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배우들의 의미있는 수상소감 모음

2020.06.17박희아

황정민의 수상소감 이후로도, 시상식에서 의미있는 말들을 남긴 배우들은 많다.

2020년 제56회 백상예술대상 TV부문 남자 조연상 오정세
“개인적으로는 100편 다 똑같은 마음으로 똑같이 열심히 했거든요. 돌이켜 생각해보면 제가 잘해서 잘된 것도 아니고 제가 못해서 망한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중략) 차책하지 마십시오. 여러분 탓이 아닙니다. 그냥 계속하다 보면, 평소와 똑같이 했는데 그동안 받지 못했던 위로와 보상이 여러분을 찾아오게 될 것입니다. 저한테는 동백이가 그랬습니다. 여러분들도 모두 곧, 반드시 여러분만의 동백을 만날 수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자신의 잘못을 돌아보지 않은 채 남의 탓을 하는 사람이 아무리 많다고 해도, 정말 위험에 빠지는 이들은 자책을 하다가 헤어나오지 못하는 사람이라고들 한다. 개인의 노력 부족이냐, 사회구조적인 문제 때문이냐. 실패의 원인이 무엇이든 오정세는 자책하던 이에게도 ‘동백’이 피는 순간이 있다고 말한다. 그또한 100편 넘게 작품을 하면서 똑같이 열과 성을 다했을 때라야, 말을 할 수 있는 자리가 생겼을 때 타인에게 위로와 자신만의 깨달음을 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다만 오정세의 말 중에 “평소와 똑같이 했는데”라는 말은 “평소와 똑같이” 열심히 했다는 이야기가 아닐까. 그 사실을 잊지 않아야 ‘동백’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2019년 청룡영화상 여우조연상 이정은
“요즘에 제일 많이 듣는 말이 너무 늦게 저한테 이런 스포트라이트가 비춰진 것 같다고 말씀을 하시는데, 제 스스로는 이만한 얼굴이나 이만한 몸매가 될 때까지 그 시간이 분명히 필요했다고 생각하고….”

덤덤하게 말을 이어나가던 이정은은 자신의 외모를 수단으로 삼아 자신이 받은 스포트라이트 앞에서 스스로를 낮췄다. 겸손이 미덕이라는 한국의 정서에 자신의 외모를 농담거리로 삼은 것에 팬들이 안타까움을 느낄 무렵, 그는 갑작스럽게 눈물을 보였다. “<기생충>으로 주목을 너무 많이 받으니까 좀 겁이 나서….” 모든 사람들에게는 평생 동안 세 번의 기회가 찾아온다는 옛말이 있다.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면 그 기회를 잡아챌 수 없다는 말도 함께. 이정은에게 찾아온 기회는 지금까지도 그를 보며 꿈을 꾸는 다양한 생김새의 여성들의 이야기로 바뀌어가고 있다. 사실은 생김새가 문제가 아니라, 언제 스포트라이트를 받든 간에 자신의 직업에서 나태해지지 않으려고 애쓰는 태도가 나를 만들어간다는 것을 그를 보며 배웠다.

2019년 제55회 백상예술대상 TV부문 대상 김혜자
“뭐라고 인사말을 하나 그러다가, 여러분이 많이 좋아해 주셨던 내레이션을 얘기해야지 그랬는데 아무리 아무리 외워도 자꾸 까먹는 거예요. 그래서 이렇게 대본을 찢어 가지고 왔어요.”

JTBC <눈이 부시게>의 결말을 보면서 엄청난 양의 눈물을 쏟아내던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었을 것이다. 당신의 삶은 어떤 이유를 대더라도 살아있음 그 자체로 가치가 있고, 아름답다고 얘기하는 김혜자의 내레이션은 시상식장에서 다시 울려퍼졌다. “찢어 가지고 왔”던 대본에 의해. 극중에서처럼 김혜자가 나이 들어 알츠하이머를 앓는 ‘김혜자’가 아니더라도, 수십 년 동안 연기를 해온 김혜자의 입에서 나온 글은 자리에 있던 배우들과 시청자를 울렸다.

2017년 KBS 연기대상 최우수상 정려원
“저희 드라마는 성범죄라는 무거운 주죄를 다루고 있었는데요. 사실 감기처럼 이 사회에 만연하게 퍼져 있지만 그 가해자들이 드러나지 않습니다. 저희는 이 드라마를 통해서 성범죄, 성폭력에 대한 법이 더 강화돼서 가해자들이 처벌을 제대로 받고 피해자들이 목소리를 더 높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정려원의 수상소감은 길고, 강렬했다. 그는 KBS <마녀의 법정>에서 자신이 피해자가 되면서 성범죄를 바라보는 시각이 바뀐 여성 검사 마이듬을 연기했고,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성범죄의 양상을 차갑고 냉정한 이성과 고뇌하는 감성 사이를 조율하며 연기했다. 그리고 그 연기의 결과는 단순한 호평이 아닌, 그의 앞에 상패와 마이크로 놓였다. 그동안 성범죄를 다룬 드라마가 수없이 많았음에도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았던 말을 꺼낸 그의 모습은 용기 그 자체였고, 당시 많은 여성들에게 위로를 주었다.

    에디터
    글 / 박희아(대중문화 저널리스트)
    사진
    게티이미지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