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남보다 한 걸음 앞선 콘텐츠 리스트 8

2020.09.02GQ

혼돈 속에서도 진화는 계속된다. 8개 분야의 전문가가 한 걸음 앞선 콘텐츠를 꼽았다.

Music <BACKSEAT SWINGING>
디스토피아의 마지막 희망처럼 시대와 역사는 늘 희망을 노래하는 아티스트를 배출해왔다. 적어도 나에게는 뮤지션 Coolhand JAX의 데뷔 싱글 이 그렇다. 스트링 리버브가 걸린 기타 사운드는 물속에서 들려오는 듯 총총거리고, 풍기는 오리엔탈 무드는 코믹한 중국 영화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이 노래로 그는 무슨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걸까. 은 한마디로 뒷좌석 삶에 대한 이야기다. 세상이 열심히 돌아가는 동안 자신은 뒷좌석에 앉아 모든 것을 수용하는 태도와 여유로운 자신감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그린다. 올해 스물두살인 그는 실제로 대학 졸업 후 커리어를 찾고자 경쟁하는 또래들과 달리 몇 달 동안 길 위에서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대부분의 곡을 고속도로 위 차 안에서 만들었다. 자신이 자유롭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철저히 시간을 낭비한 셈인데, 그것이 그가 내뿜는 완벽한 자유의 분위기다. 결국 이 음악은 목적 없는 여행을 하던 중 일어난 변화의 기록이며 Coolhand JAX라는 페르소나가 탄생한 배경이다. 과정의 첫 번째 결과물이 이 노래이고, 이는 다음 발표곡을 기대하게 하기에 충분하다. 슬로 잼, 로 파이, 80년대 레트로, 트로피컬 사운드 등 소위 시티 팝이라 불리는 무드에 중점을 둔 음악이 2019년대 주요 트렌드였다면, 2020년은 골치 아프게 뒤엉킨 현상을 위트 있게 소화한 Coolhand JAX처럼 사이키 팝이 대세 중 한 부분을 담당하지 않을까. 기대되는 그의 첫 EP인 은 올해 말쯤 공개 예정이라고 한다. 노래만큼 스타일도 풋풋한 그를 어서 검색해주길 바란다. 유승보(뮤지션)

Brand 테슬라
자동차 말고 럭셔리 브랜드 관점에서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테슬라는 최초의 진정한 아메리칸 럭셔리 브랜드가 될까? 아메리칸 럭셔리 브랜드가 이미 많긴 하다. 랄프 로렌, 톰 포드, 캐딜락 등. 대신 이들 위에 유럽 럭셔리 브랜드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에르메스, 브리오니, 메르세데스-벤츠. 지금까지의 아메리칸 럭셔리를 깎아내리는 게 아니다. 다만 이 브랜드들은 최상위권 럭셔리 브랜드의 필수품이 빠져 있다. 그 필수품은 개념 선점이다. 예를 들어 샤넬은 근대 여성의 실루엣이라는 개념을 선점하고 값비싸게 재생산했다. 메르세데스-벤츠는 고급차라는 개념을 선점하고 꾸준히 미세 조정했다. 그것이 현대의 샤넬 트위드 재킷과 메르세데스-벤츠 S클래스다. 시간을 들여 품질과 이미지를 관리하고, 미래 가치까지 신경 쓰는, 아주 예민한 상품이다. 자동차는 보통 럭셔리 브랜드보다 더 복잡한 숙제가 있다. 공학적 우위다. 메르세데스-벤츠의 삼각 별은 상징에 지나지 않는다. 슈투트가르트의 엔지니어들이 발명하고 유지한 고급스러운 주행 질감의 상징 말이다. BMW보다 품위 있고 아우디보다 농후하고 렉서스보다 원초적인 주행 질감이야말로 메르세데스-벤츠의 공학적 성취다. 고급스러운 느낌의 표준을 만든 메르세데스-벤츠를 다른 회사가 추월하기는 쉽지 않다. 그런데 자동차의 동력원이 바뀌며 지난 100년 동안 상상하기 힘든 일이 일어났다. 달리는 컴퓨터에 가까운 전기차가 시장의 총아가 된 것이다. ‘전기차의 고급스러운 느낌’에서 새로운 표준이 나온다면 ‘럭셔리 전기차’라는 새로운 개념을 선점할 수 있다. 그 분야에서는 테슬라가 맨 앞에 있다. 테슬라의 미래를 확신할 순 없다. 전기차 업계는 여전히 발전하는 중이고, 테슬라는 유럽인과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자동차에 접근하고 있으며, 이로 인한 리스크는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 다만 그건 100년 전의 내연기관 자동차도 같았다. 그러니 적어도 지금은 테슬라가 전기차 업계 전체의 게임 체인저다. 그래서 나는 테슬라가 자동차 산업을 넘어 21세기 럭셔리의 표준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덧붙이면 비슷한 이유로 현대 제네시스에게도 기회가 올 것이다. 박찬용(<요즘 브랜드> 저자)

Design 디지털 디자인 전시
팬데믹 여파는 국내외 디자인 업계도 피할 수 없었다. 디자인 마이애미/바젤, 뉴욕 현대가구박람회 ICFF, 독일 국제 사무가구 전시회 ORGATEC는 물론 세계 최대 규모의 디자인 축제로 손꼽히는 밀란 국제가구박람회 Salone del Mobile조차 2개월 연기 조치도 모자라 결국 내년을 기약하며 취소되었다. 더욱 안타까운 점은 같은 기간 중 밀란 도시 곳곳에서 열릴 예정이던 디자인 플랫폼 벤투라 프로젝트 Ventura Projects가 지난 10년 동안의 굵직한 족적을 남기고 운영을 중단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벤투라 프로젝트는 나와 같은 디자이너들과 브랜드, 신진 작가들의 실험적이고 창의적인 꿈을 실현시키는 데 크게 일조해온 플랫폼이다. 팬데믹이 불러온 재정적 영향에 결국 중단되었지만, 그간 네덜란드 위트레흐트와 밀란 두 도시에서 총 10명으로만 구성된 작은 팀이 다채로운 이벤트, 그 이벤트가 지닌 의미를 떠나 단발성이라는 특성에서 어쩌면 소모적이고 전혀 지속 가능하지 않던 일련의 행사를 꾸준히 기획하고 개최해온 것이 오히려 기적이었다는 생각도 든다. 벤투라 프로젝트는 더 이상 열리지 않게 됐으나 이 플랫폼의 창립자 겸 아트 디렉터 마르흐릿 폴렌베르흐 Margriet Vollenberg는 내가 네덜란드 유학 생활 동안 경험한 전형적인 네덜란드인의 성향답게, 새로운 현실을 최대한 합리적이고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듯했다. 마르흐릿 폴렌베르흐는 획일적이던 박람회의 부재를 메워줄 디자이너들의 혁신을 내다봤다. 그가 예견한 참신하면서도 가능성 높은 대책은 얼마 지나지 않아 인터넷을 통해 다양한 방법으로 시도되는 중인데, 그중 나의 관심을 끈 것은 라는 가상의 디지털 디자인 전시다. 전시는 미국 캘리포니아의 가구 디자인 스튜디오 소프트-지오메트리 soft-geometry가 팬데믹 상황 속에서 지구 건너편 어딘가의 디자이너들과 희망과 고통을 함께 나누자는 단순한 발상에서 기획됐다. 소프트-지오메트리는 SNS로만 접했던 11개 디자인 스튜디오에 제안해 그들의 실제 작품을 3D 프로그램으로 디지털화시켰다. 가상과 현실이 서로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불확실성이 시각적으로 표현된다. 내가 이 프로젝트를 주목하는 이유는 3D 렌더링으로 표현된 가구의 장단점, 혹은 현실이 아닌 가상에서 가구를 경험하는 것의 차별성을 논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전통적인 디자인 박람회가 제공하던 문화적 교류가 상실된 지금, 그 갈증을 해결하는 새로운 비전이며 그 비전이 오롯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 디지털 전시는 동명의 웹사이트(imaginedforuncertaintimes.com)에서 경험할 수 있다. 이중한(TIEL 디자인 스튜디오 공동대표)

Architecture 구축의 부정
앙상블 스튜디오 Ensamble studio는 안톤 가르시아 아브릴 Antón García-Abril과 데보라 메사 Dèbora Mesa가 2000년에 설립한 디자인 스튜디오다. 스페인을 중심으로 활동하며 초기 작업부터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새로운 구축 방식들로 작업을 전개해왔다. 앙상블 스튜디오가 그간 선보인 결과물은 그야말로 극한 물성 실험인 듯하다. 물성 실험에는 특히 기둥과 보라는 근대 건축의 전형적인 구조 형식의 요소를 극단적인 크기로 활용하는 ‘역학적 구축’이 수반된다. 다리에나 쓸 것 같은 콘크리트-철골 합성 보를 십수 미터 캔틸레버(한쪽 끝이 고정되고 다른 끝은 받쳐지지 않은 상태로 되어 있는 보)로 활용해 떠 있는 수영장 수조로 쓴다거나, 대부분의 건축에서 30~50밀리미터 정도의 껍데기로만 활용하는 단단한 화강석을 두께가 1미터도 넘는 벽으로 쓴다거나 하는 식이다. 최근에는 기둥 위에 보를 얹고 그 위에 바닥과 지붕을 만드는 구축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난 작업을 전개하는데, 대표적인 것이 스페인 메노르카섬에 건축한 ‘Ca’n Terra, House in Menorca’이다. 공간을 구축한다는 것이 수직 수평의 공간 구성 요소를 접합하고 중력에 저항하는 상태를 만드는 일이라고 한다면 이 집은 구축을 부정한다. 부재의 이음과 접합 없이 그냥 파내어서 공간을 만든다. 본뜨는 것도 아니고 쌓는 것도 아니고 이어서 조립하는 것도 아닌, 구축 행위 없이 공간을 생성하는 역설이다. 그렇게 돌산을 파서 만든 집은 원시적 인류가 살았던 보호처의 원형에 관한 심상을 불러일으킨다. 이치훈(건축가, SoA)

Character 빙그레우스 더 마시스
빙그레우스 더 마시스는 빙그레 왕국의 왕자님이자 빙그레 공식 인스타그램 홍보대사다. 그는 빵또아 바지를 입고 바나나맛우유 왕관을 쓰며 스모키베이컨칩 견장을 팔뚝에 두른다. 빙그레우스 더 마시스는 유럽 르네상스 시대를 연상시키는 배경과 설정의 빙그레 왕국에서 시민들과 교감한다. 여기서 시민이란 우리, 즉 소비자다. ‘병맛’ 가득한 빙그레우스 세계관을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일은 불가능하고 설명하는 순간 재미는 사라지기에 아직 그를 모른다면 일단 그가 운영하는 인스타그램 @bigngraekorea를 팔로우하길 바란다. 이미 14만2천 명이 팔로우하고 있다. 내가 이 콘텐츠를 유의미하게 보는 이유는 드물게 대한민국 제조업 분야에서 가상의 세계관을 바탕으로 마케팅한 사례이기 때문이다. 빙그레우스 캐릭터의 외형 자체는 순정만화 그림체와 비슷하다. 하지만 ‘빙그레 왕국의 자기애 강한 왕자가 직접 운영하는 인스타그램’이라는 설정은 매우 신선하다. 요즘은 소비자·사용자가 기업의 제품·서비스·캐릭터를 어떻게 가지고 노는지가 더 중요한 시대다. 아무리 많은 비용을 들여 마케팅하더라도 소비자가 함께 콘텐츠를 갖고 놀지 않으면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격과 다름없다. 캐릭터 디자인 분야를 예로 들면 예전에는 디자인 면에서 어떻게 생겼는지 외형을 중시했다면 이제는 아니다. 지금은 ‘소비자가 캐릭터의 어떤 모습에 공감하는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한다. 빙그레의 빙그레우스 더 마시스는 자신의 세계관을 구축해냈다. 콘텐츠 제공자와 소비자 간 암묵적으로 합의된 규칙 아래 함께 노는 공간을 완성해냈다. 세계관이란 처음 구축할 땐 힘들어도 일단 구축하고 나면 참여자들이 스스로 역할을 찾아가며 알아서 잘 굴러간다. 기업 입장에서 세계관을 활용한 마케팅이 매력적인 이유가 이런 데 있다. 따라 하고 싶다고 따라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신선한 설정 아래 소비자와 지속적인 스킨십으로 공감의 폭을 확대하고 팬층을 형성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빙그레우스 더 마시스는 충분히 자신의 세계를 다져나가고 있다. 빙그레우스 더 마시스가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펼칠지 기대가 크다. 부디 빙그레 왕국이 태평성대하길 바란다. 윤영진(카카오 브랜드IP팀)

Drink 자유로운 한국 술
한국 술 산업의 판도를 바꿀 게임 체인저. 나는 이 네 곳을 꼽는다. 홍대의 올리앤로렌스, 은평구의 미주가, 마곡나루의 심야식당 켬, 행당동의 아맘. 모두 한국 술을 판매하는 1인 주점이다. 이들은 소위 ‘힙’하다고 알려진 상권에서 한 발짝 비켜서 있고, SNS 계정을 화려하게 꾸미지도 않으며, 무엇보다 스스로를 전통주 전문 주점이라 정의하지도 않는다. 4인의 사장은 그저 사적인 기억이 있는 곳에서 자신 있는 요리와 함께 한국 술을 소개할 뿐이다. 이 네 곳의 주점을 찾는 손님의 목적은 다른 가게를 찾을 때와는 조금 다르다. 맛있는 요리보다는(물론 요리도 맛있지만) 사장님의 취향 또는 고집을 즐기러 오는 행위에 가깝다. 사장님이 추천하는 그날의 안주와 술에 대해 가타부타 논하는 법이 없다. 확고한 믿음에 기반한 큐레이팅이다. 이 작은 가게들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걸까? 지난 몇 년 동안 F&B 트렌드 키워드 중 하나는 로컬리티였다. 한국 술 산업에서의 로컬리티는 으레 민족주의와 애국심과 결합해 전통주, 우리 술이라는 가치 판단적이고 배타적인 단어로 그 정체성이 규정되어 왔다. 이런 시장 환경에서는 플레이어도 전통 수호의 명분을 짊어진 듯한 압박을 느끼게 마련이다. 하지만 근본주의를 벗어난 위의 네 업장은 역설적으로 로컬리티의 본질로 곧바로 향한다. 이들이 각자의 터에서 지역민들의 사랑을 받으며 맺은 관계는 자연스레 한국 술에 대한 관심과 신뢰로 이어진다. 이는 구성원에게 문화적 자부심과 소속감을 부여하고, 산업 생태계의 다양성을 보존하는 로컬리티의 진정한 가치다. 한국 술은 지금, 이곳들에서 자유로워진다. 양유미(구름아양조장 양조사)

Movie 승리호
여덟 곳의 주요 투자·배급사의 투자 책임자들에게 타사 작품 중 가장 기대되는 작품을 물었을 때 무려 여섯 곳에서 <승리호>를 지목했다.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선보이는 우주 SF, 송중기와 김태리의 만남 등 여러 기대 요인이 있겠지만, 관계자들의 관심은 더 근본적인 곳에 있다. 이 프로젝트의 성공은 기획부터 투자 방식, 배급에 이르기까지 전 영역에서 기존 관습을 바꾸는 변화를 촉진할 수 있다. 기시감 드는 기획, 비슷한 배우들만 등장하는 것 같은 한국 영화판이 게으르다는 비판마저 어느덧 새삼스럽지 않게 됐다. 검증된 소재, 배우, 감독으로 꾸려진 프로젝트에 자본이 집중되는 것은 극장 수익만으로 돈을 벌기 어렵다는 위기의식 때문이다. 높은 매출을 올리는 영화와 손해를 보는 영화 사이의 격차가 더욱 커지고, 장기 흥행을 기대하기엔 극장은 영화의 입소문을 충분히 기다려주지 않고, SNS를 통한 부정적 이슈는 빠르게 확산된다. 표준근로계약이 업계에 정착하면서 제작비 상승까지 수반됐다. <승리호>는 처음부터 드라마와 웹툰, 영화, 게임 제작을 함께 논의하면서 카카오페이지, NC소프트 등에서 함께 투자를 받았다. IBK기업은행과 우리은행 등의 금융권에서 주된 투자를 받아 제작비를 마련하고 극장에서 대부분의 수익을 올리는 구조에서 탈피해 새로운 자본 창구를 발굴한 것이다. 먼저 공개된 웹툰이 <승리호> 프랜차이즈의 인지도를 높이면 덩달아 영화 홍보 효과까지 자연스레 누릴 수 있다. 이는 P&A 비용을 절감한다. 드라마 시장과의 협업은 현재 편성 드라마 수를 줄일 만큼 위기에 봉착한 방송계와의 윈윈이 가능하다. 영화를 먼저 상영한 후 TV 드라마를 공개하거나, 드라마를 먼저 방영한 후 클라이맥스를 극장 영화로 확인하게끔 하는 프로젝트는 방송국이나 영화 투자·배급사 입장에서 모두 리스크도 줄이고 제작비 부담도 덜 수 있게 한다. 하나의 IP에서 파생된 콘텐츠들이 연쇄적으로 성공하며 주요 캐시카우로 자리 잡는다면,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가 그랬던 것처럼 불확실한 시장에서 오히려 안정성을 담보해줄 것이다. 만약 <승리호>가 좋은 선례를 남긴다면, 다양한 포맷을 아우르는 IP 확보와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 플랫폼 간 협업을 향한 업계의 관심이 더욱 급물살을 탈 전망이다. 궁극적으로는 ‘영화인’들이 더 이상 영화만을 고민하지 않게 되면서 미디어 시장의 지형을 바꾸어나갈 것이다. 하지만 개별 프로젝트가 기대한 만큼 성과를 거두지 못한다면 감수해야 할 리스크는 더 복잡해진다. 이를 어떻게 극복해나갈지가 새로운 숙제로 남는다. 지난 5월 웹툰 론칭에 이어 <승리호> 프로젝트는 본격적인 영화 마케팅에 뛰어들었다. 어떤 의미에서든 콘텐츠 시장의 앞날을 가늠할 신호탄 같은 작품이 될 것이다. 임수연(<씨네21> 기자)

Art 증강현실 야외 프로젝트
권민호는 건축 도면에 연필이나 목탄으로 한국 근현대사의 풍경을 그린다. 특히 공장, 기계, 거리의 간판 등 한국 산업화의 상징물을 중첩해 치밀하게 그려낸다. 별도의 채색 없이 드로잉만으로 완성하는 그의 작품은 복잡하고 역동적인 한국 근현대사의 파편을 보여준다. 권민호 작가는 2019~2020년 초 서울시 문화비축기지에서 연 개인전 <새벽종이 울렸네, 새 아침이 밝았네>로 미술계에서 주목받았다. 1970년대 오일쇼크 이후 비상시 대비차 건립된 석유비축기지의 거대한 탱크와 그곳에서 선보인 산업화 시기의 당인리 발전소, 포항제철 공장과 자동차 등을 그린 그의 작품은 시너지를 내기에 충분했다. 이번에는 2D의 건축 드로잉에서 나아가 3D로도 감상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준비 중이다. 오는 10월 29일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 미술품수장센터에서 개최 예정인 AR(증강현실) 야외 프로젝트 <권민호: 회색 숨>이 그것이다. 이번 프로젝트는 작가의 기존 드로잉, 애니메이션과 사운드를 입힌 영상 작품 외에 실제 건물 외벽에 1:1 스케일로 작품 일부를 설치하고, 작품을 AR 콘텐츠로 제작한다는 점에서 남다르다. 2018년 12월에 개관한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은 한국 신·중진 작가를 지원하고 육성하기 위해 실험적인 작품을 제작할 수 있는 야외 프로젝트를 기획해왔다. 그 첫 주자가 권민호 작가다. 옛 연초제조창이었던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의 건축 도면에 청주의 역사와 한국 산업화의 상징, 세계사의 주요 사건이 압축적으로 그려지고, 작가가 상상력을 더해 재해석한 이야기들이 AR로 구현될 예정이다. 내가 소속된 국립현대미술관 관련 소식은 피하고자 했으나 아무리 고심해봐도 이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현대 미술 작가의 작품을 야외에서 AR 콘텐츠로 선보이는 이번 전시는 국내 미술관 최초 사례이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는 권민호 작가가 한층 업그레이드된 신작을 발표하는 프로젝트이자 현대 미술이 과학기술의 발전과 함께 나아갈 길을 모색하는 시도이다. 이번 전시를 발판 삼아 작업 세계를 설계 도면에서 실제 건물 외벽으로, 증강현실로 확장해 나가는 권민호 작가와 현대 미술의 행보를 기대해본다. 현오아(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피쳐 에디터
    김은희
    일러스트레이터
    백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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