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디아블로부터 오버워치까지, 블리자드의 위기

2020.05.09GQ

디아블로부터 오버워치까지, 세기의 걸작을 쏟아내며 밤낮으로 게임 유저들을 붙잡았던 블리자드가 증발할 위기에 직면했다.

전 세계 게이머의 기대와 존경을 한 몸에 받던 회사가 있다. 원하는 퀄리티가 나올 때까지 연 단위 발매일 연장은 물론 프로젝트 중단까지 서슴지 않았다. 거짓말 조금 보태 지금의 게임 및 IT 업계가 만들어지는 데 주도적이고 중요한 역할을 한 회사,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다.

최근 공개된 디아블로4 소식에 각종 커뮤니티에서 조롱과 냉소를 보내고 있다. UI 개선과 아트워크 공개 정도의 간단한 소식임에도 과하다 싶은 반응이다.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다. 게이머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던 블리자드의 아성에 금이 갔다. 아니, 금이 가기 시작한 지는 꽤 오래됐다. 지금은 아예 폭삭 주저앉았다.

블리자드의 난항을 평가하는 관점은 모회사와 새로운 경영진의 압박, 유행의 변화를 비롯해 여러 가지다. 그러나 무엇보다 게임 퀄리티가 참혹하다. 게이머가 원하는 방향과 반대로 움직인다. 신작 3개 관련 정보가 꾸준히 나오고 있지만 바라보는 게이머의 시선은 반신반의다. 창사 이래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블리자드의 헛발질은 게임 내외부 영역으로 나눌 수 있다. 내적인 영역은 그래픽이나 사운드, 업데이트나 플레이 만족도 등 게임 자체에 한정된다. 반면 외적인 영역은 개발과 출시, 업데이트 일정을 비롯해 마케팅이나 대회 운영 등 회사가 게임이라는 상품을 다루며 내리는 판단과 기준이다.

게임 내적 문제는 사람들의 실낱같은 신뢰의 끈마저 끊어버린 워크래프트3 리포지드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해상도 변경 시 텍스트가 깨지는 현상은 백 보 양보해 있을 수 있다. 단순한 버그다. 스토리 캠페인 영상이 과거 발표 내용보다 다운그레이드된 점도, 만 보 양보해 있을 수 있다. 이미 발매가 밀린 상황이다. 과거의 블리자드였다면 출시를 더 연기하고 캠페인 영상을 보강했겠지만, 이번에는 성난 민심이 무서웠을 수 있다.

하지만 유닛의 시인성이나 전장 인식 문제는 아무리 양보해도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RTS 장르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를 모른다는 뜻이니까. 스타크래프트에서 적 질럿과 내 질럿을 구분할 수 없다면, 그래서 전투가 다 끝난 다음에야 이겼거나 졌다는 걸 알 수 있다면, 캐리어 인터셉터가 너무 화려해 전장을 구분할 수 없다면 어떨까. 이런 문제가 워크래프트3 리포지드에서 발생했다. 캐릭터를 예쁘게 만드는 데 치중한 나머지 RTS 장르에서 가장 중요한 점을 간과했다. 유저 니즈 파악이 제대로 안 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디아블로3를 보자. 일주일에 6백만 장 이상 팔리며 기네스북에까지 올랐지만 내용물은 실망스러웠다. 게임을 샀는데 서버 문제로 플레이가 불가능했다. 패키지 게임인데 온라인이 아니면 플레이를 못 하는 상황이었다. 여기에 단조로운 게임플레이로 수면제라는 오명을 얻었다. 야심 차게 준비한 경매장은 상상을 초월하는 인플레이션으로 사실상 이용이 불가능했다. 그나마 대규모 업데이트로 상당 부분 개선되면서 할 만한 게임 정도라는 평가를 받았다.

팬들이 관대한 마음으로 받아주는 동안 퀄리티는 점점 떨어졌다. 출시 후 혹평을 들으면 누더기처럼 기우는 작업이 이어졌다. 디아블로3가 그랬고, 히어로즈 오브 더 스톰이 그랬다. 간신히 완성된 작품을 보고 게이머는 적당히 만족했다. 블리자드라는 이름값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스타크래프트2는 수작이지만 세 개의 확장 팩이 나온 6년의 시간 동안 스토리 외에 이렇다 할 발전을 이뤄내지 못했다. 2004년 게임을 그대로 가져온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클래식’의 폭발적인 인기는 2019년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WoW)의 부족함을 드러내는 방증이었다. 디아블로 이모탈을 발표한 2018 블리즈컨에선 유저의 니즈를 파악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민낯을 그대로 보였줬다. 7년 만의 디아블로 신작이 PC가 아닌 모바일 게임이라는, 심지어 중국 기업 외주로 제작했다는 사실을 알고 야유하는 관람객에게 “Do You Guys Not Have Phones?”라는 전설적인 대사를 남겼다.

게임 외적인 영역에서도 치명적인 일이 많았다. 그중 하나가 2018년 말 발표한 히어로즈 오브 더 스톰 리그(HGC) 폐지다. 이해는 된다. HGC는 블리자드 입장에서 돈이 안 되는 사업이었다. 비인기 게임 관련 팀을 줄이고 대회를 폐지해 지출을 줄이는 합리적 판단이다. 숫자로만 보면 그렇다. 하지만 대회 폐지를 당일 통보로 완료했다. 서너 달 시간을 줘도 됐을 일이지만 그러지 않았다. e스포츠 업계 전체가 경악했다. 히어로즈 프로 게이머와 업계 관계자는 하루아침에 실직자가 됐다. 이 일은 블리자드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180도 바꾸는 결과를 낳았다.

2019년 말, 홍콩 시위가 한창이던 때 블리자드는 또 한 차례 헛발질을 한다. 카드게임 하스스톤의 홍콩 선수가 승자 인터뷰에서 홍콩 시위를 옹호하는 발언을 했다는 이유로 상금을 몰수하고 출전 정지 1년이라는 중징계를 내린다. 인터뷰를 진행한 아나운서와 해설자도 해당 발언을 유도 방관했다는 이유로 해고됐다. 이 사건은 큰 파장을 일으켰다. 미국 상원의원은 “중국 공산당을 위해 기꺼이 스스로를 능욕할 수 있는 회사”라는 강도 높은 표현으로 블리자드를 비판했다. 하원의장은 본회의장에서 “상업적 이익을 이유로 중국 내 인권에 침묵하지 말라”는 연설을 했다.

물론 스포츠에서 정치적 발언 금지는 일반적인 일이다. 사람들이 실망한 점은 블리자드가 그동안 보여준 태도와의 괴리다. 최근 몇 년 블리자드는 ‘정치적 올바름’을 주장해왔다. 비판을 감수하면서도 게임 내에 다양한 민족, 언어, 종교, 성 정체성을 가진 캐릭터를 등장시키며 의지를 드러냈다. 하지만 정치적 올바름의 가치를 말하는 목소리를 침묵시킴으로써 위선적인 면모를 드러냈다. 블리자드를 믿었던 사람들은 선택적 올바름에 실망했다. 그 후 징계를 철회하고 여러 조치를 취하며 반전을 노렸지만 효과는 없었다.

시계를 되돌려보자. 블리자드는 2004년에 내놓은 WoW 이후 2010년까지 무려 7년 동안 신작이 없었다. 하지만 블리자드를 욕하는 사람은 없었다. 두 개의 WoW 확장 팩이 대성공을 거두며 블리자드의 인기는 정점에 올랐다. 2007년 스타크래프트2, 2008년 디아블로3는 신작 오프닝 영상만으로 환호를 받았다. 그 누구도 블리자드의 능력을 의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숫자에 애걸하고, 이익에 복걸하는 회사로 바뀌었다. 그동안 쌓아온 명성이 아니었다면 벌써 무너지고도 남았을 일이다. 블리자드의 ‘까방권’은 사라진 지 오래다. 이제 날것으로 평가받아야 한다. 올해 테스트 예정인 디아블로 이모탈은 언론의 호평에도 불구하고 비난을 면치 못하고 있다. 오버워치2의 트레일러 영상은 반응이 좋았지만 1편과 큰 차별점을 찾기 힘들어 2편이라 보기에 부족하다는 의견이 많다. 최후의 한 수라 평가받는 디아블로4는 최근 개선된 UI와 캐릭터 아트를 공개하며 분위기 반전을 위해 노력 중이지만 상황이 녹록지 않다.

뚜껑을 열어봐야 알겠지만, 공개된 내용만 보면 그다지 나쁘진 않다는 평이다. 그치만 저주로 변한 사랑이 가장 무섭지 않나. 한때 충성을 바치던 유저들은 싸늘한 시선으로 신작을 바라본다. 의심과 배신감을 품은 모든 사람의 뒤통수를 후려칠 명작이 나왔으면 좋겠다. 애증 섞인 심정으로 기대해본다. 나를 비롯해 이 세상 모든 ‘겜돌이’의 인생을 장식한 회사니까. 힘내라 블리자드. 글 / 김강욱(게임 칼럼니스트)

    피쳐 에디터
    이재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