미술계도 피할 수 없는 변화에 직면했다. 새로운 온라인 플랫폼은 아트 시장의 판도를 바꿔놓을 수 있을까?

지난 수년간 현대 미술 시장은 과하다 싶을 정도로 물리적 행사가 넘쳐났다. 북적대는 전시 오프닝, 술잔이 넘실대는 각종 디너, 인산인해를 이루는 아트 페어 및 경매장 등. 그 속에서 헤아릴 수 없는 만남을 통해 거래가 이루어졌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등장은 이 모든 행사와 온갖 접촉을 눈 깜짝할 새에 증발시켜버렸다. 최근 미술계의 관심사는 아시아 최대 아트 페어인 아트 바젤 홍콩의 개최 여부였다. 민주화 시위 사태를 겪은 홍콩은 아트 바젤을 시작으로 소더비, 크리스티 경매가 이어지며 활기를 되찾길 기대했지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복병을 만났다. 결국 역사상 처음으로 아트 바젤 홍콩의 취소가 결정되었다. 사실상 일 년치 장사를 완전히 날리는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갑작스러운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아트 바젤은 온라인 뷰잉룸이라는 새로운 플랫폼을 페어 기간에 맞춰 론칭했다. 이를 계기로 아트계에도 ‘뉴 노멀 New Normal’의 서막이 열렸다. 사회적 격리로 고립된 상황 속에서 직접 대면하지 않고도 작품과 관객들이 만날 수 있도록 온라인 뷰잉룸, 버추얼 투어 등 새로운 디지털 플랫폼과 최첨단 기술이 아트 신에 새롭게 등장하기 시작했다.

아트 바젤 웹사이트(또는 모바일앱)에 입장하자 235개 갤러리 뷰잉룸이 펼쳐졌다. 갤러리 및 작가 이름, 작품 연도, 재료, 가격대 등으로 검색할 수 있는 기능이 온라인 아트 쇼핑의 편리성을 더했다. 아트 바젤 온라인 뷰잉룸 창간판은 본래 3월 홍콩 페어에 참여하기로 되어 있던 갤러리 95퍼센트 이상이 참가해 페인팅, 사진, 영상, 조각, 설치 미술 등 다양한 소재의 작품 2천여 점을 디지털로 온전히 옮겨오는 데 성공했다. 참여한 갤러리들은 자신들이 선정한 작품 10점을 온라인 전시장을 통해 공개했다. 선보인 작품의 고화질 이미지는 최대 두 번까지 확대되어 예상보다 자세하게 질감을 가늠해볼 수 있었다. 총 7일간 26 만 명이 넘는 관람객이 아트 바젤 뷰잉룸에 다녀갔다.(작년 아트 바젤 홍콩의 관람객 수는 총 8만 8천 명이다.) 페어 때와 마찬가지로 초대받은 VIP들만 로그인할 수 있는 오프닝 기간에는 트래픽이 폭주해 웹사이트가 20여 분간 다운되기도 했다. 평소였다면 거리가 멀어 페어에 방문하지 못하던 미주, 유럽 VIP들이 참여한 점이 눈에 띈다. 실제로 뷰잉룸을 이용한 30대 젊은 컬렉터 K는 평소 페어장을 직접 방문한 것과 비교했을 때, “디지털 이미지는 실물을 감상할 때보다 다소 몰입감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아트 바젤 온라인 뷰잉룸은 촉박한 준비 기간에도 불구하고 주목할 만한 결과를 보였다. 스위스의 거물 하우저 & 워스는 VIP 오프닝이 시작되자마자 요제프 알베르스의 페인팅(60만 달러), 제니 홀저의 페인팅(35만 달러), 피필로티 리스트의 영상 작품(14만 달러) 등 작품 8점을 거뜬히 팔아 명성을 지켰다. 데이비드 즈워너 갤러리는 말린 듀마의 작품을 미국 컬렉터에게 2백60만 달러에, 가고시안은 게오르그 바셀리츠의 페인팅을 1백20만 유로에 팔았다. 두 갤러리는 이미 수년간 각자 갤러리 자체적으로 온라인 뷰잉룸을 운영하며 얻은 경험을 토대로 아트 바젤 뷰잉룸 부스를 공격적으로 홍보했고, 결국 첫 시도에 만족할 만한 성과를 얻었다.

온라인 플랫폼은 특히 디지털과 친숙한 젊은 밀레니얼 세대에게 강세를 보였다. 글로벌 금융 기업 UBS가 매년 발표하는 이번 2020 글로벌 아트마켓 보고서에 따르면 고액 순자산 보유자 중 밀레니얼 컬렉터들이 가장 주기적으로 온라인 플랫폼을 사용하며, 이들 중 92퍼센트가 온라인을 통해서 미술 작품을 구입한 적이 있다는 통계와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이런 젊은 컬렉터들에겐 가격의 투명성이 구매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핵심이다. 이들에게는 아래위로 곁눈질하는 갤러리스트의 고고한 태도를 견디며 가격을 문의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온라인 플랫폼이 더욱 자유롭게 느껴지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번 아트 바젤 뷰잉룸 기간 동안 큰 인기를 끌었던 섹션이 있다. 여러 신진 갤러리가 협력해 만든 ‘Zoom VIP 버추얼 투어’가 바로 그것이다. 버추얼 투어는 PPT 슬라이드를 통해 작가 일대기와 판매 작품들을 설명해주는 일종의 인터넷 강의에 가까운 방식이었다. 채팅 창을 통해 관객들과 서로 질문을 주고받으며 참여를 유도했다. 안테나 스페이스 갤러리 디렉터인 사이먼 왕은 이런 시도가 신진 갤러리를 확실히 도왔다고 강조했다. 리슨 갤러리는 좀 더 다이내믹한 방식의 갤러리 투어를 시도했다. 영국 서포크에 위치한 라이언 갠더 작가의 작업실로 영상 통화를 시도한 것. 라이언은 신이 나서 한 손으로는 카메라를, 한 손으로는 휠체어를 밀며 한 시간 정도 작업실 구석구석을 구경시켜 주었다. 그의 새로운 설치 작품도 만나볼 수 있었다. 작가의 역동적인 움직임 덕분에 카메라가 빙빙 돌면 멀미까지 날 지경이었다. 그의 손에 들린 카메라가 아카이브 섹션으로 거침없이 나아가자 리슨 갤러리 디렉터가 다급하게 말했다 “어어 잠깐! 라이언, 프라이빗한 작업과 아카이브는 다 보여주지 마세요. 원래 보여주기로 했던 작품만 보여주세요!”

사실 유명한 아트 딜러는 숱한 불경기와 인생 굴곡을 겪은 베테랑들이다. 훌륭한 갤러리스트들은 전 세계 곳곳의 컬렉터, 작가, 큐레이터, 사상가, 후원자들을 연결해줄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창구를 발 빠르게 모색해왔다. 현재 뉴욕도 도시 전체가 마비되면서 데이비드 즈워너는 작은 규모의 12개 갤러리를 초대해 소속 작가의 작품을 2점씩 소개하는 프로젝트를 온라인으로 진행하고 있다. 이 대형 갤러리는 중소형 갤러리들과 공생하며 시장 파이 크기를 유지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게 업게 리더로서의 역할과 책임을 다하는 것이라는 점도 말이다.

그런가 하면 하우저 & 워스 갤러리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 조금이라도 웃을 수 있는 독창적인 콘텐츠를 주기적으로 올리고 있다. 중국 원로작가 장엔리는 엉뚱하게도 중국식 빈대떡을 만드는 방법을 알려주고,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있는 아르헨티나 작가 기예르모 쿠이차는 사회적 격리 중에도 어떻게 남미 리듬에 따라 춤을 추며 건강을 유지하는지, 아름답고 예술적인 세면대에서 손 씻는 사례를 위트 있게 보여준다. 조지 콘도는 3월, 3주간 뉴욕 외곽에 있는 자신의 작업실에서 ‘거리를 둔 인물화’ 6점을 그렸고, 온라인 뷰잉룸에 공개한 지 일주일도 안 되어 코로나 시대의 이 드로잉은 모두 완판되었다. 하우저 & 워스는 온라인 판매 수익의 10퍼센트를 코로나 바이러스에 맞서 고군분투하는 전 세계 의료진들에게 힘을 보태기 위해 세계보건기구에 기부하겠다고 발표했다.

코로나가 언제 종식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미술계 사람들은 지난 몇 개월 동안 메일로 서로의 안부를 전하며 이 모든 사태가 무사히 진정되어 건강하게 만나고 싶다는 이야기를 일상처럼 주고받는다. 스위스 아트 바젤은 9월로 미뤄졌고, 주요 홍콩 경매도 7월로 옮겨졌다. 이 행사들이 진행될 수 있을지도 아직 미지수다. 이런 불확실한 시기가 사람들의 구매를 억제시킬지, 오히려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수단으로써 구매욕을 자극할지는 지켜볼 일이다.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통해 그동안 과다하게 넘쳐난 미술계 행사들이 간소화되고, 사회적 거리 두기에 익숙해진 우리는 반가운 악수와 비주 대신 적당한 거리에서 어색한 눈인사를 나누게 되지 않을까? 글 / 안샛별(아트 칼럼니스트)

    피쳐 에디터
    김아름
    사진
    게티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