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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후죽순 트로트 프로그램 제작진들이 노리는 것

2020.07.11GQ

비슷비슷한 트로트 프로그램이 쏟아지고 있다. 카피캣이라는 비난을 감수하고서도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함께 흥할까, 함께 망할까.

“아니, 그래도 여기 팬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그런 식으로 말하면 안 되는 거 아니에요?” 60대 주부 선미정(가명) 씨는 며칠 전 미용실에 갔다가 흥미로운 광경을 목격했다. 60대 후반의 아주머니들 두 명 사이에 다툼 아닌 다툼이 붙은 것이다. 선 씨를 가운데에 두고 양옆에 앉은 두 사람은 TV에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남성 트로트 가수들이 나오는 프로그램을 보고 있었다. 그러던 중 한 명이 “저 친구는 너무 얄밉게 생겼어. 머리를 쓸 거 같아”라고 말하자, 다른 한 명이 발끈한 것이다. 선 씨는 당시를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다. “딸들이 각자 다른 아이돌 그룹을 좋아했는데 그때 싸우던 모습을 보는 기분이었어요.”

엄청난 인기를 끌면서 종영한 TV조선의 <미스터트롯> 이후에 생긴 출연자들의 팬덤은 여전히 활발히 활동 중이다. 중장년층의 여성들이 많이 모이는 공간에서나, 지하철 안과 같은 공공장소에서도 유튜브를 통해 이들이 나오는 프로그램을 보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 그들이 나오는 예능 프로그램은 시청률이 갑자기 폭등하고, 동시에 인기가 많았던 출연자들로 화보집까지 출간됐다. 화보집의 가격은 팬들을 위해 세부적으로 구성품에 따라 다르게 책정되기까지 했다. 단품은 3만 원대, 톱 7에 들었던 참가자 중 원하는 참가자의 브로마이드 5장과 포토카드 3장으로 구성된 패키지 상품은 4만 원대다. 최종회에서 시청률 35.7%를 찍으며 종편 채널 역대 최고 시청률을 달성한 프로그램다운 기획이었다.

이제 곧 KBS, MBC, MBN, SBS 플러스를 통해 수많은 트로트 프로그램들이 선을 보인다. 하반기 방영 예정인 대규모 오디션 프로그램 <트롯전국체전> <트로트의 민족>은 예심 진행 중이고, MBN의 <보이스트롯>, SBS 플러스 <내게 ON 트롯>을 비롯해 이미 시작된 MBC의 <최애 엔터테인먼트>까지 있다. 이에 대해 <미스터트롯>의 아류, 카피캣이라는 이야기와 모두 비슷한 포맷 아니냐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그러나 MBC의 <최애 엔터테인먼트>라는 제목은 이 수많은 트로트 예능 프로그램들을 조금 다른 눈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이 프로그램들을 통해 새로운 ‘최애’를 찾아나선 사람들도 있다는 뜻이다. “단 한 번도 이렇게까지 뭔가를 좋아해 본 적이 없는데, 너무 재미있어요.” 50대 김정란(가명) 씨는 이 프로그램들을 통해 “또다른 ‘최애’나 ‘차애’를 찾을 것”이라며 즐거워했다. 그는 “80대 시어머니도 함께 투표를 했다”고 말했다.

한때 TV 드라마 시장을 뜨겁게 달궜던 소비자들이 있다. 김은숙의 드라마를 열광적으로 보던 중장년층 여성들이 잠시 시장의 흐름을 알 수 있게 하는 척도가 되어주었다면, <미스터트롯>을 비롯해 <미스트롯> 등 여러 트로트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탄생한 가수들의 팬덤은 좀 더 젊은 세대의 소비 방식에 가까워졌다. 이제 그들은 비공식 굿즈, 사적인 모임을 기획하는 일부터 다른 팬덤과의 기싸움까지 경험하며 처음으로 무언가에 열광하고, 자신의 의지대로 좋아하는 대상을 선택해 공식 MD를 구매하며 낯선 기쁨을 누린다. Mnet <프로듀스 101 시즌 2> 이후에 중년 여성들 사이에서 일었던 붐이 조금 더 연령대를 높여 집에만 있던 주부들을 바깥으로 불러낸다. 그들의 몸만 밖으로 나오는 게 아니다. 마음은 더 들떴다. 이런 상황에서 트로트 예능 프로그램들이 우후죽순 생겨나는 것은 이들에게 즐거운 이벤트다.

방송 산업의 입장에서 카피캣들이 난무하는 것은 분명 우려할 일이다. Mnet <슈퍼스타K>나 <프로듀스> 시리즈 이후에 불었던 오디션 프로그램 붐은 결코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고 보기 어려웠고, 덕분에 그 결과를 이미 예측할 수 있는 대중이 “너무 연구하지 않고 게으른 것 아니냐”는 비판을 제작진에게 보내는 것도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대한민국에는 이런 비판을 뒤로하고 처음으로 좋아하는 것에 열광하기 시작한 중장년층과 노년층이 있다. 이들이 지갑을 열기 시작하고, 유튜브를 보면서 자신의 취향을 고르기 시작했다는 것은 분명 한국 대중문화 업계에 새로운 바람이 불어올 것이란 뜻이다. 그러니 지금 제작될 수많은 트로트 예능 프로그램의 제작진들이 고려해야 할 것은 하나다. 중장년층과 노년층을 함께 공략할 수 있는 실버 콘텐츠는 어떤 식으로 마케팅을 해야 하는지, 이 프로그램들에서 가장 핵심적으로 팬덤을 만들어낼 수 있는 요소는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 못하면 욕을 먹지만, 잘하면 커다란 수익으로 이어질 수 있는 길. 핵심은 누가 누가 가장 ‘최애’를 찾고 싶은 이들의 마음을 제대로 알아챌 것인지에 달렸다.

    에디터
    글 / 박희아(대중문화 저널리스트)
    사진
    프로그램별 공식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