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art

웹 소설을 대하는 어느 소설가의 고군분투기

2020.07.30GQ

웹 소설이 요즘 문학계의 대세가 된 것일까? 시대의 변화 속으로 기꺼이 뛰어든 어느 소설가의 고군분투기.

첫 번째 곁눈질. 지하철에서 종이책을 읽을 때 객차 안을 슬쩍슬쩍 곁눈질한다. 종이책 읽는 사람이 또 있나 싶어서. 한 명 있거나, 없다. 있다면, 무슨 책을 읽는지 살펴본다. 안타깝게도 소설은 극히 드물다. 한번은 <태백산맥>을 읽는 사람을 본 적 있는데, 처음엔 눈을 의심하며 제목을 다시 확인했다. 판타지 소설 <태백신령>이거나 로맨스 소설 <태백신부>인가 하고.(가상의 소설들이고, 폄하하려는 게 아니다. 현실을 직시하는 것이다.)

지하철에서 사람들은 휴대 전화로 SNS를 살피고, 게임하고, 웹툰 보고, 넷플릭스를 시청했다. 가끔(종이책 읽는 사람보다는 자주) 휴대 전화로 텍스트를 읽는 사람들도 발견하곤 했는데, 이분들 휴대 전화 화면을 재빠르게 훑어보면(죄송합니다), 이른바 웹 소설들이었다.

정말 웹 소설이 문학계의 대세가 된 것일까? 수익으로는 그렇다. 2018년 주요 단행본 출판사 25개의 매출액은 3천4백74억원인데(소설, 비소설 포함), 웹 소설 시장 규모는 4천억원가량이다. 그중 대표적인 웹 소설 플랫폼 ‘문피아’는 3백5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그해 ‘문학동네’ 출판사 매출액은 2백53억원이었다). 웹 소설은 드라마로 제작되고, 웹툰화돼 지구본 여기저기를 손가락으로 찍듯 부담 없이 해외로 진출하고 있다.

다수의 문학 출판사들은 기로에 놓였다. 웹 소설 전문 매체가 되거나, 웹 소설에 발을 걸쳐놓거나. 일부는 갈아타고, ‘황금가지’와 ‘위즈덤하우스’는 후자의 길을 따라 ‘브릿G’, ‘저스툰’(현, 코미코) 같은 웹 소설 플랫폼을 만들었다. ‘네이버 시리즈’와 ‘카카오페이지’는 각각 총상금 8억원, 6억 2천만원의 웹 소설 공모전을 개최하며 발 빠르게 대응 중이다.

해외 웹 소설 시장 규모도 점점 커지고 있다. 영어권 국가를 대상으로 운영 중인 웹 소설 플랫폼 ‘Webnovel’은 2018년 기준 3천 명의 작가와 6천개의 작품, 사용자 수 1천3백만 명을 보유했다. 중국은 2017년 웹 소설 시장 규모가 1백27.6억 위안이고(3조 이상), 웹 소설 이용자 수는 3억 7천만 회를 초과했다. 한국 웹 소설이 영미권과 중국, 베트남 등에 팔리기도 하고(‘문피아’는 ‘Webnovel’에 13개 작품을 판매했다), 해외 웹 소설들도 한국에서 읽힌다. 2019년 8월 ‘네이버 시리즈’ 다운로드 순위 20위 안에 5편의 중국 웹 소설이 랭크되었다.

두 번째 곁눈질. 인기 있다는 웹 소설 몇 편을 염탐꾼이 된 기분으로 다운로드해서 읽었다. 애초의 소감은 이랬다. 찢.고.싶.다. 종이책이었다면, 그것이 눈앞에 있었다면, 정말 찢었을지도 모른다. 모기만큼 싫은 문장들과 파리만큼 짜증 나는 스토리들이었다. 허황되고, 비튼 흔적 없는 클리셰들 범벅이고, 대사는 미취학 아동 옹알이 느낌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달라졌다.

세 번째 곁눈질. 한 웹 소설 플랫폼에서 개최한 공모전에 지원했다. 웹 소설이라는 매체를 거부할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고, 내 색깔을 담은 웹 소설을 쓰면 되지 않겠냐는 판단이었다. 장르는 <앰버연대기> 같은 소설의 발끝에 닿기를 기원하며 ‘다크 판타지’로 선택했다.

웹 소설을 쓰며 가장 신경 쓴 부분은 판형에 맞는 가독성이었다. 휴대 전화 화면 크기에 맞게 문장과 대사 길이, 사건 전개 속도를 맞추기 위해 노력했다. 가독성이 없으면 끝이라는 생각이었고, 은유와 직유를 생략하며 독자들에게 생각할 틈을 주면 안 된다는(?) 절박함에 매달렸다. 컴퓨터 한글 프로그램 용지 사이즈를 휴대 전화 화면 사이즈에 맞춘 다음, 한 문장 쓰고 엔터, 한 대사 쓰고 엔터, 사건이 전개되면 다음 장으로. 이러한 작업을 무한 반복했다. 곤욕의 연속이었다.

공모전 요구 분량을 간신히 맞춰(실제 연재를 하려면 매일 4천~6천 자 정도를 써야 한다) 마감 직전에 응모했다. 얼마 후 운 좋게도 본선에 진출했다는 문자를 받았다. 그리고 결선에서 떨어졌다. 그때의 소감은 이랬다. 내가 곁눈질한 곳은 쓰레기 더미가 아니라 체력과 인내력, 상상력 넘치는 장인들의 결투장이었구나! 짧은 구독 시간 동안(대중교통 이용 시, 약속 시간 기다릴 때, 화장실에서 일 볼 때) 독자들을 매장, 매회 붙잡아두려면, 이전보다 더 많이 생각하고 고심해야 하는구나! 웹 소설을 쓰는 동안 나는 전에 없이 늙었고, 삶은 피폐해졌다.

지금은 웹 소설을 쓸 엄두가 전혀 나지 않는다. 쓸 수 있는데 쓰지 않는 것이 아니다. 쓰고 싶은데 못 쓴다. 능력과 체력 부족이다. 웹 소설의 문법과 규칙에 적응하고, 하루의 영혼을 모조리 쏟아부어야 하는 분량 채우기를 매일매일 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훈련이 필요함을 느꼈다. 그리고 무엇보다 웹 소설 독자들을 내가 쓴 이야기로 끌어들일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하락했다.

어떤 소설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한 가지 대체적인 공통점은 그 소설을 쓴 작가들은 그 이유를 잘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시대 흐름을 잘 반영했다, 정도일까. 그러나 인기 있는 웹 소설은 그 이유가 분명하다. 웹 소설 작가들도 독자들도 이유를 명확히 알고 있다. ‘흥미’다. 웹 소설 작가들은 오로지 그것을 목표로 쓰고, 독자들은 오로지 그것을 위해 읽는다. 이것은 웹 소설이 가지고 있는 한계이자 웹 소설 작가들이 넘어야 할 또 다른 벽이다.

역사적으로 새로운 매체의 발명은 전에 없던 예술이 탄생하는 기반으로 작용했다. 근래에는 사진과 영화가 그랬다. 현재 ‘이야기’(소설)들은 기존에 발명된 그 어느 것보다 강력한 매체인 ‘웹’에 올라탔다. 판타지, 무협, 로맨스를 외피로 한 수많은 ‘이야기’가 ‘웹’에서 만개 중이다. 양적 측면에서는 무섭다고 느낄 만큼 가짓수가 많고(네이버 웹 소설 공모전에는 1만여 점이 응모했다), 예비 작가들의 수도 20만 명에 육박한다.

대학에서는 웹 소설 강좌가 개설되고, 웹 소설을 가르치는 사설 학원도 성행 중이다. 그러나 ‘이야기’의 목적이 ‘흥미’에만 갇혀 있는 한, 웹 소설이 사진과 영화처럼 강렬한 영향력을 오래도록 발휘할지는 의문이다. 더 많은 ‘흥미’와 ‘자극’을 주는 매체가 나타난다면(실제 그럴 것이다) 곧 잊힐지 모른다. ‘작품성’과 ‘대중성’을 모두 갖춘 ‘중간 문학’이 많아져야 하고(장은수 편집문화실험 대표), 비평의 장이 마련되어야 한다. 현재 웹 소설은 경제적 측면에서만 평가가 이뤄지고 있다.

과거, 종이책은 소설가들의 숨통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는 건 너무 가슴 아픈 일이지만, 종이책은 기존 소설가들의 무덤으로 변해가는 중이다. 제법 팔리는 종이책 소설들도 과거에 비하면 체면치레 정도 수준이다. 생존이라는 측면에서, 나를 포함한 기존 소설가들의 웹 소설 쓰기는, 한순간의 도전이 아니라 필연에 가까워지고 있다. 그러나 쉬운 일은 아니다.

이융희 웹 소설 작가는 웹 소설 독자층이 보여주는 이러한 형태가 기존의 것과는 완전히 다르며, 웹 소설 역시 기존의 소설과는 다른 새로운 형태의 것이라고 말한다.(<뉴스페이퍼>, 2018년)

이런 시대 변화 속에서 곁눈질하는 날들이 속절없이 지나가고 있다. 곁눈질은 호기심의 발로이자 욕망의 소산이기도 하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은 독자에게 내 ‘이야기’를 들려주고, 생계 걱정 없이 소설을 계속 쓸 수 있을까? 그러나 여전히 나는 문장과 대사마다 시선을 붙잡아둘 접착제 붙이는 일을 불필요하다 여기는 ‘낡은’ 소설가로 남아 있다. 곁눈질만 하고 있는 한심한 날들이다.글 / 김기창(소설가)

    피쳐 에디터
    김아름

    SNS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